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60화 (60/260)

# 60

#60. 오지 말라면서요? (1)

지나간 여름은 정말 뜨거웠던 것 같다.

날씨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데뷔를 했고,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후 음원 순위를 거의 독차지해버렸다.

검색어 순위에서도 몇 번이나 오르내렸으며 한 번의 라디오 출연과 두 번의 방송 출연, 그리고 N9 광고로 인해 국내 인지도는 더없이 높아졌다.

덕분에 이젠 얼굴을 내놓고 다닌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쁘진 않지.

그만큼 사람들이 내 노래를 좋아해 준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

물론 불미스러운 일들도 있었다.

이제 와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불쾌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내가 SIDE B란 사실도 밝혀졌다.

그래서 그런가 마루 누나한테서 팬들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9월에 있었던 방송이 나간 후로 일주일. 여름도 지나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동안 한동안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휴가라면 휴가인 셈인데, 그럴 필요 없다는 데도 아저씨께서 부득불 잠시라도 좋으니 쉬라고 강요하신 덕분이다.

뭔가 숨기시는 게 있는 것 같긴 했는데, 그냥 신경 꺼버렸다.

알아서 하시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동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갈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버지와 형이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좋지 않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어머니께서 해주는 밥을 먹고 방에서 뒹굴다가 가끔 기타도 좀 연주하고······.

곡은 꾸준히 썼지만.

그 사이에 작은외삼촌이 몇 번 다녀갔고, 그 결과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뭐 나쁘지 않은 결과다.

***

부모님께서도 말씀을 안 하셔서 그렇지, 이번 표절 사태 때 마음고생을 하셨던지 간만에 밝은 표정이셨다.

“아들. 많이 먹어.”

조금 늦은 아침. 흔히 말하는 아점이다.

근데, 어머니께선 자꾸만 내 밥숟가락 위로 불고기를 얹어주시고 계신다.

나야 주는 대로 받아먹는 중이고.

그러다 보니, 고기양이 빠르게 줄고 있었다.

아버지께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두 분께선 어린 나이에 벌써 세상으로 뛰어든 막내아들이 안쓰러워 그러시는 거겠지만, 나로선 유리 멘탈을 지니신 우리 형님이 신경 쓰인다.

특히 고기 앞에선 설탕 유리만큼 약해지는 형님의 멘탈이.

괜히 나 때문에 애정결핍이라도 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웃고 있다?

그것도 날 가끔 한 번씩 보며 히죽거린다.

그러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입꼬리를 쭈욱 끌어올리며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그걸 반복하고 있는 형을 보고 있자니, 어째 섬뜩해지는 기분이다.

어제저녁에도 저러더니.

뭐지?

뭔 흉계를 꾸미고 있기에 저러는 건지.

아, 정말이지 십칠 년을 보아왔지만, 아직도 형을 모르겠다.

대체 저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관두자.

경험상 저럴 땐 안 건드리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늦었나 보다.

“도준아.”

젠장!

하필 눈이 마주칠 건 또 뭐람.

“응?”

형이 언제 웃었냐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은근하게 물어오고 있었다.

“너, 오늘 광고 촬영 간다고 하지 않았어?”

가만히 형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왜?”

“아니. 그냥.”

그러곤 밥숟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형이었다.

“큰아들! 좀 더 먹지 않고?”

어머니께서 물었지만, 형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많이 먹었어요.”

대답하곤 돌아서는 형.

한데, 형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진 거 같은데 잘못 본 거겠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TV 쪽을 보면서 한마디 하셨다.

“큰일이긴 큰일이구나.”

시선을 돌려보니, TV에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국 측에서 다소 강하게 나오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타격이 많은 듯했고.

기업들도 기업들이지만, 관광 쪽도 힘든 거 같았다.

하긴, 한류에 대해선 아예 중국 측 지도부에서 대놓고 강하게 제약을 걸고 있으니······.

이를테면 반한류 정책이랄까.

아마 자국 내 콘텐츠 사업을 보호하려는 취지겠지만, 우리나라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제는 문제죠.”

큰일이란 건 알지만, 역시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나도 안다.

현재 중국 내에서 나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쯤은.

회사에서도 꽤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고.

그렇다고 국가 간의 일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뭐 상관없잖아?

요즘 같은 세상에 꼭 얼굴 보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내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아무튼, 중국 내 반응이 대단하다는 건 확실한 거 같다.

아니 세계적이라고 해야 하나?

N9 광고 짜깁기 영상은 현재 1억 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에 비해 유투븐에 올라가 있는 ‘LONGING TIMES’ 동영상은 조회수가 5,000만에서 멈춘 채 제자리걸음이다.

대신 일주일 전, 중국판 유투븐인 유쿠투모우에 ‘LONGING TIMES’ 동영상이 올라오더니 그때부터 무서운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조회수 8,000만.

대륙의 클래스가 다르긴 다르달까.

그렇긴 한데, 고 팀장님 말씀으론 지금은 중국 정부가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만, 언제 차단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어쨌든 덕분에 중국에선 빠르게 내 이름이 퍼지고 있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SNS인 에이보에선 현재 난리가 났고 그 뒤를 이어서 키키에서도 무서운 속도로 내 사진이 퍼지는 중이라고 한다.

솔직히 의문이긴 하다.

왜 이렇게까지 중국인들이 난리를 치는지.

이에 대해 고 팀장님께선 조심스럽게 얘기하셨었다.

‘LONGING TIMES’ 동영상 마지막에 등장한 장면과 함께 흘러나온 노래에 많은 중국인들이 감정을 이입해버린 결과가 아닐까 한다고.

“진짜 이러다간 우리나라 기업들 다 망하게 생겼다.”

나직이 한숨을 내쉬시는 아버지.

그 모습을 보다가 일어났다.

슬슬 약속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회사는 여전했다.

고 팀장이 책상에 앉아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해 핸드폰과 컴퓨터로 작업하시는 걸 보다가 대표실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계셨는지, 아저씨께서 물어오신다.

“왔냐?”

“쉴 만큼 쉬었으니, 이제 일해야죠.”

“더 놀고 싶진 않고?”

장난이라도 치고 싶으신 건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물어오시는 아저씨. 나 역시 웃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됐어요. 노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저씬 소파로 자리를 옮기시고 계셨다.

“마루가 문자 보냈다는데, 확인해 봤지?”

나 또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으며 대답했다.

“예. 팬들이 확 늘었더라고요.”

“좋아?”

“당연히 기쁘죠. 근데······.”

“왜? 부담돼?”

“그렇게까진 아닌데, 걱정은 돼요.”

“걱정?”

“예. 그만큼 저한테 기대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아저씬 어딘지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이시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하던 대로만 해. 그럼 돼.”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아저씬 본론을 꺼내셨다.

“광고 콘티는 봤지?”

“예. 확인했어요.”

“너희 외삼촌께서 이번 광고 기대 많이 하시더라.”

“그러게요. 안 그러시면 좋겠는데.”

조용히 웃으시던 아저씨께서 불쑥 물으셨다.

“가사 작업은 잘 돼가냐?”

“처음 하는 작업이라 쉽지가 않네요.”

“흠······. 마루는 뭐라고 하는데?”

“일단 써보래요. 정 안되면 그때 얘기하자네요.”

“오케이. 슬슬 나갈 준비 해야지?”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씬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

작은 외삼촌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촬영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예. 삼촌.”

- 지금 촬영장 가는 중?

“거의 다 와 가요.”

- 미안한데, 어쩌지? 못 갈 거 같은데. 갑자기 미팅이 잡히는 바람에······.

“괜찮아요. 꼭 삼촌이 오실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 오시면 오히려 민폐 아닐까? 광고 촬영장에 광고주가 떡하니 나타나면 감독부터 배우들까지 죄다 얼어버릴 테니까.

차라리 안 오시는 게 낫지 싶다.

“걱정 마시고 일보세요.”

- 그렇게 말해주면 나야 고맙지. 근데, 도준아.

“예.”

- 알지?

“뭐가···요?”

- 내가 이번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진짜 한번 제대로 엮어봐라. 임원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거 별의별 이유를 다 갖다 붙여서 섭외하기로 한 거니까.

그 별의별 이유라는 게 이번 광고의 컨셉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젊음? 청춘? 외삼촌조차 말할 때마다 달라져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대충 그런 거였던 걸로 안다.

실제로도 엊그제 받아본 콘티에는 풋풋한 연인들의 감성이 녹아 있었고.

덕분에 곡 작업에 애를 먹었다.

살면서 사랑이라는 걸 해봤어야 말이지.

하는 수 없이 드라마 등을 참조하긴 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서 여러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형 그리고 희주.

그러고 보니 요즘 희주한테서 소식이 없네.

뭐, 잘살고 있겠지.

상념에 잠겨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차가 촬영장에 도착했다.

***

촬영지는 파주 출판 단지였다.

이곳을 배경으로 풋풋한 첫사랑을 컨셉으로 찍겠다고 했다.

“홧팅!”

주먹을 쥐어 보이는 마루 누나를 향해 웃어 보이곤 돌아섰다.

그리고 저만치 보이는 스텝들을 향해 걸어갔다.

앞뒤에는 두 명의 경호원들을 둔 채로.

그렇게 한창 촬영 준비 중인 스텝들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어?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지?

음, 오늘 아침부터 음흉한 얼굴을 하고 있더니만······.

아,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상한 소리를 했던 게 기억난다.

자꾸만 자기네 회사에 오라고 하던······.

소원이라고 하면서 매달리던 걸 보면 뭔가 있는 것도 같긴 했었는데.

의아한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민준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얘기를 들은 건 어제저녁.

출석 일수 때문에 학교를 마냥 빼먹을 순 없어서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사이, 결정된 듯했다.

그 탓에 그는 어제저녁에나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동생과 시크릿걸즈의 소연이 함께 광고를 찍게 됐다는 걸.

이제야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다들 얼마나 놀랄까?

그동안 자신을 무슨 허풍쟁이 취급하던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뭐해요?”

언제 다가왔는지, 소연이 묻고 있었다.

그래도 함께 다닌 지 몇 달 됐다고 조금은 친해진 그들이었다.

민준의 얼굴이 더없이 밝아졌다.

뿐만 아니라 눈까지 반짝이지만, 차마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는 은근슬쩍 눈길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냥 있어요.”

한데, 어째 묘한 표정이다.

웃음을 꾹 참고 있는 얼굴이랄까.

소연은 새치름한 표정으로 민준을 보다가 다시 물었다.

“지금 숨기는 거 있죠?”

“아닌데요?”

“흠, 분명 있는데······.”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서둘러 돌아서는 민준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미소가 스쳐 가고 있었다.

그때 언제 왔는지, 유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왜 그래요? 오늘 좀 이상한 거 같은데요? 아까부터 보자니까 혼자 키득거리고.”

“별거 아니라니까, 왜들 그래요?”

민준은 정색하더니 오히려 유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오늘 스케줄 없어요? 소연 씨 촬영까지 따라오······.”

“와! 말하는 거 봐! 장난 아니다. 우리더러 지금······. 흠? 혹시 쪽팔릴까 봐 그러는 건가?”

뒤쪽에 서 있던 현아까지 가세하자, 민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쪽팔릴 일이 뭐가 있지 싶었던 것이다.

“김도준이 온다니까 그러는 거에요?”

소연의 물음에 유나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풉! 그때 진짜 웃겼는데······.”

얼굴이 살짝 붉어진 민준이 막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찰나였다.

“형! 여긴 웬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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