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59. 바람이 불 땐……. (6)
기타연주와 함께 들려오는 허밍 속에 떠올랐던 사진들이 머릿속에서 떠돌고 있었다.
특히 동영상의 마지막 장면.
천안문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
그리고 누비옷을 입은 채 토굴 같은 흙벽집에서 주름진 눈으로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라마승의 모습이 잔상처럼 머리를 떠나질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도 조회수는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올린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1,000만을 넘어 2,000만에 육박하고 있다.
그것도 초 단위로 숫자가 달라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댓글도 엄청나게 달리고 있었다.
영어, 독일어, 일본어, 프랑스어······. 그중에서도 중국어가 가장 많았다.
그걸 아저씨께선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이 되어 한참이나 보고 계셨다.
마우스를 쥐고 천천히 스크롤 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단연코 이제껏 보아왔던 것보다 심각해 보였다.
그러길 한참. 아저씨께서 나직이 숨을 뱉어내며 허리를 펴셨다.
그러곤 턱을 매만지며 또 생각하신다.
그때,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던지 고 팀장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까 하다만 말이 걸려서였을 것이다.
“대표님. 기자회견 어떻게 할까요?”
순간, 아저씨께서 머릿속을 정리하셨는지 눈을 번뜩이셨다.
“잠깐만.”
대답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민망한 한마디만을 남겨놓고 아저씬 핸드폰부터 꺼내 드셨다.
그러곤 대표실로 움직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아, 윤 국장님. 저, 강혁수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
수요일 밤 12시.
TV 앞에 세 사람이 모여 앉아 있었다.
화면에선 아직 광고만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광고는 언제 찍기로 했지?”
“다음 주 목요일로 스케줄 잡아놨습니다.”
“미리부터 홍보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기자들한테 소스는 넘겨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엠바고로 풀더라도요.”
“흠, 이번 일 때문에?”
강혁수의 물음에 고 팀장이 한 템포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기도 하겠군. 오케이. 그 문제는 알아서 하고.”
“시작해요!”
조마루의 외침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TV로 돌아갔다.
***
“강혁수라고 했던가? 그 친구 보통은 넘는 거 같더군.”
“예. 제 예상보다도 영민한 사람인 거 같습니다.”
“허허. 생방송이라.”
기분 좋은 말투였다.
TV를 향한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가득했고.
간만에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최 회장의 모습에 이 실장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면, 자료들은 어쩔까요?”
최 회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방송이 시작하려면 3분 정도가 남았다.
핸드폰을 꺼내 든 최 회장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최 지검장, 날세.
잠시 안부가 오가다 최 회장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내 손자 문제인데······.”
통화는 길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뒤, 최 회장이 이 실장에게 지시했다.
“한 부는 검찰에, 또 한 부는 강혁수란 친구한테 보내줘.”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TV에서 방송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시그널 음악이 점점 작아지다가 희미해질 때쯤, 사회자인 양호재는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면서도 날카로운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디인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분들을 모시고 얘기를 나눠보는 ‘KBC 이슈 토론’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양호재가 말했다.
“오늘 토론 역시 생방송으로 진행되겠습니다.”
말은 살짝 끊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모습이 확실히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토론에 앞서서, 먼저 한편의 동영상부터 보시고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 한편의 동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흑백의 낡은 사진들이 교차하는 사이, 잔잔한 기타 연주를 배경으로 허밍이 들리기 시작했다.
약 4분여간의 흘러나오던 동영상이 끝나고 난 뒤, 카메라가 다시금 스튜디오 안을 비췄다.
다들 멍한 표정들이었다.
아니, 먹먹한 눈빛들이었다.
방청객 중에선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사회자인 양호재라고 다르진 않았다.
넋이 나간 듯 꺼진 동영상을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떠올리고 있었다.
담당 피디와 국장님까지 내려와 이번 편에 김도준을 반드시 출연시켜야 한다며 자신을 설득하던 모습을.
이제야 그 이유를 납득하게 된 그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는 한순간 깨어나듯 정신을 차리곤 이내 매끄러운 말솜씨로 얘기를 이어나갔다.
“요즘 인터넷상에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동영상입니다.”
그는 들고 있던 카드를 확인하며 말했다.
“음, 유투븐에 올라와 있는 영상으로 이틀 만에 조회수가 3,000만을 넘기며 최단기간 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는데요. 들으셨으니 아시겠지만 익숙하죠? 맞습니다. 이 동영상의 배경음악은 ‘LONGING TIMES’라는 곡으로 얼마 전 데뷔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김도준 군이 작곡한 노래입니다. 이쯤 되면 이미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오늘은 항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표절 시비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이 화면에 김도준의 노래와 올인원의 노래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양호재는 다시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논쟁의 핵심은 김도준 군이 N9 광고 테마곡으로 작곡한 ‘세상의 중심에서’란 곡이 작곡가 SIDE B 씨가 만든 노래 ‘4.5’의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건데요. 먼저 오늘 토론을 위해 나와주신 분들부터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확대되며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는 패널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반원형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그들 앞에는 이름이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좌측으론 장도원, 서상현, 박성훈.
우측은 노준영, 이성원, 곽미영.
한눈에도 김도준을 대변하는 측과 SIDE B를 대변하는 측으로 나뉜 모습이다.
“왼쪽부터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아일보의 서상현 기자님. 음악 세상의 칼럼니스트 장도원 기자님. R&B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가수분이시죠. 박성훈 씨 나와주셨습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방청석으로부터 연이어 박수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다시금 소개가 이어졌다.
“15년 차 가수이면서 현재 라디오 DJ로 활약 중이신 노준영 씨. 현재 TV에서 음악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시죠. 이성원 씨입니다. 대한신문의 연예부 곽미영 기자 모셨습니다.”
또다시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난 뒤, 사회자인 양호재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상태로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얘기했다.
“자, 그럼. 이번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서 계신 두 분을 모셔보겠습니다.”
방청객들이 눈을 빛내며 기대감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양호재는 다소 큰 목소리로 외쳤다.
“김도준 군과 SIDE B 씨를 모십니다.”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할 정도로 커진 박수소리.
그만큼 기대감이 크다는 증거일 터였다.
그건 TV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평소와 달리 오늘 유독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TV 앞에 앉아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대기실에서 스튜디오로 연결된 통로를 울리는 발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사회자와 방청객들 그리고 패널들의 시선이 통로 입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중 장도원과 서상현, 박성훈의 얼굴에는 진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노준영, 이성원, 곽미영 등은 담담한 얼굴들이었다.
그렇게 발소리가 들리다가 통로 밖으로 이어지는 순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김도준이었다.
그를 발견한 장도원을 비롯한 세 사람의 입가에 조소가 스쳐 가고 있을 때, 방청석에서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터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얼마 가지 못했다.
대신 모두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떠올랐다.
특히 장도원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서상현의 경우엔 눈살까지 찌푸리는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스텝들 또한 우왕좌왕하고 있었으며 침착하기로 소문난 양호재 역시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어 피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때, 이미 김도준은 자기의 자리에 가서 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서로 다른 감정들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도준이 떡하니 앉아 있는 자리는 다름 아닌 SIDE B가 앉기로 내정되어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노준영을 비롯한 김도준 측 패널들은 곽미영을 제외하곤 웃음기 가득한 얼굴들이었고, 장도원을 위시한 SIDE B 측의 패널들은 불쾌함을 참지 못해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방송사고라고 생각한 양호재는 지금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빠르게 대처했다. 그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그였다.
“음, 김도준 군이 헷갈린 것 같군요. 김도준 군?”
그의 부름에 김도준은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양호재를 바라보았다.
“김도준 군의 자리는 그쪽이 아니라···.”
하지만, 김도준은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팻말을 확인하더니 담담하게 말했을 뿐이다.
“제자리 맞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제가 SIDE B인데요.”
순간 정적에 휩싸이고만 스튜디오 안. 무거운 침묵만이 모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표정들은 제각각이었다.
노준영은 도준이 실수했다고 생각하며 킥킥거렸지만, 장도원 측은 하나같이 얼굴이 달아오른 채 화를 참느라 애쓰는 모습들이었다.
방청객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웅성거리며 수군거리고 있었고.
그 시각, TV 앞에서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난리법석이었다.
SNS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인터넷에선 그의 이름이 실시간 1위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양호재는 침착하게 묻고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방금 제가 김도준 군이 SIDE B라고 들은 거 같은데 맞습니까?”
김도준이 대답도 하기 전, 스텝을 통해 한 장의 문서가 양호재에게 전달되었다.
그걸 받아든 채 꼼꼼히 살펴보던 양호재가 얕은 신음을 흘렸다.
그러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문서가 전달될 때부터 뭔가 있다고 직감한 방청객들. 그리고 TV 앞에 앉아 있던 시청자들의 시선이 그의 입으로 모아졌을 때였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건, 방금 김도준 군의 소속사 측에서 제출한 것으로 SIDE B가 한국작곡가협회의 회원임을 입증하는 서류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침묵 속에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나와 있는 대로라면, SIDE B의 본명이······. 김도준이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방청석.
반면 노준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한 표정이 되어 김도준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곽미영이야 원체 표정이 없어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고, 이성원은 입가에 미소 한줄기를 매달고서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장도원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
이를 놓칠세라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잡고는 확대하는 순간, 그가 신경질을 내며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그 모습까지 고스란히 TV를 통해 방송될 뿐이었다.
서상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쪽 눈을 씰룩거리며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중이었다.
박성훈?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뭔가 일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선······.
- 헐! 대박!
- 미치겠다! 지금까지 뭐한 거임? 김도준이 SIDE B면 여태 표절 논쟁은 왜 한 거람?
- TV 꺼! 다 끝났어!
- 장 씨! 얼른 택시 타고 집에 가. 더 늦으면 할증 붙는다.
- 이미 12시 넘었음.
- 근데,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자신이 SIDE B라면 그냥 밝히면 되잖아요? 왜 그동안 가만있었던 거죠?
- 그거야 자기 마음이죠. 잘못한 게 없는데 굳이 나와서 구질구질하게 해명하기 싫었던 거 아닐까요?
- ㅋㅋㅋ 한 가지 확실한 건, 김도준이 서브잡 하나 잃어버렸다는 거지. 이제 SIDE B로는 곡 못 내겠네.
- 아무튼, 표절 논란은 여기서 끝?
- 아니죠. 자기 복제도 엄연히 표절인데······.
- 도의적으론 문제가 돼도 법적은 문제가 없을걸?
이번엔 논쟁으로 인한 과열이 아니라, 놀람과 흥분으로 달아올라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TV를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은 SNS, 문자, 전화 등 연락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을 때, 한창 방송 중인 스튜디오에선······.
“아니, 왜 그동안 안 밝힌 겁니까? 그럼 애당초 이런 문제가 생기질 않았지 않습니까?”
잔뜩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는 장도원의 물음에 김도준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벌떡 일어났다.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는지······. 귀가 따가워서 여기 못 앉아 있겠네요.”
그러곤 자신의 이름이 박혀 있는 반대편 자리로 가버렸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장도원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 때, 자기 자리로 가서 앉은 김도준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조로 물었다.
“표절 의혹이 일기 전을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그 후를 말하는 겁니까?”
“그야······.”
할 말이 없어진 장도원. 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따지고 보면 그의 질문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논란 전이라면, 다른 닉을 써서 작곡 활동을 한 거니 전혀 문제 될 게 없었고, 논란 후라면 지금 이렇게 밝히고 있으니 그것 또한 문제가 안 된다.
그래 봐야 기사가 나가고 이틀이 지났을 뿐이니까.
머뭇거리던 장도원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표절 의혹이 일어났을 때 바로······.”
“그러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 그거야······.”
“그리고 기자님. 제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
“지금 이 자리가 마련된 건 제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나요? 표절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나온 걸로 아는데요? 아니에요?”
꿀 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었다.
김도준이 하는 말마다 틀린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대답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따지는 듯한 말투로.
“중요하지 왜 안 중요합니까? 애초에 논란이 불거진 것은 김도준 군이 SIDE B의 노래를 표절해서 생긴 문제지 않습니까? 그러니 SIDE B의 정체를 이제껏 숨겨온 것은 국민들을 우롱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도준은 서상현을 보면서 참 쓰레기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참 이상한 분이시네. 그럼 앞으로 작곡가들은 전부 실명만 써야겠네요? 그게 아니라도 논란이 벌어지면 그 즉시 정체를 밝히거나. 기자님 논리대로라면, 국민들을 우롱하는 게 되는 거니까요.”
“그···그······.”
서상현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주장이 아전인수격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걸.
글로 쓸 때야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면전에서 토론이 붙으니 전혀 먹혀들질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저 SIDE B 맞으니까, 그 얘긴 이쯤 하시고요. 표절 얘기나 좀 하도록 하죠?”
김도준이 상황을 깔끔히 정리하곤 사회자인 양호재를 바라보자, 그가 얼른 말을 받아 얘기했다.
“그럼, 김도준 군은 SIDE B의 곡을 표, 표절······.”
뭔가 맞지 않는 표현에 양호재가 더듬거리고 있을 때, 때는 이때란 듯 장도원이 끼어들었다.
“김도준 군은 지금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자기 복제는 그럼 괜찮다는 겁니까?”
그의 질문에 김도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자기 복제요? 누가요? 제가요?”
그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스텝들에게 건넸다.
잠시 후 스튜디오 안, 정면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스크린에 도표를 비롯한 자료들이 떠올랐다.
그걸 가리키며 김도준이 하나하나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혹시 자료 출처가 의심스러우면 말씀하시고요. 누구하곤 다르게 출처는 언제든 확인시켜 드릴게요. 자, 그럼 이제 곡들부터 살펴볼까요?”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장도원 측 패널들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이 부분 보이시죠? 보시면 알겠지만, 파장이 다르죠?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기 이 곡의 반주 패턴은 발라드 쪽에 많이 사용되는 패턴이고요. 그에 비해서 이 곡은 흔히 팝 계열에 많이 쓰는 패턴을 사용했습니다. 딱 봐도 무슨 차이인지 아시겠죠? 자, 그럼 문제가 된다고 의심되는 인트로 부분을 한번 볼까요?”
그는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막힘없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음악 칼럼니스트라는 장도원이 한두 차례 질문을 던지며 반전을 꾀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건 박성훈도 마찬가지.
김도준이 지니고 있는 음악적 지식은 그들 두 사람이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들 같은 사람이 몇 트럭이 와도 상대가 안 될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김도준이 노래방에서 갇힌 채 음악을 몸에 익힌 게 몇 년이던가.
게다가 현재 표절의 대상이 되는 두 곡 모두 그가 직접 만든 곡들이었다.
장도원과 서상현 그리고 박성훈의 얼굴이 갈수록 썩어들어가는 반면 김도준 측 패널들은 더없이 밝은 얼굴로 그의 얘기를 듣다가 간혹 한 번씩 끼어들어 보충 설명해주며 말의 신빙성을 높여주었다.
이건 토론인지, 강의인지 모를 정도로 한쪽의 주장이 명명백백하게 옳다고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 와아! 김도준!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아는 거 많네!
- 천재는 천재인가 보다. 하긴 그러니까, 곡들을 그렇게 쓰는 거겠지.
- 곡만 잘 쓰나? 진짜 잘하는 건 노래지.
- 근데 아까 본 동영상은 뭐에요?
- 방금 알아봤는데, 지금 난리래요. 조회수가 후덜덜. 특히 중국 쪽에선 진짜 장난 아닌가 봐요.
- 중국애들은 왜 그러는 거래요?
- 마지막 부분에서 감동 먹은 사람이 많나 봐요.
- 하긴, ‘LONGING TIMES’가 사람 좀 울리긴 하죠.
- 내가 걔들이라도 마지막 부분 보면 울었을 듯.
- 그나저나 장도원인지 뭐시깽인지, 다들 김도준 한 명한테 완전 발렸네.
- 저 사람들, 표절 시비 일어났을 때 김도준 엄청 까대던 사람들인데.
- 오! 방금 게시판에 올라왔는데, 저 사람들 신상 털렸네요.
- 완전 쓰레기들이네! 그동안 올린 글들도 올라왔는데, 아주 더럽네요.
- 헉! 사진 한 장 띄웁니다. 미성년자는 보지 마세요.
사진이 올라오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룸살롱인지 어딘지는 몰라도 술집으로 보이는 곳에서 알몸이나 다름없는 여자들을 한 명씩 끼고 질펀하게 노는 네 명의 남자들. 그들의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장도원 측 패널들이 똥 씹은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고 있을 때였다.
사회자인 양호재의 낯빛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남은 시간이 무려 70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 이어가자니 토론할 건더기가 없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때, 김도준이 툭 하고 내뱉었다.
“이제 토론할 거 다 한 거 같은데, 이만 끝내죠?”
양호재는 뭐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난감한 눈빛이 되어 피디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피디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그 역시도 지금의 이 상황을 타파할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100분짜리 토론회가 단 30분 만에 끝이 났으니······.
시말서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방송사고다.
그것도 국장님이 나선다 해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대형 사고.
암담한 심정에 눈앞이 깜깜해졌을 때였다.
그 순간 그들에게 동아줄 하나가 내려왔다.
문제는 그게 썩은 동아줄인지 아닌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시간도 많이 남는데, 이참에 도준이 노래나 좀 듣죠?”
방송을 아는 노준영답달까.
피디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스텝 하나가 다가와 귓속말을 하자, 그는 얼른 자리를 옮겨 확인했다.
“헛!”
헛숨이 절로 나왔다.
27%
심야 프로그램 사상 역대급 시청률이 나왔던 것이다.
게다가 그 수치가 고정된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오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나 방송국 홈페이지 게시판이 미친 듯이 글이 올라오고 있다.
한결같이 김도준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요구, 아니 협박성 발언들이었다.
마른 침을 한차례 삼킨 피디는 사회자인 양호재에게 신호를 보냈다.
‘시켜! 시켜!’
‘정말요?’
‘무조건 해!’
‘전 모릅니다!’
두 사람 간에 눈빛이 오가고 난 뒤, 양호재가 말했다.
등 뒤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 그럴까요? 정말 어렵게 모신 분인데, 이대로 보내긴 아쉽겠죠?”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김도준.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노준영을 쳐다보았지만, 오히려 노준영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더니 방청객에게 보란 듯이 박수를 쳐 보였다.
그러자 방청객들이 신 났다고 박수를 따라쳤다.
그 모습에 김도준은 기가 막힌다는 듯 노준영을 바라보다가 이내 픽 하고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튜디오 안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쏟아졌다.
잠시 후, 김도준이 테이블 앞쪽으로 나오자 스텝 한 명이 쪼르르 달려와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곧이어 어디서 MR을 급히 구해왔는지 반주소리가 들려오고, 그의 입술 사이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시청률은 미친 듯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어제 있었던 토론으로 온종일 들끓었다.
검색어 1위부터 10위까지 온통 김도준과 관련된 것들로 도배되었으며 토론 내용 중 일부분이 짤로 만들어져 SNS를 나돌았다. 특히 김도준이 노래 부르는 장면은 동영상으로 편집되어 유투븐에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렇게 세상이 시끌시끌한 가운데 퇴근길에 나선 많은 이들이 황당한 표정을 금치 못했다.
또 다른 특종이 터졌기 때문이다.
장도원, 박성훈, 한상철, 서상현. 이들 네 명이 업무상 배임죄와 허위사실유포죄, 그리고 명예훼손죄를 비롯한 각기 다른 죄목으로 수사가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것이다.
그리고 처음 한상철에게 돈을 받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표절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인터넷 신문사는 한순간에 주저앉으며 풍비박산 나버렸다.
경찰들이 들이닥치기도 전에 광고가 끊기고, 또 누군가에 의해 자금줄이 막히며 그대로 폭삭 망해버린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져 나간 ‘LONGING TIMES’ 동영상이 서서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까지 김도준을 노리고 불어닥치던 바람과는 다른.
대륙에서부터 불어오는 강렬한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