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53화 (53/260)

# 53

#53. 세상의 중심에서(3)

마루 누나한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였다.

- 도준아, 얼른 TV 켜봐.

“예? TV요?”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거실로 나갔다.

누나 말대로 TV를 켜기 위해서.

하지만, 이미 선객이 계신다.

우리 형님께서 언제나처럼 소파 위를 깨끗하게 청소 중이시다.

뒹굴뒹굴 굴러다니면서.

그러면서도 한 손에 쥐고 있는 리모컨을 절대 떨어뜨리는 법이 없다.

저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며 형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TV 좀 잠깐 봐도 돼?”

“어? 그래?”

형은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리모컨을 넘겨준다.

우리 형님께서 핸드폰만큼이나 사랑하는 게 TV 리모컨인데······.

뜻밖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얼른 받아들었다.

그러곤 마루 누나에게 물었다.

“근데 뭘 보라는 건데요?”

- 아, 그렇지! 그걸 얘기 안 했네. 얼른 KBC 뉴스 틀어봐.

리모컨을 조작해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뉴스에 나온 광경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야아, 뭔데 저렇게 줄을 나래비로 서 있냐? 한 천명은 넘겠는데?”

옆에서 들려온 형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때, 형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가만히 날 부른다.

“근데, 도준아.”

“어, 어?”

“너 언제 시간 좀 나냐?”

여전히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되물었다.

“······왜?”

“아니, 그냥. 괜찮으면 우리 회사에 한번 놀러 오라고. 그, 그 뭐냐. 형이 일할 회사인데, 궁금할 거 아냐. 안 그래?”

“응. 안 궁금해.”

궁금할 것도 많다.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던 형이 쭈뼛거리다가 다시 뭐라고 하려는 찰나였다.

- 도, 도준아. 놀래지 말고 들어.

아직 끊지 않고 있던 핸드폰에서 마루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예. 얘기하세요.”

놀라긴 저쪽이 놀란 거 같은데.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누나가 말하고 있었다.

- 2······2천 명이래.

“예? 뭐가요?”

- 지금 저기 모여든 사람들이. 그리고 아침까지 모여들 숫자가 잠정적으로······.

“······.”

- 5, 5천이 넘을지도 모른대.

움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져서 나도 모르게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저, 도준아. 어떻게 좀 안되겠냐? 많이도 필요 없고, 따-악! 한 번만! 응? 딱 한 번만 우리 회사에 와주라!”

아, 진짜! 안 그래도 정신없어 미치겠는데, 형은 또 왜 이래?

***

이벤트에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선 적어도 아침 7시에는 나가야 해서 서둘러 집을 나왔다.

그리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남녀가 아파트 입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경호원들이었다.

평소엔 두 명 정도만 따라붙곤 했는데, 오늘은 네 명이나 가는 건가?

게다가 다들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조금 의아해져서 차에 타면서 물었다.

“4명이나 필요해요?”

“어제 뉴스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래도 좀 많은 거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고 팀장님은 운전대를 잡으며 덧붙이셨다.

“현장에 행사 요원들이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럼 오늘 하루는 계속해서 이 정도 수준의 경호가 유지된다는 얘기인가?

아, 갑자기 확 긴장되네.

속내를 감추며 차에 오르면서 다시 한 번 경호원들을 바라보니, 그들 또한 앞쪽에 세워둔 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

삼성동의 빌딩숲 사이, 유독 우뚝 솟아 있는 한 빌딩 앞에 이르러 차가 멈춰 섰을 때, 나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S 스토어 앞에서부터 늘어서 있는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골판지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고, 개중에는 침낭을 개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드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마루 누나다.

치마를 입곤 하던 평소와 달리 청바지 차림에 힙쌕을 하나 메고 있었다.

“미쳤나 봐.”

얼른 문을 닫으며 누나가 고개를 내젓는다.

“5천 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대충 봤는데, 만 명은 되겠다. 와, 진짜 엄청 몰려왔다니까.”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삼켜졌다.

“다 절 보러 온 건 아닐 거에요.”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절반은 되지 않을까?”

긴장감이 또 한 단계 상승한다.

다시 한 번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

아직 오픈 전인 S 스토어 앞에서부터 시작된 줄이 정말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얼마나 긴지, 행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중간에 골목 안쪽으로 꺾여 있을 정도다.

그런 그들을 행사 요원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통제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S 스토어의 셔터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드디어 N9 정식 발매와 함께 내 첫 번째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걱정했던 사태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마자 날 향해 달려드는 극성 팬들이 몇 명 있긴 했지만, 행사요원들과 경호원들의 제지에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그 외에는 그다지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다만, 좀 힘들었을 뿐이다.

몇 명인지 추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는 동안 서서히 지쳐갔다.

원래대로라면 2시간으로 한정시켜놓았던 행사였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관계로 주최 측, 즉 S그룹 쪽에서는 좀 더 이벤트 시간을 늘려주길 부탁해왔다.

하지만, 아저씨께선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구체적인 이유까진 모르겠지만, 아마 날 생각하셔서 그렇게 하신 걸 테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날 만나기 위해서 어젯밤부터 줄을 선 채 기다려준 팬들을 생각하자 그렇게 칼로 자르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 아저씨. 점심때까지 2시간 정도 남았는데, 하는 데까진 해보죠.”

잠시 날 바라보던 아저씬 입가에 미소를 띠고 알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결국 사인회가 끝난 건 밤 8시였다.

그나마도 나중에는 함께 온 사람들의 경우 단체사진으로 대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친 몸을 좌석에 묻고서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인터넷상에선 난리법석이다.

팬 카페는 말할 것도 없었고, 여기저기에 나와 함께 찍은 사진들과 사인받은 인증샷이 수도 없이 올라와 있다.

포털 게시판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내 이름과 N9가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그리고 내 덕인진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스트로 N9의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10개국에서 동시 발매한 N9는 지금까지 200만 대가 팔렸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중 10만 대가량이 한국에서 팔린 거라고 하는데, 아무튼 주말 판매량이 1,000만 대를 넘어설 거 같다는 예측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단일 기종으로는 최단 기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하게 될 거라는 전망이었다.

“그게 다 우리 도준이 덕인 거지.”

마루 누나가 잘났다는 듯 고개를 쳐들며 코 평수를 넓히고 있었고, 아저씨 또한 흐뭇하단 표정이 역력하다.

“저희 쪽에도 도움이 되긴 했잖아요.”

‘세상의 중심에서’가 한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데에 N9 광고가 한몫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이 얘긴 반대로 말하면, 각 나라별로 제작된 N9 광고 컨셉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먹혀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나라마다 광고 내용과 노래는 같아도, 언어와 가수는 다르다.

최대한 그 나라에서 핫한 가수들이 거리공연을 했는데,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카즈야라는 가수가 시부야에서, 미국에서는 브래딘이라는 팝가수가 뉴욕에서 공연하는 식이었다.

“그나저나 핸드폰도 많이 팔렸는데, 우리한텐 뭐 떨어지는 거 없나?”

마루 누나가 배 아프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아저씨께서 씩 하고 웃어 보였다.

“뭐, 옵션은 충분히 걸어두었으니까 수익도 만만치 않을 거다.”

자세한 얘기는 안 하시는데, 아저씨께서 계약을 대충하진 않으셨겠지.

사람 좋게 웃는 인상을 하고 계시지만, 알고 보면 절대 만만치 않으신 분이니까.

“아, 몰라요. 그런 건 알아서들 하시고요. 전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어요.”

핸드폰을 아무 데나 쑤셔 넣고 축 늘어져서 눈을 감는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도착하면 깨워줄게.”

마루 누나였다.

***

N9의 출시와 맞물려 떠오른 ‘세상의 중심에서’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아니, 광고가 나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거기에 맞춰 ‘세상의 중심에서’의 음원 수익도 자연히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내보내고 있는 광고에서도 같은 곡을 썼기 때문에 그로 인한 수익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작곡에 한해서만 수익이 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미국의 경우엔 워낙 많은 매체를 통해 광고가 나가고 있어서 순식간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세상의 중심에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

마침내 N9의 판매량이 1,000만 대를 넘어서는 순간, 기사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아스트로 N9 판매량, 드디어 피치사의 A폰을 뛰어넘나?]

[결국, 기술이 관건. 혁명적인 테크놀로지로 경쟁.]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70만대 판매. 김도준 효과인가?]

[참신한 광고 컨셉과 함께 세계에 울려 퍼진 노래, ‘세상의 중심에서’······. 전 세계적으로 이슈.]

[‘세상의 중심에서’를 등에 업고, N9 세상의 중심에 서다.]

극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투븐에선 각 나라마다 나가고 있는 N9 광고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커버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유투븐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동영상은 편집본이었는데, 각 나라의 N9 광고를 짜깁기해서 진짜 절묘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에 등장한 것은 미국의 팝가수 브래딘. 뉴욕 맨하탄 골목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상대로 옥상에서 길거리 공연을 시작하는 그의 모습이 보이다가 가수가 이내 일본의 카즈야로 바뀐다. 다음은 중국 십대들의 우상 요우핑. 그 뒤로도 계속해서 가수가 바뀌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거리의 모습도 그에 맞춰 계속해서 바뀌는 중이었다.

뉴욕의 맨하탄, 도쿄의 시부야, 상하이의 신티엔띠······마지막으로 서울의 명동까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선 김도준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흐름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또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조금도 어색하질 않았다.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만들어진 동영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회수가 벌써 1,00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올라온 지 이틀 만에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봤기 때문일 터였다.

그 증거로 댓글들이 각기 다른 언어다.

영어를 비롯해 중국어, 아랍어, 일본어, 독일어······.

셀 수도 없이 많은 댓글들.

광고에 대한 얘기들도 있었지만, 가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묻고들 있다.

- 마지막 누구? 제일 잘하는 거 같은데?

- 앞쪽의 가수들도 잘하지만, 마지막 가수는 비교 불가.

- 이렇게 모아놓으니까, 진짜 차이 심하네. 대체 누구지? 한국인 거 같은데,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있었다니 놀랍다.

-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함.

- 김도준이란 한국 가수임. 요즘 가장 핫하다고 함.

- 근데, 아나 몰라? 이 노래 작곡한 거 김도준이란 건.

- 정말? 미쳤네! 싱어송라이터였던 거야?

- N9의 기술력보다 그게 더 놀랍다.

열 명의 가수를 동영상 하나에 몰아넣다 보니, 자연스레 비교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김도준이었다.

다들 김도준을 궁금해했고, 또 놀라워했으며, 그가 ‘세상의 중심에서’의 작곡자라는 걸 알곤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렇게 한편의 동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광고 촬영에 이어 사인회까지.

거듭된 스케줄 때문에 지쳐서 오늘 하루는 그냥 쉬기로 했다.

뭐, 일요일이니까 사실 안 나가도 그만이긴 하지만.

오전 내내 잠만 자다가 점심 무렵 일어나 밥을 먹고 난 후, 소파에 뒹굴 거리면서 간만에 버라이어티 쇼를 보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르.

응?

모르는 번호다.

그것도 숫자가 많네?

이거 딱 봐도 국제 전화인데.

브라이언? 콜린? 누구지?

“예. 김도준입니다.”

- 헬로우!

브라이언이네.

“잘 지냈죠?”

- 우리야 정신없지. 그건 그렇고. 광고 잘 빠졌더라. 와! 역시 끝내주더라고.

“봤어요?”

- 그럼. 당연히 봤지. 근데, 좀 섭섭하긴 하네.

이건 또 무슨 소리?

- 미국 오라고 했더니, 광고나 찍고 있구.

“······?”

의아해졌지만, 이내 아저씨 얼굴을 떠올리자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브라이언이 아저씨한테 감긴 거 같은데.

잠시 생각했다가 말했다.

“가야죠.”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 언제 올 건데?

“안 그래도 얘기 중이었죠.”

- 여기 난리야, 난리. 베릴은 만날 한국 가겠다고 난리지. 콜린은 그 노래 자기 안 줬다고 난리 치지. 진짜 미치겠다. 다들 나만 들들 볶아대니······.

한숨을 내쉬는 브라이언을 달랬다.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갈게요.”

- 오케이!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그제야 만족했는지 웃음을 터뜨리는 브라이언.

그와 전화를 끊고 나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뭐, 당장 간다고는 안 했으니까.”

그때였다.

다시금 울리는 핸드폰.

어?

또 모르는 번호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순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 여보세요.

“······.”

- 고얀 놈. 연락 한 번 없더냐.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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