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 바람이 불 땐……. (1)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앞뒤 사정 따질 것도 없이 갖은 핑계를 다 가져다 대도 할아버지 말씀이 백번 옳았으니까.
죄송하단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을 때였다.
- 긴말 필요 없고, 나오너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간신히 물었다.
“회사로 갈까요?”
- 실없긴. 회사엔 뭐하러? 밥 먹자니까.
갑자기 밥?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멍해 있을 때, 할아버지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 설렁탕이나 한 그릇 하자.
“안국동으로 오란 말씀이시죠?”
- 끊는다.
뚜우 뚜 뚜 뚜······.
끊어져 버린 전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
택시를 타고 안국동으로 향했다.
기사 아저씨께서 룸미러로 날 한차례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셨지만, 알아보진 못하신다.
그저 어디선가 봤다 싶으신 거겠지.
그러다가 내릴 때가 되어서야 기억해내시곤 탄성을 내지르셨다.
“아!”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아저씨께서 돈을 받다 말고 갑자기 종이를 찾아 볼펜이랑 함께 내미시는 게 아닌가.
꿈에 나올 정도로 사인을 하도 해대서 그런가, 아저씨가 바라는 게 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옅은 미소를 머금고 사인을 해준 뒤,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설렁탕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저 얼굴을 보니까.
지금 내가 누굴 만나러 온 건지.
“이 실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죠?”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투로 알은체하자, 이 실장님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오랜만이구나.”
가볍게 농담을 건넸다.
“TV에서 보셨을 거 아니에요?”
대답은 없었다.
이미 얼굴에서 미소도 지워졌다.
그런 채로 이 실장님이 얘기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표정은 없지만, 이 실장님이 눈짓으로 어서 들어가라고 재촉하고 있었으니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날 알아본 식당 여주인이 빠르게 다가와 얘기했다.
“이쪽으로.”
그녀를 따라 안쪽 구석에 있는 방에 이르자, 여주인이 안쪽에 대고 나직하게 일렀다.
“지금 도착했습니다”
대답이 없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당황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래 왔었기 때문이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문을 열어주고 물러나는 여주인이었다.
그 사이 나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문이 닫히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 오셨는진 몰라도 이미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 한 그릇을 천천히 숟가락으로 떠서 드시고 계시는 할아버지. 조용히 그 앞에 앉았을 뿐이다.
진짜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불렀으면 좀 뭐라고 한마디 하시기라도 하실 일이지.
하는 수없이 먼저 입을 뗄 수밖에.
“저 왔어요, 할아버지.”
그때, 문이 열리며 여주인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방안으로 들어와 내 앞에 설렁탕이 담긴 뚝배기를 내려놓았다.
다시 문이 닫히고 여주인이 사라진 후, 한층 더 복잡해진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먹지 않고 뭐해?”
“······지금 막 먹으려던 참이에요.”
***
한동안 방안에선 후룩 거리는 소리만 이어졌다.
그러길 10분 남짓.
할아버지께서 먼저 바닥을 드러낸 그릇 옆에 숟가락을 내려놓으신다.
나 역시 최대한 속도를 맞추려 애쓴 덕분에 거의 비슷하게 식사를 끝낼 수 있었다.
잠시 후 상이 치워지고, 후식으로 내온 매실차를 마셨다.
찻잔이 올라갔다가 다시 상위로 내려앉는 소리만 들릴 뿐 대화는 일절 없었다.
갈수록 무거워지는 분위기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을 때였다.
“학교는?”
느닷없는 물음에 나도 모르게 머뭇거렸다.
그러자 할아버진 눈살을 살짝 찡그리시며 재차 말씀하신다.
“공부는 그만둘 거냐고 물었다.”
일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재빨리 정리하곤 대답했다.
“내년에 검정고시 보려고요. 대학도 갈 생각이고요.”
날 가만히 쳐다보고 계신다.
나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보았고.
그러길 한참.
할아버지께서 몸을 일으키셨다.
어? 뭐지?
설마 그냥 가시려는 건가?
그때였다.
완전히 일어나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광고 하나 찍어라.”
“예?”
못 알아들어서 되물은 게 아니다.
이 타이밍에 저 말이 왜 나오나 싶어서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자기 웬 광고?
“그럼 찍는 줄 알고 있으마.”
그러곤 방을 빠져나가시는 할아버지셨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채 할아버지의 뒤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내 새낀데, 왜 남의 배만 불려주고 앉았는지. 에잉!”
들으란 듯이 대놓고 툴툴대시는 할아버지셨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사람을 말하라면 백이면 백 한 사람을 지목할 것이다.
김도준.
겨우 열일곱 살임에도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적어도 한국에서라면 스타의 반열에 오른 거나 다름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작곡이면 작곡, 악기 연주면 연주,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었으니까.
거기에 공부까지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하에 학교를 그만둔 얘기는 대한민국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한때는 소속사가 이슈를 위해 조작한 거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지금은 거의 사실로 밝혀졌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올해까지 다니던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이 올린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제는 거의 사실로 굳어진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소문이긴 하지만, 모 그룹의 외손자라는 얘기도 떠도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배가 아플 만도 하지만, 워낙 잘나서 그런가 그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만큼 김도준의 실력이 출중하다는 방증일 터였다.
하지만, 누구나 그를 좋게 볼 수만은 없는 일.
특히나 그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너무 하는 거 아니오?”
박성훈은 자신보다 열 살도 더 어린 김도준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몸을 떨고 있다.
동시에 그는 현재 김도준이 누리고 있는 인기가 원래는 자신이 누렸어야 할 인기라고 여기고 있었다.
당연히 미울 수밖에.
눈엣가시 같은 김도준 때문에 요즘은 잠도 잘 못 이룰 정도였다.
그 때문인지 요즘 부쩍 짜증을 부리는 그였다.
그런 그를 한상철이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렇게 묻곤 아까부터 들고 있던 파일첩을 건네는 한상철. 박성훈은 그게 뭔데?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파일첩을 받아 펼쳤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악보?
근데, 뭐지?
완전한 곡들이 아니다.
부분 부분 잘린 악보다.
잠시 그걸 들여다보던 박성훈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이건······?”
그가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한상철이 씨익하고 웃어 보였다.
“맞습니다. 한쪽은 SIDE B, 다른 한쪽은 김도준 곡이죠.”
“설마?”
“뭐,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시도해볼 만은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기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덕적으론 또 굉장히 엄격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타이밍에 김도준이 SIDE B의 노래를 베꼈다?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당연한 일이다.
안 그래도 주목받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표절 시비가 일어난다?
모르긴 몰라도 이슈가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표절 의혹만으로도 김도준은 대중들에게 뭇매를 맞을 게 뻔하다.
그렇긴 한데······.
“여기 나와 있는 것만 가지곤 표절이라고 단정 짓기가 좀 애매하지 싶은데요? 게다가 음원 출시는 김도준이 먼저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죠.”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으며 한상철이 말했다.
“원래 세상일이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그 어린놈의 자식이 다 가졌으니 배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
최 회장 본가의 가족들이 전부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최 회장과 최 회장의 부인, 큰아들인 최주호와 그의 처자식들, 그들이 본가에 사는 식구들이다.
도우미 아주머니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한 최주호의 아내, 김성혜가 살가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오늘 아구가 굉장히 신선해요. 그래서 그런지 찜이 정말 맛있게 잘됐어요. 아버님 한번 드셔 보세요.”
원래도 한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최 회장의 입맛을 알기에 준비한 요리이기도 했다.
최 회장이 큰며느리의 얘기에 콩나물과 함께 아구 살점을 집어 입안에 넣고 있다.
그러곤 조금은 무뚝뚝한 음성으로 말했다.
“맛있구나.”
그게 끝이었다.
원하던 반응에는 못 미쳤지만, 김성혜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시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 집안의 막내딸인 최혜원이 도준의 문제로 찾아왔다가 최 회장과 싸우고 돌아간 그 날. 그 이후로 계속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때부터 줄곧 최 회장의 얼굴이 좋지 않았던 까닭이다.
특히나 요즘은 수시로 일그러지곤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데다가 시동생인 최주식이 근래에 프랜차이즈 브랜드 하나를 런칭했는데, 그게 나름 대박을 쳐서 남편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자칫해서 아버님의 눈 밖에라도 나면?
아무리 큰아들이라지만, 그들 네 식구가 최혜원네 꼴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걸 잘 알기 때문인지, 최주호 역시 말없이 아내인 김성혜가 열심히 아버지께 애교를 부리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렇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식사자리가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탁.
언제나처럼 소식을 하는 최 회장이 숟가락을 놓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내일 출근하자마자, 도준이네 회사에 연락 넣어라.”
뚝.
숟가락으로 국을 퍼서 입가로 가져가던 최주호의 움직임이 멈췄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누구?
갑자기 머릿속이 헝클어지며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던 최주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되물었다.
“도, 도준이라면······. 혜원이네 둘째 말씀이십니까?”
“도준이가 또 있더냐?”
어째서? 란 눈빛이 되어 최주호가 아버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최 회장이지만 굳이 설명해주진 않았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안 보고 사느냐?”
최주호가 당황해 할 때, 최 회장이 다시 말했다.
“녀석 데리고 커피 광고 하나 찍어라.”
“예? 커피요?”
순간 놀라서 되물었던 최주호를 최 회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움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시선을 돌리고 마는 최주호.
하지만, 절로 일그러지는 표정만은 어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도준이란 존재는 늘 그의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뭐랄까.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얹힌 듯 답답하고 짜증이 난달까.
아마도 그건, 그만큼 최혜원의 남편 즉 도준의 아버지를 업신여기는 탓일 거다.
이렇다 할 배경은커녕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나 다름없는 꼴로 간신히 사시에 합격한 사람. 그나마도 자신의 여동생이 뒷바라지하지 않았으면 턱도 없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아버진 받아들였다.
그리고 뒤를 밀어주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서울 남부지방검찰청 부장 검사.
거기까지였다.
썩은 줄을 잡았는지, 정치자금 비리 사건과 연루되어 윗선부터 줄줄이 옷을 벗을 때 그 역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했던 것이다.
그 뒤로 그룹 법무팀에 들어왔고, 끈 떨어진 전직 검사 정도가 차지할 자리는 별로 없었다.
그러니 무시할 수밖에.
당연히 경쟁자라고는 단 1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준이는 달랐다.
친손자들을 포함해 최 회장의 핏줄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거기다가 자신이 보아도 아버질 가장 많이 닮은 아이였다.
최 회장의 애정이 도준이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던 차에 도준이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고 하며 최 회장의 분노를 샀고, 그 일로 이젠 연락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그동안 말도 못한 채 앓고만 있던 이가 쏙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커피 광고라니?
회사 주력 제품 모델은 S급 배우 손윤하가 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을 끔뻑거리는데······.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저런 말이 더 무섭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최주호였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 동생인 최주식에게 연락해 이번 일을 맡길 게 분명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최주호였다.
***
월요일 아침, 회사에 도착한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영 찝찝해서.
대체 뭘까?
아니 언제는 연을 끊네 마네 하시더니만, 갑자기 불러내셔서 광고 얘길 하시는 이유는 뭐냐고.
그리고 이왕 얘기하실 거면 자세히 좀 말씀해주실 일이지, 그러고 가버리시면 난 어쩌라고······.
한숨을 폭 내쉬고 있을 때, 옆에서 마루 누나가 물어왔다.
“웬 한숨? 무슨 일 있어?”
“아, 아뇨.”
“그래? 그럼 다행이고.”
어떨 땐 눈치가 엄청 빠른 거 같다가도, 또 어떨 때 보면 둔하기가 무슨 곰 같다.
하긴, 이편이 나로선 더 마음 편하긴 하지.
“근데, 도준아. 너도 이거 봤니?”
“예? 뭐를요?”
“봐봐.”
마루 누나가 가리키는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면에 떠있는 사이트 상단에 박힌 유투븐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아래 동영상 하나가 떠 있는데······.
“N9 광고네요? 근데, 이거 미국 쪽 건가?”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마루 누나가 마우스를 클릭하자, 동영상이 플레이 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진짜 잘 만들었네.”
“그치?”
“그러게요. 꼭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거 같아요.”
마루 누나도 나도 그렇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각 나라마다 다른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광고였다.
그게 열 개다.
아무리 같은 콘티를 가지고 찍었다지만, 연출이나 카메라 각도가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한데, 그걸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편집해 놓았다.
전문가인가?
솜씨로 봐선 일반인이 아닌 거 같은데······.
뭐,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꼭 전문가라고 단정 지을 수만도 없는 일이겠지.
그런데 장난 아니었다.
조회수 2,500만?
댓글 역시 엄청난 숫자.
마우스 휠을 내려도 내려도 끝날 줄을 모른다.
잠시 멍해져서 그걸 보고 있을 때였다.
대표실에서 나온 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좀 보자 신다.”
눈짓으로 대표실을 가리키는 고 팀장님이셨다.
***
대표실에 놓인 소파에 앉자, 아저씨께서 건너편에 앉으시며 은근한 어조로 내 이름을 부르신다.
“도준아.”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저렇게 부르실 땐 은근 불안하단 말이야.
살짝 실눈을 뜨고 아저씨를 바라보니, 어째 평소와 달리 머뭇거리신다.
“무슨 일인데요?”
의아해져서 물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뭔가 심각한 얘기가 나올 것만 같아서.
“광고가 들어왔는데······.”
광고라······.
대충 감이 왔다.
진짜 대단하시다.
한번 결정을 내리시면 상대방이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 따윈 주지 않고 밀어붙이시는 할아버지답달까.
일단은 속내를 감추곤 일단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광고 제의가 많았다.”
“그래요?”
“하지만, 굳이 할 이유가 없어서 전부 보류시킨 상태지.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굳이 이미지 소비시켜가며 아무 광고나 찍을 이유가 없으니까.”
납득이 된다.
돈이야 많을수록 좋다지만, 하루 이틀 노래할 것도 아닌데 광고에 목숨 걸 까닭이 없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번 건 D그룹 거다.”
놀랄 것도 없는 얘기.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저씨께서 눈을 가늘게 한 채 날 바라보신다.
“알고 있었냐?”
“와! 정말 거기서 연락이 왔어요!”
뒤늦게 외쳐보지만, 이미 늦었다.
“자식하곤······.”
“······죄송해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됐고. 이미 안다면 자세한 얘기를 할 필욘 없겠네.”
아저씨께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신다.
그러곤 툭 하고 내뱉으셨다.
“지금 오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