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22. 놀다 올게요(2)
5번 방안. 아저씨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아저씬 소파에, 난 간이 의자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무게를 잡냐? 미리 말하지만, 나 심장 약하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나갈까 생각하느라 잠시 말을 아꼈더니, 그새 또 저렇게 앓는 소리를 하신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얘기했다.
그래, 뭐 빙빙 돌릴 필요는 없겠지.
아저씨랑 나 사이가 적어도 그 정도는 될 거라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애당초 이런 얘기 꺼낼 생각도 못 했을 거고.
“아저씨.”
“그놈의 아저씨 소린. 형이라고 하라니깐.”
툴툴거리는 얘기는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곧바로 말했다.
이를테면 직구 되겠다.
“제 매니저 좀 해주세요.”
잠시 놀란 얼굴이 되셨던 아저씨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하시는 게 한눈에 느껴진다.
“지금 매니저라고 했냐?”
바로 쳐오시네?
그럼 변화구로 가지 뭐.
“제가 이쪽 계통은 잘 몰라서 제대로 된 용어인지는 모르겠네요. 에이전트? 프로듀서? 아무튼, 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음악 좀 해볼까 하는데, 아저씨께서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이번엔 살짝 돌려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는데······.
뭔가 기분이 상하신 걸까?
인상이 잔뜩 굳은 채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다.
그러길 한참.
아저씨께서 다시 입을 여셨을 땐, 방금까지 와는 달리 낮게 깔린 음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까지 들었던 음성 중 가장 무겁게 느껴졌다.
“진심이냐?”
그래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저씨께서······.”
“아니, 그거 말고.”
“······?”
“음악······. 할 거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려는 듯 눈을 마주쳐오는 아저씨의 시선,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한동안 눈을 치뜨고 있었다.
그렇게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아저씨를 응시하다가 단호히 말했다.
“할 겁니다. 음악.”
“쿡!”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시는 아저씨.
순간 괜히 분위기에 말려들어 나만 진지해졌던 건 아닐까 싶어서 왠지 억울해졌다.
“아, 진짜! 뭐에요! 왜 웃으시는 건데요!”
“아니, 아니. 너 때문에 웃은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미안해하시던 아저씬 다시금 얘기하셨다.
“인생, 참 얄궂다 싶어서 그런다.”
“······?”
“중독이 강한 걸로만 치면 도박보다 더하지. 이놈의 음악은······. 기타 치는 놈도, 드럼 치는 놈도······. 노래 부르는 놈도 결국 마찬가지. 아무리 옆에서 뜯어말려도, 심지어는 악기를 때려 부숴도, 할 놈은 하더라. 집구석에선 처자식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클럽을 전전하며 스틱을 휘두르고 피크로 기타 줄을 뜯는다. 마이크를 뺏는다고 노래를 안 할 거 같냐? 소주병을 마이크 삼아 굴다리 밑에서 부르고 또 부르고······. 목이 나갈 때까지 부른다. 그게 악쟁이들의 숙명이지.”
잠시 날 지긋이 바라보시더니 툭 하고 던지듯 말씀하셨다.
“내가 너 처음 볼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 이놈은 하겠구나···하고.”
아저씨의 음성이 노골노골했던 건 여기까지였다.
이내 진지해진 표정이 되어 말씀하셨다.
“하려면 제대로 해라.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 할 수 있겠냐?”
무슨 말인지 모를 만큼 둔하진 않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하셨는지, 아저씬 소파에 몸을 묻으며 던져 주신다.
아까 이방에 들어와 내가 처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넌 노래만 해라. 아니, 음악해.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씨익.
드디어 내가 원하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저씰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아, 어머니께 들었는데, 제가 작곡한 거 보여주셨다면서요?”
“그, 그랬지.”
뜻밖의 얘기인가?
아저씨 음성이 살짝 떨리는 거 같은데?
“그거 제가 버린 곡들이죠?”
“그, 그렇지.”
“흐음······.”
나는 아저씨처럼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해 보였다.
그러면서 불안한 듯 시선을 돌리고 계시는 아저씨께 다시 물었다.
“그거 쓸만해요?”
이번엔 혀를 차신다.
기가 막히시다는 듯.
그다음엔 또 앓는 소리다.
“야, 좀 살살 들어와라. 몰라? 노크? 사람이 준비할 시간을 줘야지. 그냥 훅 치고 들어오냐?”
“뭘 또 그렇게······. 아, 괜히 말 돌리지 마시고요. 그래서 쓸만하냐고요.”
“······뭐, 그럭저럭. 됐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거 팔 수 있는 거에요?”
“응?”
이 자식 봐라? 하는 눈빛이시다.
그러시든지 말든지 다시 물었다.
밀당으로 치면 지금은 밀어붙여야 할 때니까.
“그 곡들, 전 마음에 안 들거든요. 당연히 부르지도 않을 거고요. 그래서 다 버린 건데. 그걸 아저씨께서 도로 챙겨놓았다는 건 상품 가치? 이런 말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누군가에겐 쓸만하다는 얘기잖아요? 아니에요?”
이번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하는 눈빛이신데······.
역시나 내 짐작대로다.
아저씨께선 한숨과 함께 얘기하셨다.
“네 나이 땐 보통 그런 얘기 할 때는 좀 떨기도 하고, 얼굴도 좀 붉히고 하지 않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기까지 하신다.
“저건, 대체 뭘 먹고 살기에 저렇게 뻔뻔한 건지. 그래 짜샤! 솔직히 말하면, 쓸만한 정도가 아니지. 너한텐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꼭 부르고 싶은 곡일 수도 있다. 실제로도 날마다 전화해서 제발 좀 달라고 매달리는 놈도 있고.”
그럴 줄 알았다.
결국, 돈이 된다는 얘기.
예술?
음악을 한다는 게 마냥 고상하기만 한 거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난 그렇게 할 거다.
이왕 하는 거 천 년이 지나도 사람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다.
지역이고 나발이고, 어딜 가도 먹힐만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17년간이나 꾸어오던 꿈까지 접은 마당에 그 정도 야심도 없을까?
그렇지만 그건 내 꺼 할 때나 챙기는 거고.
내가 부를 노래도 아닌데, 뭐하러 그런 생각을 할까?
난 조금의 미련도 없이 말했다.
“그럼 팔아버리세요.”
황당하다는 듯 날 쳐다보던 아저씬 떨떠름한 음성으로 확인하신다.
“······그래도 되겠냐?”
“안될 건 또 뭐 있어요? 대신······.”
“······?”
“값은 제대로 받아주세요. 전 호구 짓 하는 거 진짜 싫으니까.”
“호구? 푸하하하.”
한참을 웃으시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셨다.
“너, 날 아직 모르나 보구나.”
그리고 비릿하게 말씀하셨다.
“형이 보여줄게. 진짜 매니저가 어떤 건지.”
***
한때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길을 걷다가 10여 년 전에 김성만 대표의 눈에 띄어 입사한, KSM 엔터테인먼트사의 매니저인 한상철 실장은 다급한 마음에 대표실까지 찾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맡게 된 신생팀인 ‘블루스톰’의 데뷔가 현재 암초에 걸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멤버들의 자질 때문이라면 모르겠는데, 다른 문제 때문에 녹음 자체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곡 문제.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녔으면 뭐하나?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한 노래. 한마디로 부를 노래가 없는데······.
‘후우. 그렇다고 그 얼굴에 비주얼로 승부할 수도 없고.’
요즘 같은 때, 가수 아니, 연예인이 되겠다고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는 애들은 널리고 널렸다.
데뷔하자마자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리는 이들만 해도 얼마인데, 다들 정점에 서 있는 스타들만 보곤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착각들을 하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중고등학생들이 원하는 직업 1순위가 연예인이라고 하겠는가.
그런 만큼 잘생기고 예쁜 애들은 발에 챌 만큼 많다.
그 사이에서 ‘블루스톰’이 내세울 수 있는 건 오직 실력뿐이었다.
당연히 그 실력을 도드라지게 만들어줄 곡이 필요한 거였고.
“지금쯤 돌아오셨으려나?”
대표이사인 김성만이 곡을 받아온다고 말하고 나간 지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그러니 돌아오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원래대로라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일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직접 5층까지 올라와 대표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똑똑.
하지만, 아무리 노크를 해봐도 안에선 대답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한차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대표인 김성만과는 형 아우 하는 사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불쑥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런 것까지 고려하기엔 너무 마음이 다급했다.
그만큼 김성만이 가져온다는 곡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형님. 저, 상철입니다.”
똑똑.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린 후, 헛기침을 한차례 한 후 살며시 문을 열었다.
스르륵 열리는 문.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으신 건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던 한상철의 눈에 책상 위 악보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
그는 한눈에 저것이 김성만이 받아온 곡이란 걸 알아차렸다.
황급히 달려간 그는 오선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뭐, 뭐야 이거······!”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곤 진저리를 치고 말았다.
연주를 해보진 않았지만,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져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때 제법 유명했던 언더그라운드 밴드 출신인 그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이 정도로 감각적인 곡이라면······.
‘돼, 됐어!’
이제야 비로소 블루스톰을 데뷔시킬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 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 것도.
“뭐하냐, 지금?”
김성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한상철이 돌아서며 그를 와락 껴안았다.
아니 그러려는 찰나, 김성만이 슬쩍 비켜서며 그가 들고 있던 악보를 빼내 갔다.
그러곤 말했다.
“뭐하나 했더니, 김칫국 마시고 있었구만.”
“예? 그, 그게 무슨······.”
“자, 받아.”
빼앗아 간 악보 대신 김성만이 내미는 파일을 받아 펼쳐보니, 악보 한 장이 들어 있다.
얼른 빼내서 한차례 훑어본 한상철이 인상을 찡그렸다.
나쁘진 않은데, 아까 본 곡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형님. 이건 좀······. 아까 그 곡 주시면 안 돼요?”
“응. 안돼.”
“그러지 마시고요. 아시잖아요? 걔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한상철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김성만이 입가에 조소를 베어 물었다.
“이 바닥에서 데뷔하기 전에 그 정도 고생도 안 해본 사람 있나? 쓸데없는 소리 할거면 얼른 가서 그 곡으로 애들 녹음이나 시켜. 그래야 안무도 짜고, 음원 출시일도 잡을 거 아냐?”
“아, 진짜! 아까랑 얘기가 다르잖아요! 분명 나가실 땐······.”
한상철이 목청을 높여보지만, 이빨도 안 들어갈 것 같았다.
김성만이 깍지를 낀 채 담담하게 말했던 것이다.
“그랬지. 아까까진.”
“그, 그런데요?”
“어쩌겠냐? 상황이 바뀐걸.”
“······예?”
“너, 이 종이 한 장 받아오는데 얼마가 깨진 줄 아냐?”
팔랑거리며 흔들리고 있는 악보를 보면서 한상철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면서도 차마 묻지 못했다.
그랬다간 이번엔 자신이 뒷목을 잡고 쓰러질 거 같아서.
그만큼 비싸게 주고 사온 게 분명하다.
김성만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는 그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져 있었으니까.
한상철은 하는 수 없이 이 정도에서 꼬리를 마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들고 있는 곡도 나쁘진 않으니까.
애써 속을 달래며 그는 대표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가 나가고 난 뒤였다.
한껏 찌푸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밝아졌다.
그러더니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성훈 씨죠? 하하하. 저야 잘 지내죠. 아, 안 그래도 들었습니다. 오는 7월에 컴백하기로 하셨다면서요? 아, 그래요? 확실히 혼자 작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하하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MJ와는 이미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나요? 아이고, 저희야 좋죠. 성훈 씨처럼 대형가수가 또 얼마나 있다고요. 무조건 오케이죠. 아, 계약조건이요?”
핸드폰을 귓가에 댄 채로 웃던 그는 악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전에 곡 하나 안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