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 한 번만 들으면(2)
방송이 끝나고 난 뒤, 피디님과 스텝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려던 참이었다.
“어이, 김도준!”
겨우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 익숙해져 버린 말투.
자신감이 넘치다 못 해서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거만하진 않은 목소리다.
돌아보니 예상대로 노준영이었다.
“아, 선배님.”
“선배는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왜 다들 나만 보면 형이라고 부르라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누나라고 부르라든가.
“어떻게 그래요. 선배님하고 저하고 나이 차가 얼만데······.”
“뭐야? 그럼 내가 늙었다는 거야?”
“그런 얘기가 아니라······.”
“됐어. 조크야, 조크.”
준영이 형은 내 어깨를 감싸듯 어깨동무를 하곤 한쪽으로 이끌었다.
“밥 안 먹었지?”
“저녁이라면 먹고 왔는데요?”
“그래도 형이 사주면 먹을 거잖아.”
“······먹어야죠.”
복도를 지나, 건물에서 나온 뒤 준영이 형이 담뱃갑을 꺼내 들었다.
“요 앞에 끝내주는 맛집이 있거든. 아, 담배 한 대 필래?”
“저 담배 안 피는데요?”
“자식이 내숭은.”
담배를 한 개비 꼬나물곤, 불을 붙이며 피식거렸다.
“줄 때 펴. 이따가 화장실 같은 데서 몰래 피지 말고.”
“진짜 안 펴요.”
“진짜?”
“예.”
“응? 요즘 애들, 반은 피지 않나? 게다가 너 학교 다닐 때 좀 놀았던 거 아냐?”
“노래하기 전까진 공부만 했는데요?”
가끔 노래방 간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상하네. 노래만 들어선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데.”
“예? 그게 무슨······.”
“아, 그런 게 있어.”
준영 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목 어귀로 들어설 때였다.
“그래서 공부는 좀 했냐?”
느닷없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조금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 노래고 나발이고, 아무리 이 바닥이라도 너무 무식하면 곤란하거든. 다 왔다. 여기야. 어때? 분위기 괜찮지?”
솔직히 좀 의외였다.
노준영이라는 이름이 요즘 애들한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한때는 최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다. 그것도 실력파로 인정받으며 한때 대한민국을 진동시키던. 만일 그때 우리나라가 중국과 교류하고 있었더라면 한류스타 1호는 틀림없이 그가 되었을 터였다.
그런 사람이 맛집이라고 데려온 곳은 허름한 해장국집이었다.
“이모, 여기 해장국 둘에 소주 한 병이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준영이 형과 뜻밖에도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고 헤어진 뒤,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아직 구하지 못한 로드매니저 대신 운전대를 잡은 고 팀장님께서 물으셨다.
“아까 보니까, 노준영이랑 함께 오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었냐? 혹시 뭐라고 하든?”
“아뇨. 같이 밥 먹었어요. 아, 팀장님은 식사하셨어요?”
“아까 너랑 먹고 출발했었잖아. 근데, 노준영이 밥 사줬다고?”
“예. 방송 끝나고 나오는데······.”
대충 설명해주자, 고 팀장님께서 고개를 갸웃하신다.
그러더니 중얼거리셨다.
“그럴 놈이 아닌데······.”
룸미러로 날 한차례 바라보더니, 툭 하고 내뱉으셨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예?”
“아니. 친하게 지내라고. 까칠하긴 한데, 괜찮은 친구니까.”
***
정시 퇴근이란 말은 공기업쯤 돼야 통용될 단어다.
그게 아니라면 공무원이던가.
대부분의 회사원에겐 칼퇴근 따윈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
사원 20명의 작은 회사.
업체 미팅을 나간 사장님과 영업이사님이 돌아오질 않았기 때문에 부장님은 퇴근할 생각 따윈 하질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장님을 비롯해 그 밑으로 줄줄이 퇴근 얘긴 꺼내지도 못하고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어서 간만에 책상 정리도 할 겸 문서들과 파일첩을 확인하던 그녀에게 동료 직원이 물었다.
“미스 박.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예? 아닌데요?”
“그래? 하루 종일 콧노래를 부르기에 난 또 애인이라도 생겼나 했지.”
“아, 이 노래요?”
“······?”
“어제 라디오 들었는데, 거기서 누가 부르더라고요. 근데, 꽤 마음에 들었거든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 얘기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이상하게 자꾸 흥얼거리게 되네요.”
“무슨 노랜데 그래?”
“뮤직 스테이션에서 나온 건데 좋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다운받아서 듣는 중이에요. 아, 저번에 보니까 대리님 K-멜론 이용하시는 것 같던데······.”
“가끔 듣긴 하지.”
“한번 들어보세요. 노래 좋더라고요.”
“음, 그럴까?”
“그럼, 핸드폰 줘보실래요? 제가 찾아 드릴게요.”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핸드폰을 받아 어플을 실행한 후 음원을 다운받아 건네자, 김 대리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잘됐다 싶었다.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인데, 이거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사장님을 기다리는 동안, 그저 시간 때우기엔 딱이라고나 할까.
“······!”
하지만, 그가 노래에 빠져들며 멍한 표정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고등학생 네 명이 길을 걷고 있었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운 밤거리였지만, 건물마다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도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요즘 들어 부쩍 더워진 탓에 교복 상의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였지만, 그런다고 쉽게 가실 더위가 아니다. 결국, 그들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아이스크림 하나 사면서도 그새를 못 참고 서로 장난들을 치느라 난리법석이다.
그 와중에도 한 명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드 하나를 골라 집어 들고 있었다.
“야, 너 아까부터 뭔 노래를 그렇게 불러대냐?”
“응? 아, 이 노래······.”
“뭔데?”
“어제 라디오 듣는데 나오더라. 근데, 이상하게 입에 착 달라붙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부르게 되더라고.”
“그래? 가수가 누군데?”
“음, 뭐였더라?”
“······.”
“김······김···김도준이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어? 김도준?”
친구들 중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왜 아는 애야?”
“걔 있잖아. 우리 학교 전교 1등 하던 애.”
“아! 지난달엔가, 짤린 애?”
“짤린 건 아니지. 자퇴했을 걸 아마?”
“그게 그거지. 근데, 걔 무슨 아이돌이라도 된 거야? 갑자기 웬 노래?”
“에이, 설마! 그냥 이름만 같은 거겠지.”
“하긴. 김도준이란 이름이 흔해 빠지긴 했지.”
***
홍보전략은 지극히 단순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좌악 늘어놓고, 커넥터로 컴퓨터에 연결한 채 열심히 자판을 두들기고 계시는 고 팀장님. 겉모습만 봐선 무슨 보이스피싱이라도 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SNS에 답 달아주는 중이라고 하신다.
아, 계정은 이미 만들어두었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인스타부터 투위트까지.
어지간한 건 다 만들어둔 상태다.
팬 관리 같은 건가 싶기도 한데, 과연 저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말 그게 홍보가 돼요?”
“확실히 정석은 아니지.”
“근데 왜?”
고 팀장님께서 하던 일을 멈추고 의자째로 빙그르르 돌아 날 올려다보신다.
“홍보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 네 경우엔 이쪽이 나으니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추가로 설명해주는 고 팀장님이셨다.
“기자들한테 떡값 좀 주고, 찌라시 돌리는 게 쉽긴 한데, 요즘 애들은 그런 거에 잘 안 넘어가거든. 아무리 메치고 돌려쳐도 딱 보면 광고구나···하는 느낌이랄까. 쉴드 쳐주는 팬덤이나 있으면 모를까 자칫하면 역효과만 난다니까. 그리고 원래 알음알음 입소문 타는 게 처음엔 좀 느려도 나중엔 엄청난 효과가······. 뭐랄까, 눈덩이 같은 거지. 알지, 눈덩이?”
알 것도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자, 지나가던 아저씨께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곤 웃으셨다.
“넌 아무 걱정할 거 없어. 네 실력이 곧 홍보니까. 그리고 급할 것도 없잖아? 언제 뜨든 뜨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곤 몇 걸음 안 걷다가 멈칫하더니 손가락을 튕기신다.
“아! 도준아, 너 노준영이 알지?”
“준영이 형이요?”
“응. 걔한테 연락 왔는데······. 너더러 같이 좀 놀자고 하던데?”
“······놀아요?”
피식하고 웃으며 얘기하신다.
“8월에 열리는 광안리 해변 축제에 같이 가자네?”
조금 멍해졌다.
갑자기 웬 축제?
놀자는 말이 마냥 놀자는 말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말없이 쳐다보고 있자, 아저씨께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신다.
“그냥 행사라고 생각하면 돼.”
***
그 행사라는 걸 뛰기 전에 먼저 움직인 건 고 팀장님이셨다.
“도준아, 인사해라. 여긴 송준익 감독님.”
갑작스러운 호출에 가봤더니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의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근데 알고 보니 송준익 감독이란다.
신의 남자, 9번 방의 기적 등 꽤 유명한 영화를 찍은 감독 말이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일단 공손하게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김도준입니다.”
“어이구, 이 친구였네.”
이 친구였네?
뭐지, 이 뉘앙스는?
묘한 어투에 날 바라보는 눈빛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냥 인사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니었다.
“17살이라고 하더니, 진짜네. 근데, 야, 너 얼굴도 작은 게 화면빨 잘 받겠다. 팔다리도 길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비주얼 좋은데?”
“형님, 말했잖습니까? 고등학생···이었다고요.”
과거형으로 얘기하시는 고 팀장님. 송 감독님께서 기분 좋다는 듯 받아치신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든다니까. 하하하. 모름지기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나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하는 거지. 그럼, 그럼. 인생 뭐 있어? 몰빵이지! 아! 그러지 말고, 너 나랑 영화나 한 편 하자.”
“아이고, 형님. 남의 곳간에 와서 쌀 퍼갈 생각부터 하십니까?”
“보리 한 줌에 쌀 한 됫박. 계산 정확하잖아? 왜? 뭐가 문젠데?”
이거 칭찬 맞는 거겠지?
“감사합니다.”
“어쭈, 시작도 하기 전에 약부터 치는 거 봐라. 생긴 건 범생인데, 영악하네. 머리 좋은가 보다. 크크크. 얼굴도 얼굴이지만, 싹싹한 게, 흐흐. 이 친구 뜨겠네. 좋다. 찍자.”
“두말하기 없깁니다?”
“아니 내 입 두고 왜 말을 못해? 할 말 있으면 세 말이라도 할 거다.”
다소 썰렁한 농담을 하면서 날 데리고 안쪽에 마련된 작은 회의실로 들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뒤, 콘티가 나왔다.
두 시간짜리치곤 좀 얇은,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로 간단한 콘티였다.
한 장짜리였으니까.
“촬영은 모레부터. 장소는······. 어디 보자, 일단 여기서부터 해볼까?”
뭐가 이렇게 속전속결이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다가 고 팀장님을 바라보자, 송 감독님께서 픽 하고 웃으신다.
“왜 그래? 꼭 초짜처럼. 뮤직비디오 처음 찍어?”
***
이틀 뒤, 뮤직비디오를 찍겠다던 사람들이 회사로 온 건 점심 무렵이었다.
근데, 달랑 세 명이다.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예산 문제 때문인가?
의아해져서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들쳐메고 있는, 자신을 카메라 감독이라고 소개한 남자와 조명 담당자 한 명. 그리고 송준익 감독님이 다였다.
더 황당한 건, 그때부터 하루 종일 날 쫓아다니긴 하는데 촬영이 꼭 장난 같다는 것.
“지금 찍고 계신 거에요?”
회사 앞에 있는 육개장집에서 밥숟가락을 놀리다가 뭔가가 번쩍이기에 바라보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먹어, 먹어.”
후우. 그래, 먹자.
설마 진짜 이걸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겠어?
그냥 테스트 차원이겠지.
그렇게 함께 밥도 먹고, 마루 누나랑 수다도 떨고, 때론 고 팀장님하고 심각한 얘기도 나눈다.
그러다가 가끔 한 번씩 카메라에 스위치를 넣고 내 모습을 찍는 게 다였다.
때문에 처음에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던 나도 점점 익숙해져서 그냥 그들이 없는 셈 치고 평소대로 행동했다.
작곡도 하고, 기타도 좀 치고, 마루 누나랑 가사 얘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가 다 지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였다.
송준익 감독님께서 내게 다가오더니 말씀하셨다.
“이만하면 분량은 충분한 거 같고. 이제 연주하는 것 좀 찍어볼까?”
“연주요?”
“너 원맨 밴드라며?”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기타를 가리키신다.
“일단 기타부터 가볼까?”
그때부터 시작된 연주.
꼭 그때 같았다.
녹음하던 때.
혼자서 타이틀 곡인 ‘마음대로 해’의 세션을 혼자서 다 연주했다.
물론 노래도 했다.
그걸 카메라가 고스란히 담아냈고.
“컷!”
그때랑 마찬가지로 연주를 두 번 하는 일은 없었다.
당연히 재촬영도 없었다.
“오케이! 이제 편집만 하면 되겠다.”
이때까진 그렇게 느긋하게 굴더니만, 촬영이 끝나자마자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촬영진들이었다.
“내일 아침까진 보내줄 테니까, 그렇게 아쇼.”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
아저씨와 악수를 하곤 마지막으로 내게 손을 뻗으시는 송준익 감독님.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왠지 내가 여태 찍은 작품 중에 이번 게 제일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자식······. 너 진짜 마음에 든다. 기대하마.”
앞뒤 다 자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던져놓곤 회사를 떠나는 송준익 감독님이셨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무렵.
난 볼 수 있었다.
송준익 감독님께서 편집까지 완벽히 끝낸 뮤직비디오 한편을.
컴퓨터가 아니라, 유명 UCC 사이트와 회사 홈페이지 그리고 몇몇 블로그와 음악 사이트를 비롯해 몇 군데 서버에 올라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