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 도배 해봤어?(3)
이성원의 얘기에 따라 도준이 기타를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인지, 세션들은 움직이질 않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도준은 가만히 기타 위로 손을 올리고 피크도 없이 현을 뜯기 시작한다.
흔히들 아르페지오 주법이라고 불리는 핑거피킹.
능숙한 솜씨로 현을 뜯어나가자, 고요한 녹화장이 아름다운 선율에 휩싸인다.
가야금을 뜯는 것과는 달리 긁듯이 현을 스쳐 가는 손가락들.
계란을 말아쥔 모양의 손으로 엄지가 5번 줄, 검지가 3번 줄, 중지는 2번 줄, 그리고 약지로는 1번 줄을 차례로 뜯고 있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기타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어느새 방청객들의 귓가를 파고들어 가슴으로 스며든 지 오래였다.
이는 TV를 보는 시청자들 또한 마찬가지.
현란함은 없지만, 대신 청아하면서도 끊기지 않는 맑은 선율에 취하고 있을 때였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거니.”
도준의 입술 사이로 낮고 묵직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모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었다.
거기에 오랜 시간 숙성된 창법과 함께 콜린이 말한바 있던 소울이 담겨 있다 보니 누구라도 흠뻑 빠져들 수밖에.
게다가 담담하게 노래를 하다가도 결정적인 타이밍에선 기가 막힌 그루브로 타고 넘는다. 마치 파도를 타고 서핑을 하듯 절묘하다.
절제된 노래 속에 간간이 타고 넘는 파도는 그렇게 모두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다들 취한 듯 도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로는 그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면서.
이러한 방청객들의 반응은 고스란히 TV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에게로 전해지고 있었고, 그들 역시도 마찬가지로 도준에게 빠져든 상태.
동시에 그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며 감상에 젖어들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상할 만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단지 가사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도준이 들려주는 노랫소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걸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기타연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도준이 움직임을 멈췄다.
노래가 끝난 것이다.
그럼에도, 방청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진행자인 이성원조차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TV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같은 모습이었다.
다들 멍한 눈빛이 되어 도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윽.
천천히 기타를 무릎 위에서 내려놓을 때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이성원이 진심으로 감탄했는지, 박수부터 쳤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도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 하,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한숨과 함께 고개까지 내저었던 이성원이 도준의 얼굴을 한차례 바라보곤 눈을 반짝였다.
그 눈빛 속에 열망과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까.
이성원은 그걸 애써 숨기며 말하고 있었다.
- 솔직히 말하면, 전 믿기지가 않아요. 여기 보면 김도준 군이 악기를 다루기 시작한 지 석 달? 그쯤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제가 보기엔 못해도 20년 아니 30년 이상은 다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실력이거든요.
그의 얘기에 동조한다는 듯 세션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방청객들도 같았다.
아무리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일반인들이라 해도 듣는 귀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들 역시도 도준의 기타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걸 모르지 않을 터였다.
- 그러니까, 이제 진실을 말해봐요. 김도준 군, 정말 17살 맞습니까? 혹시 성형이라든가? 주민등록증 위조······. 아, 아직 그것도 없겠구나! 그럼 태어난 후 한 10년 뒤에 출생신고를 했다든가······. 아무튼 나이를 속이는 거 아니에요?
농담으로 묻고 있는 거겠지만, 도준은 어쩐지 흠칫하더니 머리를 긁으며 나직이 대답했다.
- 혹시 이거 너무 못한다고 혼내는 거 아니죠?
- 오오. 잘난 척하는 거보다 더 재수 없다.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이성원이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 노래 정말 좋네요. 직접 작곡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 아, 예. 실은······.
정해진 대본대로 말을 하고 있는 도준.
이미 노래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그의 얘기는 크게 중요치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미 도준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청중들은 다들 눈을 빛내며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연후, 다시금 노래가 이어졌다.
세곡.
그때부턴 세션들도 참여해 반주를 넣어주었다. 그중 한 곡은 경쾌하면서도 빠른 템포의 신 나는 곡이었고, 나머지 두 곡은 여심을 울릴 만큼 애절함이 묻어나는 발라드였다.
그렇게 간간이 토크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 자, 이제 마지막으로 김도준 군이 다시 한 번 노래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미발표곡이라고 하셨죠?
- 예. ‘LONGING TIMES’라는 곡입니다.
- 음······. 간절히 원하는 시간들. 대충 이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요?
- 비슷하네요. 그냥 그리움을 노래한 곡입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들어볼까요? 김도준 군이 부릅니다. LONGING TIMES.
잠시 후, 다시금 기타 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세션들은 아무 움직임 없이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사이, 기타 연주가 이어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화려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밋밋하지만도 않다.
적절한 템포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서서히 모두의 가슴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준의 입술이 벌어졌다.
“음······.”
놀랍게도 허밍이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다.
이성원 역시 마찬가지.
처음엔 그저 전주처럼 본격적인 노래를 부르기 전에 허밍으로 분위기를 잡는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노래는 허밍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뭐지?’
가슴을 옥죄는 감각.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달플 정도로 간절한 그리움.
누군가를 보고 싶어 몸부림치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 온다.
그저 허밍에 불과할 뿐인데도.
더 당황스러운 건 그 그리움이 허밍이 거듭될수록 쌓이고 쌓여 가슴속에 갇힌다는 거였다.
그것은 마치 그리움조차 사치라는 듯 억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면서 견디고 또 견디는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성원을 비롯해 방청객들도, 녹화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도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곡은······.
그렇다. 이 곡은 분명 김도준이 자신의 얘기를 곡으로 들려주는 게 틀림없었으니까.
허밍 속에 감춰진 도준의 진한 감정.
하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가둬둘 수밖에 없는 그 감정이 가슴을 파고들자, 모두는 절로 입술을 잘근 씹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그 감정은 이미 그들의 마음을 잔뜩 흔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다들 희망했다.
도준이 그리움을 가슴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밖으로 표출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또한, 그토록 그리워하는 누군가를 꼭 만나기를 소망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도준의 손이 현을 긁어 내리며, 주법이 바뀌었다.
아르페지오에서 스트로크로.
그때부터 기타는 폭발적인 연주를 시작했다.
마치 가두고만 있던 그리움이란 감정을 일시에 드러내듯이.
짙은 외로움 속에 한없이 그리워하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그는 지금 이 순간, 말하고 있었다. 아니 외치고 있었다.
보고 싶다고!
너무나 보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고!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겠다고 절규하는 도준이었다.
***
어머닌 말씀이 없으셨다.
TV에 눈을 고정한 채로 마치 석상처럼 그저 듣고만 계셨다.
두 손을 움켜쥔 채 정말 미동조차 없이 그러고 계셨다.
그리고 마침내 TV 속에서 내가 스트로크 주법으로 전환하고 미칠 듯이 노래하자, 어머니께선 입술을 꽉 깨무셨다.
나 역시 더 이상 어머닐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알아차리신 것 같다.
저 노래의 대상이 누구인지.
내가 왜 저 노래를 만들었는지.
맞다.
노래방 안에 있을 때,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닐 다시 뵐 수 있다면······.
아마 그 생각만 수천 번은 했을 거다.
그 마음이 저 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기에 허밍이었다.
그리움이란 감정은 겨우 세 글자로만 표현될 만큼 가볍지 않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노래?
웃기지 말라고 그래라.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 따윈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그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도 상관없다.
적어도 이 곡만큼은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곡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잘 참고 견뎌준 내게 보내는 칭찬이었다.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었다.
“흑······.”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울음을 터뜨리셨다.
그리고 천천히 뻗어오신 손.
그 손은 떨리는 가운데서도 정확히 내 손을 잡아오신다.
꼭 쥐어진 손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 역시도 그 손을 맞잡았다.
그때였다.
“허어어어엉!”
형이 벌떡 일어나더니 날 향해 뛰어들었다.
“이 자식! 흐아아아아앙!”
와락 안고서 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형이었다.
어머니께서도 여전히 눈물을 그치지 않은 채로 우리 형제를 가만히 안아주셨다.
그런 우리 세 모자를 아버지께선 말없이 바라보셨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안타까운 눈빛과 함께 미소를 지어 보이시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셨다.
***
방송이 나간 직후,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다.
그건 정말이지 내가 상상조차 못 한 일들이었다.
1위.
‘마음대로 해’가 마침내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주요 음원 사이트 올킬.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더 놀라운 건 다름이 아니었다.
나머지 세곡도 연달아 순위 상승.
그중 두 곡이 순위권에 진입했다.
나머지 한 곡도 11위로 순위권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날 진짜로 놀래킨 것은 따로 있었다.
‘LONGING TIMES’.
방송이 나감과 동시에 출시한 이 노래가 곧바로 2위로 진입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다시 말해 현재 주요 음원 차트의 10위 안에는 내 노래가 무려 네 곡이나 올라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내일쯤에는 전부 다 순위권 밖으로 밀려날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것보다는 오히려 현재 11위에 랭크되어 있는 나머지 한 곡마저 10위권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많다는 게 마루 누나의 의견이었다.
까똑.
전화를 걸어 몇 번이나 꺅꺅거리며 비명을 내지르던 누나가 보내준 캡처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나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뮤직넷 실시간 순위]
1위. 마음대로 해 - 김도준
2위. LONGING TIMES. - 김도준
3위. 내가 없는 자리 - 박성훈
4위. 비가 오는 거리 - 김도준
5위. 4.5 - 올인원
6위. 춤을 춰 - 김도준
7위. CROSS - 씨크릿걸즈
8위. TODAY - MK
9위. 여름축제 - 비스코
10위. 너와 함께라면 - 엠지오
11위. 리스크 - 김도준
왜 어안이 벙벙하냐고?
1위부터 10위.
아니, 11위까지 노래를 부른 가수는 다르지만, 작곡가는······.
내 노래를 제외한 모든 노래의 작곡가가 SIDE B, 즉 또 다른 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음원 사이트의 순위권을 모조리 내 이름으로 도배한 셈이 돼버렸다는 거다.
하,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거야?
대한민국 음악계가 내가 만든 곡들로 들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