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 데뷔 임박(4)
학원이 회사로 탈바꿈되는 동안 시간이 제법 걸린다고 했다.
그동안 악기도 못 다루고, 작곡할만한 장소도 없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저씨께선 근방의 작은 오피스텔을 단기로 임대하셨단다.
그렇긴 하지만, 거기서 드럼을 친다거나 하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어서 실제로 악기를 치는 일은 없었다.
회의도 마찬가지.
노트북 한 대 외엔 이렇다 할 기기나 집기가 없어서 사실상 어디서 일을 하든 상관없다고나 할까.
그런 까닭에 지금도 커피숍에 와 있는 중이다.
“그럼. 음원 출시는 7월 3일로 결정한 건가?”
“여름 시장을 생각하면 그때가 적당하니까요. 대신, 조금 빡셀 겁니다.”
“하긴 다들 같은 생각일 테니.”
턱을 매만지시긴 하지만, 다들 눈치챈 모양이다.
아저씨께선 음원 출시일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걸.
아니나 다를까. 아저씬 다른 얘기를 꺼내신다.
이미 결정을 끝냈다는 말이다.
“문제는 마케팅인데······. 고 팀장. 지난번에 얘기했던 건은 어떻게 됐어?”
“계속 컨택 중입니다. 그리고 SNS 쪽이랑 언론 쪽은 출시한 뒤에 단계별로 작업할 겁니다.”
“오케이. 그 건은 성사되면 얘기해 줘. 아, 그리고 도준아.”
아이스티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고 있던 나는 아저씨께서 갑자기 부르시는 소리에 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예?”
“너 예전에 써놨던 곡들 있잖아.”
“음······. 아저씨께서 주워놓은 것들이요?”
“자식이. 말을 해도.”
살짝 째려보시기는 하는데, 장난이란 걸 아시기에 이내 본론으로 들어가신다.
“그거 가사 붙여서 뿌릴까 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솔직히 관심 없다.
내가 쓸 곡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호기심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가사라면······. 마루 누나가 쓰는 건가요?”
마루 누나한테 시선을 돌리자, 가슴을 쭉 내밀며 손으로 브이 자를 해 보인다.
아, 무서워라.
금방이라도 날 끌어안을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시선에 얼른 눈을 돌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좋아. 마루는 곡들 챙겨서 가사 작업하고.”
“옙!”
“아, 앨범에 들어갈 문구들이랑은 어떻게 됐냐?”
“그거 어제 끝내서 이미 넘겼는데요?”
“디자인 시안은 언제 나온대?”
“글쎄요. 거기까진······.”
마루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저씨께서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중얼거리셨다.
“사람부터 뽑아야 하나?”
그러다가 고 팀장님께로 시선을 던지셨다.
“일단은 고 팀장이 진행해. 어차피 그 건은 홍보 쪽에서 담당할 일이잖아.”
“예. 그렇게 하죠.”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물었다.
“디지털 앨범 내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아저씨께서 또 묘한 미소를 머금으신다.
“궁금해?”
그렇다고 하면 순순히 말해줄까?
글쎄. 아저씨 성격상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저 음흉한 미소도 마음에 걸리고.
“작곡이나 해야겠다.”
관심을 꺼버렸다.
그리고 종이 위로 연필을 끄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내뱉는 헛웃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일주일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이야, 돈이 좋긴 좋네.”
마루 누나가 하늘색의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회사 안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고 팀장님이 기막히다는 듯 쳐다보는 중이었고.
그러다가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한마디 툭 내뱉는다.
“꽃놀이 가냐?”
“왜 또 시비에요?”
“몰라서 물어? 첫 출근날이다. 근데, 복장이 그게 뭐냐?”
“어머? 남이사 옷을 어떻게 입든 무슨 상관?”
“그래그래. 내가 어지간하면 너랑은 상관이란 걸 하고 싶지 않은데, 진짜 너무 하지 않냐? 하다못해 그놈의 밀짚모자 좀 벗든가!”
아, 처음 봤다.
고 팀장님이 소리치는 거.
진짜 화나신 건가?
“흥! 밀짚모자 아니거든요? 이게 얼마짜린데······.”
아니었어? 챙이 넓은 게 딱 밀짚모자같이 생겼는데.
두 사람이 투닥거리고 있는 사이, 아저씨가 안쪽에서 소리치신다.
“그러고들 있을 시간 없다. 얼른 와서 일들 해. 설마 내일모레가 D데이란 거 잊은 건 아니겠지?”
“예.”
“예엡!”
아저씨의 한마디에 두 사람이 얼른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다가 나 역시 연습실로 들어갔다.
벽 전체에 흡음재가 설치되어 있는 거라든가, 안쪽에 드럼세트가 설치된 모습 등을 보자면 전이랑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앞쪽으로 각종 장비가 놓인 모습이 사뭇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녹음까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건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나중에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리고 건반을 누르며 그동안 작곡해놓았던 곡들을 치고 있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마루 누나가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싶어 깜짝 놀라 쳐다보니, 누나가 날 확 끌어안는다.
“끄윽!”
곰 인형도 아니고.
이래선 숨을 쉴 수가······.
“이거 무슨 곡이야!”
“모, 목 좀······.”
“너무 좋다!”
젠장! 다음부턴 꼭 헤드폰 끼고 연주해야지.
속으로 거듭 다짐하며 보아 뱀처럼 목을 감고 있는 마루 누나의 팔을 두드렸다.
“어머, 미안!”
얼른 팔을 풀고는, 민망했던지 멋쩍게 웃어 보이는 마루 누나. 많이 아파?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던 것도 잠시뿐. 내가 괜찮다고 말하기 무섭게 눈을 빛내며 물어온다. 아니, 신바람이 나서 얘기하기 시작한다.
“이거 소울 베이스지? 그럼, 가사는 사랑 쪽보단 일상 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음, 맥주! 땅콩! 담배 연기······.”
하, 또 작업모드네.
무슨 스위치가 지 맘대로야.
역시 누난 평범과는 거리가 먼 여자다.
진짜 천재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웅. 뭔가 생각날 듯 말 듯한데······. 도준아, 다시 한 번 쳐볼래?”
예예. 치라면 치지요.
딴 따라라 딴딴······.
키보드 건반을 두드리는 동안, 마루 누나가 눈을 감고서 곡을 음미하고 있을 때였다.
“감자탕!”
밖에서 고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마루 누나는 듣지 못한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그냥 개무시다.
그러자, 잠시 후 고 팀장님이 직접 출두했다.
“전화 왔다니까!”
“지금 작업 중인 거 안 보여요? 그리고 전화는 선배가 받으면 되잖아요?”
“뮤직넷 전화야.”
“그거 원래 내 일도 아닌······.”
“분명 난 네가 요구한 대로 한우 투 플러스 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딴말하기냐?”
“······.”
결국, 고 팀장님의 손에 끌려나가는 마루 누나였다.
그러면서도 입만 벙긋거리는 게, 조금 있다가 다시 올 것임을 암시하는 누나. 하지만, 한동안 오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다.
현재 회사에서 여유로운 사람이라곤 오직 나밖엔 없었으니까.
D데이는 모레.
말이 모레지, 음원이 자정에 올라간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 지금도 마루 누나가 뮤직넷 담당자와 전화로 진지하게 얘기 중인 걸 보면 데뷔가 진짜로 눈앞까지 다가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진짜 하긴 하네.”
가슴이 두근거렸다.
***
고 팀장님이 들고 올라오신 박스를 보면서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이게 뭐예요?”
대답 대신 커터칼로 무자비하게 박스의 배를 가르신 고 팀장님이 그 안에서 익숙한 물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아!”
앨범이다.
그 재킷까지 있는 앨범 말이다.
난 할 말을 잃고 한참을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검은색 바탕에 기타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다.
THE FIRST.
단순하지만 명쾌한 앨범 타이틀.
손이 살짝 떨린다.
차마 비닐을 뜯지 못하고 있자, 마루 누나가 고갯짓을 해 보였다.
얼른 보라는 눈치다.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바라본 앨범.
“지금 뜯으려······.”
나도 모르게 울컥해져서 말을 잇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비닐을 뜯어냈다.
딸각.
케이스를 열자, 드러나는 CD.
이 안에 내 노래가 들어 있다.
나도 모르게 입안이 말라와 한차례 침을 축이곤 앨범 속지를 빼내 펼쳤다.
기획한 컨셉대로 바탕은 블랙. 그 위에 금박글자가 제목을 장식하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기하학적인 무늬와 어우러진 채 가사가 적혀 있다.
작곡 김도준, 작사 조마루, 노래 김도준.
네 곡을 차례차례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언제 틀었는지 첫 번째 곡인 ‘마음대로 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개무량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가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채 웃고 계셨다.
어지간히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근데, 디지털 앨범으로 낸다고 하지 않았어요?”
요즘 같은 때 실제 앨범이 팔릴 리가 없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1,000개.”
“예?”
“딱 1,000개만 팔 거야. 지금 말고 나중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아저씨셨다.
***
7월 3일, 자정 무렵.
사무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올라왔다!”
마루 누나가 외쳤고, 모두의 눈이 커서를 따라 쭉쭉 내려가는 페이지에서 찾기 시작한다.
“여기요, 여기!”
누나가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짚은 곳.
찾았다.
THE FIRST란 앨범이 보인다.
커서를 가져가니 대표곡 듣기가 뜬다.
클릭해서 들어가니, 네 곡이 주르륵 떠 있다.
그중 타이틀곡인 ‘마음대로 해’가 가장 위에 있다.
아티스트 김도준.
내 이름 석 자가 박혀 있다.
두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진짜 데뷔했다는 느낌이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턱.
아저씨께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물으신다.
“어떠냐? 기분이?”
말로 하기 어렵다.
입술을 잘근거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모두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마루 누나가 손가락으로 코밑을 문지르고 있었고, 고 팀장님께선 평소와 달리 엷게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 아저씬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클어뜨리며 말씀하셨다.
“축하한다. 데뷔.”
으으으.
뭐지?
가슴속에서부터 뭔가 찌르르한 게 울리고 있다.
그때, 아저씨께서 손뼉을 치셨다.
“자자! 이제부터가 진짜잖아? 어디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
“아자!”
마루 누나가 주먹을 움켜쥐고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작사가인데, 저렇게까지 해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누나의 진심이 느껴져 울컥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고 팀장님도 언제 전화통을 붙잡았는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모습이다.
근데, 밤 12시에 이래도 되나?
의아했지만, 여기서부턴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니까.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 다들 고마워요.
속으로만.
***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데뷔를 했음에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음원 사이트 차트에 곡이 오른 것도 아니고, 행사를 뛰긴커녕 불러주는 데도 없었다. 심지어는 아저씨를 비롯한 회사식구들과 우리 가족 그리고 석준과 희주 등 몇 명을 제외하곤 내가 곡을 발표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걱정하질 않는다.
각자 맡은 바 일에만 충실한 뿐, 염려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서 다들 내게는 아무 걱정 말라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음원 발표 후 사흘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도준아. 잡혔다.”
“예?”
고 팀장님의 갑작스러운 얘기에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묻자,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설명하신다.
“뮤직 스테이션.”
“······?”
“라디오다. 일주일 뒤, 출연하기로 했다.”
“아!”
라디오 출연.
그럼······.
“거기서 노래도 하나요?”
“그래야지. 물론 토크도 좀 하고, 앨범 홍보도 눈치껏 하고.”
“긴장돼?”
어느 틈에 다가왔는지, 마루 누나가 옆에서 내 팔짱을 껴온다.
“걱정 마. 토크 못해도 되고, 앨범 홍보는 신경 쓸 필요도 없어. 넌 그냥······.”
“······.”
“노래만 불러. 그러면 돼.”
이거 안심되라고 하는 얘기 맞지?
의아했지만, 희한하게도 안심이 된다.
나는 누나를 향해 이가 드러날 만큼 환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