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9화 (29/260)

# 29

#29. 데뷔 임박(2)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아저씨께서 와계시다.

뒤쪽에는 못 보던 차가 보였고.

국산 SUV 차량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곤 감탄했다.

“좋은데요?”

“타보면 더 마음에 들걸.”

“흐음, 그래요?”

아저씨께서 운전석에 앉은 뒤 뭔가 조작하자, 문이 저절로 열린다.

“자동이네요?”

“풀옵션이니까. 앞으로 많은 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게 될 텐데, 이 정도는 돼야지. 수입차까진 아니더라도.”

아닌 게 아니라 시트도 그렇고, 안쪽에는 별의별 게 다 달려있다.

무엇보다도······.

아저씨가 앞쪽에서 음악을 틀자, 차가 떨리며 진동한다.

아무래도 스피커 자체를 사제로 싹 갈아치운 모양이다.

“돈 좀 들었겠는데요?”

“투자지. 거기 레버 당기면 안에 헤드폰 들었다. 한번 써봐.”

“와! 음질 죽이는데요?”

“막 써도 돼. A/S 1년 되니까.”

농담이겠지.

A/S 된다는 게 어디까지나 물건 자체가 불량일 때의 얘기인 거지, 고장 나면 무조건 고쳐준다는 건 아닐 테니까.

킥킥거리다가 물었다.

“근데, 이거 썬팅이 너무 진한 거 아니에요? 운전하다 사고 나겠다.”

“나중에 더 짙게 하지 않았다고 뭐라고 하지나 마라.”

여기서 더 짙어지면 그냥 검은색 아닌가?

그만큼 썬팅은 진하다.

하긴,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막 팬들이 차에 달라붙고······. 음, 나한테 팬이 생긴다라. 기분 참 묘하다. 그렇다고 흥분되거나 하는 건 아니고.

내 속내를 읽으신 건가.

“팬들이 생긴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냐?”

“그냥요.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곧 실감하게 될 거다. 아무튼, 서두르자. 다들 기다리겠다.”

운전대를 잡으며, 아저씨께서 별스럽지 않다는 듯 물어오셨다. 차는 이미 부드럽게 출발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곡은 다 만들었냐?”

“어? 어떻게 아셨어요?”

“이틀 뒤에 녹음하자는 얘기. 곡 하나 더 추가하자는 거 아니었냐?”

와, 그냥 어디 다리 위에서 자리 까셔도 되겠네.

하여간 눈치 하난 끝내주신다니까.

“왜 마음에 안 들어?”

“뭐, 그럭저럭요.”

“잘 나왔나 보네.”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요?”

“내 귀엔 그렇게 들렸는데? 아, 근데, 그거 가사는 어떻게 할 거냐?”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다가 대충 말했다.

“가사 없이 갈 건데요?”

백미러로 나 바라보시는 아저씨. 고개를 갸웃거리시더니 다시 물으신다.

“인트로?”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암튼 나중에 보시면 알아요.”

“그래?”

재밌다는 표정을 감추지도 않으시고, 단지를 벗어나자마자 속도를 내기 시작하셨다.

***

청담동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작은 건물은 꽤 세련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세워진 건물인가 보다.

그 앞에 차를 대충 세우고 말씀하신다.

“안 내리고 뭐 해?”

“이렇게 세우면 딱지 끊을 텐데요?”

“걱정도 팔자다.”

아저씨 말씀대로였다.

내리자마자 달려오는 남자가 얼른 고개를 숙여 보인다.

아, 발렛이 되는구나.

그 남자가 아저씰 알아보곤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오랜만이시네요.”

“그러게. 한 2년만인가? 근데, 너 좀 삭았다? 그래서 장가는 가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아저씨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셨다.

“하, 웃기는 놈이네. 그랬다 이거지? 결혼하면서 날 부르지도 않아?”

“흐흐흐. 그냥 식구들하고 간단히 밥만 먹었어요.”

남자는 아저씨와 꽤 친해 보인다.

그만큼 여길 자주 왔었다는 건데.

아저씨가 남자에게 차 키를 넘겨주는 동안, 차에서 내린 나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희한하게도 간판이 딱 하나만 걸려 있다.

에리슨 스튜디오.

에리슨? 이건 뭔 뜻이래?

머릿속에서 아무리 떠올려봐도 매칭되는 단어가 없다.

그냥 누구 이름인가? 아니면 회사 이름쯤 되는 건가?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아저씬 지갑에서 오만권 몇 장을 꺼내 발렛 파킹하는 분께 내밀고 있었다.

“분유 값이나 해라.”

“어? 애 있는 건 어떻게 아시고?”

“내가 널 모르냐? 사고도 안 쳤는데, 살림부터 차렸을까?”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덧붙이신다.

“미안하다. 알았으면 갔을 텐데.”

“아이고. 말씀만으로도 감사하죠.”

“자식. 여전하네.”

그러곤 내게 손짓하며 말씀하셨다.

“여긴 김도준. 앞으로 자주 볼 거다. 도준이 넌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다.”

“예.”

짧은 머리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한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을 땐 이미 아저씨께선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얼른 뒤쫓아 건물 안으로 달려가니, 엘리베이터가 막 열리고 있었다.

***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간 후, 문이 열리며 우릴 맞이한 건 복도 같은 게 아니었다.

탁 트인 공간. 한 층을 통째로 쓰는 모양이었다.

한쪽에는 네 명의 남자들이 모여서 뭔가 불만이 있는지 씨근덕거리는 중이었다.

“아니, 뭐야? 왜 여태 안 와?”

“그러게. 대체 어떤 놈들을 섭외했기에 이 지랄이래?”

“미친 거지. 연주자들이면 적어도 한 시간 전엔 와서 세팅해야 하는 거 아냐?”

“글쎄요. 와서 보니까 악기는 이미 세팅되어 있던데요?”

“얀마! 악기만 세팅하면 끝이야? 이것저것 조정도 하고···. 어? 혁수 형!”

누군가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걸 보고 반색을 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아저씨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오히려 아저씨더러 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 내 뒷담화 중?”

“에이, 형. 그걸 말이라고······.”

“아뇨. 그게 아니라, 연주자들이 아직 안 와서요.”

“요즘 것들이 다 그렇지, 뭐. 하아, 하루 꼬박 녹음해도 다 할 수 있을까 말까 한데. 시작부터 이렇게 삐거덕거리니 걱정이네.”

“아니, 형. 어떤 놈들을 섭외했기에 이래? 혹시 이상한 애들 부른 건 아니지?”

우르르 몰려와 떠들어대는 남자들을 한차례 둘러보곤 아저씨께서 날 앞으로 내세우셨다.

“인사들 해. 여긴 김도준. 말했지? 이번에 데뷔할 거야. 그리고 여기는 윤지수. 프로듀싱 맡아줄 친구. 너보다 곱절은 더 살았으니까, 까불지 말고. 아, 그리고 믹싱하고 편집 맡아줄 친구들이니까 인사들 해.”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부터 손을 내밀어 왔다.

아저씨께서 프로듀서라고 소개한 남자다.

“윤지수다. 잘해보자.”

그 뒤로 세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든다.

“오올, 비주얼 죽이네. 그냥 아이돌 쪽으로 가지그래?”

“아이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혁수 형이 우리 부른 거 보면 모르냐? 박준우다. 다들 똘생이라고 부르는데, 넌 그렇게 부르지 마라.”

그렇게 부르지도 못하게 할 거면서 별명을 알려주는 건 또 뭘까?

“아, 예. 김도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캬! 인사성 밝은 거 봐. 애가 됐네, 됐어.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눈웃음치는 것도 딱 내 스타일이고.”

“그래, 그래. 내가 봐도 넌 조현이 취향이니까, 진짜 조심해라.”

무슨 의미일까? 할 때 김조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은근슬쩍 내 팔뚝을······. 으아, 이런 뜻이었어?

잽싸게 뒤로 물러나며 세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박준우, 김조현, 오구진. 오케이, 기억했다.

음향이랑, 믹싱, 편집 등 오디오 인터페이스 조절까지 포함해 오늘 작업을 도와줄 엔지니어들이었다.

“근데, 어쩌냐? 가수는 왔는데, 정작 연주자들이······.”

그때 아저씨가 그게 뭔 말이냐는 듯 툭 하고 내뱉으신다.

“왔는데?”

“예? 그게 무슨······?”

대놓고 날 바라보는 아저씨.

그 시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가, 순간 지수 형이 눈을 치켜떴다.

“에에?”

“리액션 참 저렴하네. 에에는 무슨.”

“얘, 싱어라고 하지 않았어요?”

***

인이어? 가이드?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드럼 세트의 높낮이와 위치 조정만 끝내곤 곧바로 스틱을 들자,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가볍게 스틱을 놀리기 시작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당, 탕!

드럼이 내는 소리가 공간을 울리고, 내가 물었다.

“녹음······. 안 해요?”

내 물음에 지수 형이 쓴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아저씨한테 귓속말을 하는 게 보인다.

아저씨께서 픽 하고 웃으며 뭐라고 얘기하자, 그제야 지수 형이 돌아섰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엔지니어들한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부스 안에 있는 스피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준비되면 연주 시작합니다. 녹음은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악보 중 하나를 떠올렸다.

곡조는 알앤비가 가까운 발라드다.

탕! 탕! 탕! 두그두그두그······타당! 탕! 타당! 탕!

느린 속도로 리듬에 맞춰 두드리다가 이내 템포를 끌어올렸다.

타다다다다다, 탕! 타당! 탕!

그때부터 드럼 소리가 부스 안을 울리며 하나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타당, 탕!

마지막으로 스틱을 놀리고 난 뒤,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다들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아저씨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계시기에 뭐가 잘못됐나 싶어서 마이크에 대고 물었다.

“문제라도 있나요?”

대답이 들려오질 않는다.

다시 물었다.

“다시 할까요?”

그제야 지수 형이 얼른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곤 한숨과 함께 얘기했다.

- 야, 너······. 후우. 됐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쟤 뭐냐? 기계야? 어떻게 박자 한번 안 놓쳐?

- 가수라며? 뭔 가수가 드럼을 저렇게 치냐?

- 설마, 다른 악기도 저만큼 치는 거 아냐?

- 미친! 그게 말이 돼?

그때였다.

지수 형이 다소 엄격한 표정을 짓더니 소리쳤다.

- 다들 집중 안 할래?

그러곤 내게 물었다.

- 어떻게 할래? 기타? 베이스? 하, 나 참. 내가 물으면서도 황당하네. 형! 이거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아저씨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자, 지수 형은 날 또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한차례 한숨을 폭 내쉬었다.

- 이젠 나도 모르겠다. 후우. 도준······이라고 했지? 어떻게 할래? 순서는 네가 결정해라.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저어, 세션별로 끝내는 것도 가능할까요?”

- 세션별로?

“예. 이왕이면 스틱 잡은 김에 드럼부터 끝내고 싶은데요.”

- 너 지금 그게 무슨······. 설마, 나머지 네 곡 전부 드럼부터 끝낸 뒤에 다른 악기로 넘어가겠다는 거냐?

“안될까요?”

부스 밖이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한숨 소리가 들리며 침묵이 깨어졌다.

- ······네 마음대로 해라.

***

악기 녹음이 전부 끝났다.

어젯밤 작곡한 곡까지 포함해서 다섯 곡 모두.

그런데도 녹음을 마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남짓. 한 번도 재녹음은 없었다.

“어디 가서 얘기해봤자 욕만 처먹을 거야.”

“그러게. 누가 믿겠냐고.”

“그나저나 이렇게 녹음해서 곡이 제대로 나올까 모르겠네.”

“모르지. 일단 합쳐보자고.”

“근데, 이럴 거면 우린 왜 불렀대?”

“내 말이. 이 정도는 누가 해도 되는 거 아냐? 이건 뭐······. 스위치네 스위치. 녹음 시작, 녹음 끝. 그냥 버튼 누르는 거밖에는 한 일이 없다니까.”

“후우. 진짜 자괴감 든다. 뭐 손을 대려도 댈 데가 없으니······.”

세 사람의 엔지니어들이 모니터를 보며 곡을 합치고 있을 때, 뒤쪽에선 지수 형이 아저씨와 얘기 중이다.

“쟤 뭐에요? 진짜 가수가 맞긴 해요? 무슨 가수가 악기를 저렇게 다뤄? 나 참, 내가 이 바닥에서만 20년이요. 그런데 저런 놈은 또 처음 보네. 형, 진짜 말해봐. 쟤 뭐하는 애야? 아니, 어디서 찾아낸 거야? 저런 괴물 같은······.”

“하나씩만 물어라. 내가 다 정신이 없으려고 한다.”

말을 이렇게 하지만, 여전히 여유롭기만 한 아저씨를 지수 형이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물으면 대답은 해줄 거요?”

아저씬 웃으며 고개를 내저으신다.

“아니.”

“쯧, 그럼 그렇지. 아무튼, 이제 노래만 녹음하면 끝인데, 어떡할 거요? 마저 가?”

“시간이 돈이란 거 몰라?”

“에휴! 내 그럴 줄 알았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던 지수 형이 날 힐끔거린다.

“근데, 가이드 없이 되려나 모르겠네.”

“없어도 돼.”

“하긴, 가사 다 붙어서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네. 아, 근데 보니까 조마루한테서 가사 받았더구먼. 어떻게 받았대? 요즘 콧대 장난 아니라던데?”

“곡 보여주니까, 주던데? 조건이 없진 않았지만.”

“조건? 무슨······.”

그때, 스피커에서 곡이 흘러나왔다.

곡을 완성한 모양이다.

동시에 엔지니어들이 소리쳤다.

“와! 뭐 이런!”

“진짜 쩐다!”

“꼭 합주한 거 같네. 어떻게 이렇게 딱딱 맞는 거지?”

“시끄러워! 좀 조용히들 해봐.”

지수 형의 일갈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다음부턴 다들 말없이 녹음된 곡들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곡이 끝나고.

“후우, 다음 거 틀어봐.”

또 한 곡.

“다음.”

“다음.”

“다음.”

그렇게 다섯 곡을 연거푸 들은 뒤였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혀 있다.

그런 와중에 지수 형이 엔지니어들에게 물었다.

“손 볼 데 있어?”

“보긴 뭘 봐요?”

“세션 합치면서 굵직한 건 다 처리했어. 다듬기만 하면 돼.”

“참네. 이런 식이면 한 달에 수백 곡도 만들겠네.”

세 사람이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지수 형이 아저씨한테 묻는다.

“근데 형, 누구야?”

“뭐가?”

“이거 작곡한 사람.”

“그건 왜 물어?”

“왜긴. 몰라서 물어? 이 정도 곡이 쉽게 나오는 게 아니잖아? 솔직히 이걸 연주한 저놈도 장난 아니지만, 이 곡들을 만든 놈도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 뭐야, 그 표정? 서, 설마?”

아저씨의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짓궂은 미소가 어려 있는 걸 보다가 지수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다.

“와, 나! 몰빵도 정도가 있지.”

혀까지 차다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더니 날 부른다.

“노래······. 지금 할 거지?”

물으면서 시간을 확인한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웬만하면요.”

“그래. 하는 김에 끝을 보자. 부스로 들어가라.”

“예.”

“자자, 그만들 떠들고 녹음 준비해. 지금 바로 들어간다!”

그래도 프로는 프로들인 모양이다.

방금까지 툴툴거리고들 있더니만, 지시가 떨어지자 능수능란하게 기계들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마이크 앞에 선 뒤 심호흡을 했다.

귀에는 헤드폰을 쓰고서.

밖에서 지수 형이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다가 내게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후,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음에 맞춰서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창밖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일제히 날 쳐다본다.

경악한 눈빛이 되어.

***

네 곡의 녹음이 끝났다.

어제 작곡한 곡만 녹음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

다들 기가 막히다 못해 이젠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상태로 누군가 중얼거렸다.

“뭔 노래를······.”

“지금 나······. 무슨 사기당한 기분이 드는데, 나만 그런 거냐?”

“크크크. 그러게. 비주얼? 기타 연주? 다 미끼네, 미끼. 진짜는 따로 있었네.”

세 사람의 엔지니어들이 고개를 절절 흔들고 있을 때, 내가 물었다.

“다시 한 번 가요?”

인터넷으로 알아본 바로는 녹음을 한 번에 끝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기에 물은 터였다.

한데, 지수 형이 미쳤냐? 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왜요? 하는 얼굴로 마주 쳐다보자, 되레 묻는다.

“다시 부르면?”

“······?”

“더 잘 부를 자신은 있고?”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히죽 웃었다.

그러자 지수 형이 헛웃음을 지어 보인다.

“쓸데없이 서로 힘 빼지 말자.”

그러곤 아저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제 한 곡만 부르면 끝인가?”

씨익.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웃고 있을 때, 아저씨께서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불길함을 느낀 걸까?

지수 형이 눈을 가늘게 해 보일 때, 아저씨께서 되물으셨다.

“뭔 소리야? 이제 시작인데.”

그러시더니 한쪽에 놓아두었던 서류가방을 열더니 종이 몇 장을 꺼내셨다.

“응? 그건 뭐야?”

“뭐긴, 악보지.”

싱긋이 웃으시는 아저씨 손에 들린 악보에는 영어 가사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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