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41화 (41/260)

# 41

#41. 왜 그러셨어요?(3)

브라이언이 불시에 날린 한마디에 콜린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닐 테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내가 알 정도인데, 콜린이라고 해서 모를 리가 있을까.

그저 확인차 묻고 있을 뿐.

“설마 공연비를 받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싱긋이 웃으며 날 바라본 브라이언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해도 친구만큼 소중하진 않지. 너희가 자청해서 무대에 올라간 건 그런 이유 아니었나?”

그 말에 콜린을 비롯한 레이크헬 멤버들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순간적으로 자신들이 날 돕기 위해 세션으로 무대에 선 것을 브라이언이 이용했다고 생각했다가 그건 또 아니라고 하니 그나마 마음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거래 대상은 어디까지나 광고일 뿐. 그것도 애당초 방송국 쪽에서 먼저 제의해온 거고, 우린 승낙만 했을 뿐이야. 뭐, 합리적인 결론인 거지. 초상권이랄까. 오케이?”

그만하면 설명으론 충분하고도 넘쳤다.

이쯤 되자, 콜린도, 나머지 레이크헬의 멤버들도 납득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쿨하다.

미국식 사고방식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짝!

브라이언이 손뼉을 치며 얘기했다.

“자자, 이제 움직여야지?”

모두의 눈동자에 의문이 깃드는 순간, 그가 왜 그러냐는 눈빛을 해 보였다.

“뭐야? 그럼 계속 여기 있으려고 했던 거야?”

기가 막힌다는 듯 한마디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례도 적당히 해야지. 안 그래?”

그가 콜린을 보고 묻자, 콜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당사자인 우리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럼,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문득 궁금해진 내가 슬쩍 물어보자, 브라이언이 내게로 시선을 던졌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그래야지. 단······.”

그러곤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이어 그는 레이크헬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놀 만큼 놀았잖아?”

“그야······.”

“좋아. 온 김에 잡지 촬영도 좀 하고, 광고도 몇 개 찍고 가자고. 흐흐흐. 그래도 비행기 값은 벌어야 할 거 아니겠어?”

비행기 값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설마 레이크헬 몸값만 할까.

아무래도 그동안 쉰 만큼 아주 뽕을 뽑을 기세다.

하지만, 콜린은 말할 것도 없고 레이크헬 멤버들 중 누구 하나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브라이언이 짓고 있는 저 미소.

활짝 웃고 있지만, 여기서 다른 얘기를 꺼냈다가는 진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하긴 다들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게다가 비즈니스에 관해서라면 어찌 되었든 간에 브라이언의 얘기에 따르는 게 결국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을 테니까.

***

레이크헬은 회사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호텔로 거처를 옮긴 후 며칠 동안 엄청난 양의 스케줄을 소화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릴 정도의 강행군임에도 거침없이 해치우고 떠나버린 그들을 보곤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물론 그러는 사이 내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광안리 썸머 페스티발의 본방이 나간 뒤, 아니 방송이 나가는 동안 레이크헬과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를 도배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넷 블로그들과 SNS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고 팀장님과 마루 누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한쪽은 인터넷과 SNS를 관리하느라, 또 한쪽은 팬 카페를 관리하느라.

어느 쪽이든 폭주하는 게시물과 댓글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물론 그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중에는 악플도 많았던 것이다.

특히 나에 대한 악플들이 달리곤 했는데, 대략 내용을 살펴보면 듣보잡에 불과한 신인가수가 실력도 없는 주제에 세계적인 락밴드의 덕을 본 거 아니냐는 의견들이 주된 내용이었다.

- 솔까 노래 못하지 않음?

- 윗분 노래는 들어보고 하는 말임?

- 동영상 보고 와서 말하셈.

- 레이크헬의 인기에 편승한 건 맞는 거죠.

- 그것도 실력이 되니까, 함께 공연한 거 아닌가요? 레이크헬이 어떤 밴드인데 아무나하고 무대에 오르겠습니까? 그것도 백 밴드를 자처해서요.

- 그러니까, 그게 이해가 안 간다고.

- 나도 같은 생각임. 레이크헬 씩이나 돼서 한국의 무명가수 세션? 어이 상실임.

-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나요?

- 친구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도움 준거 아닌가?

- 미친! 진짜 다들 귓구멍이 막힌 겁니까? 김도준 노래나 듣고 와서 얘기들 하세요. 그리고 본방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R&B 풍의 곡을 그 자리에서 즉석에서 락풍으로 변주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나 보네.

- 그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닐까요?

- 응응. 나도 그렇게 생각함. 이제 갓 데뷔한 신인가수가 할만한 일이 아니라고 봄.

- 그렇죠. 미리 만들어둔 곡을 현장에서 그럴듯하게 연주하고 노래한 게 아닐까 싶네요.

논란이 불거지고, 곳곳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은 내가 레이크헬 덕분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는 의견이 좀 더 많았다.

그 때문에 마루 누나는 지금 키보드 워리어로 빙의해서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겨 대는 중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실시간 검색어야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가면서 단발성으로 그쳤다지만, 음원 차트는 그러지 않았으니까.

방송이 나간 직후 42위까지 뛰어오른 순위가 불과 반나절이 지난 다음 날에는 무려 21위에 랭크된 것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돈 한 푼 안 들이고 홍보 한번 제대로 한 셈이지.

그리고 그때쯤엔 논란의 흐름도 조금씩이나마 바뀌고 있었다.

- 와! 김도준이란 가수 장난 아니네요.

- 곡들이 하나같이 끝내줘요!

- 님들 그거 아세요? 그 곡들 전부 김도준이 작곡했대요.

- 헐.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란 얘기? 진정한 싱어송라이터라는 거네.

- 노노. 작사는 조마루라는 분이 하심.

세간의 관심을 받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내 노랠 찾아들어 본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다시 또 하루가 지나는 사이, 순위는 14위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그걸 본 아저씨께선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이곤 한마디 하셨을 뿐이다.

“두 달은 걸릴 줄 알았더니만. 뭐, 우리로선 나쁠 건 없겠지.”

마루 누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직 몰라요. 이제 곧 순위 바뀔 시간이니까. 어쩌면······.”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표정이 되어 한 손으로 입을 막고선 키득거리는 누나를 보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그때, 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슬슬 입질 오겠는데?”

고 팀장님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아마 지금쯤 내부회의하느라 정신들 없을 겁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루 누나가 소리쳤다.

“드디어 떴어요!”

뭐가? 하는 눈빛이 되어 시선을 돌리자, 마루 누나가 노트북을 들어 올려 화면을 보여준다.

화면에는 굵은 글씨로 선명히 적혀 있었다.

- 레이크헬, 신곡 발표 결정.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파격적인 내용이 줄을 잇는다.

-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락밴드 레이크헬이 올해 상반기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고 CDM 레코드의 수석 프로듀서 브라이언 오스틴이 밝혔다. ······그런 가운데 다음 공연에서는 한국의 신인가수 김도준이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또한, 이번 레이크헬의 신곡은 종전과는 다른 느낌의 곡들이 될 것이란 풍문이 돌고 있어 각국의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걸로······.

이 정도면 폭탄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다.

조금 얼떨떨해져서 아저씨를 바라보자, 그저 웃고만 계신다.

음, 이미 알고 계셨다는 거군.

하긴, 브라이언이나 아저씨나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지.

왠지 두 사람이 은밀하게 계획을 짜면서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살짝 소름이 돋았다.

마루 누나의 외침이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아이씨, 놀래라!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번엔 또 뭔데?

안 그래도 정신이 하나도 없구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돌릴 때, 옆에서 마루 누나가 의자를 밟고 올라가며 주먹을 뻗고 있었다.

“이에에에에! 순위권이다아아아아!”

응? 순위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누나가 여태껏 보고 있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곤 나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5위?

음원 사이트인 뮤직넷의 실시간 차트.

그곳에서 다섯 번째 줄에 내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었던 것이다.

타이틀곡인 ‘마음대로 해’와 나란히.

우스운 건 그 아래에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는 거였다.

블루스톰.

그들의 순위는 11위.

나보다 6단계 아래에 랭크되어 있었다.

하, 뭔 놈의 순위가······.

무슨 엘리베이터야?

어떻게 갱신될 때마다 휙휙 바뀌냐고.

얼떨떨한 기분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고 말았다.

그때였다.

부르르르르.

핸드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고 팀장님이 액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곤 이내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그 덕분에 사무실 안에 있던 모두는 발신자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개 피디?

“어, 개 피디라면······.”

다소 놀란 내가 막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고 팀장님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는다.

그것도 스피커폰으로.

“예. HS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고현우입니다.”

- 아, 고 팀장! 나, 계진도일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한테 다 전화를 주시고······.”

- 하, 진짜 몰라서 묻나?

“제가 피디님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 큼큼. 이보게, 고 팀장! 지난번에 데려왔던 친구가 김도준 맞지? 이번에 광안리 썸머 페스티벌에 나왔던 그 친구 말이야.

“예. 맞습니다.”

- 하하하. 축하하네. 요즘 상승세라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 그래, 그래. 열심히 하면 결국 빛을 보게 되는 법이지.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무슨 일로······?”

- 아차, 내 정신 좀 보게. 다름이 아니라 그 친구 말이야, 우리 넘버 원 뮤직박스에 출연하면 어떨까 하고······.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고 팀장님이 입매를 활처럼 휘어 보였다.

그러곤 감정이라곤 손톱만큼도 묻어나지 않는 음성으로 물었다.

“피디님. 혹시 제가 드린 USB 기억나십니까?”

- 응? USB? 아, 그거······.

“그럼, 우리 애 노래, 들어는 보셨나요?”

- 아, 광안리에서 부른 노래는······.

“아뇨. 그거 말고요. 정식으로 음원 출시했던 거 말입니다. USB에 담아 드렸었는데.”

- 아니, 그건 아직······.

들어봤을 리가 없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날 고 팀장님이 건네준 USB는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했을걸?

당연히 들어보지 못했을 거다.

그 얘긴 곧 지금 광안리 썸머 페스티벌이 이슈화되고 있는 데다가, 점점 내 인기가 올라가는 와중에 레이크헬 쪽에서 핵폭탄급의 발표까지 하자 다급해져서 전화부터 해왔다는 말이고.

쯧, 그러게 진짜 왜 그러셨어요?

사람 앞일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건데······.

대충이나마 고 팀장님이 어떻게 할지 예상되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 팀장님이 고저 없는 음성으로 얘기했다.

“아, 지금 여기저기서 전화가 들어와서 오래 통화하긴 어렵겠네요. 나중에 전화드리겠······.”

- 이, 이보게! 고 팀장! 그러지 말고 좀 더 내 얘길······.

“죄송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 고 팀장님이 말했다.

“드디어 미끼를 물었네요.”

“그럼 몸값 올리는 일만 남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바짝 쪼이면 제대로 올릴 수 있겠는데요?”

아저씨와 고 팀장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르르르르.

다시금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이번에도 액정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똥 피디.

MBS 방송국의 변호섭 피디라고 했던가?

개 피디만큼이나 더럽게 거들먹거리던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전화했다는 건, 역시······.

“음, 낚싯바늘은 하나인데 고기가 여러 마리 몰리는군요.”

“그만큼 미끼가 먹음직스러우니까 그런 거지.”

아, 진짜! 당사자를 앞에 두고 미끼 운운하는 건 좀······.

기분이 나빠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솔직히 조금 고소하기도 하고······.

그런 내 마음에 고 팀장님께서 시원하게 깨소금을 팍팍 뿌리셨다.

“그럼 하는 수 없죠.”

그는 핸드폰을 뒤집더니, 그대로 배터리를 빼버렸다.

그걸로도 모자랐던 걸까.

“감자탕!”

“예?”

“뭐해? 전화 코드 뽑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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