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28. 데뷔 임박(1)
아저씨께서 브라이언과 함께 4번 방 안에서 얘기를 하시는 동안, 우리 역시 5번 방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음악 얘기였다.
“싱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콜린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하는 건 아직도 현실감이 떨어진다.
딱히 레이크헬의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터넷에서나 보던 얼굴 아닌가.
“기타······. 아쉬워.”
말수가 적은 편인지, 아니면 숫기가 없는 건지 신중한 어조로 짧게 말하고 있는 베릴 역시 마찬가지.
희한한 건 나 역시 아무 위화감 없이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거다.
“기타?”
조금 의아해져서 되묻자, 콜린이 소파에서 몸을 묻은 채 벽에 기대어 있던 기타를 가리켰다.
“영상, 우리도 보았거든.”
“아, 영상.”
근데 그게 왜?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고 바라보자, 콜린이 픽하고 웃어 보였다.
“이상하긴 하더라.”
“그러니까, 뭐가?”
“아까, 공연 말이야. 뭔가 좀 답답해 보였거든.”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꼭 무슨 친구들하고 얘기하고 있는 느낌인데?
그건 그렇고.
답답하다는 얘기는 또 뭐지?
베릴이 아쉽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연주 말이야. 그때랑 다르다고나 할까.”
콜린이 얘기하고 있을 때, 베릴이 끼어들었다.
“형편없어.”
음, 이쪽도 직구 스타일인가?
뭐, 좋아. 덕분에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아들었다.
나는 가만히 베릴을 응시하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기타를 집어 들곤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며 얘기했다.
“뭘 기대했는데?”
띠링 띠디디딩 띠디딩.
현란한 음이 공간에 퍼져 나갔다.
“기타리스트지?”
베릴에게 묻자, 그가 잘생긴 얼굴로 날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재밌네.”
핑거스타일로 현을 뜯으며 이런저런 곡을 연주하면서 콜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만약에 말이야.”
내가 슬쩍 말끝을 흐리자, 콜린이 눈을 빛낸다.
“내가 드러머라고 하면 어쩔래?”
서서히 입이 벌어지는 그를 보며 나는 기타를 베릴에게 던지듯 건네주었다.
“왜? 장난 같아?”
성큼 걸음을 옮겨 드럼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스틱을 움켜쥐고 씨익 웃어 보였다.
***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전개다.
그도 그럴게, 느닷없이 합주를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누구도 강요한 적은 없다.
물론 시작은 내가 먼저 했지만.
맨 처음 연주한 곡은 이번에 발표한 레이크헬의 신곡 ‘SOMETHING OR NOTHING’.
소프트한 멜로디에 꽤 신 나는 곡이고, 그런 만큼 연주도 무겁지 않다. 특히 후반부에는 기타를 비롯해 다른 악기들이 경쾌한 리듬으로 후렴부를 반복하는, 랩으로 치면 훅이 인상적인 곡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요즘 밴드들이 많이들 추구하는 곡조다.
당연히 드럼을 때리는 스틱은 바쁠 수밖에 없다.
뭐, 리프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베릴에 비할 바겠느냐만.
콜린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그도 베이스엔 익숙한지 어느새 연주에 합세해 미친 듯이 현을 튕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래하고, 또 연주하고······.
그걸 반복하는 사이 곡이 끝났다.
하지만, 곡이 끝났다는 것이지 연주가 끝났다는 건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그들의 디지털 앨범에 실려 있는 곡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펼쳐냈다.
보란 듯이 스틱을 휘둘러 연주를 이어갔고, 두 사람은 어느 순간부턴 당연하다는 듯 따라오고 있었다.
세 곡, 네 곡, 다섯 곡······.
아마 레이크헬의 팬들이 지금의 광경을 보았다면, 눈물 콧물 흘리며 기뻐 날뛰다가 입에서 거품을 물고 자지러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기절했을지도 모르지.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연습실 안에서 펼쳐진 합주는 그만큼 수준이 높았다.
게다가 즐거웠다.
마치 세이버스와 함께 공연하며 느꼈던 자유로움과 아저씨께서 불러주신 세션들의 엄격함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 세계적인 수준의 밴드라 이건가?
머리칼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쉬지 않고 탐들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러길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타당 타다다다다다다 탕!
스틱 끝이 미들 탐을 때리는 순간, 모두의 연주도 일제히 그쳤다.
“헉헉헉헉!”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까지 부르느라 가장 힘들었을 콜린이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안 되겠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채로 날 무슨 괴물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뭐, 뭐야? 너 진짜 드러머였던 거야?”
나도 숨 좀 쉬자.
크게 숨을 들이켜며 간신히 내뱉었다.
“아니. 싱어.”
“하! 뭐, 이런······!”
믿기 어렵다는 눈빛을 해 보이는 콜린을 향해 툭 하고 내던졌다.
“베이스, 꽤 잘 치네.”
그러곤 베릴에게 물었다.
“실망했다면 미안한데, 내가 아직 서툴러. 기타를 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긴 하지만, 누구처럼 힘겨워 보이진 않는 베릴. 저건 성격이다. 차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연주는 꼭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거칠기 짝이 없다.
속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있는 그대로.
“한 달쯤 됐나? 기타 잡은 지······.”
순간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숨소리는커녕 바늘 하나라도 떨어졌다간 천둥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그 속에서 다시 말했다.
“노래는 한 천 년쯤 불렀지만.”
농담이라고 생각한 건가?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날 바라만 보던 콜린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베릴 역시 당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내가 다시 말할 때까지는.
“나, 17살이야. 작년까진 공부만 하던.”
뚝 하고 웃음이 가셨다.
“지, 지금 그 말······. 믿으란 거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되물었다.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고요. 그래서, 왜 온 건데?”
“응?”
“설마 영상 속의 실력이 진짜인지 어쩐지 확인이나 하려고 미국에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거 아냐?”
“그야······.”
그게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콜린이 몇 차례인가 숨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기타리스트가 필요해.”
이건 또 무슨?
나는 베릴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되물었다.
“쟨 어쩌구?”
내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자, 그제야 콜린이 자세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걸 또 나는 매우 즐겁게 들었고.
중간에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나가서 콜라랑 과자까지 들고 와서.
원래 남의 사정 얘길 듣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으니까.
***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 아저씨께서 물으셨다.
“아까 들어보니, 합주하는 거 같던데 대체 셋이서 뭐한 거냐?”
“음······. 대화?”
대답이 마음이 드신 걸까?
아저씨의 한쪽 입꼬리가 미묘하게 일그러지신다.
진짜 마음에 드는 경우에만 저런 표정 지으시던데.
뿐만 아니라 아저씬 손으로 내 머릴 가볍게 헝클어뜨리시며 기특하다는 듯한 말투로 물어오셨다.
“그래서 어떤 얘기?”
“곡을 하나 만든 모양이에요.”
“신곡?”
“예. 근데, 트윈 기타라네요.”
잠시 생각에 잠기던 아저씬 매만지던 턱에서 손을 떼며 알겠다는 듯 얘기했다.
“그러던 중에 네 영상을 본 거구먼.”
“뭐, 그런 거죠.”
씨익.
음, 또 또 저러신다.
가끔 한 번씩 저렇게 불안하게 웃으신단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께서 은근한 어조로 물으셨다.
“그래서 어쨌는데?”
“뭐가요?”
일단 한발 뒤로 빼 보지만,
“그냥 그걸로 끝냈을 거 같진 않아서 말이야.”
“······.”
“내가 아는 너라면 말이지.”
이거, 나보다 더 날 잘 아시는 거 아냐?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날 모르시는 거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뭘 어째요. 좀 봐줬죠.”
내 대답에 크큭거리시더니, 아저씨께서 한마디 하신다.
“걔들, 오늘 계 탔구만.”
그러더니, 내 이마에 딱밤을 먹이시며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크윽. 아프다니까요.”
“아프라고 때리지 그럼. 아무튼, 호구 되기 싫다고 한 건 너 아니었냐? 아냐?”
“그야 그렇긴 하지만······.”
할 말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고 있자, 아저씨께서 픽 하고 웃으신다.
“뭐, 이것도 빚이라면 빚이니까.”
“예?”
“아니. 그냥 혼잣말이니까, 신경 쓸 거 없고. 그나저나 안 궁금하냐?”
“뭐가요?”
“내가 브라이언이랑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제가 궁금해해야 하는 거에요?”
날 가만히 바라보시던 아저씬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그러곤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셨다.
“아니.”
그러줄 알았기에 그 점에 대해선 아예 신경을 꺼버린 후, 물었다.
궁금한 건 따로 있었으니까.
“녹음 준비 끝나셨다고 했죠?”
“세션 쪽만 빼고.”
“가사는요?”
“그것도 받아놨지.”
“그럼, 하죠.”
“뭘? 녹음?”
“예.”
잠시 날 빤히 쳐다보시던 아저씨께서 되물으신다.
“언제?”
“모레쯤? 그 정도면 될 거 같네요.”
“그래?”
뭔가 더 묻고 싶은 게 있으신 거 같은데, 더 이상은 묻질 않으신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해 놓으마.”
말만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방에서 나가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하셨다.
***
달리는 리무진 안에서, 두 사람은 몇 번이나 탄식을 흘렸는지 모른다.
종이 한 장을 함께 바라보면서.
마주 앉는 구조로 되어 있는 차의 특성상 그 모습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었던 브라이언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뭔데 그렇게 봐?”
그가 손을 뻗자, 베릴이 종이를 뒤쪽으로 물리고 있다.
브라이언이 서운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자, 콜린이 쿡하고 웃더니 베릴에게서 종이를 빼앗아 브라이언에게 건넸다.
아니, 브라이언이 받기 전에 살짝 뒤로 빼내며 경고했다.
“조심해. 이거 찢어지기라도 했다간 베릴이 널 죽일지도 모르니까.”
흠칫.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던 브라이언은 베릴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방금 콜린이 한 말이 장난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곤 조심조심 종이를 받아들었다.
“악보?”
그것도 손으로 대충 그린 조잡한······.
“응? 이 곡은?”
한참 동안 곡을 들여다보던 브라이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거 지난번에 신곡으로 쓴다며 네들이 만든 거 아냐?”
“맞아.”
“근데 이게 뭐 어떻다는 거지?”
잠시 브라이언을 한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콜린이 한숨과 함께 얘기했다.
“이번에 기타 부분, 트윈으로 가려고 했던 건 알지?”
“그랬지. 그 때문에 여길 온 거고. 기타리스트 하나를 더 구하려고 말이지.”
“근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을 거 같아.”
어째서?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브라이언에게 콜린이 말했다.
“12현 기타를 쓰기로 했거든. 하아, 우리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녹여낼 수 있을 거라곤 정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을 때였다.
눈치 빠른 브라이언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설마?”
그러더니 종이와 콜린 그리고 베릴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외쳤다.
“라이터였던 거야?”
콜린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브라이언이 머리통을 붙잡고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아악! 미리 알았으면, 옵션을 그렇게 하지 않았지! 내가 미쳐! 으아아아아악!”
발악하듯 몸부림치다가 자꾸만 운전석 쪽을 노려보는 게, 금방이라도 차를 돌리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런 그에게 콜린이 물은 것도 그때였다.
“우리, 투어 언제 끝나지?”
“응?”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며 브라이언이 콜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건 왜?”
“아니······. 돌아갈 때 여기에 다시 한 번 들릴까 싶어서.”
그의 얘기에 브라이언이 뭔가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듯 갑자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