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9화 (19/260)

# 19

#19. 17살입니다(5)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뒤 한동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충격에 빠져서였다.

망연자실한 채로 소파에 앉아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넋을 놓고 있던 그녀의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강혁수···그러니까 HS 실용음악학원 원장과 나눈 대화만이 무한 반복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레이 찰스······. 아시죠?”

“미국의 맹인 가수 아닌가요?”

“맞습니다. 가스펠을 블루스와 소울, 재즈 그리고 리듬 앤드 블루스로 승화시켜 흑인음악이 대중적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야말로 세기의 천재죠.”

“....그런데 갑자기 그 말씀을 왜?”

“그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가족인 아버질 여의고 나서 캘리포니아로 떠난 건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 같은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음악에 바칠 것을 결심했었으니까요. 하면, 그때 그가 몇 살이었는지 아십니까?”

한때 피아노를 배우긴 했어도, 모든 음악을 알고 있진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클래식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음악은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그걸 다 알지 못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한 템포 늦게 고개를 내저었는데,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해 주었다.

“17세. 레이 찰스가 고향인 조지아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떠났을 때의 나이입니다.”

“······그 말씀은?”

“예. 도준이 나이, 17살입니다. 어머님 생각하시기에 이 정도의 곡을 만들어내는 천재가 음악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순간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쿵! 하고 뭔가가 떨어지듯 전해진 묵직한 충격. 거기에 강혁수 원장은 다시 한 번 충격을 가했다.

“도준의 노래를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미 그녀가 보여준 동영상을 본 직후의 얘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강혁수 원장이 보여준 눈빛이란······.

그 신들린 거라 밖에는 볼 수 없던 연주 따윈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얼굴. 확신에 가득 차다 못 해서 너무나도 소중해 함부로 손도 못 댈 정도로 벌벌 떠는 듯한, 그러한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으니까.

“하아, 대체 내가 뭘 놓치고 있었던 걸까?”

이윽고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이마에 손을 얹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그런 채로 한 시간, 두 시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어락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어? 아무도 없나?”

도준의 목소리였다.

그제야 눈을 뜬 그녀는 깨달았다.

이미 날은 저물어 있었고, 등 하나 켜지 않은 집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는 것을.

딸각.

스위치 올리는 소리가 들리며 거실에 불이 들어오고, 소파에 어머니가 앉아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도준이 새된 비명을 내지른 것도 그때였다.

“흐아아악! 누, 누구야······. 응? 어, 어머······니?”

***

미치겠다, 진짜.

벌써 10분째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다.

잠시 얘기 좀 나누자고 하시더니, 말없이 나만 바라보시는 어머니. 평상시와는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다른 모습에 불안해 미칠 지경이다.

뭐지?

설마······?

뒤늦게 떠오르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젠장! 이럴 바엔 차라리 말씀드릴 걸 그랬나?

그리고 당당하게 허락을 받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들 때쯤이었다.

“아들. 엄마가 미안하네. 아무것도 몰라서······.”

“예? 아, 어머니, 그게 아니라······. 사실은······.”

아! 확실하다.

들킨 거다.

죄책감이 밀려들며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아들, 엄마한테 노래 한 곡 들려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허락을 안 해주실······. 예? 노, 노래요?”

“응. 듣고 싶어졌어. 아들 노래가.”

뭐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머니의 얼굴에 내려앉았던 그늘이 싹 걷힌 채였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말씀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 듣고 싶은 노래······. 있으세요?”

“음······.”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톡톡 두드리시던 어머닌 갑자기 일어나시며 피아노 앞으로 가셨다.

시집올 때 유일하게 챙겨오신 거였다.

뚜껑을 열고 건반을 몇 차례 두드리신 후,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베의 ‘Eagle’이란 곡 알아?”

아, 어머니께서 아바의 노래를 좋아하신다는 걸 그제야 기억해냈다.

나야 노래방에서 수없이 부른 노래였기에 당연히 알고 있었고.

그래도 하필이면 아베의 그 많은 곡들 중에 ‘Eagle’이라니 조금 뜻밖이다.

“알아요.”

대답을 들으시자, 어머닌 더 이상 아무런 말씀도 없이 연주를 시작하셨다.

그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으신 거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금도 녹슬지 않은 실력이었다.

근데, 아저씨가 자기 없는 데선 노래하지 말랬는데······. 에이, 이건 좀 경우가 다르잖아?

쓸데없는 생각을 떨치고 있는 사이, 서서히 전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They came flying from far away.”

첫 음을 떼는 순간, 어머니의 어깨가 흠칫하는 게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They came flying from far away.

Now I'm under their magic.

I love hearing the voice that they tell.

그들은 아주 멀리서부터 날아왔죠

지금 나는 그들의 매력에 빠져 있어요

나는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듣길 원하죠.

금세 노래에 젖어들었다.

마치 내가 창공을 유영하는 한 마리 매가 된듯한 기분으로 노래했다.

-And I dream I'm an eagle.

And I dream I can spread my feathers.

Flying high, high, I'm a bird in the sky.

I'm an eagle that rides on the wind.

High, high, what a feeling to fly.

Over mountains and forests and seas.

And to go anywhere that I enjoy.

그리고 나는 꿈을 꿔요, 내가 독수리라고.

그리고 나는 꿈을 꿔요, 내가 날개를 펼칠 수 있다고.

높게 날아, 높게 나는 하늘 위의 새예요.

나는 산들바람을 타는 독수리예요.

높게, 높게 하늘을 나는 이 기분이란.

산들과 숲들과 바다들을 넘어.

그리고 내가 즐기는 모든 곳을 가죠.

꿈에 빠진 듯 몽롱한 기분으로 한참을 노래하는 동안, 곡은 이미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눈을 감은 채였고.

- High, high, what a feeling to fly.

Over mountains and forests and seas.

And to go anywhere that I enjoy.

높게, 높게 하늘을 나는 이 기분이란.

산들과 숲들과 바다들을 넘어.

그리고 내가 즐기는 모든 곳을 가죠.

마지막 소절을 끝내고 나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

곡이 주는 여운이 그렇게 만들었다.

“후우!”

한참 뒤에야 감정을 추스르고 천천히 눈을 뜨다가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날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계셨던 것이다.

“어,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간 가슴이 메어져 왔다.

잘못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죄, 죄송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나는 어머니께 달려들어 선 채로 어깨를 감쌌다.

그때, 어머니의 물기 어린 음성이 귓가로 스며들었다.

“괜찮아. 아들. 엄만 괜찮아. 그냥······. 엄마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아들······. 우리 아들. 우리 예쁜 아가······. 정말 엄마가 아무것도 몰랐네? 그래도 엄마 미워하면 안 된다? 알았지?”

“엄마······.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눈물이 났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자꾸 눈물이 났다.

뭐가 그리 서글픈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가슴이 아파서 울먹거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나더러 마마보이라고 할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딴 거 엿 먹으라고 그래라.

노래방에 갇혀 있는 동안, 얼마나 그리워하던 어머니인데······. 그런 어머니께서 나 때문에 울고 계시는데, 무슨 개소리냐.

이건 무조건······. 내 잘못이다.

“흑흑흑. 죄송해요······. 엄마.”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날 어머니께선 꼭 안아주셨다.

그런 채로 등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주시더니, 내 양어깨를 잡고 밀어내시곤 물으셨다.

“아들, 하나만 물을게.”

“······.”

“아들은 음악이 하고 싶은 거야?”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날카롭기 그지없는 송곳처럼 가슴을 쑤셔오고 있었다.

그래서 아니라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입술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이유?

모른다.

그냥 여기서 고개를 내저으면, 그걸로 끝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뭐가 끝이란 건지 의미조차 모르면서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애당초 음악 같은 거 그냥 취미일 뿐이잖아?

내가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걸?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거고, 누가 봐도 감탄할 만큼 우수한 성적으로 S대 법대에 진학할 거다. 그러곤 언젠가는 판사가 될 테다.

대법관.

외할아버지께서 깔아놓은 꽃길을 따라 걸으며, 진정한 자유와 풍족한 인생을······.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면 행복할까?

진짜 자유로울까?

생각지도 못했던 의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혼란스러워졌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엷은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 물어오셨다.

“아들은 음악 할 때 행복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날 꼭 끌어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귓가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

안락하고 따스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 안고 있었다.

“엄만 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죄송해요.”

정말 엉엉 울었다.

엄마를 꼭 끌어안은 채로.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닌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신 채 그저 내 등을 토닥거리시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간신히 눈물을 그쳤을 때 어머니께선 말씀하셨다.

“그럼 우리 한 곡 더 할까?”

“······?”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머닐 바라보자, 어머니께서 미소와 함께 물어오신다.

“아들 노래, 너무 듣기 좋아. 엄마가 한 곡 더 들었으면 해서 그래. 불러 줄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머니께서 반주를 치기 시작하셨다.

흠칫.

순간 몸이 떨려왔다.

이 노랜······.

역시나 아베의 노래.

‘Does your mother know’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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