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 신드롬(6)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동한 곳은 명동의 차 없는 거리였다.
혹시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팔자에도 없는 변장까지 해야 했다.
뭐, 변장이라고 해봐야 커다란 선글라스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게 다지만.
아무튼, 그렇게 나름 요란 법석을 떨며 이동한 곳은 명동 한복판에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잠시 뒤, 옥상 위로 올라오니 가장 먼저 보인 건 아시바로 쌓아올린 무대였다.
아직 건물 아래쪽에선 눈치를 채지 못하는 듯하지만, 지금이라도 저 무대 위로 올라가면 거리에서도 훤히 보일 거다.
그저 고개를 살짝 치켜드는 것만으로도.
그러니까, 한마디로 저기서 내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얘긴데······.
아니, 이럴 거면 일찌감치 팬들이라도 좀 동원하던가.
남들은 다 그렇게들 하더구먼.
사람이 좀 꼼수도 쓰고 그러는 거지.
무슨······.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슬쩍 시선을 돌려보니, 아저씨와 박 감독이 콘티를 들고선 얘기를 나누고 계신다.
쯧. 이번 촬영에 콘티가 필요하긴 한 건가?
의심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오기도 치밀었다.
그래, 보여주······젠장! 진짜 한 명도 안 오는 거 아냐?
그때였다.
“세팅 끝났습니다!”
아주 시기적절하게 날아드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다시 한 번 내젓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머릿속을 비우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오, 그래도 제법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았네.
앰프도 그렇고 무대조명도 잘 갖춰 놓았다.
밴드 없이 혼자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어느새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스탠바이!”
여기저기서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카메라들도 미리 정해진 위치에서 필름을 돌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사이 기기 점검을 끝낸 엔지니어들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러자, 고 팀장님이 언제나 그렇듯 한쪽 구석에서 책상을 가져다 놓고 핸드폰들과 노트북을 연결하고 있다.
까똑!
사무실에 있는 마루 누나한테서도 톡이 날아들었다.
- 준비 완료.
예, 예. 그러시겠죠.
그쪽은 키보드만 두드리면 되는 거고, 나는 여기서 재주를 부려야 한답니다.
숨을 크게 몰아쉬곤 기타를 맸다.
그러곤 스탠드 앞으로 나아갔다.
마이크가 입술에 닿을락 말락 한 거리를 유지한 채,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셨다가 소리를 내질렀다.
***
명동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은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놀라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기타 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빠른 템포의 곡이었다.
누군가 외쳤다.
“어? 저기 누가 있는데?”
“그러게? 노래하는 건가?”
“뭐야? 콘서트야?”
“와! 근데 진짜 노래 잘한다!”
“음, 이거 어디서 많이 들은······. 응? 이거!”
“김도준 노래 아냐?”
“맞는 거 같은데? ‘춤을 춰’······. 맞네. ‘춤을 춰’네!”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면서 걸음을 멈춰 세우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혼잡해지며 북새통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누군가 다시 외쳤고, 그게 갓 피어난 불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어버렸다.
“아! 김도준이다!”
“어디, 어디? 어? 정말이네!”
북새통은 이내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고 팀장과 조마루는 지금 김도준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를 사방팔방에 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 팀장은 SNS를 중심으로, 조마루는 팬 카페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 님들 들었어요? 지금 주니 오빠, 명동에서 콘서트 중이래요!
- 그게 무슨 말이죠? 갑자기 웬 콘서트?
- 그러게요. 아! 진짠가 봐요! 제 친구가 마침 명동에 있는데, 사진 보내왔어요!
보란 듯이 올라간 사진.
그 후로도 여기저기서 사진들이 올라오며 김도준이 콘서트랄지, 버스킹이랄지 모를 공연을 하는 게 맞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소식을 접한 팬들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자신들이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 명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후욱, 훅······.”
첫 곡으로 ‘춤을 춰’를 선택한 건 다름이 아니었다.
그냥 빠르고 신 나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목청이 터져라 내지를 수 있는 곡이기도 했고.
그래야 이목을 끌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와, 생각보다 많이 모였네.
옥상 위에서 내려다본 거리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말 그대로 사람으로 이뤄진 파도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개미들이 과자 부스러기에 모여든 것같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많다.
그래서 그런가?
어쩐지 몸이 바짝 달아오르는 게 열기가 느껴진다.
아, 나 무대 체질인가?
이상하게 사람들 앞에만 서면······.
픽 하고 웃고는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안녕하세요!”
순간 건물 아래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금세 함성에 묻혀버렸지만.
근데 좀 불쌍하긴 하네.
입구를 막고 있는 경호업체 직원들이 여학생들에게 쥐어뜯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팬들인 모양인데.
“김도준입니다!”
또다시 비명과 함성이 함께 들려오자, 나는 곧바로 말했다.
“왜 갑자기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온다.
목청들도 어찌나 큰지 고막이 다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젠장! 진짜 그러는 거 아냐?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왕 내친걸음인데.
“사실은 저 광고 찍어요.”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거리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어림짐작으로도 천명은 족히 모인 거 같다.
차 두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 이제 미어터지기 직전이다.
한데, 이게 끝이 아니란 거다.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진짜 이러다가 한 만 명쯤 모이 드는 거 아냐?
속으로 혀를 차면서 마저 말했다.
“핸드폰 광고예요!”
동시에 밑에서 스텝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그걸 들어 번쩍 치켜들자, 여기저기서 또다시 웅성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차 없이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빼서 바닥에 팽개쳤다.
- 삐이이이이이익!
앰프가 비명을 지르자, 다들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그 사이 난 핸드폰을 스탠드에 고정했다.
그러곤 말했다.
“잘 들려요?”
앰프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거리 전체가 울리고 있었다.
- 끝내주죠? 지금 통화 중이거든요? 저하고 여러분하고요. 다중통화······뭐라고 하던데, 최신 기술이래요.
어리둥절한 모습이 된 사람들. 그중에 한 명이 일순 소리쳤다.
“아! 저기!”
여학생 하나가 가리킨 건물 벽에는 사람들의 손이 채 미치지 못할 정도의 높이에 핸드폰이 브라켓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마치 보물찾기하듯,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대본에 있는 대로.
- 소리 좋죠? 와 기술이 진짜······. 이젠 공연할 때 앰프 없어도 되겠어요.
그러곤 자연스럽게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앰프에서는 기타 음이 빠진 MR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 음들이 스탠드에 달아놓은 핸드폰을 통해 전파를 타고 거리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명동 거리 곳곳에 설치된 핸드폰의 개수만 1,000대.
그중 절반인 500대가 지금 내가 공연하고 있는 건물 앞을 중점적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나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인 ‘마음대로 해’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팬들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둘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내게로 전달되고, 또 내가 부르는 노래가 핸드폰을 통해 거리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앨범에 실린 곡들을 차례차례 불렀다.
‘마음대로 해’의 뒤를 이어 ‘비가 오는 거리’를 부르고 다음으로는 ‘리스크’를 불렀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곡이 끝나고 나자, 다들 한목소리로 외치는 게 들려왔다.
LONGING TIMES!
허밍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순 없었다.
다른 노래는 몰라도 이 노래는 이런 분위기에 부를만한 노래가 아니었으니까.
대신 나는 말했다.
- 죄송해요. 지금 ‘LONGING TIMES’ 부르긴 힘들 거 같아요. 대신 새로운 노래 한 곡 부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느닷없는 신곡 발표니,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이 노래는 단순한 신곡이 아니라, N9의 테마곡이 될 터였다.
- 그럼 부르겠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입니다!
***
광고가 나가기도 전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거리 공연이 있던 날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는 대략 만여 명으로 집계되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들어찼고, 그 때문에 내가 공연한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명동 일대가 혼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행인들도 합세해 축제라도 되듯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피커 대신 골목마다 설치된 핸드폰으로 인해 공연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9시 뉴스에 명동에서의 공연 장면이 보도되었다.
팬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커뮤니티의 게시판이 폭발 직전이었다.
SNS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직장인들은 직장인들대로. 서로 퍼가고 나르고······. 오늘 있었던 공연에 대해 온갖 얘기가 퍼져 나갔다.
뿐만 아니었다.
UCC 사이트엔 사람들이 찍은 동영상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자신이 없었다는 걸 안타까워했다.
화제 만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도배하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김도준이 있었지만 S전자가 이번에 내어놓은 핸드폰, 아스트로 N9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저 밑바탕이 되는 촬영만 했을 뿐, 광고가 아직 제작되지도 않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
비서가 들어와 건네주는 사진들과 엽서를 보면서 최 회장은 기가 막혔다.
“이걸 주고 그냥 갔다고 했나?”
“예.”
고개를 조아리며 쩔쩔매는 비서를 보다가 최 회장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손짓으로 나가란 신호를 보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나가는 비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올 때, 최 회장은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사진들과 엽서 따위를 보면서 인상을 팍 구기고 말았다.
“고얀 것!”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어찌나 고약한지.
분명 자신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기에 저러는 걸 테다.
그걸 생각하니 더더욱 화가 났다.
생면부지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여식.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난데없이 어디서 이상한 놈팡이 하날 남편이라고 데려오더니만, 이젠 손주까지 앗아가려 드니 괘씸하기 이를 데 없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쓰던 최 회장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9시면 습관처럼 뉴스를 챙겨보는······.
- 오늘 오후 2시. 명동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만 무려 만 명입니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었음에도······.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소속사에서 밝혔다시피 콘서트는 아니고, 단지 광고 촬영을 겸한 이벤트였다는 게 S그룹의 설명입니다.
부들부들.
도준의 사진과 나란히 띄워져 있는 영상에선 핸드폰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다가 몸을 떨던 최 회장의 표정이 급기야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