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 왜 그러셨어요?(2)
엄청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대답하기 무섭게 긴장하고 있었던지 살짝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진다. 그러곤 곧바로 씩 하고 악마처럼 웃음을 흘리는 준영이 형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뒷거래를 하고 있는 동안, 강진수와 블루스톰 그리고 엠케이를 비롯한 가수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몇몇은 흥분한 얼굴이었지만, 대부분은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특히 블루스톰은 내 바로 뒤에서 공연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은근슬쩍 날 바라보며 가끔 한 번씩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진 가운데, 떠날 사람들은 떠나고 관객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다사다난했던 공연이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약속대로 준영이 형은 우리가 머물고 있는 펜션으로 초대되어 그곳에서 레이크헬의 멤버들과 술잔을 부딪칠 수 있었다.
***
레이크헬과 준영이 형이 돌아가며 술잔을 채우고 미친 듯이 술병을 거덜 내고 있는 동안, 난 잠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왜?
술이 모자랐으니까.
젠장! 내가 마시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술 주문을 해야 하는 거냐고.
그렇다고 레이크헬 멤버들한테 사오라고 할 수도 없거니와 이미 취할 대로 취해 몸도 못 가누는 준영이 형을 보낼 수도 없는 일. 결국, 숙소에 있을 마루 누나에게 부탁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누나 왜 전화 안 받아요? 지금 저쪽에 술이 떨어져서 난리······.”
말을 잇지 못했다.
거실 한가운데 두 사람이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무서운 기세로 일하고 있었으니까.
고 팀장님은 노트북에 연결해 놓은 수많은 핸드폰으로 SNS를 보내는 중이셨고, 마루 누나는 팬 카페 관리 중이었던 것이다.
“지금 뭐 하세요?”
두 사람 사이에 앉으며 물어보자, 고 팀장님이 무심한 어조로 대답하신다.
“이슈가 될 때 밀어붙여야지.”
그냥 그 말 한마디로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오늘 낮에 있었던 공연이 화제가 되고 있단 얘기. 그걸 또 그냥 놔두질 않고 어떻게 해서든 이슈화시키는 전략이란 건데······. 홍보팀장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루 누나가 팬 카페를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거고.
두 사람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일 텐데······.
살짝 감동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마루 누나가 킥킥거렸다.
뭔가 싶어서 보니, 게시물 하나를 보고 있다.
“뭔데 그렇게 웃어요?”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는데······.”
웃느라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마루 누나였다.
이게 바로 주니 오빠 클래스라는 제목의 게시글에는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직접 찍은 건 아닌 거 같았고, UCC 사이트에 올라온 걸 퍼다가 나른 거 같았다.
내가 궁금해하는 눈빛을 보이자 누나가 클릭해주며 얘기한다.
“방금 확인했는데, UCC 사이트에 올라온 원본은 현재 조회수가 10만을 넘겼더라. 댓글들도 대충 훑어봤는데, 우리나라 애들만 본 게 아니라 외국 애들도 보는 모양이야.”
음, 공연 끝난 지 네 시간이나 됐나? 그런데 벌써 10만을 넘겼다라······.
역시 레이크헬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동안 동영상이 플레이 되기 시작한다.
엄청난 함성 속에서 연주하고 있는 레이크헬과 그 한가운데서 미친 듯이 노래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원곡인 R&B 스타일로 부른 1절 부분이 아닌 락버전으로 부른 2절부터 찍혀 있다.
아마 레이크헬 때문에 찍은 거라 그런 모양인데······.
뭐가 이렇게 흐려?
멀리서 찍은 건가?
아니면 흔들린 건가?
하긴, 그 난리통에 동영상을 찍은 것만 해도 용하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을 보니까 다들 의심하고 있었다.
- 진짜 레이크헬 맞아?
- 글쎄.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워낙 흔들려서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울 듯.
- 연주 스타일이나 목소리는 맞는 거 같은데, 처음 들어보는 곡임. 누구 아는 사람?
- ‘마음대로 해’에요.
- 정말? 전혀 그렇게 안 들리는데?
- 그거야 그렇죠. 원곡은 R&B니까. 그걸 현장에서 즉석으로 변주해서 불렀다고 하네요. 방금 현장에 있었던 분이 말한 거니까, 확실할 거에요.
- 진짜? 완전 부러움.
옆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흘깃 보니, 마루 누나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고 있다. 아주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대충 알겠다. 그 현장에 있었던 분이 누구신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금 동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잔뜩 흔들리고 있는 영상이었지만, 당시 레이크헬과 함께 펼친 공연의 열기가 전해져 온다. 물론 현장에서 느끼는 것에 비하면 비교조차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온몸이 쭈뼛해져 올 정도의 그 무언가가 있었다.
다들 그걸 느낀 건가.
내 칭찬을 하는 거야 팬들이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레이크헬에 대해서도 감탄 일색이었다.
- 와, 나 레이크헬 처음 보는데 장난 아니네요.
- 그러게. 무슨 음악을 저렇게 잘함?
- ‘SOMETHING OR NOTHING’ 한번 들어보세요. 진짜 지립니다.
- 레이크헬 신곡 발표한다는 얘기 있던데······.
- 근데, 이거 축제에서 부른 거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럼 방송으로 볼 수 없나요?
- 예. 내일 저녁에 본방. 저녁 8시라고 하네요.
- 오올! 그럼 내일은 무조건 본방 사수해야겠네요.
정말 끝없이 이어지는 댓글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보다 보면 여기서 벗어나질 못할 거 같아서.
“누나, 술 좀 사러 가야 하는데, 전 미성년자라서······.”
“술? 부엌에 박스째로 있어. 그거 가져가.”
내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말하고 있는 마루 누나를 다시 한 차례 바라보았다.
두 눈을 번뜩이며 타자를 치고 있다.
저런 모습을 보면 가끔 헷갈린다.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는 거 아닐까?
일이라는 건 역시 고 팀장님처럼 저렇게 눈을 번뜩이며 미친 듯이 입가에 썩소를 짓고서······.
“하아!”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고 말았다.
***
다음날 점심 무렵 느지막이 일어난 건 레이크헬과 준영이 형이 밤새 술을 마신 탓만은 아니었다.
고 팀장님과 마루 누나가 거의 밤을 꼴딱 새우며 일을 한 까닭도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이라는 게 진짜 일인지는 더 이상 생각 않기로 하고.
아, 아저씨는 어젯밤 누굴 좀 만나야 한다며 먼저 올라가 버리셨다.
준영이 형도 소속사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를 듣곤 일어나자마자 먼저 가버렸고.
덕분에 우리만 남아서 점심 겸 저녁 식사를 대충 챙겨 먹고는 부산을 떠났다.
서울에 도착한 시점엔 이미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불빛 찬란한 도심으로 차를 몰아 회사에 도착.
모두 지친 몸으로 대충 짐들을 던져놓고 늘어져 있었다.
마루 누나가 타준 아이스 커피를 빨대로 쪽쪽 빨면서.
“역시 차로 움직이는 건 너무 피곤해.”
“한국의 고속도로는 진짜 심한 거 같아. 뭔 놈의 차가 그렇게 많아? 꼭 러시아워 같다니까.”
“그러게. 그래도 재밌었잖아?”
“그렇게 사람 많은 해변은 처음인 거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와도 좋겠어.”
예. 예. 그러시겠죠.
그러니까, 해변이 그렇게 좋으면 애당초 하와이로 갈 것이지 왜 여기로 와서는······.
“근데, 이 커피 진짜 정체가 뭐냐? 뭐가 이렇게 맛있냐고?”
“아무래도 나 중독된 거 같아. 하아, 어쩌지? 나중에 미국으로 돌아가도 자꾸 생각날 거 같은데?”
“어쩌긴 뭘 어째? 도준이 부쳐주면 되지. DHL 몰라?”
“크크크. 그럼 되겠다.”
날 빤히 바라보며 레이크헬 멤버들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곧 본방 시작돼요!”
마루 누나의 목소리에 이끌려 시선을 던졌다.
언제 컴퓨터를 켰는지, 화면엔 방송이 띄워져 있었다.
정확히는 방송 예고.
광안리 썸머 페스티벌이라는 커다란 자막과 함께 준영이 형과 블루스톰, 엠케이를 비롯해 나까지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이 짧게 짧게 스쳐 간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이르러 레이크헬의 모습이 떠오르며 한참을 보여주다가 점차 옅어지며 사라진다.
협찬사들이 주르륵 나오고, 이내 광고.
와, 뭔 놈의 광고가······.
5분은 하는 거 같다.
그래도 뭐, 이것만 보고 나면 곧바로 볼 수 있을 테지.
나와 레이크헬은 공연 처음에 나오니까.
나머지야 굳이 볼 까닭이······.
“······!”
화려한 음악과 함께 시작된 방송.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강진수가 무대 위에 등장해 축제를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까진 그대로인데, 그다음에는······.
블루스톰의 공연이 첫 무대를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그들이 오프닝인 것처럼.
악마의 편집이네 뭐네 하더니만 방송 참······.
슬슬 불안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니나 다를까.
준영이 형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도 나와 레이크헬의 공연은 보여주질 않고 있었다.
“왠지 지치는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루 누나가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 나오겠지.”
나 역시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틀렸다.
- 잠시 후 찾아뵙겠습니다.
자막 한 줄이 얄밉게 떠오르더니, 이내 광고로 넘어갔다.
그리고 광고가······.
체감상으론 한 10분은 하는 거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그 정도 했나?
음, 근데 저래도 되나?
광고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데, 사실 저거 다 레이크헬 믿고 하는 짓이잖아?
게다가 오늘 방송 자체가 어째 레이크헬이 주축이란 식으로 편집되어 있고.
나중에 브라이언이 이 사실을 알면 진짜 가만 안 있을 건데.
특히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만큼 엄청난 손해배상을 요구해올지도 모른다.
에이, 나야 알 바 아니지.
알아서들 하겠지, 뭐.
아무튼, 지겹도록 광고만 보다가 막 무대 위로 내가 걸어 나오는 장면이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딸랑.
문이 열렸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씬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았다가 나는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당황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헉!”
레이크헬 중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디알로가 그 커다란 덩치로 벌떡 일어나며 어찌할 줄 모른다. 그 모습이 꼭 딱따구리에 나오는 곰 같아서 속으로 헛웃음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입을 떡 벌리는 순간이었다.
“하이, 에브리원!”
브라이언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레이크헬의 멤버들.
베릴은 그나마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나머진 정말이지 즉각적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기야 말도 안 하고 달랑 여권만 챙겨서 도망온 처지니까.
그렇다곤 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브라이언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유진과 제롬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그에 반해 콜린은 이미 포기한 건지, 그냥 웃고 있었다.
마치 될 대로 되란 심정이랄까? 그것도 아니라면 배 째란 표정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다섯 명의 멤버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브라이언이 다가왔다.
그러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웃었다.
“뭐야? 이 친구들? 내가 안 반가운 거야?”
어라? 웃고 있네?
뜻밖의 상황에 나만 당황한 건 아닌 모양이다.
레이크헬 멤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을 때였다.
브라이언의 뒤에서 아저씨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
응? 왜 두 사람이 같이 나타난 거지?
혹시 올라오다가 만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왔다.
띠링!
두 사람, 브라이언과 아저씨에게서 나는 소리 같았다.
그걸 입증이라도 하려는 지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를 확인한 건지, 아저씨께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씨익 웃어 보였고, 브라이언 역시 핸드폰을 보며 히죽 웃고 있다.
그러면서 한마디 툭 내뱉는다.
“입금됐군.”
아저씨가 받아친다.
“한국 방송국 괜찮다니까?”
“일 하난 칼같이 하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만족한 듯 웃고 있다.
뭐지?
이 기묘한 광경은?
까닭 모르게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오싹해지는 기분에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브라이언이 콜린을 비롯한 레이크헬 멤버들에게 말했다.
“수고들 했어. 일들 하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