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46화 (46/260)

# 46

#46. 신드롬(2)

놀라기보단 의혹이 일었다.

최 회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자신의 외손주 이름.

그것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지중지하던 손자 아니던가.

그런데 그 이름이 뜻밖의 인물 입에서 튀어나왔다면?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맞소만.”

그러나 그의 그런 마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김호 회장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며 슬쩍 들이민다.

뭔가 해서 바라보니, 사진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앙증맞은 표정을 지은 채 찍혀 있다.

그게 뭐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김호 회장이 헛기침을 한다.

“큼. 우리 손녀가······.”

“······?”

“김도준 군의 팬이라고 합디다.”

팬?

한층 더 의아해진 최 회장에게 김호 회장이 부탁해온다.

“이거 참. 할아비 노릇 한번 하기가 이렇게 어렵소. 최 회장도 아실 거 아니오? 손녀딸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흠, 당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

“허허. 그러지 말고, 부탁 좀 하겠소. 김도준 군의 싸인 좀 받아주시구려. 녀석이 오늘 나오는데도 얼마나 땡깡을 부리던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내두르는 김호 회장.

얼떨결에 김호 회장으로부터 사진을 건네받은 최 회장의 얼굴에 황당함이 스쳐 갔다.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다시 한 번 혀를 차면서 막 걸음을 내디뎠지만, 이내 멈춰 서야 했다.

몇몇 회장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었던 것이다.

***

책상 위에 주욱 늘어놓은 사진들.

하나같이 여자애들 사진이다.

나이들은 제각각으로 열 살 전후부터 스무 살까지. 개중에는 서른이 다 되어 시집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M 건설의 막내딸까지 있다.

물론 사진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엽서도 있었고, 그냥 평범한 종이도 있었다.

다 합치면 다섯 장쯤 되려나?

K 그룹 손녀.

H 해운 막내 손녀.

L 그룹 손녀딸.

J 철강 외손녀.

M 건설 막내딸까지.

평소엔 데면데면하기만 하던 그룹 회장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전에 없이 살갑게 굴며 부탁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헛참!”

당최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영문도 모른 채 전경련 회의에 참석했던 그룹 총수들에게서 받은 것들을 바라보다가 최 회장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음, 이걸 어쩐다?’

본래라면 사인 하나 받아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일까?

오히려 이런 사소한 일로 평소 왕래가 없던 이들과 작은 접점을 만들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다. 아니, 더할 나위 없이 엄청난 이문을 남기는 셈이다.

내용이 어떠하든 저쪽에서들 먼저 부탁한 셈이니, 이것도 빚이라면 빚이니까.

하지만······.

딸아이가 찾아왔을 때 노기를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쳐서 쫓아 보낸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 연락을 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그때 딸아이가 건네주고 간 앨범이 있었더랬지.

최 회장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놓여 있는 CD 케이스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원래는 홧김에 휴지통에 던져버렸던 걸,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꺼내어 이렇게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비닐조차 벗기지 않은 앨범.

THE FIRST라는 글자와 함께 그 아래 김도준이란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잠시 그걸 내려다보고 있던 최 회장이 버튼을 눌러 이 실장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이것 좀 들을 수 있나?”

최 회장이 내민 앨범을 받아들곤 한차례 살펴본 이 실장의 눈이 살짝 빛났다가 평상시로 돌아왔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잠시 나갔다 들어온 이 실장의 손에는 CD 플레이어가 들려 있었다.

달칵.

이 실장이 나간 후 비닐을 벗긴 CD 케이스 옆에서 CD 플레이어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바로 방안 구석에 놓인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기 시작한 노래.

“음······.”

그토록 사랑했던 손주의 목소리가 조금씩 최 회장의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

집을 나오면서 혹시나 해서 뮤직넷에 접속해보니, 11위에 랭크되어 있던 ‘리스크’가 결국 9위로 뛰어올라 있었다.

이로써 내 노래, 다섯 곡이 전부 10위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정말 이게 말이 돼?

10위 안에 있는 곡들 중 절반이 내 노래라는 게?

게다가 나머지 절반도 다 내가 작곡한 곡들이다.

SIDE B.

내가 직접 부르는 노래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구분 지은 이름이었을 뿐이다.

한데,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어? 이것 좀 보세요.”

마루 누나가 서핑을 멈춘 채 돌아보며 외치자, 고 팀장님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가고 있다.

나 역시 궁금해서 뒤따랐다.

그러자, 마루 누나가 모니터 화면에 떠 있는 기사 하나를 천천히 읽어주기 시작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음악계는 뜻밖의 화제에 들썩이고 있다.”

- 지금 대한민국의 음악계는 뜻밖의 화제에 들썩이고 있다. 바로 SIDE B와 김도준이다.

(중략)

······한가지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터다. SIDE B라는 정체불명의 작곡가가 내놓은 곡들의 음악적 깊이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이 높은 데에 반해, 김도준의 곡들은 그저 대중의 인기만을 노리고 만들어진 탓에 트렌디할 뿐이란 사실이다.

물론 모든 노래가 깊은 맛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때에 따라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음악도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두 곡을 같은 선상에 놓고 저울질을 하는 건 정말 우매한 짓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젊은 가수가 만들어낸 곡이 아직은 무르익지 않은 과실이라 들 수밖에 없는 아쉬움과 그렇기에 장래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란 희망을 동시에 품어본다.

고 팀장님의 얼굴에선 아무런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지만, 마루 누나는 엄청나게 화가 나서 날뛰······.

“어머, 멋지게 써제끼셨네?”

웃고 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도 아니다.

정말로 감탄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런 누나를 보곤 너무 뜻밖이라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마루 누나가 빙그레 웃더니 팬 카페를 비롯한 사이트들을 둘러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와! 완전 불이 붙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인터넷상에선 난리도 아니었다.

- 미친! 장도원이라고? 뭐하는 XX냐? 도준 형님 노래는 들어나 보고 지껄이는 건가?

- 뭘, 그렇게 열 내는 거지? 다 맞는 소리더구먼.

- 맞긴 뭐가 맞는다는 거에요? 솔직히 SIDE B의 곡보다 우리 주니 오빠 노래가 훨 좋다는 거 세상이 다 아는데!

- 응응. 순위를 보면 답이 딱 나오지 않나? 괜히 김도준 노래가 1위 하는 게 아니란 거지.

- 다른 건 몰라도 ‘LONGING TIMES’는 진짜 명곡이지. 들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

- 웃기고 있네. 지 마음대로 콧노래 부르는 게 명작이라고? 님들 뭔가 착각하는가 본데? SIDE B가 작곡한 곡들이나 들어보고 얘기 좀 하쇼.

- 와, 말하는 네 가지하곤! 그러는 넌 김도준 노래 들어보기나 했냐?

음악 세상 칼럼리스트라고 했던가?

장도원이라는 사람이 어떤 의도로 칼럼을 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게 트리거가 되어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불거졌다는 거다.

SIDE B의 노래가 좋은지, 아니면 내가 만든 노래가 좋은지.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둘 다 내가 작곡했다는 걸 모른다손 치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순 없는 걸까?

자기가 듣기 좋은 걸 들으면 되는 일을 가지고 왜 저렇게 싸우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아무리 다른 가수들이 불렀다고 하지만, 한 사람이 작곡한 만큼 조금이나마 비슷한 분위기라는 게 있는데······.

물론 거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누구도 상대 자체를 안 해준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의견들은 나오기 무섭게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그만큼 다들 격해져 있다는 얘기.

하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혹은 좋다고 생각하는 걸 남들이 손가락질하면 얼굴이 빨개져서 주먹부터 움켜쥐는 건 다섯 살배기 애들도 그러긴 하더라.

아무튼, 내가 보기엔 좀 위태위태해 보인달까.

이쯤에서 다들 진정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고 있었다.

“이거, 어떻게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어보자, 마루 누나가 어째서?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불구경이랑 싸움구경이라는 거 몰라?”

설마 진심으로 하는 얘기는 아니겠지?

황당한 얼굴이 되어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고 팀장 보기엔 어때?”

언제 오셨는지 아저씨께서 묻고 계셨다.

“누군진 몰라도 설계 들어간 거 같은데요?”

“그지? 냄새가 나지?”

“예. 그렇게 보이네요.”

고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아저씨께서 입꼬리를 살짝 비트신다.

“뭐, 우리야 고마운 일이지. 안 그래도 한방이 부족하단 느낌이었는데.”

뭔가 의미심장한 얘기인데, 도무지 저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때였다.

“원래 설계 따로 시공 따로 아닙니까?”

고 팀장님께서 기지개를 켜시곤 컴퓨터 앞에 달라붙으신다.

물론 책상 위에는 여전히 핸드폰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고.

“간만에 손 좀 제대로 풀어볼까요?”

마루 누나 역시 깍지를 낀 채 손을 풀면서 얘기했다.

“기름 좀 부어보죠!”

고 팀장님과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 뒤 날 보며 웃는 누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선 살 떨리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호호호. 이왕 일어난 불길. 아예 대한민국을 홀랑 태워버리자고요.”

***

도대체 어떻게 기름을 부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금세 꺼질 줄로만 알았던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거다.

여기저기 논쟁이 벌어지며 인터넷과 SNS가 달아올랐다.

얼마나 뜨거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어디 한군데는 데일 것만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싸움 같기도 했고.

- 미쳤어요? 어디다가 비교를 해요? 저딴 쓰레기 같은 것들을?

누군가 논쟁 끝에 다소 과격한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무서운 기세로 줄을 잇는다.

- 님, 말조심하세요. 쓰레기라뇨! 간만에 명반이 나온 건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 딱 보니 주니빠네. SIDE B 곡들은 그렇게 까대면서 님들 주니 오빠 노래는 최고라는 논리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전문가들도 인정한 게 SIDE B가 작곡한 노래들인데, 그런 건 아예 보이지도 않는 거죠?

- 도준 형님 곡이 SIDE B 곡보다 못하다고요? 얼척 없네. 윗분, 눈이 있으면 당장 뮤직넷 들어가셔서 보세요. 어떤 곡이 지금 1위하고 있는지. 쥐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 나대기는.

- 그러게요. 그냥 들어보면 알 걸. 왜 저렇게 인정을 안 하는지 모르겠네요.

- 끽해봐야 17살. 깊이가 없어, 깊이가. 17살이 뭘 알겠어!

이 와중에도 SIDE B가 만든 곡과 내가 부르는 노래가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깡그리 무시당했다.

딱 보니, 이건 합리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감정싸움이다.

원인은 어느새 저만치 내팽개쳐지고, 싸움 자체에 마음이 상해서 말로 치고받는 격투로 변질된 지 오래란 얘기다.

비즈니스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래서야 진짜 양쪽에서 안티팬 만들게 생겼다.

아니, 그전에 나 때문에 사람들이 싸우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차라리 이럴 바엔 확 그냥 밝혀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사무실 안의 누구도 그런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이다.

다들 흥미롭다는 눈초리로 그저 인터넷과 SNS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들만 지켜볼 따름이었다.

에잇,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신경 끄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기타를 집어 들었다.

***

논란이 이는 동안에도 화제성은 만발. 단 한 번 TV에 출연했을 뿐인데, 전화통에 불이 났다.

“예. 계 피디님. 사정은 알겠는데요. 저희 애가 몸이 두 개가 아니라서요. 그럼요. 알죠.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변 피디님,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스케줄이 완전 풀이라니까요. 9월? 10월? 그쯤 돼야 빌까? 예? 아이고. 그거 다 헛소문이에요. 거기 출연 안 합니다. 당연하죠. 거길 나갈 거 같았으면 무조건 변 피디님께 연락드렸죠. 예 예. 그럼 그렇게 알고 끊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일단 TV는 보류하자네요. 예, 압니다. 물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근데, 요즘 우리 애가 좀 힘들어하네요. 그런 거 있잖습니까? 갑자기 인기가 올라가니까, 좀 두려운가 봐요. 예. 걱정해주시는 거 압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꼭 연락드리죠.”

전처럼 핸드폰을 꺼놓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고 팀장님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입에 침이나 발랐나 모르겠다.

어쩜 저렇게 말씀을 잘하실까?

누가 들으면 진짜 내가 무진장 바쁜 줄 알겠다.

그게 아니면 그 뭐라더라······. 아, 공황장애? 뭐 그런 거라도 생긴 줄 알던가.

아무튼, 참 잘도 둘러대신다.

“진짜 이래도 돼요?”

팔짱을 끼고 고 팀장님이 전화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던 아저씨께서 픽 하고 웃으신다.

“안될 건 또 뭐 있어? 우리가 갑인데.”

“아, 우리가 갑이었구나.”

“원래 그런 거야. 상대방이 원하는 걸 쥐고 있는 게 갑인 거지.”

“그럼 이제 진짜 TV엔 안 나가는 건가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아저씨가 묘한 미소로 날 쳐다보고 계셨다.

뭐지 싶어서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런 날 은근한 눈으로 보시던 아저씨께서 불쑥 물어오신다.

“태지 알지?”

고개를 끄덕였다.

“피디들이 사정사정하고, 팬들이 아우성치면 그제야 못 이긴 척 한 번씩 방송 나오지? 그것도 몇 년에 한 번.”

그렇게 얘기하니 알 것도 같다.

근데, 주태지랑 나랑 사정이 같나?

“몸값 겨우 올렸는데, 함부로 떨어뜨릴 일 없잖아?”

그렇다면야.

대충 납득이 가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자, 아저씨께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씀하신다.

“넌 그냥 라이브로 가는 거야.”

“······.”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거지. 단 한 번만 들어도 잊을 수 없게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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