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 17살입니다(2)
뜬금없는 얘기에 나는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실실 웃었다.
“아저씨도 무슨 농담을 그렇게······.”
말을 끝맺을 수가 없었다.
아저씨의 표정이 어지간히 진지해야지.
그렇다곤 해도 이건 아니지.
“저, 아저씨.”
“왜?”
“아저씨가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뭔데?”
“로버트 플랜트, 존 레넌, 프레디 머큐리······.”
붕대가 칭칭 감긴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다가 집어치웠다.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아무튼, 저 그런 천재 아니라고요.”
당연한 얘기다.
노래방에서의 일이 없었다면 노래와 연주는커녕 그 주옥같은 노래들이 이 세상에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나다.
그런 주제에 어딜 넘보냐.
나란 놈이 아무리 모자라도 그 정도 주제 파악은 되는 놈이다.
작곡?
뭐, 하려고 들면 못할 것도 없겠지.
그저 흰 게 종이고, 검은 게 음표라면 말이지.
다만, 그게 악기를 통해 소리를 내는 순간, 아마 잡음으로 변하지 않을까? 어쩌면 쓰레기 취급당할지도 모르고.
그게 마음에 안 든다.
안 하면 모를까.
일단 한다면 제대로 하고 싶은 게 또 나란 놈이니까.
안다. 그게 다 욕심이란 걸.
하지만, 어쩌겠냐. 애당초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인 걸.
그러니까, 결론은 나와 있는 거나 다름없다.
간단명료하게 생각을 정리하곤 씁쓸하게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하여간 천재란 놈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다니까.”
“예?”
“됐고. 하라면 해. 아무래도 네가 방금 해준 얘기대로라면 내가 시키지 않아도 언젠가는 하게 될 테니까.”
뭐를? 작곡을?
눈을 껌벅거리고 있자, 아저씨가 비웃으셨다.
미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내 양손을 바라보면서.
“어차피 한동안은 악기도 못만 질 거 아니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아무 말 못 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드럼이라도······.”
괜히 물었다.
뭔 사람이 눈에서 불이 나와.
“동전도 아니고 너무 표정이 확확 바뀌는 거 아니에요?”
툴툴거리자, 아저씨께선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자, 내친김에 시작해볼까?”
“뭘요?”
“뭐긴?”
“설마? 지금요?”
“응. 라잇 나우.”
와, 무슨 행동력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뭐냐?”
내가 십만 원짜리 수표 석 장을 내밀자, 아저씨가 오히려 되물으신다.
“뭐긴요. 연습실 대여료죠.”
“그 손으로?”
“아!”
“연습실 쓰기까진 한 달은 족히 걸릴걸?”
젠장! 어제처럼 신 나게 치고 싶은데.
얼굴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교습비라고 생각하고 받으세요.”
“뭔 교습비?”
“작곡 가르쳐주실 거 아니에요?”
“누가? 내가?”
“어? 아니었어요?”
아저씨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치켜 올라가는 게 영 불안하다.
“행여나 그런 소리 마라. 누가 누굴 가르쳐?”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까지 내저으시더니, 아저씨께선 되물으셨다.
“그나저나 너 영어는 좀 하냐?”
뜬금없으시긴.
“뭐, 그럭저럭요”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지만, 굳이 이런 걸로 자랑질하고 싶진 않았다. 여기가 학교라면 또 몰라도, 그런 짓거리 자체가 낭비다.
한데, 이게 또 아저씨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나 보다.
“K고등학교 다닌다며? 그럼 적어도 읽는 건 될 거 아냐?”
“예. 전문서적만 아니라면 원서 읽는 것 정돈 문제없을 걸요.”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잠시 후, 아저씬 방을 나갔다 오시더니 책을 한 보따리 가져오셨다.
아이 씨. 불안하더라니.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전부 작곡에 관한 책들인가요?”
햇살처럼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저씨를 보다가 책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펴보니 죄다 원서다.
영어에 프랑스어에······.
“프랑스어 얘긴 없으셨잖아요!”
“응? 그거 영어 아니었어?”
피식피식 웃으시는 게 아무래도 다 알면서 저러시는 거 같다.
“너 공부 잘하잖아.”
“누가 그래요?”
“어 아닌가? 생긴 건 잘하게 생겼는데?”
“잘하게 생긴 게 어떤 건데요?”
“음······. 꼭 듣고 싶냐?”
“······.”
“그럼, 너 학교에서 몇 등 하는데?”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수록 자꾸만 말려드는 거 같아서.
“하면 될 거 아니에요!”
***
노래방에 있을 땐 시간이 더럽게 안 가더니, 지금은······.
“어휴! 진짜 시간 더럽게 안 가네!”
마찬가지다.
하루가 무슨 십 년 같다.
아, 물론 둔기로 써먹어도 될 정도로 두꺼운 원서들 때문에 이러는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악기를 치지 못해서 그러는 거지.
눈앞에 드럼이랑 기타랑 베이스가 ‘제발, 저 좀 쳐주세요!’하고 달콤한 유혹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데 손도 못 댄다는 게 말이 되냐고!
“앞으로 보름은 더 있어야 한다는 거 아냐?”
며칠 전 집에 갔을 때 붕대를 풀어보곤 상처들이 깔끔하게 나았기에 아저씨에 물었더랬다.
“이 정도면 얼추 다 나은 거 같은데요?”
돌아온 대답은······.
“깨진 손톱이나 다 자라면 얘기하지?”
“······예.”
그 후론 그냥 나 죽었다 하고 작곡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작곡을 해보고 있다.
하아. 내가 작곡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처음엔 설마 진짜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책은 쉬웠다. 어디까지나 책은.
아무래도 노래방에서 익힌 이론들이 머릿속에 있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가 책들을 모두 읽고 나니, 작곡을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지는 감이 왔다.
머릿속에 가득한 악보들 때문인지, 아니면 노래방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받아들인 지식들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작곡이란 작업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신바람이 날 정도였다.
분명 작곡은 난생처음인데도 불구하고 신기할 정도였다.
연필을 쥐고 오선지를 바라보면 이상할 만큼 많은 악상이 떠올랐고, 머릿속에선······. 정확히는 느낌이 그렇다는 건데, 아무튼 음표들이 떠올라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그 느낌은 생소하지 않았다.
마치 그때처럼.
희주의 생일날 기타를 칠 때의 감각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아저씨가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작곡이란 내게 있어서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뜻밖에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 생겨버린 거겠지.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첫 번째 작곡을 끝내고 난 뒤였다.
음표들로 가득한 오선지를 훑어보다가 구겨버렸다.
“그럼 그렇지.”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었다.
분명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그렸음에도 전혀 다른 느낌. 뭐랄까. 머릿속에선 살아 있던 게 오선지에 옮겨지는 순간 죽어버렸다는 느낌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쉽사리 알아낼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자꾸만 이런 일들이 거듭되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놈의 악기가 문제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뤄보지 않은 악기가 내는 소리를 음표로 표현해내니 죽어버리는 거랄까.
기타랑 드럼은 그래도 쳐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그나마 좀 나은 편인데, 나머지 섹션은 오선지 위로만 옮겨지면 여지없이 죽어버린다.
더 미치겠는 건 이게 중구난방이란 거다.
어떨 땐 살아 있고, 또 어떨 땐 죽는다.
그럼 뭐가 살아 있는 거고 뭐가 죽어 있는 거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하기도 어렵다.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속 편하려나.
아무튼, 잘나가다가도 어딘가에서 막히거나, 설사 억지로 끝내더라도 마음에 차질 않았던 것이다.
뭐, 그렇다곤 해도 처음 해보는 것치곤 꽤 재미있긴 하다.
그러니까, 더 아쉬운 거고.
“베이스도 좀 쳐봤으면 좋았을 텐데!”
연필로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리다가 투덜거렸다.
사각 사각 사각······.
쯧. 다시 떠올려보니 신경질이 난다.
이놈의 손가락만 아니면 당장 악기를 잡고······.
마음이 흐트러져서 그런가. 오선지 위를 미끄러지는 연필심이 흉포해진 용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길 한참.
“쓰레기 추가네.”
종이를 와락 구겨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하루 동안 얼마나 던져댔는지, 형편없이 구겨진 종이뭉치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휴지통 안으로 빨려들어······. 툭!
아, 휴지통이 꽉 찼나 보다.
튕겨져나온 휴지통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나 가야겠다.”
원서 중 한 권만 가방에 넣고 나머진 한쪽에 잘 쌓아둔 후 일어났다.
통로로 나와 바깥쪽으로 향하다가 4번 방에서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뭔가에 열중하고 계시던 아저씨를 발견했다.
“갈게요.”
“그래라.”
뭘 하고 계신진 몰라도 눈만 마주치곤 곧바로 다시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고 계신다.
게임이라도 하시는 건가?
딸랑.
문을 열고 나가자, 따스한 봄바람이 느껴진다.
4월 중순이라 그런지 밤인데도 전혀 춥지가 않았다.
***
혁수는 HS 실용음악학원을 차린 이후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일단 몰입도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현장을 떠난 이후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 증거로, 그는 도준이 나가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다. 벌써 두 시간째였다.
“미치겠네. 다 늙어서 배우려니까 쉽지가 않네.”
그는 A사 컴퓨터 전용의 음악 편집프로그램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짜증 난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던 혁수는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모르겠다. 맥주나 한 캔 하자.”
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통로로 나온 그는 문 쪽으로 향하려다가 멈칫한다.
그러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돌아섰다.
그가 향한 곳은 5번 방. 방금까지 도준이 있던 방이다.
“분명 오늘부터 한다고 했었지?”
일요일인데도 문을 열어달라 했다.
작곡을 하겠다고.
“얼마나 했으려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휴지통.
구겨진 종이 뭉치들이 수북하다.
“벌써······라는 건가?”
원서를 준 지 보름쯤 됐나?
작곡의 기본기야 직접 가르쳐줄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도준은 누군가의 손을 타선 안 되는 녀석이었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거다.
어쭙잖은 세공사가 함부로 칼날을 들이댔다간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겠지. 자칫하면 원석 자체가 쪼개지거나 크게 흠집이 나서 아주 못쓰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럼 누군가 괜찮은 작곡가를 옆에 붙여주면 될 일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는 단호히 노라고 대답할 거다.
대한민국에 도준에게 손을 댈 만큼 실력 있는 사람이 있다곤 생각지 않으니까.
그의 기준치로는 누구 하나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직접 공부하게끔 하는 수밖에.
조금 늦더라도 그게 나을 거란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도준이라면 할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긴 한데······.
“좀 빠른데?”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너무 빨리 달리면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수가 있다.
특히 배움이란 더욱더 그런 면이 강하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천천히 익히면서 단단히 새겨야 하는 거라고 늘 생각해온 그였기에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일 오면 얘기해봐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휴지통으로 손을 뻗었다.
그래도 도준이가 처음으로 작곡한 것들인데,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스락.
“많이도 했네.”
종이 한 장에 한 곡씩인지는 몰라도 구겨져 있는 뭉치만 서른 개가 넘는다.
“혹시 또 모르지. 다작 속에 진주가 숨겨져 있을······. 응?”
구겨져 있는 오선지를 펼쳐 눈으로 훑는 순간,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느긋하기만 하던 그의 행동이 빨라진 것도 그때부터다.
바스락바스락······.
한 장, 두 장, 세 장······.
쓰레기처럼 구겨져 있던 종이들이 펴질 때마다 그의 얼굴은 점차 경악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글쎄. 그 곡은 안된대도 그러네. 한 실장이 책임질 거야? 알잖아? 걔들, 비주얼로 승부 볼 애들이 아니라고. 음악성! 응! 음악성을 내세워서 파고들어야 한다니까 그러네! 그래, 실력파! 그거야. 그거! 하이고 이 친구야! 누가 그걸 몰라? 그게 쉬우면 개나 소나 실력파게? 그래서 내가 지금 혁수네 왔잖아? 분명 그 자식한테 쓸만한 몇 곡은 있을 거야.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봐. 오케이, 이따 다시 통화하자구.”
통화하는 소리가 가까워지다가 5번 방안으로까지 들어와서야 멈췄다.
“뭐해? 사람이 왔으면 아는 척이라도······. 야! 너 왜 휴지통을 뒤지고 있냐?”
김성만.
한때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던 가수이며, 지금은 KSM 엔터테인먼트사의 대표. 열 평도 안 되는 지하방에서 시작해 구멍가게나 다름없던 매니지먼트 회사를 이제는 음악계에선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제법 큰 회사로 키워낸 것도 그였다.
“뭐 잘못 버린 거라도 있어? 왜 휴지통을······. 응? 그거 뭐냐?”
성만의 물음에도 혁수는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고 있다.
구겨진 종이를 펴서 꼼꼼히 훑고, 그걸 애지중지 한쪽에 내려놓은 뒤 다시 구겨진 종이를 펴고······. 그 짓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중이다.
보다 못한 성만이 허리를 구부려 종이를 집어들······. 탁!
손에 닿기 무섭게 낚아채 버리는 혁수를 성만이 입을 살짝 벌린 채 바라보았다.
“무슨 독수리도 아니고. 뭔데, 그래?”
“신경꺼.”
“아, 좀 보자.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잖아?”
성만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종이를 향해 손을 뻗자, 혁수는 아예 종이들을 싹 다 그러모아 품에 안고 일어나 버린다.
하지만, 뭐든 급하게 움직이면 실수가 생기는 법.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뒤늦게 혁수가 손을 뻗어보았지만, 이미 성만이 주워든 후였다.
“응? 오선지네? 누가 작······.”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오선지를 훑다 말고 석상처럼 굳은 채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