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7화 (17/260)

# 17

#17. 17살입니다(3)

김씨 집안의 장남.

도준의 형인 민준은 고3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수험이란 딴 세상 얘기일 뿐이다.

그는 일요일 오후,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소파 위를 침대 삼아 뒹굴 거리며 킬킬거리는 중이었다.

“크크큭. 와, 쩐다 쩔어! 얘 왜 이렇게 웃기냐? 잉? 벌써 끝이야? 아이씨! 이게 문제야 이게! 웹툰 작가들, 너무 게으른 거 아냐? 일주일에 한편이 뭐야, 한편이! 적어도 세 편, 아니 다섯 편은 연재해야지!”

상식이라는 게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 텐데도 잔뜩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민준은 얼마 안 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었다.

“오! 조회수 좋고! 재밌겠는데? 어디 보자, 밴드 털어먹은 반도의 흔한 고교생이라···.”

잠시 후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거!”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에선 랩소디즈의 ‘Wisdom of the kings’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친! 아이, 씨! 도, 도준이 아직 학원이겠지?”

민준은 화면에 떡하니 떠 있는 도준의 모습을 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이걸 들켰다간 엿 된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정도로 기타를 친다?

하루 이틀 만에 되는 일이 아니란 것쯤은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봐도 아는 일이다.

그 얘긴 곧 그동안 도준이 집안 식구들 모르게······.

“내가 미쳐! 새끼가 하려면 몰래 할 것이지. 왜 찍히고 난리야, 난리가! 아우, 외할아버지 아시면 진짜 뭐 되는데!”

도준일 걱정하는 마음?

1도 없다.

아니, 1쯤은 있나?

아무튼, 그가 진짜 걱정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만일 외할아버지께서 도준이 때문에 격노하시게 되면, 자칫 자신의 유학길이 막힌다는 게 문제다.

그럼 그간 그가 계획해놓은 핑크빛 유학생활은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거다.

급하면 몸부터 움직이게 되는 그다.

그런 그가 가만있을 리가 만무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안절부절못하다가 현관으로 뛰어갔다.

‘무, 무슨 학원이라고 했더라?’

기억이 안 난다.

아니, 애당초 관심이 없다 보니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러니 생각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손 놓고 있다가 일이라도 커지면······.

눈앞이 캄캄해진 민준은 일단 밖으로 나갈 생각에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밖에서라도 도준을 기다려볼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보다 먼저 녀석을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지 않으면······.

띠디디디. 삐익!

현관문이 열린 것도 그때였다.

“헛!”

화들짝 놀란 민준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내렸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화면 속에선 도준이 한창 기타를 연주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신들린 듯이.

“아들? 왜 그렇게 놀래?”

어머니의 물음에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떠는 민준.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떨어져 내린 핸드폰에서 떠나질 못하고 있다. 자연스레 그의 시선을 따라 어머니의 눈길이 움직였다.

“뭐니? 이거?”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주워드는 어머니의 모습에 민준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째 평소랑 집안 분위기가 좀 다르다.

그렇긴 한데, 그게 뭣 때문인지를 모르겠다.

“어머. 아들 왔어?”

뭐 상관없나?

어머니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가방을 들어주시는 걸 보니, 별문제는 아닌 거 같다.

“어머, 무겁기도 하지. 어유, 어쩐다니? 이렇게 무거운 거 들고 다니면 키 안 크는데. 우리 아들 힘들지?”

“다들 그 정도는 들고 다녀요.”

“아우, 내 새끼! 말하는 거 봐. 이쁘기도 하지.”

와락 껴안으시는 어머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지만, 애써 참았다.

어머니께서 좋으시다면야 뭔들 못할까 싶어서.

“밥은 먹었니?”

“예. 학원 가기 전에 사 먹었어요.”

“혹시 컵밥이니 뭐니 그런 거로 대충 때우는 거 아니니?”

“······아뇨.”

정말 눈치 하난 귀신같으신 우리 어머니.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며 대답하곤 얼른 말부터 돌렸다.

“아 참, 성적표 드려야죠.”

“어머? 그래? 어제 엄마가 너무 늦게 들어왔지?”

“에이, 등수는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어제 이미 전화로 말씀드려서 알고 계시면서도 들뜬 표정이시다.

그렇게 좋으신가?

가방을 열다가 흠칫했다.

작곡에 관한 원서를 넣어놨던 게 기억난 것이다.

얼른 몸을 돌리며 자크를 조금만 열어 안에서 성적표만 꺼냈다.

“1등이네?”

참네. 어제 들으셨으면서.

“예.”

대답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성적표를 드렸다.

“호호호. 우리 아들, 장하기도 하지. 어머. 이럴 게 아니라, 얼른 할아버지께도 알려 드려야겠다.”

“응? 어제 전화 드린 게 아니에요?”

“엄마가 어제 좀 바빴잖니?”

매년 이맘때엔 회사 법무팀 부부동반 모임 때문에 정신이 없으시긴 하시지.

“그래도 시간이 너무 늦은 거 아닌가요?”

“할아버지 걱정하는 거니? 착하기도 하지. 근데 괜찮아요. 넌 우리 아빠···할아버질 몰라서 그러는 거야. 도준이 네 얘기라면 아마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실걸? 이번에도 전교 1등 했다고 말씀드리면 아마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니실 거다. 얼마나 기세등등해서 자랑하실 거라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안방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를 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다가 까치발을 든 채 막 방으로 들어가고 있는 형을 발견했다.

뭐야? 계속 있었던 거야? 그런데 왜 기척을 안 해?

“형.”

“으, 응? 왜, 왜, 왜!”

“형이야말로 왜 그래? 뭐 잘못한 거라도 있는 사람처럼.”

“아, 하, 하, 하······. 무, 무슨···그런 농담을!”

“수상한데? 형 혹시······.”

“하아아아아암. 아, 진, 짜, 피, 곤, 하, 다! 자······자, 잘 자라. 동생아.”

쾅.

무슨 국어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말투로 인사를 하더니 잽싸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형이었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순간 뭔가 짚이는 게 있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었다.

응? 그대로 있는데?

용돈함에 든 돈은 줄지도 늘지도 않은 그대로다.

“뭐지?”

오늘따라 되게 이상해 보이던데.

하긴, 우리 형님께서 정상인 게 더 이상하긴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납득이 돼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

서서히 해가 지고 있는 시각.

카페에 앉아 석양이 낮게 깔린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멍한 게 흡사 넋이라도 나간듯한 모습이었다.

시켜놓은 카푸치노는 이미 식어서 차가워진 지 오래였고 살짝 가라앉은 거품은 찌그러진 찐빵 꼴이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이 입술 한번 안 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커피잔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과 성적표만을 응시할 뿐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성적표에 적힌 숫자는 언제나 그렇듯 1.

그것도 전교석차다.

그리고 핸드폰에선 동영상 하나가 반복 재생 중이다.

“하아.”

결국, 그녀의 입술 사이에선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보았는지 모른다.

유명 UCC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영상 하나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밴드 털어먹은 반도의 흔한 고교생’이란 제목의 이 영상 속에선 자신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들, 도준이 기타를 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누군가는 그게 그렇게 한숨까지 쉴 정도의 일이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래, 맞다. 기타를 치는 것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들이 가끔 노래방을 가는 것만큼이나 별스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저 정도로 신들린 것 같은 연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녀 역시 소싯적엔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서 몇 번이나 입상했을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만큼은 꽤 있는 편이다. 어쩌면 음대를 다니던 시절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갑자기 피아노에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을지 모를 정도다.

당연히 안목 또한 높을 수밖에.

그런 그녀의 눈에는 훤히 보인다.

도준의 실력이.

저 정도로 기타를 치려면 적어도 3년. 그것도 밤낮없이 연습했을 경우가 그렇다는 거고, 나이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감안하면 아무리 못해도 5년 이상 기타 하나에 매달리지 않고선 불가능한 연주임을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치미는 배신감에 그녀는 입술을 잘끈 씹고 말았다.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혼이라도 빠져나가 있는 듯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빛나다 못해 번뜩이기까지 하는 눈빛을 한 채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한 손에는 고이 접힌 성적표와 계속된 영상재생으로 뜨거워진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

기다리고 있던 도준이 학교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는 달려가지 않았다.

아들만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무조건 달려가 안고 보는 그녀로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예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선글라스 안쪽의 눈동자가 짙은 시야 너머로 도준의 등을 쫓았다.

부릉.

엑셀을 밟자, 오토스톱 기능에 힘입어 차가 소리 없이 멈춰 있던 엔진을 가동하며 도로를 미끄러지듯 굴러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도준이 알아볼까 몰라 친구에게 빌린 차였는데, 역시 최신형이라 그런가 움직임이 무척이나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도준은 누군가가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평소처럼 차분한 걸음걸이로 나아가고 있을 뿐.

반면 거리를 두고 차로 뒤쫓으며 그 모습을 뒤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가슴은 아까부터 두근거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렇게 까닭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 채 그녀가 도준을 쫓기 시작하고 10여 분쯤 흘렀을 때였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도준이 대로변에 위치한 어느 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달칵.

차 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재차 확인했다.

자신이 차 안에서 본 게 맞는지.

혹시라도 실수로 잘못 본 걸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같은 건물에 입시학원도 같이 들어서 있는, 공교롭지만 우연한, 복잡한 도심에서라면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차에서 내린 후 올려다본 건물 어디에도 입시와 관련된 학원 따윈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원이라면 오직 ‘HS 실용음악학원’뿐.

파란색 일색인 간판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일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아······!”

지금 그녀의 심정은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다른 건 둘째치고, 그 말 잘 듣고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자신을 속였다는 게 도저히 믿기질 않았던 것이다.

호흡곤란이라도 온 듯 숨도 잘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였지만, 그녀는 입술까지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덕분에 오래지 않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신, 다음 순간 그녀를 엄습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분노.

그래, 맞아! 분명 도준인 꼬드김에 넘어간 거뿐이야!

여느 딸 바보 못지않은 아들 바보가 바로 그녀였다.

으득.

누군가에 대한 분노로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듯 간판을 노려보는 그녀. 자신이 이를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화가 나 있는 그녀에게선 이미 아들에 대한 실망감 따윈 씻은 듯이 사라진 뒤였다.

탁!

한동안 건물을 노려다 보던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분노가 사그라지고 그 자리에 차가운 표정이 깃드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냉정함을 되찾은 그녀는 차에 오르자마자 아까완 달리 거침없이 액셀을 밟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의 머릿속에선 누구도 모르게 은밀하게, 자신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당사자인 도준조차 모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가 지워지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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