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 데뷔 임박(3)
모든 녹음이 끝난 건 저녁 8시가 넘어서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늦다.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겨우 그딴 걸로 불만을 늘어놓기엔 충격이 엄청났으니까.
때문에 마무리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겨놓고서 두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도, 스튜디오 안에는 여전히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는 중이었다.
다들 믿기 어렵다는 눈빛이 되어 모니터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도준이 원곡을 부를 때도 놀랐지만, 영어 버전을 부를 땐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본 것도 사실이다.
흔히 뽕삘이라고 하는, 착착 감겨오는 느낌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이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아까 불렀던 노래들이 원래 영어로 된 곡을 한국말로 바꿔 부른 게 아니었냐고 묻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할까.
이건 단지 발음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다.
느낌의 문제였다.
담담하게 노래하면서도 절묘하게 그루브를 타고 넓은 음역대를 넘나드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흥겨워 어느새 몸을 흔들어대고 만다고나 할까.
흡사 외국 가수가 내한해 부르는 공연장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곡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잠시 잊을 정도로,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 곡을 녹음하기 전까지만이었다.
마지막 곡.
‘LONGING TIMES’의 음이 흘러나오고, 부스 안에서 도준이 노래, 아니 입을 벌리는 순간, 모두는 충격에 빠져들고 말았다.
도준의 음성이 귀에 꽂히는 찰나, 머릿속에 벼락이 친 듯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상태다.
녹음이 끝난 때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다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걸 노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자 모두의 눈이 한층 더 몽롱해졌다.
마지막 곡.
가사 없이 시작된 녹음.
프로듀서인 윤지수조차 짐작도 못 했던 모양인지, 마지막 곡의 녹음이 시작되자 당황하기 시작했었더랬다.
하기야 누군들 5분이 넘어가는 곡을 그런 식으로 부를 거로 생각했겠는가.
보아하니, 이점은 강혁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다만, 이들과 다른 점은 놀랐다기보단, 재밌다는 얼굴이 되어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
“하아, 이 곡은 따로 발표한다고 했었지?”
“그랬던 거 같은데?”
“아우, 하도 정신이 없어서 기억도 안 나네.”
“그러게.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거 발표되면······.”
다들 마른 침을 삼켰다.
스튜디오 안에선 5분이 넘어가는 곡. 도준의 음성으로 가득한 곡이 흐르고 있었다.
***
강혁수는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자세로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도준이 보였다.
어떻게 봐도 17살이다.
이제 갓 고등학생이 된 소년. 청년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나이. 곱상한 외모 때문인지는 몰라도 프로다운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나이 때의 애들이 그렇듯, 시도때도없이 가벼운 농담이나 던질법한 얼굴이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다들 저 얼굴에 속고 말 거란 생각에.
하긴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노래?
잘한다. 누가 들어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연주?
수준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나잇대에 할 수 있는 연주실력이 아니다.
작곡?
마찬가지로 기가 막히다. 오죽하면 KSM의 김성만이 한 곡만 달라고 며칠을 매달렸겠는가.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예상 못 했다.
그는 도준이 마지막에 부스 안에서 5분짜리 곡에 맞춰 입을 여는 순간, 큰 충격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이들 앞에서야 내색하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속으로는 경악하다 못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후우. 진짜 갈수록 산이라더니······. 쟬 감당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금 떠올렸다.
그 5분이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악기를 잡고 부스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지.
아니 목청을 돋워 노래를 부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쥐며 지난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이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검은 가죽점퍼 차림으로 통기타를 치면서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노래하던, 아니 세상을 질타하던 음유시인.
밥 딜런이 The Times They Are A'Changin'을 부르던 모습을 떠올리는 사이, 차는 어느새 도준의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강혁수는 천천히 차를 멈춰 세운 후, 도준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를 깨웠다.
“도준아.”
“으음······.”
“다 왔다. 일어나라.”
“아······제가 잠들었나 보네요. 죄송해요, 아저씨.”
“됐고. 얼른 들어가라. 어머니 기다리시겠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밤 10시다.
“하아암. ······뭘요. 이보다 늦게 들어간 날도 많은데.”
기지개를 켜고 있는 도준. 그를 강혁수는 쫓아내듯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러곤 말했다.
“오늘 애썼다. 푹 자고, 점심때쯤 나와. 소개할 사람들 있으니까.”
“예.”
아직 잠이 덜 깼는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서는 도준의 등을 강혁수는 한참이나 눈으로 뒤쫓고 있었다.
***
창문으로 들이치는 햇살을 느끼며 일어난 뒤, 거실로 나와보니 집안에 아무도 없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주방으로 가봤다.
식탁 위에는 밥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께서 남겨놓으신 걸로 보이는 메모와 함께.
아들, 곤히 자기에 그냥 나가.
육개장 끓여놨으니까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 먹어.
챙겨주지 못해서 엄마가 미안.
아들, 사랑해.
하트까지 그려진 메모를 보다가 픽 하고 웃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이었던가?”
어머니의 대학 동창회.
음대출신들이라 그런가? 매년 그렇다. 연말에는 다들 바빠서 그런지 몰라도 이상하게 6월이 돼서야 동창회를 하시더라.
“데우기 귀찮네.”
그래도 어머니 정성을 생각해 냄비가 올려져 있는 가스레인지를 켰다.
아버지께서도 일 때문에 나가신 건지 안 보이셨고, 형도 없다.
하긴, 시간이 벌써 1시가 넘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대충 씻고 밥을 챙겨 먹은 뒤 집을 나섰다.
어제 차에서 내릴 때, 아저씨께서 오늘 누굴 소개해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뭐, 가보면 알겠지.
“어제 힘들긴 했나 보네.”
다소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원으로 향했다.
***
“어머, 혜원아!”
레스토랑 하나를 통째로 전세를 내서 그런지,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누군가 아는 척을 해온다.
도준의 어머니, 최혜원은 밝게 웃으며 친구와 가벼운 포옹을 했다.
그 사이, 그녀를 알아본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얘는 늙지도 않네.”
“호호. 그렇게 말하니까, 몇 년 만에 만나는 거 같다, 야.”
“그런가?”
“그저께 함께 백화점 돌았던 건 어디의 누구더라?”
가벼운 농담에 깔깔거리며 웃는 여자들. 동창들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동갑내기인 것도 아니고, 여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음대라곤 해도 악기 전공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성악의 경우엔 오히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성공한 경우가 많을 정도니까.
특히 여자들의 경우엔 일찌감치 음악을 관두고 시집가서 살림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유, 말도 마.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우리 남편 집에만 들어오면 짜증이야, 짜증.”
“그러게. 돈 버는 게 유센가? 쥐꼬리만큼 벌어다 주면서 온갖 잔소리는 다 한다니까.”
여자들끼리 모인 자리라서 그런가 어김없이 남편 흉들 보느라 바쁘고, 또 한편에선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다.
“자기 오늘 한턱 쏴야지?”
“호호호. 그래야 할까?”
“응?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몰랐어? 지민이가 이번에 콩쿠르에서 입상했잖아?”
“어머, 축하해.”
“지민이면, 큰딸? 좋겠네. 그럼, 이제 빈으로 가는 거야?”
“글쎄. 이 정도면 국내에선 커리어를 쌓을 만큼 쌓은 거 같긴 한데······. 작은 애가 걸리네. 그렇다고 지민이 혼자 보낼 수도 없고.”
그녀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한창 수다가 늘어지고 있을 때, 키가 크고 멀쑥한 차림의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여기 좀 앉아도 되지?”
“어머나! 승훈이 아냐? 이게 몇 년 만이니? 너, 프랑스 가서 잘됐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얘는! 가끔 잡지에 나오더만, 딴소리하기는!
“축하해. 승훈이 너 드디어 지휘봉 잡게 됐다며?”
“거기 수석 지휘자가 갑자기 은퇴를 하게 돼서 말이야. 운이 좋았지.”
“운은 무슨. 그게 다 실력이지. 아무튼, 잘됐다, 얘!”
“고맙다.”
여자들의 온갖 수다에 일일이 답해주면서도 승훈의 눈은 최혜원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들은 여전히 쫑알거리는 중이었지만, 당사자인 최혜원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한때 승훈이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대학 다닐 땐 은근히 사귀자는 식으로 대쉬 아닌 대쉬를 했을 정도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남편을 만나면서 칼같이 끊어버린 그녀였지만.
“오랜만이네.”
최혜원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웃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어딘지 모르게 아련하게 바라보던 승훈이 물었다.
“얘긴 들었다. 남편이 쉬는 중이라며?”
“응.”
“괜찮은 거야? 내가 자리 좀 알아봐 줄까?”
“아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할 거야.”
“그래도······.”
최혜원이 눈까지 휘며 웃어 보였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우리 그이가 알아서 할 거야. 보기와 달리 강한 남자거든. 호호호. 내가 왜 그 사람한테 반했는데.”
별로 즐겁지만은 않은 얘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그게 못마땅했던 걸까? 누군가 한 명이 느닷없이 물었다.
“근데, 요즘 도준이가 사춘기라며?”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 말도 안 돼! 그 성실하고 착한 도준이가?”
“그러게. 도준이가 그럴 줄 누가 알았니?”
“왜? 걔가 무슨 사고라도 쳤어?”
“말도 마. 이번에 학교에서 짤······.”
탁!
최혜원은 들고 있던 포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친구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그러곤 해맑게 웃더니,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
“우리 도준이, 자퇴한 거야.”
“자, 자퇴? 아니, 왜? 걔 줄곧 전교 1등 하지 않았니?”
“유학 보내려고?”
“아니.”
“그, 그럼······. 설마, 무슨 문제라도 일으킨······.”
여자들이 무슨 상상들을 하는지, 다들 별의별 표정을 다 짓고 있다.
승훈 역시 마찬가지. 조금 복잡한 얼굴이 되어 최혜원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더없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그 아이······.”
“······?”
“비로소 꿈을 찾았거든.”
“꿈?”
“응. 우리 아들, 노래할 거야.”
걱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 얘길 들은 여자들의 얼굴에는 갖가지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동안 질투하고 시기했던 감정이 일순간 해소되어 시원하다는 표정도 있었고,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안됐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다들 한동안 말수가 줄면서 잠시지만 혜원이 있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최혜원이 방긋 웃고는 몸을 일으키며 정적을 무너뜨렸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볼일이 있다는 건 깜빡했네. 호호호. 난 먼저 가볼게. 재밌게들 놀고.”
핸드백을 챙겨 돌아서다가 그녀가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아, TV에 우리 도준이 나오면 꼭들 보고.”
더없이 환하게 웃으며 그 자리를 벗어나는 최혜원이었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그렇게 그녀가 밖으로 향하고 있을 때, 뒤에선 그녀의 친구들이 탄식과 한숨이 섞인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최혜원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묘한 웃음을 머금은 채 입구를 빠져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
건물 앞에 이르렀을 때, 조금 놀랐다.
간판 작업이 한창이었던 것이다.
HS 엔터테인먼트.
진짜 학원을 접으실 모양이네.
근데, 그래도 되나?
나 하나 믿고 너무 크게 일을 벌이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걱정이 됐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아무래도 아저씨랑 얘기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3층으로 올라간 순간,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이, 거기 조심해서 뜯으라고!”
“황씨! 그건 마대에 담지 말고 창쪽으로! 그래, 거기. 이따가 사다리차 오면 그걸로 내릴 거니까!”
“아이고! 이거 뭔데 이렇게 안 뽑혀!”
난리법석이다.
칸막이벽 해체가 한창이었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싹 다 뜯어내려는지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왔냐?”
그 광경을 팔짱을 낀 채 바라보다가 태연하게 말을 건네오시는 아저씨. 또다시 걱정이 들어서 말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아, 어제 얘기했었지. 여긴 고현우 팀장. 앞으로 우리 회사 홍보팀 책임져줄. 그리고······.”
“호호호. 너구나!”
아저씨가 소개한 남자, 깡마르고 턱이 짧은 수염으로 뒤덮여 거뭇거뭇한 얼굴을 한 고현우 팀장이 날 힐끗 보곤 시선을 돌려버리는 사이, 한 명의 여자가 어느 틈에 다가오더니 날 덥석 끌어안아 버렸다.
“어어억!”
블라우스가 터질 듯이 풍만한 가슴에 안겨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아저씨가 한소리 하셨다.
“그러다 숨 막혀 죽을라. 반가운 것도 좋은데, 좀 살살. 오케이?”
그제야 날 품에서 떨어뜨린 여자는 뿔테 안경 사이로 눈을 빛내다가 한 손으로 단발머리를 가볍게 쓸어올리며 말했다.
“조마루라고 해. 앞으로 누나라고 부르렴.”
“아!”
내 곡에 가사를 붙여준 작사가다.
“왜? 너무 예뻐서 말이 안 나와?”
근데,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활기찬 건지, 아니면 개방적인 건지.
“그, 그런 게 아니라······. 아, 그렇다고 안 예쁘다는 건 아니고요!”
“에구, 이뻐라. 내 이럴 줄 알았지. 곡 보고 딱 알았다니까. 역시 내가 상상했던 대로야!”
그녀는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반짝였다.
아니, 대체 무슨 상상을 했기에······.
불길한 예감에 한 걸음을 물러서려고 할 때, 그녀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곤 힘주어 말했다.
무슨 전쟁터로 나가기 전 결의를 다지는 듯한 말투였다.
“앞으로 네 곡의 가사는 다 내가 쓴다!”
음, 가사들이 나쁘진 않더라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해도 되는 건가?
의아해져서 아저씰 바라보자, 픽 하고 웃으신다.
“이해해라. 간만에 의욕에 불타서 그러는 거니까.”
그때였다.
고현우 팀장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 감자탕. 나이 서른이면 이제 좀 달라질 때도 되지 않았냐?”
“흥!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거 몰라요? 게다가 아직 6개월이나 남았다고요! 그리고 내가 감자탕이라고 부르지 말랬죠!”
“그럼 이름을 바꾸던가.”
“어머, 그거 성희롱 아니에요?”
“진짜 큰일이다. 그 성이 그 성이냐? 어떻게 저 머리로 그런 가사를 쓰는 건지.”
조마루라고 해서 별칭인지 알았더니, 진짜 이름인가 보다.
아무튼,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현우 팀장이 혀를 차면서 아저씨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인데, 희한하게도 못마땅하다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냥 다른 데서 가사를 받지 그랬어?”
“아니, 뭐. 내가 억지로 받았나? 지가 준다는 데 어떻게 해?”
“하아. 그래도 그렇지. 하여간 형도 이럴 때 보면 참 무르다니까. 그렇다고 쟬 덜컥 합류시켜?”
“그럼 어쩌냐? 술 먹고 들이닥쳐서 곧 죽어도 하겠다고 울기까지 하는데.”
“아니, 왜? 요즘 잘나간다며? 소문에는 빌딩 샀다는 얘기도 있더만.”
의아해 하는 그에게 아저씨가 되물었다.
“그대로 말해줘?”
“······.”
“천재 눈엔 천재가 보인단다.”
고현우 팀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