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 한 번만 들으면(1)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깔끔하고 단정한 정장 차림의 중년 여성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 건물의 최상층인 이곳엔 함부로 외부인이 드나들 수 없게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들조차도 어지간한 지위에 있지 않으면 올라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녀를 막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아빠······회장님 안에 계시죠?”
안 그래도 가냘픈 몸매를 지닌 비서는 얼마나 긴장했는지 살짝 비틀거리며 어찌할 줄 모른다.
요즘 이들 부녀 사이가 어떤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계,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됐어요. 연락할 거 없어요. 오래 있을 것도 아니니까.”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회장실로 들어섰다.
갑자기 열린 문을 보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던 최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이어 그의 입이 벌어지며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금방 갈거에요.”
또각또각.
전혀 기죽지 않은 태도로 책상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얼른 나가지 못해!”
“성질 좀 죽이세요. 그러다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연을 끊겠다던 딸년이 지금 누굴 걱정······.”
“저도 아빠 보고 싶어서 온 거 아니에요. 그래도 아빠가 그렇게나 예뻐하시던 손자가 낸 첫 음반. 드려야 도리 아닐까 해서 온 거지.”
툭.
그녀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검은색 일색의 씨디 케이스였다.
최 회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그걸 바라보고 있을 때, 이미 그녀는 돌아서고 있었다.
“저 가요.”
그러곤 그대로 문을 빠져나갔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멀어지다가 사라진 뒤까지도 최 회장은 딸이 두고 간 앨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다가 울화통이 터지는지 앨범을 거칠게 잡아챈 그는 그걸 휴지통에 내팽개쳤다.
그러고도 화가 누그러지지 않는지, 한동안 무서운 눈빛으로 휴지통 안에 처박혀 있는 앨범을 노려보았다.
***
벌써 5년째 라디오 방송, 저녁 7시부터 뮤직 스테이션을 진행 중인 노준영은 DJ이기 이전에 가수다.
그것도 15년 경력의 베테랑.
그동안 그가 낸 히트곡만 해도 10곡이 넘는다.
한때는 발라드의 황제라는 소리도 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만의 밴드를 꾸리고 하드락에서 메탈락까지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해오고 있었다.
거기에 입담이 상당했고,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지녀서 국내에선 단순히 팬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열렬한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망라한 곡들에 대한 이해도 깊은 편이었는 데다가 실력 있는 가수를 보는 안목도 대단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제 갓 데뷔한 신인가수까지 전부 파악하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신인가수에 대한 기대치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터다.
때문에 김 피디가 갑자기 신인가수, 그것도 이제 갓 데뷔한 젊은 가수를 게스트로 섭외하겠다고 했을 때, 조금 놀라긴 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김 피디가 아무나 데려올 리는 없다고 믿었기에 별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방송 전에 게스트로 온다는 신인가수의 곡을 들어야 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을 뿐.
김 피디가 선택한 만큼 실력이 나쁘진 않겠지만, 그래 봐야 이제 막 데뷔한 애송이에 불과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게스트가 출연하는 오늘, 금요일이 될 때까지도 그는 김도준이란 신인 가수에 대해서 정말 기본적인 정보만 숙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도 뮤직 스테이션에 채널 고정해주시고 저희 방송을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1부 순서에 이어 2부를 시작할 텐데요. 아시다시피 저희 뮤직 스테이션은 고품격 음악 방송을 지향하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 한국 음악계를 끌어갈, 혹은 이끌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모시고 있죠. 그럼 어디 한 번 만나 볼까요? 이제 막 데뷔했지만, 한 번만 들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마성의 소유자, 김도준 씨를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도준입니다.”
도준이 살갑게 인사하자, 노준영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편안한 말투로 토크를 시작했다.
“이런, 제가 실수를 했군요. 고등학교도 졸업 안 했을 거 같은 얼굴인데. 지금부터라도 도준 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괜찮겠죠?”
“예. 괜찮습니다.”
도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노준영이 옅은 미소를 베어 물고선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몇 살입니까? 액면가만 놓고 보면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열일곱 살이요.”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어리네요. 그럼, 고등학생?”
“올해 초까진 다녔는데, 지금은 자퇴했어요.”
“자퇴라······. 그럼 도준 군은 가수 되려고 학교 그만둔 거에요?”
“예.”
“요즘은 연예인 되려면 학교 그만둬야 하나? 저희 땐 그냥 학교에 대충 책걸상만 갖다놓고 방송국으로 등하교했었는데? 예? 아, 요즘도 그런다고? 그렇다는데? 도준 군 혹시 소속사 사장님이 그러라고 시킨 거 아네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을 확인하곤 되묻자, 도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실은 내년에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가려고요.”
“오!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했나 본데?”
“그럭저럭요.”
“대답하기 곤란해 하는 눈치군요. 좋습니다. 토크는 이쯤 해두고, 노래 한 곡 듣고 갈까요? 도준 군, 어떤 곡 들려주실래요?”
“마음대로 해.”
“설마 지금 그거 저한테 반말한 겁니까?”
“아뇨. 곡명이 ‘마음대로 해’라고요.”
“흐흐흐. 알아요. 조큽니다. 재미없다고요? 그래도 웃으세요. 늘 말씀드리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긍정적인 삶을 가능케 해줍니다. 응? 그런데 도준 군 그 기타는 뭡니까? 설마 MR 안 쓰고 직접 연주까지 하려고요?”
“안되나요?”
“안되긴요. 다만, 지금 부를 노래······R&B 아닙니까? 흠, 통기타로 가능할지는 조금 걱정됩니다만. 어디 한번 들어보죠. 김도준 군이 부릅니다. 마음대로 해!”
***
야간자율학습 시간.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 수는 절반에 못 미쳤다.
과외를 한다고 빠지고, 학원 간다고 빠지고.
결국, 남은 이들은 집안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학생들뿐이다.
예린도 마찬가지.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인 그녀는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수학문제 풀이에 한창이었다.
지금 그녀가 듣고 있는 건 라디오였다.
평소엔 인스타도 하고 UCC도 즐겨보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공부를 하면서 동영상을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즐겨 듣는 건 뮤직 스테이션.
방송 진행자인 노준영의 카리스마 있는 입담도 좋아했고, 그가 선곡한 노래들도 그녀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요일에는 제법 괜찮은 초대 가수들이 나오기까지 해서 어지간하면 놓치지 않고 들으려 노력하기까지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뮤직 스테이션을 들으며 한창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2부가 시작되고 김도준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신인가수가 나오자, 채널을 돌리려고 했다.
듣보잡인 가수의 노래까지 들어줄 정도로 아량이 넓은 청취자는 아니었기에.
하지만, 초대 가수의 나이가 17살이라는 말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은 나이네?’
호기심이 일어서였을 거다.
조금만 더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채널을 고정했고, 가수를 하기 위해 자퇴까지 했다는 얘기가 그녀의 호기심을 다시 한 번 자극했다. 그 결과 김도준이 기타를 치는 것까지 듣게 되었다.
띠링 띠링 띵 띠디디딩······.
자신과 같은 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타를 잘 쳤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살짝 감탄한 수준 정도.
솔직히 그래 봐야 열일곱 살이지.
요즘 눈만 뜨면 쏟아져나오는 아이돌 그룹과 크게 차이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반전은 그때 일어났다.
전주가 끝나고, 조금은 굵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거니.
흠칫.
예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
R&B에 가까운 발라드.
흔하다면 흔한 곡조지만······.
뭔지 모르게 여태까지 듣던 것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확 잡아끌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 거니.
have a dream.
초조해 봐도 시간은 멈춰주질 않아.
have a dream.
후회한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잖아.
have a dream.
수학문제를 풀어나가던 샤프의 움직임도 멈춘 지 오래였다.
그녀는 멍한 표정이 되어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 이어폰을 꽂고, 어제도 탔던 지하철에서 내려.
아침에 지나간 길을 다시 또 걸어.
또 사랑 타령일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다.
근데 감미롭다.
그러면서도 가슴을 울린다.
게다가 머릿속에 절로 그려진다.
자신의 하루가.
매일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와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길을 걷는다.
그리고 통조림처럼 꽉 찬 지하철에 간신히 몸을 끼운 채 등교.
어른들은 그 시절이 좋네 마네하지만, 학교란 곳이 그렇게 만만한 곳만은 아니다.
종일 이어지는 수업에 선생님들의 잔소리와 벌써 시작된 입시 부담은 그녀를 녹초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올 땐 마치 수학문제를 역순으로 검산하듯 같은 행위를 거꾸로 반복할 따름이다.
아침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그날이 그날 같고, 오늘은 어제와 같아.
dream dream dream dream.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고.
dream dream dream dream.
제발 좀 돈 좀 많아 봤으면 좋겠다고.
dream dream dream dream.
느린 템포를 타고 흐르는 기타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감각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절제된 음성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묘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목소리. 그게 가사와 맞물리며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같은 나잇대라 그런가?
아니면 속이 깊은 걸까?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삶이 어떤지.
그걸 때론 담담한 목소리로, 때로는 감각적인 음으로 그녀의 마음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다.
때문에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간질간질해온다.
그래서인가?
귀로는 노래를 듣고 있지만, 머릿속에선 지난날들이 아니, 현실이 떠오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바뀔지는 몰라도, 그저 열심히만 살면 바뀌긴 바뀔 거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늘 목말라 한다.
지루한 일상에 지친 채, 뭔가 즐거운 일이 있기를.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다.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어째선지 갑자기 부모님 얼굴도 떠올랐다.
밤늦게까지 장사하고 들어와 다리를 주무르시며 앓는 소리를 내시는 엄마.
가끔 한 번씩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엄마 몰래 주머니에 찔러주시는 아빠.
아무리 철딱서니가 없는 딸이라지만, 그 심정을 왜 모를까.
그래서 이를 악물고 공부하고 있지만, 솔직히 버겁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방향을 잃은 듯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누군가 제발 좀 말해줬으면 싶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돈······.
그놈의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다른 친구들이 과외를 할 때, 학원에 다닐 때 책만 파고든다고 과연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말은 안 하지만, 갈수록 지쳐가고 있다.
그저 시간만 흘러갈 뿐, 달라지는 건 없는 현실.
그마저도 이젠 익숙해져서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도 노래는 말하고 있었다.
꿈을 꾸라고.
- 한 손엔 커피를,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서.
오늘 지나간 길을 내일 다시 또 걸어.
그곳이 그곳 같고, 똑같은 거리를 걸어.
dream dream dream dream.
즐거운 일 따윈 없다고.
dream dream dream dream.
지루한 일상 지겨워 죽을 것 같다고.
dream dream dream dream.
꿈······.
달콤하지만, 실제론 와 닿지 않는 단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예린은 자문하고 있었다.
자신은 정말 꿈이란 걸 꾸기는 하는 걸까?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아니, 애당초 그 꿈이란 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꿈인 걸까?
쉽사리 답을 내지 못하는 질문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솟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멍한 눈빛이 되어 반쯤은 넋이 나간 채 노래를 듣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기타음이 빨라졌다.
도저히 통기타로 치고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템포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현란한 기타음이 음역대를 폭넓게 넘나들며 폭주하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폭발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꿈을 꿔. 네가 살고 싶은 삶을 그려봐.
마음대로 해. 누가 뭐라 해도 가는 거야.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가보지 않곤 모르는 거잖아.
have a dream.
have a dream.
‘헤브 어 드림······헤브 어 드림······.’
마음을 파고드는 목소리 때문인지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후렴구를 따라 부르고 있을 때였다.
- 네 마음대로 해.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인데.
제발 네 마음대로 해.
내일은 오늘과는 달라.
예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이거······. 내 얘기 같아.’
왜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노래······.
그녀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을 마주하라고.
꼭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멍한 모습 때문인지 옆에서 친구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말없이 귀에서 들리는 아니 가슴으로 스며드는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중독이라도 된 양 속으로 후렴구를 따라부르면서.
그러는 사이에,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그 순간, 친구가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이어폰을 빼고 돌아보자, 친구가 말했다.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예, 예린아······. 너, 왜 그래?”
“응?”
흠칫.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는 예린. 그제야 그녀는 알아차렸다. 뜨거운 무언가가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
스튜디오 안이 적막에 휩싸였다.
피디는 말할 것도 없었고, 스텝들도 멍한 표정으로 도준을 보고 있었다.
특히 노준영은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지 얼빵한 표정이 되어 도준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방금까지 하얗게 물들었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만이 떠올라 있었다.
‘신인이라며?’
도대체 어디가?
미친!
이 정도면 빌보드도 씹어먹겠구먼!
기타도 기타거니와 노래 실력 또한 흠잡을 데가 없다.
흔히들 말하는 뽕삘이 제대로 살아 있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그게 아니다.
테크닉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울린다?
가수 경력 15년 차에 이르른 자신이 요즘 들어서야 간신히 붙잡은 경지다.
그걸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17살짜리가 하고 있다고?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상황에 그는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도준의 멱살을 잡고 따져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방송 중이었다.
프로답게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그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노, 노래······. 아, 과···광고 듣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말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이대론 진행이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한 그가 다급히 손짓하자, 덕분에 정신을 차린 김 피디가 재빨리 스텝들에게 지시해 방송을 컷시켰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방송사고를 피하고 광고가 나오는 동안, 노준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곤 눈을 크게 뜨더니 도준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다가 뒤늦게 탄성을 터뜨렸다.
“뭐, 뭐야!”
도준이 별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노준영이 결국 고함을 내지르고 말았다.
“너 이 자식! 정체가 뭐야!”
멱살을 안 잡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밖을 내다보니, 스텝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도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물론 그 순간에도 김 피디는 청취율을 확인하곤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음원 사이트의 차트에 도준의 노래가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