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24. 놀다 올게요(4)
악기를 다루기 시작해서인지는 몰라도 마음에 드는 첫 곡을 만들어낸 이후 이틀 만에 세곡을 더 완성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아저씬 아예 몇 곡 더 해서 아예 정규 앨범으로 가자고 하셨지만, 난 고개를 내저었다.
이유?
당연히 있었다.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던 것이다.
내 안에선 갈수록 기대치가 높아져 가는데, 나오는 곡은 다 거기서 거기.
더 큰 문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얼마나 답답했는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밤을 지새운 날만 해도 며칠인지 모를 정도다.
몇 날 며칠을 5번 방에 처박혀 악기를 쳐봐도, 오선지가 수북해질 때까지 연필을 휘갈겨봐도 소용없었다.
뭔가 거대한 벽이 눈앞에 가로막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파악! 하고 오는 뭔가가 없다.
희주 생일날 느꼈던 그 느낌이, 그 흥분이, 그 쾌락이 없었다.
그때 함께 연주했던 밴드가, 아니 정확히는 합주할 당시에 느꼈던 감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지금의 내 곡에선 묻어나질 않는다.
“혼자선 안되는 건가?”
젠장!
연락 한번 해볼까?
아이씨. 그놈의 동영상······.
분명 그걸 봤을 텐데······.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겠지.
어쩔까?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이 홍대 쪽에 많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그쪽을 기웃거려보든가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뭐냐? 그 표정은?”
돌아보니, 언제 오셨는지 아저씨께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 계셨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털어놓았다.
“아저씨.”
“왜?”
“실은요······.”
머릿속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터라 중언부언했던 거 같다.
그래도 말하고 싶었던 건 다 말한 듯하다.
작곡한 곡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과 뭔가 벽에 막힌 듯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 그리고 희주 생일날 느꼈던 감정들까지.
그 얘기를 한참 듣고 계시던 아저씨께서 턱을 매만지시더니 물어오셨다.
“그러니까, 요는 혼자서 연주하는 건 이제 질렸다는 거 아니냐?”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크게 벗어난 것 같진 않다.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세션들 불러주랴?”
“아는 분들 계세요?”
씨익.
아저씨께서 뭘 또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웃으셨다.
그러곤 보란 듯이 핸드폰을 꺼내셨다.
***
안으로 들어서는 이들은 다들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다.
연주만 할 거라서 부른 세션은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드러머, 이렇게 세 명. 그들은 여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듯, 익숙하게 걸음을 옮겨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다가 가장 선두에서 서 있던 기타리스트가 날 발견하곤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너구나, 혁수 형이 말한 애가.”
“처음 봬요. 김도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뭘 또 그렇게 딱딱하게. 오늘 한번 신 나게 놀아보자.”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가 이내 시선을 돌리곤 드러머에게 말했다.
“뭐해? 스틱 잡지 않고?”
성격 한번 어지간히 급하네.
아니나 다를까. 드러머가 한소리 한다.
“닦달 좀 하지 마. 그러니까, 형네 밴드 애들이 만날 나한테 전화하는 거 아냐?”
“너나 우는 소리 좀 그만 해라. 수철아! 첫 곡은 ‘Forever And One’으로 가볍게 간다.”
수철이라고 불린 남자가 베이스를 메고 있다가 날 힐끔거리더니 더듬더듬 대꾸했다.
“따, 따라올 수 있을까요?”
그러자 기타리스트가 날 향해 눈빛으로 물었다.
할 수 있겠냐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는 코드를 잡았다.
“호오. 자세 나오는데? 좋아. 일단 네가 리드. 내가 따라간다. 오케이?”
그 말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곤 현을 뜯기 시작했다.
띵 띵 띵 딩······띵 띵 띵 딩······.
헬로윈즈의 ‘Forever And One’.
메탈밴드 중에서도 스피드하면서도 멜로디가 돋보이는 그룹인 헬로윈즈이지만, 이 곡은 오히려 느린 템포로 진행되며 이전의 곡들보다 한층 더 멜로딕하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들으면 꼭 발라드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타를 치며 리드해 나가다 전주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 드럼이 치고 들어왔다.
챙······챙쟁···탕! 탕!
가볍게 치고 들어오는 순간, 서서히 방 안의 공기가 달궈지는 게 느껴진다.
그사이 이미 또 한 대의 기타와 베이스는 선율을 타고 끼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연주했을까.
묘한 느낌이다.
실력으로만 따지자면 희주 생일날 함께 합주했던 밴드보다 확실히 낫다. 아니 아예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잘한다.
그렇긴 한데······.
이상하게 답답하다.
뭔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랄까.
왜냐고 물으면 대답하긴 어렵다.
한 명만 빼면 다들 음도 정확하고 박자감도 훌륭하다.
게다가 테크닉도 대단하다.
꼭 교과서 같달까.
연주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한데······.
오히려 눈이 가는 건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베이시스트였다.
수철이 형이라고 했던가?
가끔 음도 틀리고, 간혹 박자를 놓칠 때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듣기 좋았다.
그렇게 상념에 휩싸여 있는 동안, 어느새 곡이 끝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타리스트의 엄청난 구박이 시작되었다.
“장수철! 지금 장난해? 이 곡이 그렇게 어려워? 대체 연주하는 내내 몇 번을 틀리는 거야? 이 자식아! 어떻게 여기 있는 고등학생보다 못해? 그동안 뭘 한 거야? 음악이 쉬워 보여? 응? 하아,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때려쳐!”
폭풍처럼 몰아치는 구박에도 수철이 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쩔쩔매고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로선 이해가 가질 않는다.
분명 음이탈도 잦고 박자감도 떨어지긴 하는데······.
그렇다고 못 한다고 말하기엔 좀 애매하지 않나?
아니, 느낌만 놓고 보면 오히려 여기서 가장 나았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기타리스트가 씩씩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미안하다. 쟤가 아직 몸이 안 풀려서 그런 모양이니까, 네가 이해해라. 아나, 이래서야 혁수 형한테 쪽팔려서······. 자자, 정신들 차리고! 아무리 공연이 아니라고 해도, 혁수 형이 직접 부탁했잖냐? 혹시 아냐? 얘가······. 도준이라고 했지? 도준이가 나중에 진짜 끝내주는 기타리스트가 될지?”
잠시 후, 드러머가 스틱을 부딪쳤다.
탁! 탁! 탁!
이번엔 더 하트의 ‘Alone’.
건반은 기타리스트가 맡았다.
그렇게 한 곡 또 한 곡······. 연주가 거듭되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여기 모인 세션들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굳이 얘기하면 수준급?
그럴만한 게, 저기서 저렇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는 수철이 형마저 테크닉이 장난이 아니다.
아마 일반인들이 듣기엔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모를 정도로 아주 미세한 실수들일 뿐이었다.
뭐, 물론 내 귀에는 다 들렸지만.
“후우! 좀 쉬자!”
헉헉대는 드러머가 한쪽에 놓아둔 물을 병째로 들이켜고, 그 사이에 수철이 형이 막내답게 잽싸게 움직여 짜장면을 배달시켰다. 얼마나 익숙한지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
배가 고팠는지, 다들 음식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테이블 위에는 국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은 짬뽕 그릇과 바닥까지 보이는 짜장면 그릇만이 겹쳐 있을 뿐이다. 아, 그 안에 담겨 있는 단무지 그릇이랑.
나야 한창 먹을 때니까 그렇다지만, 다들 먹성 한번 좋다고 생각하며 믹스커피를 타왔다.
그러곤 형들한테 한 잔씩 건네며 물었다.
“형들은 음악 왜 해요?”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기타리스트였다.
“나? 나야 음악이 좋아서······라고 할까? 넌 어떤데? 아까 보니까, 실력이 장난 아니던데. 그 정도까지 하려면 뭔가 목표가 있었을 거 아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야 뭘 아나요? 그냥 하는 거죠.”
현재 내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설명하기 곤란해서 그냥 내 나이 때에 할만한 대답으로 대신하곤 드러머 쪽을 바라보았다.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닌데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고 있던 드러머가 응? 하는 눈빛을 해 보이더니 씨익 웃어 보인다.
“음악이라······. 잘하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라고 하면 좀 싼 티 나나? 흐흐흐. 솔직히 성공하고 싶어서지. 그래서 매번 앨범 작업에 참여하곤 있는데······.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음악 시장이 좀 척박하잖냐? 가수들이랑 달리 연주자들이 빛 보기 어려운 환경이지.”
“그렇긴 하지. 도준아. 너 노래는 좀 하냐?”
“······못한단 소린 안들을 정도는 돼요.”
“그래? 그럼······. 오늘 처음 본 형이 이런 말 하는 거 좀 우습긴 한데, 이왕 음악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그냥 가수 해. 넌 비주얼도 되고, 아직 어리니까 이제부터 준비하면 가능할 거야. 그러지 말고 노래 한번 해볼래? 형이 한번 봐줄게.”
“하하하. 아뇨. 괜찮아요.”
손사래를 쳤다.
아저씨가 자기가 보는 데서가 아니면 노래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얘기니까.
그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잘난척하며 노래할 때가 아니라 콱 막힌 듯 답답한 속부터 풀어내는 게 먼저였으니까.
“수철이 형은요?”
“응? 나?”
“예. 형은 왜 음악 하는 건데요?”
실은 가장 듣고 싶은 쪽은 이쪽이었다.
어째서 저 형은 음악을 하는 걸까?
왜 저 형이 하는 연주랑 앞서 대답한 두 사람의 연주가 다르게 느껴지는 거지?
기대감을 한껏 품고 대답을 기다렸다.
한데, 수철이형은 어째서인지 자꾸만 머뭇거리며 다른 형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몇 번인가 입술만 달싹거릴 뿐 차마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쪽팔리다는 듯이.
“연주 잘하면······. 여,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잖아.”
어?
뭐지?
머릿속에서 뭔가 빠지직하는 느낌이······.
찌릿찌릿한 게 전기가 흐르는 듯,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세션들이 다들 돌아가고 난 뒤, 혼자 남게 된 나는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걸까? 말까?
혹시라도 기억 안 난다고 하면 어쩌지?
그들도 동영상을 보았을 텐데, 화내는 거 아닐까?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결심을 굳히고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전에 번호를 받아놓았던 게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뚜르르르르르.
신호음이 한참 울리다가 조금 졸린듯한, 이제 막 깬 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흐느적거리는, 그러면서도 살짝 갈라진, 아직 술이 덜 깬듯한 목소리였다.
- 여보세요.
“저어······. 안녕하세요. 김도준이라고 합······.”
- 누구?
“김도준이라고, 지난번 호텔에서······.”
- 헉! 김도준?
갑작스럽게 증폭된 음량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핸드폰을 귓가에서 떨어뜨렸다.
그사이, 수화기 너머에서 여러 소리가 섞여 들려오며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 뭐, 뭐야! 김도준? 그 김도준?
- 혀, 형! 걔가 왜 전화했데요?
- 우리 밴드에 든 데요? 응? 그런 거에요?
난리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제껏 긴장했던 게 우습게 느껴졌다.
“저, 이렇게 불쑥 전화 드려서 죄송한데요.”
- 아니, 안 그래도 우리야말로 언제 한번 다시 만났으면 했다. 그······동영상 우리도 보았거든.
“아······. 그건···죄송합니다.”
제길!
석준이 자식!
올릴 거면 제목이라도 좀 제대로 달던가.
밴드 털어먹은 반도의 흔한 고교생이 뭐냐.
한숨을 삼키며 얘기했다.
“동영상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 아, 아냐. 그건 괜찮아. 그보다···무슨 일로···. 혹시 우리 밴드에······.
다행히 크게 마음에 담고 있진 않은 모양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얘기했다.
“괜찮으면 좀 뵀으면 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