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57화 (57/260)

# 57

#57. 바람이 불 땐……. (4)

최 회장은 빈손으로 돌아온 자신의 아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 이 말이더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는 최주호.

최 회장은 그런 그를 말없이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 조카 하나 품지 못해서 쩔쩔매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 그까짓 광고야 찍어도 그만 안 찍어도 그만이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그저 홍보실에 맡겨두면 될 일을 굳이 아들을 보낸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룹? 재벌? 기업?

아무리 포장하고 치장한들 결국 장사치다.

한마디로 물건을 많이 파는 놈이 장땡이라는 거다.

그 물건이 커피가 되었든, 자동차가 되었든, 컴퓨터가 되었든. 심지어 건물이나 부동산도 결국엔 사고파는 물건과 다름없다. 만들어 파나, 미리 사두었다가 파나 목적은 같으니까.

이익 창출.

장사치에게 최대의 미덕은 많은 이문을 남기는 것.

그래서 때론 국가권력에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때론 술주정뱅이한테조차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요는 내가 파는 물건을 누가 사주느냐 일뿐이다.

그렇기에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준이한테 달라붙는 거란 걸 왜 모르는 걸까?

도준이가 예뻐서?

그저 노래를 잘해서?

“쯧쯧. 동태 눈깔도 아니고······.”

최 회장은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나가서 커피를 팔면 얼마나 팔아올까?

그게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마 갖은 인맥을 다 동원해도 도준이가 마이크 한번 잡는 것보다 못할 거라는 건 분명하다.

그만큼 도준이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적어도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녀석을 넘어설 사람은 없을 터였다.

“사업을 한다는 놈이 보는 눈이 그렇게 없더냐?”

“······도준이의 가치는 이미 파악해두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뒷말은 들어보지 않아도 짐작하고도 남는다.

도준이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얘기겠지.

아니, 그냥 놔두어도 소비자들이 천년만년 D그룹의 커피만 찾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다.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는 꿈에서조차 생각지 않고서.

“그만 나가서 일봐.”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다는 눈빛이 되어 손을 휘휘 내젓는 최 회장.

시선조차 돌려버리는 최 회장에 허리를 숙여 보이곤 돌아서는 최주호의 눈동자에 분노의 빛이 스쳐 가고 있었다.

***

장도원은 처음 한상철과 박성훈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만 해도 소 닭 보듯 했었다.

그가 보기에 김도준은 SIDE B와 견주고 말고 할 여지 따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준 차이를 논하기에 앞서서 그 자체로 빛나고 있다는 판단이었으니까.

그런 가수를 깐다?

작정하고 덤벼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위험요소가 너무 많았다.

한마디로 자칫해서 역공이라도 맞으면 몰락하는 건 이쪽이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당연히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게 맞았다.

그래서 한상철과 박성훈이 무슨 말을 하든 상대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상철이 내민 자료를 찬찬히 보던 장도원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표절?’

이거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역시도 이대로 물러나기엔 체면이 상한 상태였으니까.

그만큼 대중들은 이미 김도준을 SIDE B의 윗줄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 말은 곧 칼럼을 쓴 자신이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론 칼을 갈고 있었다.

그걸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한 팔 거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한발 물러난 채로.

정식으로 기사를 내보낸 게 아니라, 가십성 기사나 내보내는 인터넷 신문사에 정보를 흘린 것도 그래서였다.

만약 먹힌다면, 일파만파 퍼져 나갈 테고 그때 끼어들어도 늦지 않으리란 판단에서.

안 먹히면 모른 척 발을 빼면 그만일 테고.

한데, 먹혔다.

그것도 제대로.

서서히 달궈지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서 앞다퉈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자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매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확실히 SIDE B와 김도준의 곡에는 유사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기만 따지면, SIDE B가 작곡한 ‘4.5’가 김도준이 광고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세상의 중심에서’보다 먼저 출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SIDE B 대신 계약서에 서명한 게 HS 엔터테인먼트의 강혁수라고 들었다.

그 부분도 잘만 이용하면 후속타로 쓸만할 터였다.

“지금쯤 슬슬 움직이겠군.”

장도원의 얘기에 한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상현 기자가 시작하면, 다른 일간지에서도 달려들 겁니다.”

장도원은 헛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신아일보의 연예부 기자 서상현.

놈은 기자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비열한 놈이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자신도 깨끗하다곤 말하기 어렵지만, 놈에 비하면 진짜 청정지역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그야말로 쓰레기 중에서도 쓰레기.

그러면서도 집요하고, 한편으로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맥도 대단하다.

그러다 보니, 그가 작정하고 건드리면 스캔들로 비화되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런 그가 오늘 자 석간에 기사를 올리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되면 불은 확실히 붙을 것이다.

한상철이 놈에게 그 대가로 무얼 주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김도준이 이번 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거란 사실이었다.

단번에 잡음을 잠재우고 사건 자체를 묻어버릴 만큼 강력한 우군이 없는 한은.

‘모 기업의 손자라는 얘기도 있긴 하던데······.’

김도준이 재벌집 자식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애당초 그런 작고 보잘것없는 기획사에서 데뷔했을 리가 없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MJ나 KSM같은 회사에서 곡을 냈을 테고,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을 터였다.

‘어디 한번 보자고.’

과연 이렇다 할 뒷배도 없이 그 풍파를 이겨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해지기까지 하는 장도원이었다.

***

표절 시비가 불거지자, 인터넷이 달아올랐다.

여기저기서 표절 문제를 두고 본격전인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기사가 나간 지 겨우 하루만의 일이었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게, 처음에 딱 듣고 알았다니까. 그게 열일곱짜리 애가 쓸 곡이 아니란 거지.

- 아이고, 노스트라다무스 나셨네. 왜요? 내년 대선 결과도 예언해 보시죠?

- 근데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죠? 난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던데.

- 아니 들어보면 모르나? 인트로랑 세 번째 소절이 아주 판박이던데.

- 미쳤네. 그게 판박이면 대한민국 사람은 다 판박이겠다.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습니까? 다 그럴만하니까 얘기가 불거진 거겠죠.

- 그러게 김도준 시건방 떨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 윗분 진짜 이상하시네. 김도준이 언제 건방을 떨었다는 거죠? TV에도 잘 나오지 않는데, 무슨 건방을 떨어요?

- 꼭 얼굴 나와야 건방을 떠는 건가? 요즘 다들 잘났다 잘났다 하니까, 기고만장한 건 사실 아니었나?

- 솔직히 얘기하시죠! 그냥 배 아픈 거 아니에요?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달리고 있는 댓글을 마우스 휠로 쓱쓱 내려보고 있을 때, 옆에서 마루 누나가 무서운 기세로 타자를 치고 있는 게 보인다.

뭔가 해서 바라보니, 한 사이트에서 댓글 공방 중이다.

- 진짜 짜증 나네요. 김도준 때문에 올인원 오빠들만 피해 보고.

- 무슨 피해를 봤다는 거죠? 오히려 주니 오빠 때문에 이슈가 돼서 뒤에서 웃고 있는 거 아닌가요?

- 지금 장난하나? 올인원 형님들이 뭐가 부족해서 김도준 덕을 보겠냐고!

- 도준이 형에 비해서 올인원 실력이 모자란 건 사실 아닌가? 인기도 그렇고. 아닙니까?

- 미쳤나 봐! 지금 싸우자는 거죠?

- 싸움은 그쪽이 먼저 걸었지 않아요?

뒤로 이어진 댓글은 점점 치열해지다 못해서 금방이라도 만나서 치고받을 것만 같았다.

이러다 현피 뜨겠다고 나올 판이었다.

팬들끼리의 싸움.

처음 봤는데 살벌하네.

조금 놀라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손 하나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루 누나다.

“신경 쓰여?”

“별로요.

“우리 도준이 장하네. 원래 이런 거 보고 있으면 막 심장 떨리고 그러는 법인데.”

“저 열일곱 살이에요. 가진 거 하나 없어도 무서울 게 없는 나이.”

“근데, 얼마 후면 폭탄선언까지 할 참이지.”

누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린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근데, 누나.”

“응?”

“아저씬 어떻게 아셨을까요?”

“뭐를?”

나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거기엔 일간지에서 내보낸 기사가 떠 있었다.

[가요계의 신성, 표절 시비에 휘말리다.]

확실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들 중 하나라서 그런가, 제목부터 기사까지 제법 점잖았다.

하지만, 결국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SIDE B의 곡을 표절한 거 같다는, 아니 표절했다는 식으로 논조를 몰아가고 있었다.

인터넷 신문사 기자가 하이에나라면,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이빨을 드러내는 사자랄까.

마루 누나가 중얼거렸다.

“신아일보의 연예부 기자, 서상현이라······.”

그 소릴 들었는지, 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쓰레기지.”

혀를 차시더니, 덧붙이셨다.

“골치 아프게도 능력까지 갖춘 쓰레기.”

그러시더니, 한마디로 모든 걸 정리하신다.

“아까, 대표님이 어떻게 아셨냐고 물었냐?”

“······.”

“어디나 저런 놈들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끼리끼리 알아본다고, 쓰레기들은 쓰레기들끼리 뭉치는 법이고.”

무슨 얘긴 줄은 알겠다.

근데, 그걸 안다고 상황을 예측하는 게 가능한 건가?

다시 한 번 아저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고 팀장님이 툭 하고 내뱉으셨다.

“그래 봐야 네가 나서는 순간, 싹 쓸려나가겠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또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계셨다.

***

저녁 무렵. 퇴근하기에 앞서서 최 회장은 신문을 펼쳐 들었다.

전자기기가 발달하다 못해서 책조차 핸드폰으로 보는 요즘 같은 때 구닥다리처럼 신문을 보냐고 할는지는 모르지만, 최 회장은 이쪽이 더 익숙하고 편했다.

“쯧. 올 하반기도 쉽진 않겠군.”

경제란부터 챙겨본 후 곧바로 넘어간 곳은 연예란. 예전 같으면 쳐다도 안 볼 터였지만, 도준이 가수로 데뷔한 이후로는 빠지지 않고 보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꼼꼼히 보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도준이 소식이 없나 확인하는 차원이랄까.

“응?”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눈을 번뜩이던 최 회장.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부들거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이 실장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최 회장은 말했다.

“들어와.”

이미 누가 들어올지 알고 있었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이 실장이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툭.

신문을 던지며, 최 회장이 물었다.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봤나?”

앞뒤 다 자른 물음.

그럼에도, 이 실장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도준이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봐.”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지, 이 실장은 곧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아보는 중이긴 합니다만, 도준이가 SIDE B라는 작곡가의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입니다.”

“계속해.”

기사에 나와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어디까지나 의혹이 제기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계속해서 말하라고 한다.

그 얘긴 곧 이 실장이 이미 사태 파악에 들어갔음을 짐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 실장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누군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의도적이다?”

“예. 정황상 그렇습니다. 맨 처음 기사 원문이 올라온 곳이 가십을 다루는 인터넷 신문사라곤 하지만, 소스 자체는 다른 곳에서 흘러나온 걸로 보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최 회장이 대뜸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나?”

역시 주어며 목적어 따윈 싹 다 빠져 있다.

그런데도 이 실장은 정확히 최 회장의 심중을 파악하곤 대답했다.

“오늘 안에 올리겠습니다.”

“가능하겠나?”

“안 그래도 비서실 직원들을 전부 동원한 상황입니다.”

“그래?”

만족했는지 최 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가 봐.”

최 회장의 서늘한 음성에도 이 실장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돌아서 방을 나갔다.

그 직후였다.

최 회장이 가라앉은 눈빛을 발하며 중얼거렸다.

“감히 누구더러 도둑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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