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37화 (37/260)

# 37

#37. 클래스가 다른 공연(2)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여기서 한마디만 잘못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아니, 그냥 무슨 말을 하든 따라가겠다고 엉겨붙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날 바라보는 눈빛이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했다시피 공연은 공연인데, 내가 주축이 되는 게 아닌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섯 사람은 뭔가 기쁜 표정을 해 보이더니 돌아서고 있었다.

그러더니 연습실로 들어가 악기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러곤 방으로 가선 짐까지 꾸리고 있다.

딱 봐도 어딜 가려는지 느낌이 왔다.

“저, 지금 갈 거 아니라니까? 게다가 거기 가서도 오프닝으로 한 곡만 부르고 올 거야.”

“그래. 들었어.”

콜린이 알았다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나머진 열심히 짐을 꾸리고 있다.

내 얘긴 안중에도 없다.

뿐만 아니라 다들 더없이 밝은 얼굴로 속닥거리며 기대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항상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던, 그 침착한 베릴 조차 어딘지 모르게 들뜬 모습이었다.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놔둬라.”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음성에 돌아보니, 아저씨셨다.

“아니, 갑자기 왜 저런대요? 공연을 가는 것도 나고, 그나마도 지금 가는 것도 아닌데······.”

픽 하고 웃으신 아저씨께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셨다.

“그만큼 답답했던 거겠지.”

흠, 하긴 많이 참긴 했지.

일주일도 넘게 사무실에 처박혀 있었으니까.

“그러게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할 때 할 것이지.”

“노노. 지금 서울을 말한 거라면, 잘못 짚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을 뿐인데, 콜린이 날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거참. 한국어로 한마디 했을 뿐인데 잘도 알아듣네.

“도시는 지겨워.”

콜린의 얘기에 다들 한마디씩 한다.

“그러니까! 답답해!”

“공기도 나쁘고.”

“차 소리도 지긋지긋해.”

아, 그러니까 애당초 여기로 안 왔으면 좋잖아?

이왕 브라이언 몰래 떠난 거면 어디 하와이 같은 휴양지로나 갈 것이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그러지 말고, 너도 같이 가는 게 어때?”

아저씨께서 한술 더 떠서 날 부추기고 있다.

아니, 그전에 원래 난 가야 한다고요!

문제는 그게 지금이 아니라는 거지만.

“아, 진짜. 알고 계시잖아요? 축제까진 나흘이나 남았다니까 그러네요.”

“나흘이라······. 휴가론 딱 좋은 거 같은데?”

스윽 돌아보는 아저씨의 눈길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가 흠칫하고 말았다.

마루 누나가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곤 눈을 빛내고 있다.

고 팀장님은 별 동요 없이 컴퓨터로 부산 지역을 검색······.

하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미 도도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물줄기를 무슨 수로 바꾸겠냐고.

***

그때부턴 일사천리였다.

짐 꾸리고 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일 때문에 그런다는 설명에 어머니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거기 가면 다들 알아볼 텐데요?”

레이크헬이 어떻게 공항을 통과해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른다.

그땐 옆에 없었으니까.

사실 이 부분이 아직도 의문이긴 한데, 아직까지 기자들이 몰려들지 않고 있는 게 이상할 따름.

하지만, 그것도 그들이 광안리 해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끝이다.

벌떼처럼 몰려들게 뻔하다.

한국을 넘어 세계가 다 들썩거릴 테지.

하지만, 아저씨가 대답하기도 전에 콜린을 비롯한 레이크헬의 반응은······.

“괜찮아. 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 마.”

“오늘은 오늘일 만 생각하자구.”

“짐 다 쌌는데, 언제 떠나는 거야?”

“이옙! 바다다!”

자유분방함의 끝을 보여주는, 세계적인 밴드의 모습이었다.

본인들이 괜찮다고 하는데 뭐라 할까.

그래. 가자, 가.

SUV 한 대와 승용차 한 대에 나눠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땅거미가 어슴푸레 깔린 어두운 밤바다 앞에 지어진 펜션.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었음에도 아저씨께선 어떻게 하셨는지 두 동이나 되는 펜션을 구해놓으셨다.

한 동은 레이크헬이 쓰고, 또 한 동은 회사식구들이 쓰기로 했다.

“오옷! 여기가 부산?”

“공기가 짭짜롬한데?”

“근데 여자들은?”

“캠프파이어 안 해?”

“축제는?”

레이크헬의 숙소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뭘 기대하고 왔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 도준! 근데 우리 저녁 식사는 언제 해?”

“여기 레스토랑은 있는 거야?”

“난 카레만 빼곤 다 잘 먹어.”

“캐비어는 싫어.”

“룸서비스 없어?”

한번 얘기하기 시작하면 다섯 명이 한마디씩 하다 보니 솔직히 좀 정신이 없다.

그만큼 격의 없이 날 대해주는 건가?

그럼 나도 그렇게 해주는 게 예의겠지.

“곧 올 거야.”

“응? 뭐가?”

콜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때마침 벨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주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양손에 비닐봉지를 가득 들고서.

“신선한 회가 왔어요!”

마루 누나가 해맑게 웃으며 소리쳤지만, 레이크헬 중 누구 하나 따라 웃지 않았다.

대신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회?”

그게 뭔데? 하는 얼굴들이었다.

***

“이거 뭐야? 맛있는데?”

“스시?”

“밥이 없잖아!”

“그럼 뭐지?”

“그러니까, 회라니까 그러네.”

식사하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며 광어를 비롯한 횟감만 무려 예닐곱 마리를 해치워버린 레이크헬이었다.

처음엔 고추냉이는 말할 것도 없고 고추장의 매운맛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그저 간장만 조금씩 찍어 먹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곧 술 몇 잔이 들어가자 점차 겁을 상실하고 고추장과 고추냉이를 곁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레이크헬 다섯 명, 나를 제외한 회사식구 세 명. 그들 여덟 명이 순식간에 마셔버린 빈 소주병이 거실에 한가득이다.

어느 순간부터 마루 누나와 함께 누가 더 술이 세냐는 유치한 대결을 벌이던 디알로는 덩치와 맞지 않게 셋 중에 가장 먼저 기브업. 그러곤 먼저 쓰러져 소파 위에 코를 골고 자고 있다.

유진은 소주 일곱 병째까지는 버텼지만, 아슬아슬한 차이로 마루 누나보다 먼저 쓰러져버렸다.

그다음에 누나 역시 나가떨어졌지만.

와, 술병 쌓이는 거 봐라.

사람이 술을 먹는 건지, 술이 사람을 먹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게 세 명이 먼저 곯아떨어지고 나니, 남은 건 네 사람.

아저씨와 고 팀장님은 뭔가 할 얘기가 있다며 마루 누나를 들쳐 업고 먼저 숙소로 돌아가셨고, 난 콜린과 하던 얘기가 있어서 여기 남았다.

“원래는 남태평양으로 갈 생각이었거든.”

역시 그런 거였나?

“근데, 자꾸만 애들이 널 봐야겠다고 아우성이잖아. 뭐, 그래서 보다시피······.”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인 콜린이 바다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씨익 웃어 보였다.

발코니 바깥으로 보이는 해변은 그야말로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만 들려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끔 수평선 부근에서 불빛이 보이는 걸 보면 배들이 오가긴 하는 모양이다.

“나도 인제 그만 가볼게.”

약간 끈적이는 듯 느껴지는 밤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콜린의 얘기에 대충 맞장구쳐주다가 돌아섰을 때였다.

응?

베릴이 기타 하나를 가슴에 품고서 바닥에 앉아 현을 뜯기 시작한다.

앞에는 빈 오선지가 놓여 있었다.

뭔가 악상이라도 떠오른 모양이다.

그 모습에 픽 하고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내일 보자고.

말없이 눈빛만으로 인사를 하곤 펜션을 나왔다.

***

다음날 해가 떠오를 때쯤 찾아가 보니, 정말 가관이다.

서양인이라 그런가 몸집들도 여간 큰 게 아니다.

그 큰 덩치들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소파에 하나, 바닥에 하나, 아니 왜 유진은 주방까지 굴러간 거야?

식탁 다리를 껴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유진을 보다가 혀를 차며 방문을 열자,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침대 위에 엎어져 잠든 콜린이 보였다.

그때였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베릴이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지금 막 샤워를 마쳤는지,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칼에 새하얀 가운까지 걸치고 있다.

그런 채로 반갑다는 듯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린다.

나 역시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곤, 레이크헬의 멤버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먼저였다.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크기의 선글라스와 모자 등 액세서리들은 필수.

당연히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유진은 네버를 연방 외쳐대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지만, SNS와 브라이언이라는 두 개의 단어에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철저하게 대비해서 그런가, 다행히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누군들 짐작이나 할까.

세계적 락밴드인 레이크헬이 이 시기에 여기 있을 거라고.

좀처럼 누리지 못하는 자유였던가.

레이크헬 멤버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다.

해변을 중심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그들에게 팥빙수를 안겨주자, 한입씩 떠먹어보곤 맛있다며 난리를 친다.

“저긴가 보지?”

콜린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방향에 큼지막한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보인다.

“아마 그럴걸?”

“재미있어 보이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꿈도 꾸지 마.”

내려오기 전 몇 번이나 다짐받았던 바였다.

혹여 레이크헬이 공연 중에 무대로 난입하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눈에 훤하니까.

아마 실시간으로 그 소식이 전 세계에 퍼져버리고 말 거다.

어쩌면 누군가 동영상을 찍어 UCC 사이트에 올려버릴는지도 모르고.

만일에 하나라도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그만큼 레이크헬이라는 밴드는 그냥저냥 아무 무대에나 오를 수 있는 그룹이 아니란 거지.

다른 건 둘째치고, 브라이언이 가만 안 있을 거다.

어쩌면 비즈니스 어쩌고 하면서 강하게 항의해올지도 모른다.

하아, 상상만 해도 골치가 아파져 온다.

나는 다시 한 번 강력하게 경고했다.

“알지?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그럼. 알고말고. 이래 봬도 친구를 소중히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그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별문제 없겠지.

그렇게 해변에 늘어서 있는 파라솔 아래, 썬베드에 누워서 쭈쭈바를 쭉쭉 빨아댔다.

다섯 명의 덩치 좋은 남자들과 함께.

***

“형!”

“여어, 왔냐?”

먼저 와 있던 준영이 형이 나를 보곤 반색을 한다.

그러곤 내 뒤에 서 있던 두 사람, 마루 누나와 고 팀장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 사이 나는 형이 소개해준 MC 강진수와 악수를 했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요새 인기를 얻기 시작한 MC였다.

저만치서 아저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게 보였지만, 신경 쓰진 않았다.

가끔 영어가 들려오는 걸 보면 틀림없이 비즈니스 관련 전화일 게 뻔하다.

“리허설은 간단히 할 거야. 그냥 동선만 그린다고 생각하면 돼. 오케이?”

“알겠어요.”

“공연 내용이 조금 바뀌긴 했는데, 상관없지?”

“그래도 제가 맨 처음 아니에요?”

“응. 그건 안 바뀌었어. 그냥 한두 팀이 더 추가된 거뿐이니까, 넌 신경 안 써도 될 거야.”

그럼 문제 될 건 없지.

“자, 순서는 여기······팸플릿대로 나가게 될 거니까, 한번 살펴봐라. 그리고 진수야.”

준영이 형이 강진수와 얘기를 하는 사이에 팸플릿을 살펴보았다.

“······알겠지? 첫 순서는 여기 도준이고, 그다음에 곧바로 블루스톰인가? 걔들이 나오니까······.”

흐음, 여기서 그들을 보게 되네.

나는 지난번 KBC에서 만났던 4인조 아이돌 그룹을 떠올리며 픽 하고 웃고 말았다.

하긴,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를 했으니 이런저런 곳에서 만나게 되는 건 필연인 건가?

***

리허설을 진행하는 동안, 조금 안타까운 일이 있기는 했다.

연주자들이 내 곡을 몇 차롄가 연주해보곤 고개를 내저은 것이다.

“제대로 치려면 하루 이틀 가지곤 어렵겠네요.”

“어떻게 좀 안되나?”

이번 공연의 주축이 준영이 형인지라, 연주는 형이 꾸리고 있는 밴드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뭐, 하라면 하겠지만······.”

말끝을 흐리고 있지만, 난색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쩔래?”

결국, 준영이 형이 내게 묻고 있었다.

“그냥 MR로 가죠. 첫 곡이니까,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강진수가 끼어들었다. 나름 합당한 결론인지라 모두의 의견이 그렇게 모여지고 있었을 때였다.

“잠시만.”

아저씨가 다가와 준영이 형을 저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한참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그 사이 준영이 형의 표정이 몇 차롄가 급격히 변하는 게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야 MR이라도 상관없으니까.

그저 노래만 부를 수 있다면······.

그렇게 간단히 리허설을 하는 동안, 블루스톰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내 다음 순서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무대 뒤쪽에서 아저씨와 고 팀장님이 한상철 이사와 가볍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블루스톰에서 가장 키가 큰 남자 한 명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묻는다.

“그쪽도 이번에 데뷔했죠?”

“아, 예.”

“지난번에 방송국에서 본 거 같은데······.”

“예. 저도 기억나네요.”

“하하하. 맞구나. 근데, 거긴 어때요? 우린 요즘 행사 때문에 피곤해 죽을 거 같아요. 와, 무슨 스케줄을······. 진짜 방방곡곡 안 가는 곳이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완전 강행군이라니까!”

“이러다간 무대 위에서 죽을지도 모르겠어.”

언제 왔는지 네 명이 전부 다가와 있다.

그러곤 날 둘러싼 채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나보다 서너 살쯤 나이들이 많은 거 같은데, 뜻밖에 성격들이 좋다.

무엇보다도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웃고 떠드는 게 보기 좋았다.

그때였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갑작스레 들려온 호통소리에 네 명 모두 움찔한다.

그러더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후다닥 뛰어가고 있었다.

한상철 실장이라고 했었나?

장난 아니네.

뭐 그리 큰 잘못을 했다고 저렇게까지······.

“내가 뭐라 그랬어? 니들 아무하고나 어울리면 안 된다고 했지?”

날 향해 한차례 시선을 던지는 한상철 실장. 그 눈빛이 꼭 길가에 돌멩이를 보는 듯하다.

뭐랄까. 살짝 깔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뭐, 나로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때였다.

“자자, 이제 시작할 거니까 준비들 하세요!”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무대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 와아! 오늘 진짜 많이들 왔네요! 반갑습니다! 광안리 썸머 페스티벌의 진행을 맡게 된 강진수입니다!

함성이 들려오며 공기가 떨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몸 안의 피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채로 강진수가 관객들을 상대로 여유로우면서도 화려한 입담을 뽐내는 소리를 들었다.

“긴장했냐?”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준영이 형이 내 어깨를 주물러준다.

그러곤 씩 웃으며 얘기했다.

“그냥 하던 대로만 해. 그럼 돼. 오케이?”

“예. 형.”

형도 공연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을 텐데, 나까지 챙겨주다니.

고마움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 부산 KBC 라디오와 함께 하는 광안리 썸머 페스티벌! 녹화방송은 방송국 홈페이지와 라디오 앱 마이-R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할까요? 모시겠습니다! 오늘의 축제를 뜨겁게 달궈줄 분입니다. 김도준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해변이 떠나갈듯한 기세로 터져 나오는 함성에 이끌리듯 무대를 향해 계단을 밟았다.

“까아아아아아아악! 오빠아아아아아아!”

“노준영! 노준영! 노준영!”

“블루스토오오오오오오옴!”

“엠케이! 엠케이! 와아아아아아아!”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들려오는 팬들의 연호.

언젠가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도 있을까?

갑작스레 든 생각에 픽 하고 웃으며 무대에 발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많다.

해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의자는 이미 꽉 차 있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느낌만으론 만 명은 족히 넘을 거 같다.

군데군데 플래카드가 보이는 가운데, 행사요원들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인원통제에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서 무대로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슬쩍 바라보니 무대 위에 설치된 악기 앞에는 아무도 없다.

드럼도, 키보드도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연주자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연주는 MR로 처리하기로 했으니까.

함성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느끼며 막 마이크 앞에 이르렀다.

그러곤 곧이어 들려올 연주소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김도준? 그게 누구야?”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아이씨. 누구면 어때? 어차피 우리 쟤 보러 온 것도 아니잖아?”

무대에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했느냐 하면 물론 그건 아니다.

저들의 저런 반응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일은 하나뿐.

가볍게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그때, MR이 흘러나왔다.

내가 직접 연주했던 곡이 흘러나오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점차 잦아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전주가 끝나는 시점에 입술을 달싹였다.

-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거니.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던 관객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모이고 있다.

그들의 입이 점차 벌어지는 걸 보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해변은 오로지 내 목소리로만 가득하다.

관객석도, 무대 위도, 무대 뒤쪽의 임시 대기실도.

심지어 해안선을 따라 해변에 펼쳐져 있는 파라솔들 아래. 누워 있던 이들도 하나둘씩 일어나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노래했다.

그리고 마침내 1절이 끝났다.

-내일은 오늘과는 달라.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앰프에서 들려오는 MR만이 간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응?

갑자기 꺼져버린 간주.

그 탓에 무대 위는 말할 것도 없고, 관객석을 비롯해 광안리 해수욕장이 갑작스러운 정적에 휩싸였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다 들릴 정도다.

뭐지?

방송사고인가?

그 정적을 뚫고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자박자박자박······.

무대 위를 울리는 발소리.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기타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이이잉.

베릴의 화려한 연주를 신호로 드럼이 난입한다.

투그투그투그투그투그······.

이어 유진의 키보드와 제롬의 베이스.

따라라라라라······따라라란······따라라라······.

둥둥둥······둥둥 둥둥!

바로 옆에서 기척이 느껴져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언제 왔는지 콜린이 웃고 있었다.

그가 마이크를 든 채 눈짓한다.

노래하지 않고 뭐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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