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56. 바람이 불 땐……. (3)
회의 내내 심각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 제목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지만, 실상 내용을 보자면 문제가 될만한 소지는 전혀 없었으니까.
- SIDE B의 곡과 김도준이 만든 노래의 유사점은 이전에도 제기되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김도준이 발표한 ‘세상의 중심에서’의 경우, SIDE B가 작곡하고 올인원이 부른 ‘4.5’의 몇몇 부분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세상의 중심’의 인트로 부분과 세 번째 소절의 일부가 올인원의 곡과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김도준이 올인원의 곡을 표절했다고 단정하긴 아직 이르다. 오히려 본 기자는 이번 일로 김도준이 도둑이라는 오명을 쓰게 될까 봐 염려될 따름이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 어린 천재 아티스트가 이번 일로 좌절하지 않고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하기를 기대해본다.
진짜 기가 막혔다.
둘 다 내가 만든 곡이라는 건 제쳐놓더라도 아무리 봐도 유사한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는데 뭐가 문제라는 건지.
아, 물론 언뜻 들으면 유사하게 들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곤 해도 곡조 자체가 완전히 다른데 그걸 비슷하다고 우겨대는 건 너무 억지스럽다.
대체 어디가 비슷하다는 건지.
게다가 정보의 출처도 불분명하다.
흔히들 말하라는 카더라 통신이란 건데.
근데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팩트도 아니고 추측성 보도를 이렇게까지 자극적으로 썼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문제 안 돼요? 명예훼손이라든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아저씨께서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자극적인 기사로 대중들을 자극하고, 그걸 미끼로 트래픽이나 올리는 놈들이다. 그런 닳고 닳은 광고팔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봐라. 교묘하게 피해 가고 있잖냐?”
아니게 아니라, 기사가 교묘하게 쓰여 있긴 하다.
기사에서 얘기하는 전문가가 누구인지 둘째치고, 기사의 논조 자체가 어이없다.
앞부분에선 출처가 불분명한 증거를 내세우며 표절 의혹을 제기하면서, 뒷부분에선 오히려 날 걱정해주는 척하고 있다.
‘도둑’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제목을 붙여놓고, 기사에선 반대로 오명 운운하며 ‘도둑’이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그것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 어린애의 미래를 위해서 한 번쯤은 봐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뉘앙스로.
“누가 기레기 아니랄까 봐, 잔머리 제대로 굴린 거지.”
고 팀장님 말씀대로다.
이건 딱 봐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마음 놓고 써 갈긴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영악하다 못해서 치졸할 정도다.
“인터넷 신문사가 다 그렇지.”
아저씨가 추임새처럼 얘기하자, 고 팀장이 말을 받는다.
“그래도 타격이 아주 없진 않을 겁니다. 이런 기사라도 대중들은 곧잘 믿으니까요.”
“그야 그렇지. 표절 시비라는 건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까.”
마치 겁이라도 먹은 듯 말씀하시는 아저씨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걸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그러니까 이렇게 대놓고 자극하는 거겠지만.”
잠시 턱을 매만지시던 아저씬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역시 음원 출시 시기를 문제 삼을 테지?”
“대중들에게 먹힌다면 그렇게 하겠죠.”
후속타가 있을 거란 얘기로 들렸다.
“재밌네. 지난번에 칼럼 올린 게 장도원이라고 했었나? 그 쓰레기도 그렇고. 계속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면······. 도준아, 너 막 사람들 때리고 다니고 그러는 거 아니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재미없거든요.”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시는 아저씨.
“꼭 주먹으로 쳐야 때리는 건가?”
상처 주는 일을 말하는 거라면······.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만한 일은 없는데.
“글쎄요. 짐작되는 게 없네요.”
“원래 때린 놈은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지.”
저만치서 키득거리는 마루 누나를 한차례 노려보곤 물었다.
“그래서 아저씨께선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하셨나 보죠?”
어째 현재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데다가, 오히려 반기는 느낌이라 혹시 예상하고 있지 않았나 해서 물은 터였다.
“전혀.”
“그럼 그 눈빛은 뭐죠?”
“뭐긴 놀라워서 그러지.”
“······.”
“인간의 시기심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거구나 하고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피식거리며 얘기하시는 아저씨를 보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진 않은데······.”
“너한텐 잘된 거지. 이 바닥에선 오히려 이슈가 없다는 게 슬픈 거잖니.”
잘은 모르지만, 이쪽 바닥에선 그런 거 같긴 하더라.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잊히는 건 순식간이니까.
그런 면에선 나쁘지 않겠지만, 나로선 그다지 반가운 얘기는 아니다.
음악 자체로 이슈가 되면 모를까, 지금처럼 지저분한 일로 엮이는 건 사절이다.
역시 초기진압이 답이 아닐까 싶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아저씬 당연한 걸 뭐하러 묻느냐는 눈빛을 해 보이신다.
“그럼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았냐?”
역시···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고 팀장. 곽미영 기자한테 전화해서 SIDE B에 대한 소스 넘겨줘.”
“설마 지금 바로 내보내자는 건 아니겠죠?”
“그 기자 혼자서 한 거라면 그렇게 하겠지.”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게 그 기자 단독으로 벌인 일이 아니란 건가?
“아무리 인터넷 신문사라도 보통은 이렇게까진 않지. 한 번만이라면 우연이라고 보겠지만, 이렇게 계속되는 걸 보면 우연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겠어?”
“확실히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거 같긴 한데, 밝혀내는 데 시간 좀 걸리지 않겠습니까?”
아저씬 고개를 내저으셨다.
“그래도 파봐야지. 꼬리만 자르고 도망가게 놔둘 순 없잖아?”
그러곤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오늘 기사 떴으니, 내일쯤이면 일간지에 쫙 뿌릴 거고, 놈들도 생각이 있으면 그때를 놓칠 리가 없지. 길어봐야 이틀. 절대 그 시간을 넘기진 않을 거야.”
“흠, 그럼 기자 회견도······?”
“은근슬쩍 흘려. 날짜는 대충 그 정도쯤으로 잡고. 언제든 기자들 불러모을 수 있는 스탠바이 상태로. 오케이?”
시종일관 여유로운 두 사람이었다.
그건 단지 손발이 잘 맞아서 그런 게 아닌듯하다.
지금의 상황은 단번에 엎어버릴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엿보였다.
그런 점에선 마루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와 고 팀장님 사이에서 얘기가 오가는 동안, 줄곧 팬 카페를 둘러보고 있던 누나의 얼굴 어디에서도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
현재 김도준과 표절 시비가 불거진 곡은 올인원의 ‘4.5’란 곡이다.
그리고 올인원은 MJ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
당연히 이명준 대표로선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대표실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방금 올라온 인터넷 기사에 대해서. 이처럼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건 홍보실에서 곧바로 발견하고 알려온 덕분이었다.
“표절이라······. 어떻게 생각하지?”
10년도 넘게 자신을 도와 MJ를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기획사로 키워내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 단순히 오른팔이라고 말하기보단, 오히려 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사람. 그만큼 이명준 대표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는 민태호 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비슷한 부분이 아주 없진 않습니다.”
“있긴 있다는 거군.”
“뭐, 그렇긴 한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에 표절곡 아닌 게 몇이나 되겠습니까?”
“역시 그렇지?”
“어차피 이런 식의 일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일 뿐입니다.”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이나 표정에선 비릿한 미소가 스쳐 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눈빛이 달라진다.
이명준 대표가 살짝 날 선 표정으로 얘기했다.
“어떤 놈들이지?”
“파악 중입니다.”
“윤곽정돈 나왔을 거 아냐?”
“글쎄요. 워낙 전형적인 수법이라.”
“진짜 웃기는 놈들이네. 김도준을 노린 것도 좋고, 장난질을 치는 것도 좋아. 다 좋은데, 거기에 우릴 엮어 넣었다는 게 불쾌하군.”
“충분한 보상을 받아낼 생각입니다.”
“그래야겠지. 그건 그렇고. 저쪽 반응은 어때?”
“아시지 않습니까? 강혁수는 이 정도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대응조차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
“하긴······.”
버릇인지 책상을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다가 이명준 대표가 묻는다.
“SIDE B의 곡 말인데······. 강혁수 쪽에서 흘러나왔다고 했었지?”
“아시다시피 옛날부터 작곡가들이 강혁수에게 곡을 맡기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으니까요.”
“곡은 그쪽에서 나왔는데, 정작 실체는 없다는 말이군.”
“기성 작곡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 그럼 SIDE B는 HS 소속이 아니란 건가?”
뭘 묻고자 하는지 단번에 알아챈 민태호 팀장이 고개부터 내저었다.
“그게 확실치 않습니다. 강혁수 대표가 들고 오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계약한지라 그 이상은 파악이 되질 않더군요.”
“뭐, 상관없나? 같은 회사라고 해서 표절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애당초 흠집 내기가 목적이라면, 오히려 좋죠. 같은 회사 소속 끼리 베낀 곡을 팔아먹었다는 식으로 나가면 그 이상 자극적일 수 없을 테니까. 나중에 밝혀져도 그땐 만신창이일 겁니다.”
“치졸하지만, 꽤 잘 먹히긴 하겠네. 근데, 그걸 강혁수가 모를까?”
민태호 팀장이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혁수입니다.”
“대비책이 있을 거란 얘기군.”
잠시 말을 아끼던 이명준 대표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혹시 말인데······.”
“······.”
“자작극일 가능성은?”
민태호 팀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명준 대표가 픽 하고 웃었다.
“하긴 그럴 친구는 아니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중얼거리는 이명준 대표.
“문제는······. 결국, 이 사달을 일으킨 놈들이 누구냐인데······.”
톡톡톡······.
손가락이 책상을 두들기는 소리가 한참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치며, 이명준 대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송까지는 무리일 테고······. 그럼 우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의 물음에 민태호 팀장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살짝만 태우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불쾌한 건 불쾌한 거고, 이렇게 된 바엔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어야지.”
“그럼, 그렇게 알고 조치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민태호 팀장을 바라보다가 이명준 대표가 중얼거렸다.
“미친놈들. 김도준 같은 친구가 또 어디서 나올 거라고. 하여간 파이를 키울 생각들은 안 하고, 쯧쯧.”
그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스쳐 갔다.
***
한국에서 김도준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있을 때, 유투븐에 올라와 있는 N9 광고 짜깁기 영상은 갈수록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기숙사에 앉아서 동영상을 보고 있던 류웨이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이러다가 진짜 1억 넘겠는데?”
현재 그가 있는 곳은 매사추세츠 주에 위치한 공과대학, 즉 MIT였다.
하버드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대학 중 하나. 그래서인지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인재가 몰려들었다.
그중에는 중국 정부가 국가시책에 따라 보내는 경우도 있었는데, 2년 전 유학 온 류웨이 역시 마찬가지 케이스였다.
어릴 때부터 수재소리를 들으며 자라온 그였기에 미국에서의 생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더욱이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사실상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인 세상 아닌가.
이미 중국에 있을 때부터 세계적인 이슈들을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가졌던 덕분에 그는 미국에 와서도 쉽게 녹아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사고 아닌 사고를 쳐버렸다.
‘설마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다름 아닌, 유투븐에 올린 N9의 광고 동영상 편집본.
각 나라에서 촬영된 10개의 광고를 하나로 묶는 작업은 그에게 있어선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다른 이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 조회수가 벌써 5,000만을 넘어 6,000만에 육박하고 있다. 이러다간 그의 말대로 1억 뷰도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뿐만 아니라 동영상에 달린 댓글의 숫자는 이제 셀 수조차 없다.
특히 갈수록 김도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류웨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냥 장난삼아 만들어 올린 것인데, 광고가 붙으면서 돈도 짭짤하게 벌 수 있었던 데다가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다는 게 뜻밖에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역시 김도준의 영상을 가장 뒤쪽으로 뺀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잘 부르긴 하지.’
처음 김도준의 노래를 들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김도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의 노래를 전부 찾아 들어보았다.
그리고 이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곡을 듣는 순간, 영감이 떠올랐던 것이다.
“어디 한번 해볼까?”
자신의 인생에서 그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날 일이었는데, 그게 또 이런 식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류웨이였다.
***
고 팀장님이 여기저기 신문사로 전화를 돌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날 가만히 부르신다.
“도준아.”
“예.”
“불안하냐?”
“그런 건 아니고요.”
회사 식구들을 믿기에 불안하거나 하진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시험 보기 전에 드는 긴장감정도랄까.
살짝 기대감까지 드는 걸 보면 나도 정상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속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걸까?
픽 하고 웃으신 아저씨께서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곤 담담한 어조로 얘기하셨다.
“바람이 불면 말이다.”
담담한 어조의 음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하거나 납작 엎드리는 쪽을 택하게 되지.”
어느새 아저씨의 입꼬리가 비틀어져 있었다.
음, 저런 표정······.
가끔은 얄밉기도 하고, 또 소름 돋을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어째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그때, 아저씨께선 순식간에 웃음기가 싹 가신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넌 그럴 필요가 없지. 웬 줄 아냐?”
대답하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아저씨도 내 대답을 듣고자 물었던 게 아니었던지, 계속해서 얘기했다.
“네가 기자들 앞에서 한마디만 하면 끝나니까.”
“······.”
“그 순간, 바람은 네 편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