소설리스트

갓싱어-61화 (61/260)

# 61

#61. 오지 말라면서요? (2)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김도준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어, 도준아.”

민준의 한마디가 침묵을 깨뜨리는 순간, 네 사람의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

‘뭐, 뭐야? 진짜였던 거야?’

‘그럼······.’

“아, 안돼!”

특히 유나는 너무 놀라서 몸이 다 떨려올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김도준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녀들에게 곡을 준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는 SIDE B라는 닉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정체가 밝혀진 지금은 더더욱 대단한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명실공히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수.

그냥 잘나가는 것도 아니고, 차트 순위를 쓸어버릴 정도로 노래를 잘하는 실력파다.

그것만으로도 장난이 아닌데, 작곡가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지녔다.

그가 준 곡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10위권 안에 진입할 정도로.

한마디로 김도준은 연예인들, 특히 가수들에게 있어서 스타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숙소를 나설 때부터 얼마나 설렜던가.

그런 그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릴 지경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민준의 동생이란다.

그걸 모르고 그동안 민준에게 창피를 주고 나아가 구박까지 했으니······.

겨울 축제의 얼음조각처럼 얼어붙은 채로 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이 된 유나. 아니 씨크릿걸즈 멤버들. 그녀들 앞에서 민준은 보란 듯이 도준에게 말하고 있었다.

“말 안 했었나? 나, 여기서 일 배우고 있잖아.”

그제야 납득했는지, 도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뒤늦게 시선을 돌려 씨크릿걸즈의 멤버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흠칫.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들이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을 떠는 동안, 도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있었다.

“우리 형, 잘 좀 부탁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야이, 씨발아!”

욕설이 날아들었다.

느닷없는 전개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을 찾아 돌아가는 가운데, 호통이 들려왔다.

“너,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사수인 내가 뺑이를 치고 있는데, 넌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어?”

열불이 터지는지, 씩씩거리는 차도식.

“아나, 이 새끼 졸라 개념 없네!”

그걸로도 모자라 차도식이 민준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동안, 씨크릿걸즈의 멤버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어찌할 줄 모른다.

다행히 그녀들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곤 서둘러 차도식에게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나가 손을 내젓고 있었고, 소연은 입을 벙긋거리며 손가락으로 민준과 도준을 번갈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차도식은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뭐라 말하는 것 같긴 한데······.

그녀들이 가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그제야 김도준을 발견하곤 눈이 커졌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안녕하세요. MJ 엔터테인먼트의 차도식입니다.”

“예.”

도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자, 차도식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마치 이게 너 때문이란 듯 민준을 한차례 쏘아보곤, 멋쩍은 표정으로 얘기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막내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가르치느라······. 김도준 씨가 와계신 줄도 모르고 그만.”

그러더니 별거 아니라는 듯 이내 차도식은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말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주신 곡은 정말 좋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애들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던 그는 저만치에서 씨크릿걸즈의 막내인 지연이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보곤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선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도준에게 곡 하나 받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잘 보여도 시원찮을 판국인데, 눈앞에서 형의 머리통을 때리더니 이젠 웃기까지 한다.

그 뒷일은 보지 않아도 비디오였다.

오죽하면 아이돌답지 않게 터프함을 자랑하는 현아조차 고개를 푹 숙이곤 중얼거리고 있었을까.

“망했네.”

그녀의 머릿속에 다음 분기 그녀들이 출시한 후속곡이 김도준의 곡을 들고 나온 가수들에게 밀려 10위권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한 채 공중분해 되는 장면이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죄송합니다만. 잠시만요.”

도준은 살살거리는 태도로 아직도 뭐라 뭐라 떠들어대고 있는 차도식에게 양해를 구한 후, 민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형. 잠깐 나 좀 봐.”

“어? 왜, 왜······.”

뭔가 자신이 예상했던 거랑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민준이 도준의 손에 이끌려 한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동안, 차도식은 피라냐처럼 자신에게 몰려든 씨크릿걸즈의 멤버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시달려야 했다.

***

어지간히 소리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장소까지 형을 데려간 후 돌아섰다.

그리고 형의 얼굴을 보니,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젠장! 설마하니 이런 데서 이런 대우를 받고 있을 거라곤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그래, 안다.

무슨 일이든 밑바닥부터 시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다른 직업들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거다.

하지만······.

“형. 왜 말 안 했어?”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인가?

남들이 어떻든, 내겐 하나밖에 없는 형이다.

그리고 그 형이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몰라도, 자신에겐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별것도 아닌 진실을 깨닫는데, 무려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기에 더더욱 지금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가?”

이상한 소릴 다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는 형을 보면서,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형, 우리 회사로 와.”

“······?”

“안 그래도 회사에서도 곧 사람 뽑는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됐어, 인마!”

픽 하고 웃으며 얘기하는 형이 안타까웠다.

동생 덕은 보기 싫다는 건가?

확실히 사회 물을 먹더니, 철이 든 걸까?

그런 점은 반길만하지만, 나로서도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는 법이다.

“나 때문에 그래? 그럼 나랑 형제란 건 말 안 하면 되잖아? 그럼 낙하산이란 말은 듣지 않을······.”

“싫다.”

단호하게 얘기하는 형을 나는 잠시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성장해가는 형을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예쁘잖아.”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의아해 하는데, 형의 시선이 내 어깨너머 뒤쪽을 향하고 있다.

그 시선에 이끌려 돌아본 내 눈에 씨크릿걸즈의 멤버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옆에선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이 들썩들썩하는 매니저도 보였고.

형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난 씨크릿걸즈가 좋아.”

다시 바라본 형의 얼굴은 헤실헤실 풀어져 있었다. 씨크릿걸즈의 멤버들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꿈이라도 꾸는 듯 몽롱해져 있었고.

***

광고 촬영은 별거 없었다.

콘티 자체가 간단했고, 내용은 그보다 더 간단했다.

이제 막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뜬 연인이 풋풋한 감정으로 애틋한 눈빛을 주고받고······.

손발이 오글거리다 못해서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온몸이 비틀려 버릴 것 같은 걸 참는 게 어려웠을 뿐.

파주 출판 단지의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건물들을 배경으로 한두 시간 남짓의 촬영. 그걸로 사실상의 촬영은 모두 끝났다.

다행히도 함께 찍은 소연이 생각보다 잘해주어서 오래 걸리진 않았던 것이다.

이상할 만큼 그녀가 수줍어했는데, 그게 또 감독 눈에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뻣뻣한 막대기처럼 삐걱거리며 국어책을 읽어대던 나 때문에 NG가 나면 NG가 났지.

아무튼, 그렇게 촬영을 하는 내내 한쪽에 서서 지켜보던 형과 씨크릿걸즈, 그리고 차도식이란 매니저를 보면서 내 마음은 심란하기만 했다.

형의 사수라고 했던가?

차도식은 첫 만남이 그래서 그런가 내 곁으론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형에게 착 달라붙어서 보란 듯이 살갑게 구는 모습이었다.

뭐, 형이 알아서 잘할······.

“걱정하지 마세요!”

“곡이요? 몇 곡이나 필요한데요?”

“말만 하라니까요? 우리 도준이가 형 말이라면 진짜 껌뻑 죽는다니까!”

“그쵸? 하하하! 우리 형제가 닮긴 닮았죠.”

“아유, 뭘요! 저 그렇게 잘생긴 건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지.

씨크릿걸즈 멤버들한테 둘러싸인 채 실실 웃으면서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듯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팔아먹고 있는 형을 보자니 그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

광고 촬영이 끝나고 돌아오기 전, 가사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회사로 들어가지?”

형이 다가와 묻고 있었다.

흠, 얼굴이 활짝 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행복해 보인달까.

쯧. 본인이 좋다는데야.

이럼 된 거지 싶어서 미련을 버리고 대답했다.

“응. 잠시 들렀다가 가라네?”

“우리도 곧 출발하려고······.”

말끝을 흐리며 뒤쪽을 자꾸만 흘깃거리는 형을 보곤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뭔가 바라는 게 있는 표정인데.

“왜 그래?”

“그······.”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이 굴면서 말을 못 잇던 형이 에라 모르겠단 얼굴을 해 보이더니 단박에 토해냈다.

“사인 좀 해 달래.”

누가? 설마 씨크릿걸즈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가수가 가수한테 사인을 해준다고?

게다가 데뷔시기로 보면, 저쪽이 나보다 더 선배 아냐?

기가 막혔지만, 그깟 사인이 뭐 대수라고 뒤로 빼겠는가.

알겠다고 얘기하곤 저만치 떨어져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네 명의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물론 형과 함께.

“근데, 뭔 고민 있냐?”

“응?”

피식.

우리 형님, 이럴 때 보면 눈치 하난 기가 막힌다니까. 아님 형제라 그런 건가?

“광고에 들어갈 곡 때문에.”

“곡? 설마 악상이 안 떠오르는 거야?”

형의 눈동자에 딱 쓰여 있다.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휘갈기면 곡이 뚝딱 나오는 거 아녔느냐는 눈빛이 역력하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얘기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가사를 써야 하는데······. 이번 노래가 사랑 얘기잖아. 근데, 내가 뭐 사랑을 해봤나? 하아, 그렇다고 딱히 부탁할 사람도 없고.”

그때, 형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날 바라본다.

눈을 반짝이는 게 영 불안한데······.

“도준아.”

나직하게 날 부르는 목소리.

왠지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이 쳐 지려는데, 형이 내 어깨를 움켜잡는다.

“왜, 왜?”

“알지?”

뭐를? 하고 눈으로 묻자, 형이 한층 더 눈을 빛냈다.

“이 형이 사랑꾼이잖니.”

그랬나?

뭔가 말린다는 느낌이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형이 씨익 웃어 보였다.

“가사. 형이 써줄게.”

“······.”

“걱정 마! 이 형만 믿어.”

***

씨크릿걸즈에게 사인도 해주고, 함께 사진까지 찍은 후에야 촬영장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회사.

근데 회사 분위기가 왜 이러지?

무슨 남북통일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다.

마루 누나는 날 보자마자 달려와 덥석······안으려는 걸 간신히 피해냈고, 고 팀장님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셨지만 이젠 안다. 지금 저 표정이 몹시 기쁠 때 짓는 표정이란 걸. 저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짜 웃기라도 하는 날이면 오히려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도.

“뭐 좋은 일 있어요?”

내 물음에 대답한 건 두 사람이 아니었다.

“팬 클럽이 결성됐다더라.”

아저씨께서 대표실을 문을 열고 나오며 말씀하고 계셨다.

의아해져서 되물었다.

“이미 있지 않았어요?”

그때, 마루 누나가 손가락을 치켜세워 흔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 베이징에서 전화가 왔거든.”

베이징?

느닷없이 튀어나온 도시 이름에 내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네 팬클럽이 결성된 거지.”

“아!”

“그것도 팬 클럽 회원수가 무려 1,200만 명. 현재 계속해서 늘고 있는 추세란다.”

1,200만 명?

우리나라 인구의 5분의 1, 아니 4분의 1인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런 수치가 가능해?

놀라서 눈을 크게 떠 보이자, 아저씨께서 툭 하고 내뱉으셨다.

“클래스가 다르긴 다르지?”

그러게. 대륙의 클래스가 다르긴 하네.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마루 누나가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더니,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 팬클럽에서 널 초대했어.”

그러니까······.

중국에서 날 초청했다고?

1,200만 명이나 되는 팬클럽 회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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