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화 (23/260)

# 23

#23. 놀다 올게요(3)

일주일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아저씨.

아저씨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우리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었다.

세 분이서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

그저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부분에 대해서 상의하신 걸로 알고 있다.

그러고 나서 내 이름으로 음원 저작권협회에 가입시켰다.

물론 실제로 사용하는 이름은 나뉘게 될 것이다.

내가 부르는 노래와 남들에게 주는 곡을 구분 짓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내 노래를 내놓기도 전에 대중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론 녹음실과 프로듀싱 업체를 알아보시는 중이라고 했는데, 이 부분도 조만간 결정될 거라고도 하셨다.

아, 곡 하나를 팔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800만 원에 음원 저작권료 10%.

얘기만으론 조건이 좋은 건지 어떤 건지는 몰라도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신인 작곡가의 조건은 아니라고 하셨다. 거의 유명 작곡가 수준으로, 특히 저작권료는 보통 잘 받아야 9%인 걸 고려하면 꽤 파격적이라고 하시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크게 관심이 가는 얘기도 아니었고.

그래서 돈 관리도 그냥 어머니께 맡겨버리기로 한 거였다.

정산이야 아저씨가 알아서 잘해 주실 테니 걱정되지 않았고 말이다.

이처럼 아저씨가 열심히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시는 동안, 나는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학교에 자퇴서를 냈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 얼마나 놀라시던지.

나를 잡고 설득하다가 안 되니까, 어머니를 붙들고 늘어지셨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으니까.

문제는 그게 담임 선생님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거였다.

담임 선생님의 SOS에 교장 선생님까지 나서셨고, 그 와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석준과 희주까지 찾아왔다.

하는 수 없이, 선생님들과의 면담은 어머니께 맡겨놓고 교사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 건물이 보이는 운동장 측면, 벤치에 앉아 그들과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사실 대화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었지만.

그도 그럴게, 석준은 시종일관 날 더러 배신자(?)라고 울부짖으며 화를 냈고 희주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나중엔 엉엉 울기까지 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나 때문에 집에서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려 이 학교로 온 건데, 입학한 지 몇 개월 다니지도 않고 내가 그만둬 버리게 됐으니까.

좀 안쓰럽긴 했지만,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로서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이유가 없었으니까.

“너, 진짜 이럴 거냐?”

제대로 사정을 얘기해주지 않아서인 걸까?

석준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눈으로 날 노려보며 얼굴을 찌푸리며 묻고 있었다.

그 옆에선 희주가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여전히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었고.

“아니, 내가 죽으러 가냐? 아니면 어디 원양어선이라도 타러 가? 진짜 왜들 그러는 건데? 오히려 예전보다 낫지 않아? 보고 싶으면 언제든 그냥 전화 한 통 하고 오면 되는 거잖아? 대체 뭐가 문젠데?”

“얀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우리 인생에 한 번뿐인 고교생활이라고! 하이, 씨! 이 새낀 진짜! 낭만을···. 하아! 내가 말을 말지, 말을 말아.”

뭐,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아쉽긴 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음악을 선택하지 않고 공부만 했더라면 오히려 학창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꼴이 돼버렸을 거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외려 기대감에 가슴이 다 두근거릴 정도다.

“김도준!”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들려. 소리 좀 그만 질러.”

“내가 지금 안 그러게 생겼어! 네가 그만두면 이 학교에 나밖에 안 남는 거라고! 응? 넌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외롭게, 쓸쓸하게, 응! 처량하게! 엉! 교실에서 오도카니 앉아서! 에이, 씨······.”

“거, 10초마다 띠롱거리고 있는 까똑부터 끄고 얘기하지그래?”

말문이 막히는지, 석준은 자신이 들고 있는 핸드폰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눈알을 또르르 굴리고 있다.

대충 정리가 됐다고 생각돼, 녀석에게 말했다.

“자리 좀 비켜줘라.”

“으, 응? 어······. 알았어.”

녀석은 희주를 한차례 쳐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렇다고 멀리 간 건 아니다.

딱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한 곳까지만 가서는 애꿎은 땅만 걷어차고 있었다.

돌이라도 하나 주워 던질까 해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애들이 착해서 그런가.

청소들도 잘해요.

고개를 내젓곤, 희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불렀다.

“정희주.”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졌다.

조금 강하게 나가기로.

“내가 지난번에 말했지? 나 너한테 관심 없다고. 그러니까, 이쯤에서 정리 좀 하자. 난 괜한 일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후우. 그러니까······.내가 하고 싶은 말은······.”

“······.”

미치겠다.

눈 좀 깔지 마라.

그러면 파르르 떨리는 긴 속눈썹을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잖아.

머리를 한차례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희주야.”

“······.”

“앞으로도 우린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그렇게 물었을 때였다.

저만치서 고함이 들려온다.

“와아! 저 새끼! 말하는 거 봐! 잔인한 새끼! 너 인마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하냐? 희, 희주야. 울지 말고······. 저런 새낀 그냥 확 잊어버려. 이 오빠가 저 자식보다 더 괜찮은······. 헉!”

석준이 설레발을 치는 사이 희주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러곤 방금까지 울던 사람이 맞는지, 날 무섭게 노려보더니 버럭 고함쳤다.

“나쁜 놈!”

벌떡 일어나더니,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날 쏘아보다가 이내 홱 하고 돌아서 사라져버리는 희주였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어처구니없어서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다가왔는지 석준이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었다.

“뭐냐?”

“뭐겠냐? 걱정돼서 그러지.”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그러는지 쳐다보자, 석준이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게 묻는다.

“나야 집에서 내놓은 놈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넌 아니잖아? 이대로라면 S대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고, 네 머리라면 판사 되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텐데······. 게다가 너희 외할아버지께서 널 오죽 예뻐하시냐? 그러니 알아서 꽃길 쫘악 깔아주시겠다. 그런데 뭐가 문제야?”

있기야 좀 있지.

여러 가지로 복잡한 문제들이.

녀석이 여전히 껄렁거렸으면 나 역시 대충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다가오니 마냥 피하는 것도 좀 그렇다.

잠시 녀석에게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게 있어서 물었다.

“너지?”

“뭐가?”

“동영상 올린 거 말이야.”

잠시 말이 없던 녀석이 뒤늦게 흠칫한다.

그러더니 놀라서 물었다.

“혹시 그게 문제가 된 거냐?

눈치 하난 여전히 빠르다.

아니 머리 회전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그 좋은 머리로 공부나 좀 할 것이지.

툭.

혀를 차면서 어깨에 올려져 있는 손을 쳐냈다.

“네 덕이라고 해두자.”

“그게 무슨 말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했다.

“나 이제부터 가수 하려고.”

“······?”

눈이 휘둥그레진 녀석을 힐긋 바라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러곤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보자. 간다.”

그저 귀찮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저만치 어머니께서 담임선생님과 함께 나오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얀마!”

뒤에서 녀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

그 후론 계획대로 흘러갔다.

형이 이 기회에 자기도 자퇴하겠다는 걸 듣고 어머니께 뒤지게 맞을 뻔 한 일만 빼면.

하여간 틈만 나면 공부 좀 안 해보려고 잔머리 쓰는 거 보면······.

혹시 우리 형 천재 아닐까?

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피식거리고 있을 때 아저씨께서 갑자기 물어오신다.

“검정고시는 언제냐?”

“내년 4월이요. 자퇴한 후 6개월은 지나야 한다네요.”

“그럼 아직 많이 남았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준비 제대로 하고.”

“걱정 마세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설마 똑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그래? 그럼 그동안 열심히 작곡만 하고 있으면 되겠네. 아! 이제 상처도 다 나았으니 악기 연습도 좀 하고.”

오, 기다리던 얘기다.

나는 히죽 웃으며 일어나 드럼 쪽으로 움직였다.

그런 날 보며 아저씨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좋냐?”

좋냐고요?

대답 대신 입매를 호선으로 만들었다.

그러곤 되물었다.

“어떨 거 같은데요?”

말할 것도 없었다.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고.

미칠 것처럼 좋다.

상큼하게 웃어주곤 스틱을 잡았다.

***

그동안 벼려왔던 만큼 한동안은 주구장창 악기만 연주했다.

학교도 그만뒀겠다 아침에 밥을 먹고 나면 곧바로 학원······. 아니, 이제는 소속사(?)라고 불러야 할 HS매니지먼트 사로 와서 먼저 기타로 몸을 풀고 이어 베이스로 감각을 다듬은 다음, 드럼으로 몸을 데웠다. 그러다 가끔 신디사이저로 갖가지 연주를 해가며 쳐보고 싶었던 곡들을 모두 쳐봤다.

그러길 이주일.

어느새 4월은 지나가고, 5월도 중순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악상 하나가 떠올랐다.

머릿속에선 수많은 악기들이 연주되고 있었고, 그 음들이 뒤섞였다가 떨어지고, 다시 또 하나로 모여들길 수차례.

메고 있던 기타를 가만히 쥔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얼른 종이를 찾았다.

한데, 하필이면 오선지가 보이질 않는다.

연필은 하나 굴러다니는데······.

급한 마음에 아침에 들어올 때, 문에 붙어 있던 떼어온 전단 위에라도 끼적거리는 수밖에.

새로 오픈한 고깃집의 전단지였는데, 다행히도 뒷면엔 아무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았다.

그때부턴 정말이지 정신없이 곡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섯 줄의 선조차 그릴 여유가 없어서 음표만 적고, 코드를 표시했다.

그러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지막 음표를 그려 넣고 연필을 내려놓으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는 순간이었다.

“다 된 거냐?”

아이씨! 깜짝이야!

“아, 오셨으면 기척이나 좀 내시지······.”

5번 방 문가에 몸을 기대고 선 채 날 바라보고 계시는 아저씨께 툴툴거렸지만, 아저씬 그저 옅게 웃고 계실 뿐이었다.

그러면서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내게 물으셨다.

“좀 봐도 되냐?”

“안된다고 하면 안 보실 거에요?”

“아니. 볼 거야.”

그러곤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잽싸게 전단지를 집어 드신다.

그러곤 악보를 들고서 소파에 앉아 기타를 집으셨다.

그 후로 한동안 아저씬 연주에 몰두하셨다.

선도 없는데 용케도 알아보신다.

흘러나오는 소리는 내가 상상하던 것보단 좀 못하지만, 내가 주고자 했던 느낌은 묻어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기타 연주를 마치신 아저씨의 입술 사이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아. 넌 뭐냐?”

“그 소리만 한 백번은 들은 거 같네요.”

“내가 그동안 속으로 삼킨 것까지 말해주랴?”

“자꾸 딴소리하지 마시고요······. 그래서 감상은요?”

기대감을 품고 물어보았지만, 아저씬 눈살을 찌푸리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신다.

그 정도로 별로인가?

실망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뭘 쓰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그려댔으니까.

뭐랄까. 홀린 기분? 아무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려낸 악보다. 그걸 과연 곡이라고 할 수나 있을까?

나름 납득이 되어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거 연주 못 한다.”

“아······. 그렇게나 못 써먹을 곡이에요?”

“하!”

아저씬 기가 막히신다는 듯 날 바라보시더니,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이셨다.

“진짜 감당 안 되네. 후우! 너랑 일하기로 한 게 잘한 건지 이젠 판단이 안 선다, 진짜. 아무튼, 원한다니까 확실히 말해주마. 이 곡 못 써먹어.”

“······.”

“어지간한 연주실력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뭐, 너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기타만 해도 그래. 이거 뭐냐? 이걸 누가 따라 가겠냐? 응? 에릭 크립튼? 지미 핸드릭스? 미리 말해두는데, 한국 기타리스트 중에선 어림도 없다.”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자꾸 빙빙 돌리시기나 하고.

어쩔 수 없이 대놓고 물었다.

“그래서, 곡은 어떤데요?”

여태 앓는 소리만 내시던 아저씨께서 처음으로 웃으신다.

그 모습이 어째 좀 악당 같은 느낌인데?

“곡?”

“예.”

“나라면 이런 곡 못 쓰지. 아니, 적어도 한국에서 이런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

“그 얘긴······.”

“무조건 가야지.”

“······?”

“연주할 사람이 없으면 외국에서라도 데려와야지. 이왕 데뷔하는 거 확 다 쓸어버리자고.”

악당 맞다.

표정뿐만 아니라 말투까지. 어디 한군데 흠잡을 때가 없다. 지금의 아저씬······. 누가 봐도 학살자의 얼굴을 하고 계셨다.

저기에서 음산하게 웃음만 흘리면······.

“흐흐흐. 데뷔곡으로 낙점······이란 거다.”

어째,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인데?

그나저나 이거 칭찬 맞는 거지?

씨익 하고 웃고 있자, 아저씨께서 불쑥 물어오신다.

“근데, 가사는 어쩔래?”

“아! 가사······.”

거기까진 생각도 못 했다.

“쯧. 그럴 줄 알았다. 뭐, 그건 차차 얘기하기로 하고. 녹음실이랑 엔지니어링 해줄 친구들,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전부 준비 끝났다.”

“벌써요?”

“벌써는 무슨. 얼른얼른 녹음해서 음원 출시해야지. 여기서 평생 이러고 있을래?”

“한동안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은데요?”

아저씬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리셨다.

“출시는 7월에 하기로 하고······. 서너 곡만 더 준비해서 일단 싱글로 가볼까?”

이미 딴생각에 빠져계셨다.

그러다가 뭔 생각을 하셨는지 혀를 차신다.

그러곤 전단지를 뚫어져라 보시다가 뒤집으며 말씀하셨다.

“좀 제대로 된 데다가 쓸 것이지.”

“아깐 좀 급해서요. 이제라도 다른 종이에 옮겨 적을까요?”

말하면서 아저씨 손에서 전단지를 빼내려 하자, 아저씨가 손을 치켜들었다.

“어허! 어딜 손대?”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바라보고 있자니, 아저씨께서 묘한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지금부터 이건 우리 회사 보물 1호다.”

“예? 그게 무슨······.”

“무려 데뷔곡을 작곡한 종이다. 나중에 그 가치가 얼마나 될 줄 알고.”

참네, 그래 봐야 얼마나 된다고. 아저씨도 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