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51. 세상의 중심에서(1)
어제 한 거리 공연 때문에 조금 피곤했던지, 눈이 늦게 떠졌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아침 8시다.
빨리 채비를 마치고 회사로 향했다.
“들어갈 수나 있을까 모르겠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다.
회사 앞에 여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한데, 좀 많다.
어째 전보다 늘어난 거 같은데?
골목 모퉁이에 서서 몸을 드러내지 않은 채 대충 헤아려보니, 못해도 100여 명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들을 뚫고 들어간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르.
핸드폰이 진동한다.
확인해보니 반가운 이름이 떠 있다.
“예. 팀장님.”
- 어디냐?
평소 새벽 6시면 오던 내가 오질 않자, 기다리다 못해서 전화하신 모양이다.
“지금 회사 앞인데요. 팬들이 너무 많은데요?”
걱정스럽게 얘기하자, 수화기 너머의 고 팀장님이 한 가닥 동아줄을 내려주신다.
- 경호팀 와 있다. 걱정하지 말고 와.
“그래요? 알겠어요. 얼른 들어갈게요.”
하마터면 들어가기도 전에 붙잡혀서 옷이고 몸이고 다 쥐어뜯길 뻔했는데 다행이다.
숨을 한차례 들이켜곤 회사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해표들처럼 무리를 지어 사방에 늘어져 있던 여학생들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을 뿜어낸다.
“어! 주니 오빠다!”
“꺄아아아아아아아!”
“오빠아아아아아!”
흠칫!
백 명쯤 되는 사람들이 날 향해 달려드는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등골이 다 서늘하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나타나 날 둘러쌌다.
경호팀이었다.
“오빠아아아!”
“주니야!”
“혀여영니이이이임!”
참네. 이게 다 날 좋아해 줘서 그러는 걸 테니 고맙긴 하지만 안타깝다. 차라리 이럴 시간에 공부라도 좀 할 것이지.
진짜 경호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가슴을 쓸어내리며 경호팀에 둘러싸여 천천히 앞으로 한 발짝씩 나아갔다.
당연히 쉽지만은 않았다.
무려 100여 명이나 되는 팬들이 막아선 채 물러나질 않고 있었으니까.
그걸 5명의 경호원이 뚫고 나아가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그들이 팬들에게 쥐어뜯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간신히 회사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진짜 너무해애애애애! 저, 새벽 3시부터 기다렸단 말이에요!”
덜컥하는 느낌이었다.
순간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
대체 내가 뭐라고 저들은 새벽부터 나와 이러고 있는 거고, 난 또 뭐가 두려워 이렇게까지 하면서 그들을 피하고 있는 걸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돌아선 나는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좀 비켜주시겠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진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금세 지워버렸다.
대신 그 자릴 지난번 마트에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채웠다.
팬인데······. 이러면 안 되지.
어머니 말씀마따나 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생각하자, 더 이상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좀 쥐어뜯긴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
어쩌면 어디 한군데 정돈 부러질지도 모르지만······. 에라 모르겠다.
“진짜 괜찮으니까 비켜주세요.”
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던 경호원들이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여학생들이 아니 남학생들까지 포함해 100여 명에 이르는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커억!”
몇 명인지 모를 애들이 날 껴안고 있다.
어찌나 거세게 대쉬해 오는지, 뒤로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하지만, 난 그런 그들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들의 귀에 충분히 들릴 수 있을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하도 꺅꺅거려서 제대로 들리기나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끅! 조금만···물러나 주실래요?”
젠장! 목소리가 좀 작았나?
목청을 돋워서 다시 소리쳤다.
“잠시 얘기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좀만 떨어져 주세요!”
이제야 좀 들리나 보다.
순식간에 물러나는 팬들.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러곤 뒤늦게 내가 다치기라도 한 게 아닌지 걱정하는 눈빛이다.
그 모습에 그만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 진짜 대단하네. 뭔 여자들이 이렇게 힘이 세요? 아, 남자들도 있어서 그런가?”
대부분이 학생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맘때 아이들답게 별거 아닌 말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방금까지 날 걱정하던 눈빛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속으로 웃음을 삼키면서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나보다 어린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같은 또래거나 나이가 조금 많다. 그래 봐야 한두 살 차이지만.
괜히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한 명씩 차례로 오세요. 그럼 사인도 해 드리고, 사진도 찍고, 다 해줄 테니까요.”
함성이 터져 나왔다.
***
딸랑.
옷도 늘어지고 머리칼도 헝클어져서 말 그대로 후줄근해진 상태가 되어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마루 누나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오오오! 우리 도준이, 많이 컸네?”
창문으로 봤나 보다.
쪼르르 달려오기에 누나가 날 끌어안기 전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조금 서운하단 표정을 지어 보이던 누나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면서 별거 아니란 듯 얘기한다.
“이제 어쩔래? 오늘 있었던 일이 알려지고 나면, 내일부턴 더 많이 몰려올 텐데.”
흠칫.
“아, 쟤들이야 안 올 수도 있지. 원하는 거 다 얻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애들은?”
벙찐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마루 누나가 킥킥거렸다.
그러곤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선 누난 발걸음도 가볍게 통통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침마다 팬 미팅. 이벤트론 딱인데? 얼른 카페에 올려야지.”
“아! 누나! 잠깐만! 그, 그건 좀······.”
그때였다.
저만치서 SNS를 확인 중이던 고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럴 필요 없다.”
“······?”
“이미 다 퍼졌어.”
그러곤 보여주는 SNS.
- 방금 회사 앞에서 주니 오빠와 한 장.
- 진짜 상냥한 우리 오빠.
- 형님! 저도 열심히 해서 꼭 형님 같은 가수가 될게요!
- 도준이 너무 착해. 안아도 주고, 손도 잡아줬어. 아, 행복해.
- 다른 가수들하고 너무 다른 거 같아. 나 울컥했다니까? 손을 잡는데 막막 응 오빠의 마음이 전해지는 거 같아서······.
- 맞아. 우릴 진짜로 생각해주는 눈빛이었어.
그사이 팬 카페를 둘러보던 마루 누나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다.
“아주 그냥 답사기를 썼네.”
아닌 게 아니라 확인해보니, 조금 전 올라온 게시글은······.
방금 일어난 일들을 초 단위로 나누어서 적고 있었다.
그러곤 말미에 덧붙이고 있다.
- ······주니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너희의 미래를 위해 난 뭐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꿈을 향해 나아가! 너희가 마음먹으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어!” 아, 진짜 감동이었어요. 우릴 생각하는 주니 오빠의 마음이······. 흑! 지금 다시 떠올려도 눈물이 날 거 같아요.
자, 잠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연탄불에 구워진 오징어처럼 온몸이 오그라드는 거 같다.
그때였다.
“오! 운영자님께서 나서셨는데?”
확인해보니, 팬 카페에 공지가 올라와 있다.
간단한 내용이었는데, 딱 내가 원하던 바였다.
요약하자면, 다른 팬클럽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과 그러니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경우에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얘기였다.
댓글이 주르륵 달리고 있었다.
그새 달린 댓글만 벌써 몇백 개인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알겠다는 얘기들이다.
그러면서도 방금 저 밖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며 부럽다고 난리다.
댓글들을 몇 개 읽다가 옅은 미소와 함께 돌아설 때였다.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마루 누나가 날 부른다.
“이거 한번 볼래?”
뭔가 싶어서 누나가 가리키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뮤직넷 실시간 순위]
1위. LONGING TIMES. - 김도준
2위. 마음대로 해 - 김도준
3위. 춤을 춰 - 김도준
4위. 비가 오는 거리 - 김도준
5위. 리스크 - 김도준
6위. 내가 없는 자리 - 박성훈
7위. 4.5 - 올인원
8위. CROSS - 씨크릿걸즈
9위. 여름축제 - 비스코
10위. TODAY - MK
순위가 또 달라져 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 노래가 1위부터 5위까지 줄을 세우고 있다.
조금 놀란 눈빛을 해 보이고 있을 때였다.
딸랑하는 종소리와 함께 아저씨께서 들어오셨다.
“웬일로 밖에 애들이 몇 명 없네? 무슨 일 있었냐?”
마루 누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제야 아저씬 날 기꺼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물으셨다.
“근데, 뭘 보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란 얼굴이야?”
“도준이가 줄 세우는 중이거든요.”
“줄?”
아저씬 음원 차트를 한차례 확인하시곤 날 가만히 바라보신다.
그러시더니 내 속에 들어왔다 오기라도 한 듯 말씀하셨다.
“뭐가 그렇게 놀라워? 눈빛을 보니까, 꼭 밤새 우리가 도깨비 방망이라도 휘둘렀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렇다기보단······.”
“도준아. 이제 슬슬 자각해야지?”
“······?”
“노래를 부른 건 너잖아? 그렇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인정하기엔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러웠던 걸 테지.
그래, 이제 인정하자.
사람들이 내 노래를 저만큼이나 좋아해 주고 있다는 걸.
그때였다.
아저씨께서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씀하셨다.
“그리고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놀라긴 이르지.”
“예?”
“광고 나가면 한 곡 더 추가될 텐데.”
“아······!”
“말했잖아? 아직 진짜는 시작도 안 했다고.”
멍해져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틀 뒤, 녹음을 모두 끝내고 음원 출시를 앞두고 있을 때 마침내 광고가 송출됐다.
***
조금 의외긴 했다.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보고 있으니, 지금 상황과 매칭이 안 된다.
“왜 그래? 삼겹살 안 좋아해? 한우 먹으러 갈 걸 그랬나?”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런 게 아니라, 이래도 되나 싶어서요.”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다들 안 들리나?
여기저기서 김도준 아냐? 혹은 가서 사인받을까? 등등 수군거리는 게 들려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덟 개쯤 되는 테이블이 다 찬 상태에서 가게 안의 손님들이 하나같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고.
아니 왜 하필 여기서 모니터링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아저씨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피식.
내 속내를 읽으신 모양이다.
“회사에 TV가 없잖냐. 그러니 어쩌겠어?”
설마 TV 한 대 살 돈이 없어서 그러시는 건 아닐 테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현장 반응?”
또다시 웃으시는 아저씨.
정답이었나 보네.
쯧. 그렇다면야.
나는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고기를 뒤집기 시작했다.
“응? 나온다!”
마루 누나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벽면에 붙어 있는 TV 화면에서 광고 한편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
대전에서 행사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
수입 밴의 뒷좌석에선 씨크릿걸즈의 멤버들이 지친 기색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민준은 몇 차롄가 힐끔거리다가 소연을 불렀다.
음악을 듣는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아직 잠들지 않고 있는 건 그녀뿐이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
빤히 쳐다보는 소연에게 민준이 불쑥 핸드폰을 내밀었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엉겁결에 민준이 내민 핸드폰을 받아드는 그녀.
화면을 보니 두 명의 남자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봤죠?”
“그런데요?”
“거기. 거기 도준이 안 보이세요?”
사진을 한 차례 더 쳐다본 소연은 살짝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다시 내밀며 말했다.
“장난해요? 하나도 안 닮았구만! 안 그래도 피곤한데, 짜증 나게.”
그때 옆에서 한마디 날아들었다.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집착 쩐다!”
유나의 목소리.
아직 안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 자세히 좀 보라니까요. 이거 저랑 제 동생이랑······.”
뒤통수에 충격이 전해지며 눈앞이 번쩍였다.
“이 자식이! 진짜 장난하나? 얀마! 어디서 또 사기를······. 아나, 딱 봐도 합성이구만.”
민준은 억울하고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그때였다.
소연이 외쳤다.
“어? DMB 터진다! 근데 이거······.”
“와! 김도준 광고 아냐?”
유나가 소리치는 순간, 어느새 민준의 시선도, 마음도 광고 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
한상철의 오피스텔에선 세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장도원 기자님, 이거 진짜 심각한 거 아닙니까?”
박성훈의 불만 가득한 말에 장도원이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제긴 문제죠. 그런 형편없는 곡이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이 실로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모인 거 아닙니까? 잘못된 게 있으면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는 거니까요!”
한상철의 얘기에 박성훈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결코 제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직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김도준 같은 애송이가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 음악계를 더럽히는 걸 더는 볼 수 없어서······.”
“잠깐······. 저거, 이번에 김도준이 찍었다던 광고 아닙니까?”
장도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TV를 켜놓은 상황이었기에 나머지 두 사람은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N9의 광고인지는 모르겠지만, 기타를 맨 김도준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광고가 끝나고 어색한 침묵 속에 다들 눈치만 볼뿐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결국 장도원이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X팔!”
뒤도 안 돌아보고 오피스텔을 떠나는 장도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