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45. 신드롬(1)
잔업 때문에 퇴근을 늦게 하는 거야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밤 9시.
일산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김 대리는 핸드폰을 꺼내 괜스레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아침에 읽던 소설 사이트에 접속했다.
무료함을 달래려 읽기 시작한 소설인데, 그게 오히려 졸음을 불러왔다.
출근하는 아침이라면 몰라도 밤늦은 시각이기에 그냥 눈을 감는다.
아직 목적지까진 한참이나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졸았을까.
꾸벅거리던 그가 고개를 툭 떨어뜨리며 눈을 떴다.
화들짝 놀란 그는 여기가 어디쯤인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한참 남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 순간이었다.
응?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그러다 급기야 눈가에 물기가 서서히 차오른다.
아니 왜 지하철 안에서······.
의아한 생각에 힐끔거리던 그는 여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여자. 그런 채로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을 하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지?’
대체 뭐기에 울 듯한 눈으로 저걸 보고 있는 걸까?
그는 이제 힐끔거리는 게 아니라 거의 노골적으로 여자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이성원의 뮤직캠퍼스?
상단에 떠 있는 자막을 보곤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악 프로인데, 저걸 보고 울 일이 뭐가 있을까?
더구나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은 고등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학생이다.
도대체 무슨 노래를 부르기에 그러나 싶었던 김 대리는 폭풍검색으로······.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뮤직캠퍼스라는 검색어를 적기 무섭게 관련 기사와 블로거들의 글들로 넘쳐난다.
- 듣지 말았어야 했다.
- 경고하건대 아직 보지 않았다면 차라리 보지 않길 권한다.
- 마음을 울리는 노래네요.
- 간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음.
- 난 시골에 계신 엄마께 전화 드렸음.
- 저는 작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렇게 그분 생각이 날 수가 없었어요. 정말······.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수많은 글들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극적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한데도 이상하게 호기심이 든다.
그는 어느새 한 블로거가 링크해둔 동영상을 클릭하고 있었다.
그때쯤이었다.
막 뮤직캠퍼스의 영상이 뜨기 직전이었다.
주르륵.
옆에 앉아 있던 여자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미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한 김 대리는 그걸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의 귓가로는 기타 소리와 함께 김도준이란 신인가수가 부르는 노래, 아니 허밍이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뭔가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자꾸만 누군가가 그리워졌다.
그러다가 먹먹한 심정이 되고, 곧이어 폭발적인 기타 연주와 함께 옥죄던 가슴이 활짝 열리며 그리움이 폭발했다.
그의 눈가에서 서서히 차오르던 물기가 넘치기 직전이 되었을 때였다.
“훌쩍. 어, 엄마······. 저에요. 응응. 밥 먹었지. 지금이 몇 신데······. 엄만? 응? 그럼. 일은 무슨······. 그냥···보고 싶어서 걸었어.”
옆에서 들려오는 통화소리는 김 대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
수경은 기말고사 기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방학이라고 해서 집안에만 처박혀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요즘처럼 취직하기 어려운 시기에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면접조차 볼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런 그녀에게 핸드폰은 언제나처럼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깐의 휴식을 취할 때면 더더욱.
잠시 뉴스를 살펴보던 그녀가 자주 들어가는 카페에서 하나의 게시글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묘하게 끌리는 제목이었다.
-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준 남자.
뭐지 싶어서 빠르게 글을 읽어내려간 그녀는 어느새 동영상을 클릭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멍한 눈빛이 되어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귓가에선 동영상이 끝나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그녀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나가서 장사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얼마 뒤, 그녀는 가방을 챙겨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미 그녀의 마음은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오케이! 지금 접속했다!”
“미투!”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외쳤지만, 들려와야 할 진욱의 목소리는 들려오질 않았다.
“야! 이진욱! 뭐해? 안 들어오고?”
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 게임방엔 그다지 손님이 많지 않아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광수였다.
하지만, 진욱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모니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얀마! 왜 그래? 게임 안 할 거야?”
“저 자식이! 야! 시간 없어! 얼른 접속해!”
거친 말투로 불만을 토해내는 아이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을까 싶을 정도의 나이들이다.
그렇게 광수와 호철이 다그쳤지만, 진욱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참다못한 광수가 헤드폰을 벗곤 진욱이 앉아 있는 자리로 성큼 걸어가며 짜증을 부렸다.
“아나, 이 새끼! 지금 뭐하는······. 응? 너 뭐 보냐?”
그때였다.
진욱의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걸 발견한 호철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야, 너 왜 그래? 지금 우는······.”
“아, XX! 누가 울었다고 그래!”
얼른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버럭 고함치는 진욱. 그의 친구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모니터 화면으로 눈길을 향했다.
끝나버린 동영상.
‘이성원의 뮤직캠퍼스 김도준 편’이란 제목이 그들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질 않고 있었다.
***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 이틀 만에 퍼져 나간 동영상은 무서운 속도로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미 UCC에 올라온 김도준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은 조회수 500만을 찍었고, 다시보기로 이성원의 뮤직캠퍼스를 시청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송국 사이트는 거의 다운 직전이었다.
더불어 음원 사이트의 검색어란에는 ‘ㄱ’ 자만 쳐도 김도준이란 이름이 뜰 정도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대형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도 김도준이란 이름 석 자가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그것도 1위에 올라간 이후 도무지 내려올 줄을 모른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방증이었다.
불과 이틀 만에 일어났다고 믿기엔 어려운 상황. 이쯤 되면 촉이 좋은 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지간히 둔한 이조차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김도준의 소속사가 있는 강남으로 몰려들었고, 앞다퉈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17살 소년이 부른 노래가 전 국민을 울렸다.]
[김도준. 전교 1등 하던 천재가 이젠 가요계에 도전하고 있다.]
[학교까지 관둔 문제아, 대한민국을 상대로 문제를 일으키다.]
오버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자극적인 기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고, 이에 질세라 블로거들도 미친 듯이 김도준에 대한 얘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김도준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었다.
***
현장 실습이란 명목으로 학교를 빠지고 회사로 출근한 민준은 수입 밴의 보조석에 앉아 바짝 긴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옆, 운전석에는 올해로 로드 매니저 경력이 무려 3년 차나 되는 선배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그를 긴장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뒤쪽에 앉아 있는 여자들이었다.
시크릿걸즈.
이번에 신곡을 발표하면서 막 활동에 들어간 그녀들은 아침 일찍 숙소를 나가 밤을 넘겨 새벽이 되어서야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한낮이지만, 피로가 누적된 탓인지 차가 다음 행선지로 움직이는 동안에도 뒷좌석에 늘어져 있는 그녀들이었다.
한데, 오늘은 어째 평소와 좀 다르다.
늘 피곤함을 호소하며 투덜거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죽은 듯이 쌔근거리며 잠들어 있더니 핸드폰을 들고 모여 앉아 뭔가를 보고 있다.
“얘가 걔야?”
“응. 좀 생겼지?”
“그래도 내 스타일은 아닌데?”
“뭐래?”
“근데, 얘가 그렇게 노래를 잘해?”
“완전 빵 떴잖아.”
“저번에 실장님이 그러시더라. 왕년에 주태지 보는 거 같다고.”
“나도 들어봤는데, 좋긴 좋더라.”
“우리 노래도 좋은데······.”
“노래 진짜 잘 불러.”
“그러네. 이렇게 시끄러운 차 안에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거 보면······.”
뒤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들으며 민준은 피식 웃었다.
왜냐면 그녀들이 지금 화제를 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 거다.
평소라면 어려워서라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을 그였지만, 동생 얘기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말았다.
“노래 잘하죠? 걔가 옛날부터 노래 하난 기가 막히게 했거든요.”
순간 차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하지만, 침묵은 얼마 못 갔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김도준이랑 아는 사이에요?”
“예? 아, 예······. 제가 도준이 형이거든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먼저 들려온 건 피식거리는 비웃음이었다.
“진짜! 웃겨. 김도준 형이란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대?”
“왜요? 본인이 김도준이라고 하죠?”
“그렇게 안 봤는데 좀 실망이네요.”
뒤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민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진짠······.”
그 순간이었다.
뒤통수를 가격하는 손길에 눈앞이 번쩍했다.
이어 들려오는 호통.
“이 새끼가 미쳤나? 하나라도 더 배울 생각은 않고 어디서 뻘소리를 지껄여? 아, 나! 이 새끼 진짜 웃긴 놈이네. 너 같은 놈 때문에 이쪽 바닥에 있으면 반사기꾼이라느니 하는 소릴 듣는 거 아냐?”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또 말대꾸! 너 이따가 나 좀 따로 보자, 응?”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며 고함쳐대는 선배의 시선을 피하며 민준은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아이씨. 진짠데······.’
***
김성만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
“진짜 섭섭합니다. 저 데려올 때 뭐라고 하셨어요? 무조건 1등 하게 해준다면서요? 근데 이게 뭡니까? 나 원, 쪽팔려서······.”
한참을 듣던 김성만이 박성훈에게 말했다.
달래는 듯한 말투로.
“3주간 1위 자리면 요즘 같은 때엔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대표님! 저 박성훈이에요, 박성훈! 근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솔직히 실망이네요! 회사에서 좀 더 확실히 밀어줬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냐고요! 그 애새끼한테 밀려서 2위도 아니고, 3위라뇨! 요즘 진짜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니까요!”
“좀 진정하시고······.”
“지금 제가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아, 몰라요, 몰라! 역주행이든 뭐든! 대표님께서 책임지십시오! 물량으로 빨든, 작전을 짜든, 제 곡 다시 1위 자리에 올려놓으세요!”
버럭버럭 고함을 치던 박성훈이 급기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성만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헛참. 저게 뮤지션이야? 양아치야?”
고개를 내젓던 그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3년으로 되어 있는 박성훈과의 계약 기간을 다시 한 번 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친구인 강혁수를 떠올렸다.
“아, 자식이! 좀 살살 할 것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시 녀석이다 싶어 입가에선 미소 한줄기가 스쳐 가고 있었다.
***
대표실을 뛰쳐나온 박성훈은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를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한상철 실장이라고 했던가?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인사를 나누고, 그 뒤로는 오가며 아는 척만 했을 뿐 그다지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을 막아서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설마 김성만 대표처럼 자신을 달래려는 건가 싶어서 살짝 짜증이 솟구쳤을 때였다.
“박성훈 씨. 지금 속상하시죠.”
“허! 이 사람이 진짜······.”
“압니다. 원래 대표님이 좀 무른 편이라 저도 그렇고 회사에서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좀 많거든요.”
어째 뉘앙스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 싶어서 박성훈은 잠시 더 들어보기로 했다.
“여기선 좀 그렇고······. 괜찮으시면 저랑 차 한 잔 안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인데요?”
다소 퉁명한 대꾸에도 한상철 실장은 실실 웃으며 얘기할 뿐이었다.
“제게 기가 막힌 계획이 있거든요.”
“예? 계획이요?”
“다시 1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눈을 빛내며 말하는 한상철 실장의 얘기에 홀린 듯 따라간 박성훈은 잠시 후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서 그가 말하는 계획이라는 걸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그거라면 가능할 것도 같았던 것이다.
자신이 다시 한 번 1위 자리로 딛고 올라서는 일이.
그래서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한상철 실장은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장도원 기자님이시죠?”
***
전경련 회의가 끝나고 회관을 막 빠져나오던 최 회장의 발걸음을 잡은 것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이보시오. 최 회장.”
이 실장을 앞세우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최 회장이 돌아보곤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 그다지 왕래가 없던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K그룹의 김호 회장.
타이어를 비롯해 석유화학만으로 재계 서열 20위안에 드는 굴지의 그룹을 일궈낸 이가 바로 김호 회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깐깐하고 냉철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식품 그중에서도 커피를 주축으로 한 음료 쪽이 주였던 최 회장의 D그룹과는 크게 접점이 없었던지라 그간 얘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는 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불러세우니 의아할 수밖에.
뭔가 사업적인 제안이라도 하려는 건가.
최 회장은 속내를 감추고 물었다.
“아, 김 회장. 오랜만이오. 그동안 잘 지내셨소?”
“아시면서 뭘 묻는 거요? 늙어서 그런가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지경이오.”
말투 자체가 툭툭 던지는 식이라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최 회장은 신경 쓰지 않았다. 김호 회장의 어투가 원래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보단 오히려 자신을 멈춰 세운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성격상 빙빙 둘러 가는 걸 못하는 최 회장이 대놓고 물었다.
“그래, 어찌 날 부르신 게요? 혹, 따로 말씀하고 싶은 거라고 있소?”
“하하하. 그런 건 아니고······.”
웃어?
어째 평소와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머뭇거리는 김호 회장의 모습이 영 어색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최 회장은 말없이 기다렸다.
그러길 잠시.
김호 회장이 물어온다.
“최 회장 외손자 이름이 김도준 맞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