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39화 (39/260)

# 39

#39. 왜 그러셨어요?(1)

축제?

성공했다.

어떤 면에서는.

지친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해방구로서, 지루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이벤트로서, 축제라는 단어를 정의한다면 말이다.

그것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사람들을 한순간에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니까.

그럼 공연은?

망했다.

완전히는 아니고 한 반쯤?

그나마도 노련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준영이 형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공연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레이크헬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중간에 MR이 그치면서 웅성거리던 관객들이었는데, 갑자기 레이크헬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 “레이크헬 아냐?”라고 소리쳤고, 그건 의아한 눈빛으로 무대를 주시하던 이들에게 기름을 부은 거나 다름없었다.

작은 불씨가 그대로 거대한 불길이 되어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레이크헤에에에에에에에엘!”

“제로오오오오옴! 아이 러브으으으으으으!”

“베릴! 베릴! 베릴!”

“콜리이이이이이이인!”

난리법석이었다.

하지만, 레이크헬은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하다고 여겼는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연주를 계속해 나갔고, 나 역시도 마이크를 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때의 난 이미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모른다.

하긴, 레이크헬이 연주를 시작한 상황에서 이곳 광안리 해변에 제정신인 사람이 몇이나 남아 있었을까.

그만큼 레이크헬의 이름값은 남달랐다.

실력이야 말하는 것 자체가 입만 아픈 일이었고.

관객들만 신 난거지.

아마 계라도 탄 심정이지 않을까?

문제는 노래가 끝나고 나서였다.

“훅훅! 감사···합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숙여 보이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곧이어 관객들이 외쳐대기 시작했다.

“앵콜! 앵콜! 앵콜!”

만 명쯤 되는 관객들이 한마음이 되어 소리치는 걸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나로선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쉽게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런 마당에 지금의 상황을 통제할 능력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는 수 없이 콜린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니, 따지고 들었다.

눈빛으로 ‘그러게 말했지? 사고 치지 말라고!’ 강하게 어필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헬로!”

툭 하고 내뱉은 한마디에 관객들이 자지러진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곧이어 일제히 숨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리는 것까지도.

“우리 알죠? 맞습니다. 레이크헬입니다.”

다시 한 번 터지는 함성.

만족한 표정으로 그 함성이 가라앉길 기다리던 콜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여긴 정말 멋진 거 같군요. 진짜 멋진 곳이에요.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볕도, 계속해서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도,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새하얀 백사장도. 아주 마음에 들어요. 무엇보다 여기까지 전해지는 여러분의 열기가 가장 마음에 드네요.”

관객들이 난리다.

여기저기서 꺅꺅거리며 야단법석이었다.

후우, 공연을 많이 해봐서 그런가. 아주 가지고 노는구나.

근데, 영어로 저렇게 빨리 얘기하는데 어떻게 알아듣고 좋아들 하는 걸까?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는 사이에도 콜린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응? 우리가 왜 여기 있냐고요? 하하하! 맞아요. 우리가 또 축제 전문 밴드죠.”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고 있다.

그 웃음소리가 멎기 전에 콜린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데, 어쩌죠? 저흰 이쯤에서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여기에 공연하러 온 게 아니라 이 친구의 백 밴드로 온 거라서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무슨 주최 측에 얘기도 안 하고······응? 그러고 보니.

기가 막혀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다가 떠올렸다.

무대에 오르기 전 아저씨가 준영이 형이랑 무언가 얘기를 나누던 장면을.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콜린이 소리쳤다.

“자, 우린 이쯤에서 퇴장하고, 여러분께선 계속해서 이 멋진 축제를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땡큐를 외치며 손을 외치자, 관객들이 다시 한차례 함성을 내질렀다.

여전히 곳곳에서 가지 말라는 아쉬운 외침과 앵콜 소리가 들려왔지만, 콜린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그는 내 어깨를 한쪽 팔로 두른 채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무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레이크헬의 멤버들 역시 웃으면서 퇴장했고.

나?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콜린을 따라 손까지 흔들면서.

물론 그처럼 여유만만인 상태는 아니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동안에도 관객들이 무척 아쉬운지 계속해서 고함을 내지르고, 레이크헬을 부르짖고 있었으니까.

그래, 여기까진 그래도 괜찮았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나 다음으로 올라가기로 되어 있던 블루스톰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차마 계단을 밟지 못하고 있는 게 보였던 것이다.

스텝들 역시 마찬가지.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무대에서 내려온 우리만 바라볼 뿐이었다.

강진수라고 다를 게 있을까.

그 역시 멍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MC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행사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무대 위로 올라갔고, 여전히 광분상태인 관객들을 상대로 더듬거리며 얘기를 시작했다.

“아, 그···그러니까······. 예······좋은 무대···였습니다. 그럼, 이제 다음은······.”

도저히 관객들이 흥분을 가라앉힐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차마 블루스톰을 불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누군가 앵콜을 외쳤고, 그러자 다른 관객들까지 합세해 일제히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꼭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앵콜! 앵콜! 앵콜!”

이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섭다.

한번 뭉치면 돌덩이보다 더 단단해지는 사람들이란 거지.

아주 그냥 대동단결이다.

모두가 단합해서 앵콜을 외치고 있으니, 강진수의 얼굴은 꺼멓게 죽고 말았다.

그 사이, 무대 뒤편에선 블루스톰이 파리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고.

그때, 준영이 형이 내게 다가와 어처구니없다는 듯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고, 또 어이없다는 얼굴로 날 보고, 또 한숨을 쉬고······.

몇 번인가를 반복하던 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와, 너 진짜······.”

하지만,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아, 이런 상황을 내가 만들어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해요, 형.”

허리를 거의 직각으로 숙여 사과하자, 준영이 형이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날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픽 하고 웃고 말았다.

“자식!”

툭.

내 어깨를 한차례 두들기곤, 갑자기 어깨동무를 해왔다.

그러곤 속닥였다.

“뭘 또 그렇게 죽상이야?”

“······형.”

“됐어, 아무 말 하지 마. 갑자기 혁수 형이 백 밴드를 세우겠다고 했을 때 그걸 승낙한 것도 나였고. 갑작스러운 출연이라지만, 주최 측에서도 이미 오케이 한 마당이니 문제 될 것도 없겠지. 그렇긴 하지만······. 설마 그 백 밴드가 저런 거물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하아, 정말 너······!”

또다시 말을 잇지 못하며 계속해서 혀를 내두르는 형 때문에 민망해져서 시선을 돌려야 했던 나는 블루스톰을 발견하곤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라라도 잃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상철 실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블루스톰 멤버들은 무대에 오르지도 못한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하긴, 나라도 그럴 테다.

레이크헬이 관객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이다 못해 판을 아예 뒤집어놨는데, 저 한가운데로 뛰어든다고?

후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린다.

“걱정하지 마.”

응?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건지, 준영이 형이 말했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게다가 여기가 무슨 오디션장이냐? 막말로 콘서트도 아니잖아? 그냥 행사라고, 행사. 축제, 몰라?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우리도 즐기면 그만이야. 곧 저들도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그냥 지켜보기나 해.”

웃으면서 말하곤 있지만, 은연중에 풍겨오는 카리스마 때문인가?

나도 모르게 조금이나마 걱정이 가시는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경험은 무시 못 하는 건가?

하기야 구력이 얼마인데······.

데뷔 15년 차답게 준영이 형이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상황은 그렇게 나쁘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블루스톰이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관객들이 함성을 내지른 것이다.

무대 뒤에 있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들도 뜻밖의 상황에 얼떨떨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까진 좋았는데, 이미 얼어붙어 버린 블루스톰 멤버들의 마음을 녹이기엔 그 열기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두려웠던 걸까?

연주도, 노래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신바람이 나서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따름이었다.

축제는 축제일뿐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끝내고 내려오는 블루스톰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도중에 큰 사고 내지 않고 끝까지 마치고 내려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굳은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는 한상철 실장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말하는 걸로 그쳤을 뿐이지만.

그 뒤를 이어 엠케이를 비롯해 몇 명의 가수들이 올라갔고, 그들도 블루스톰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그래도 흥분했던 관객들이 갈수록 진정되는지 조금씩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었다. 아니, 점점 축제다워지는 느낌이었다.

다들 이 순간을 기뻐하며 즐기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준영이 형 차례가 되었을 땐 이미 축제는 한껏 달아오른 상태. 그 상태에서 준영이 형은 능수능란하게 관객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정말 본인이 축제를 즐기고 있기라도 하는 듯 관객들과 호흡하며 공연을 이어나갔다.

웃긴 건 공연 도중 몇 번이나 음정 박자가 살짝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준영이 형은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무시하고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는 거다.

아니, 펄펄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이게 바로 공연이 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말한 이유다.

***

“어떻게 된 일이에요?”

“뭐가 말이냐?”

아저씬 대수롭지 않게 되묻고 계셨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저만치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는 레이크헬을 가리켰다.

“준영이가 말 안 해줘?”

“주최 측과 얘기가 다 끝난 상태였다고는 하던데······.”

“알면서 뭘 물어? 아, 혹시 처음부터 같이 공연하지 못한 게 아쉬워서 그래? 흠, 그건 어쩔 수 없었다. KBC 쪽의 승낙도 받지 않고서 저들을 무대에 올릴 순 없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잖아? 곡이 끝나기 전에 허가해줘서. 그리고 나쁘지 않던데? 전반부 MR, 후반부 레이크헬. 나름 반전이잖아?”

음, 왜지?

오늘따라 아저씨가 되게 얄밉게 느껴지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아저씨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여어! 오늘 수고 많았다.”

공연을 마치고 내려온 준영이 형이 다가왔다.

“넌 어째 늙지도 않냐?”

“하이고, 형. 뭔 소리입니까? 저 요즘 체력 달려서 1시간짜리 공연에도 헐떡거린다고요. 형이야말로 완전 은퇴했던 거 아니에요?”

“그러려고 했지.”

“참네. 그런 사람이 이런 괴물을 들고 나와요?”

아저씨와 꽤 친밀한 관계인지 농담을 섞어가며 얘기를 나누던 준영이 형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한쪽 팔로 내 목을 졸라왔다.

“오늘 형이 네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지는 알렷다?”

“그, 그건······.”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공연······. 아마도 꽤 이슈가 될 거다. 쯧. 그게 아니더라도 너라면 언젠가는 떴을 테지만. 아무튼, 이 형이 널 위해 이만큼이나 애를 썼는데 설마 이대로 입 닦을 생각은 아니겠지?”

“······?”

무슨 뜻이냐는 듯 바라보자, 서슴없이 레이크헬을 가리키는 준영이 형.

소개해달라는 얘기인가?

아니 그 정도라면 그냥 자기가 직접 가서 얘기를 나누어도 되겠지.

흠······.

어딘지 모르게 음흉하게 웃고 있는 준영이 형을 보곤 나는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형······. 보기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네.

소탐대실, 아니지 머리가 안 돌아가서 그런가 머릿속이 꼬인다. 아무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달까. 한마디로 지금 준영이 형은 ‘축제’ 따윈 안중에도 없는 눈치다.

뭐랄까, 즐겼으면 됐지···랄까?

오로지 형의 시선은 저만치에 서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엄청난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레이크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함부로 말할 계제도 아닌지라 좀처럼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준영이 형이 은근하게 말해왔다.

반쯤은 협박조였고, 반쯤은 농담조였다.

“난 네가 그렇게 배은망덕한 녀석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

“너라면, 자리 한번 만드는 거 어렵지 않잖아? 그걸로 이번 일은 퉁? 어때?”

에라 모르겠다.

미안, 콜린.

이 형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알아둬서 나쁠 건 없을 거야.

그리고······위 아 더 월드잖아?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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