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5화 (15/260)

# 15

#15. 17살입니다(1)

보컬리스트가 물러가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엔 애들이 잔뜩 달라붙는다.

“어머! 도준아! 너 진짜 잘 친다! 기타는 언제 그렇게 배운 거니?”

“꺄악! 이 팔뚝 좀 봐! 아까 보니까 박력 장난 아니더라!”

얘가 어딜 만지려고.

슬쩍 손길을 피하며 웃어주었다.

아쉽다는 듯 눈을 빛내는 여자애······. 얘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다들 좋아해 주니까, 좋긴 한데······.

기운이 없어서인지 일일이 대꾸하기도 힘들다.

“도준아. 저기, 나도 기타 배우고 싶은데, 네가 좀 가르쳐 주면 안 돼?”

“어머, 기집애! 지금 우리 도준이한테 뭐라는 거니?”

우리 도준이?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서 말했다.

얼마나 지쳤는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음성이 처져 있었다.

“······듣기 좋았다니 다행이네.”

진심이다.

The wisdom of the kings가 아무리 신 나는 곡이라지만, 이런 좁은 공간에서 듣기엔 꽤 괴로웠을 텐데······.

“큭!”

누, 누가!

목을 조르는 느낌에 캑캑거리며 억지로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오! 김도준이! 이거이거, 다시 봤는데?”

“그러게. 범생인 줄 알았더니, 제법이야?”

“명진이 형!”

팔뚝으로 목을 조르던 걸 풀고서 친근하게 어깨를 감싸오고 있다.

“자식이! 이제야 알아보는 거냐? 난 아까 너 들어설 때 딱 알겠더만.”

“그게, 아깐 좀 정신이 없어서······.”

“어쭈? 명진이만 보인다 이거지?”

“하하. 수한이 형은 학교에서도 종종 보잖아요.”

오랜만에 만난 형들이라서인지 없던 힘도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우리 형과는 친구사이기도 한 형들로 어릴 때부터 친형보다 더 날 챙겨주던 이들이다.

게다가 이형들을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재벌집 자식들인데도 전혀 티를 안 낸다는 거였다.

그러면서도 능력들은 또 얼마나들 좋은지.

명진이 형은 벌써부터 무슨 엔터테인먼트사인지 뭔지 P그룹의 계열사 한 곳에서 가끔이나마 일을 배운다고 했었지, 아마?

정말 우리 형과는 같은 나이인데도 어쩜 이렇게나 다른지.

“근데, 야아! 우리 도준이 잘 컸네. 농담이 아니라, 기타 진짜 잘 치더라. 언제 그렇게 연습했냐?”

“그러니까. 야, 난 무슨 콘서트장에 온 줄 알았다.”

“그쵸? 오빠들 말대로라니까. 그래서 나 이제부터 도준이 팬하려고.”

“어머, 얘 좀 봐! 우리 도준이 1호 팬은 나거든?”

그때부터 한참을 떠들고 나서야, 혼자가 될 수 있었다.

기분?

말할 것도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좀 힘들긴 했지만, 원하던 대로 밴드와 합주도 해볼 수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형들에게 칭찬을 들은 것도 좋았다.

다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뒤쪽으로 감추고 있었던 게 힘들었을 뿐.

큭. 쓰려라.

안 되겠다.

어떻게든 해야지.

누가 볼세라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아아아.

세면대로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을 때 중얼거렸다.

“장난 아니네.”

치켜든 양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살짝 찢어진 왼쪽 손가락들은 그렇다 치고.

오른쪽 엄지는 손톱까지 깨져나가 있다.

잠깐 망설이다가 수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손을 가져갔다.

핏물이 씻겨나가며 금세 세면대가 붉게 물든다.

“읏!”

따갑고 쓰라려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픽 하고 웃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때문이었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특히 머리카락에선 땀방울이 맺히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어지간히도 날뛰었구나.

뒤늦게 실감이 된다.

눈을 감으니 다시금 떠오른다.

연주 중에 느꼈던 감각이.

머릿속을 하얗게 물들이던 쾌락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 그 느낌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아니, 꼭 그렇게 할 테다.

그러기 위해선 연습을······.

“허이고야! 핏물 봐라. 안 아프냐?”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니, 석준이다.

“안 아프겠냐?”

“아, 새끼. 하여간 더럽게 까칠해. 자, 받아.”

석준이 밴드 두통을 내밀고 있었다.

눈치도 빠르지.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써 가리고 있어서 모를 줄 알았더니.

“많이도 가져왔네.”

“눈칫밥만 17년이다. 딱 보니 한 통 가지곤 어림도 없겠더구만.”

느물거리는 녀석에게 씨익하고 웃어주곤 밴드를 붙이기 시작했다.

***

“바로 갈 거냐?”

“그러려고.”

“아 참! 아까 나 명진이 형이랑 수한이 형 봤는데?”

“아, 형들한텐 먼저 간다고 이미 인사했어.”

“그래? 그럼 희주한텐?”

“찾아봤는데 없더라고.”

“음, 그래도 그냥 가면 서운해할 텐데?”

“됐어. 나중에 네가 전해줘. 일이 있어서 나 먼저 갔다고.”

그때, 안쪽에서 잔잔한 음악이 들려와 시선을 돌렸다.

밴드 멤버들이 보인다.

그들은 다소 지친 모습으로 귀에 익은 곡을 연주 중이었다.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OST, I will wait for you다.

피아노곡으로 어레인지한 걸 건반이 치고, 다른 악기들이 받쳐주며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었다.

그때 한쪽에 조용히 서 있던 보컬리스트가 날 발견하곤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인다.

나 역시 그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룸 한편의 의자에서 외투를 집어 들곤 막 돌아섰을 때였다.

젠장! 뭐야?

H해운 사장 아들내미라고 했던가?

근데, 왜 노려보는 거야?

눈을 부라리는 게······. 할 수만 있다면 아주 그냥 잡아먹을 기세다.

하아, 대충 알겠네.

아까부터 희주한테 더럽게 껄떡대더니만······.

내 참. 떡 줄 사람은 있어도 김칫국 마실 사람은 없는데, 저건 또 왜 저러는 거냐고.

그러면서도 선뜻 다가오지 않는 걸 보면 둘 중 하나겠지.

보기보다 겁이 많던가 아니면 신중하던가.

느낌으론 전자 같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어서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곤 곧장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아까도 말했지만, 병원 꼭 가봐, 인마! 괜히 탈 나면 큰일 나니까.”

“누가 오지라퍼 아니랄까 봐······. 간다.”

손을 흔들며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우 씨, 놀래라.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그림자 때문이었다.

어디 있다가 튀어나온 거야?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야! 정희주! 너······.”

뭐라고 한소리를 하려다가 말았다.

내 앞까지 오지도 못하고 어중간한 거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에 말문이 막혀버린 탓이다.

그나저나 얜 또 왜 말이 없어.

그 상태가 지속되자, 괜스레 어색해진다.

분위기 참······.

띵!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대로 타도되나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고, 고마워.”

“응? 아, 뭘······. 새삼스럽긴. 그렇게 말하니까 꼭 올해만 온 거 같잖아?”

“아니 그거 말고···. 노래 말이야.”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몸을 살짝 꼬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에 살짝 장난기가 들어서 반문했다.

“나 노래 안 했는데?”

금세 반응이 온다.

희주는 꼬물대던 것도 멈추고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

“쿡!”

참지 못했다.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이번엔 내가 긴장하고 말았다.

“아, 아니. 이건······그러니까······.”

희주가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진짜 못됐다니까!”

버럭 고함치곤 팩하고 돌아서 씩씩거리며 걸어가던 희주. 그러더니 몇 걸음 가지도 않아 멈춰 서서 말했다. 돌아보진 않은 채로.

“패······.”

무슨 소리를 하려고 또 말을 더듬는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희주가 숨을 크게 들이켜는지 어깨가 들썩인다.

떨리는 음성이 들려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팬 1호는 나거든!”

그렇게 외치더니 복도를 달려 멀어져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 진짜!

“뭐, 뭐라는 거야!”

쟨 가끔 한 번씩 저러더라.

아주 그냥······. 오그라드는 소리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통에 미치겠다니까.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문이 막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수업을 모두 마친 후 곧바로 학원으로 오는 길이다.

딸랑.

종소리를 들으며 문을 열었다.

그저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내부. 데스크도 없이 복도만 날 반기고 있었다.

아저씬 안 계신가?

퉁! 타당! 탕! 다다다다당!

안쪽에서 드럼 소리가 들려온다.

드럼을 치고 계시는 모양이다.

나는 히죽 웃으며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5라고 적혀진 방문 앞에 이르러, 문에 난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보니 아저씨께서 드럼을 치고 계시는 게 보였다.

한데, 가끔가다가 스틱을 멈추고 드럼 높이를 조정하기도 하는 게 연습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방해하는 건 아닐 테니 들어가도 되겠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저씨가 반색하신다.

“왔냐?”

가방을 한쪽에 놓인 소파 위에 내려놓고 웃었다.

“너무 빨리 왔나요?”

“전혀. 마침 막 악기들도 조율을 끝낸 참이다.”

아저씬 기지개를 켠 후 한 쌍의 스틱을 그러모아 쥐곤 일어나셨다.

그러다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내게 달려 드셨다.

무슨 사자가 가젤한테 덤벼드는 기세다.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이미 그땐 아저씨의 손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내 손목을 낚아채고 있었다.

그러곤 번쩍 들어 올리더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

“뭐야, 이거!”

“예? 아, 그게······.”

“똑바로 말 안 할래!”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가 싶었지만, 순순히 얘기했다.

날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간 내 얘기를 듣고 계시던 아저씬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셨다.

“제정신이냐! 그래서 손이 이 꼴이 될 때까지 쳤다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입술까지 잘근거리며 내 손을 바라보시던 아저씬 이내 천천히 내려놓듯 손목을 놔주곤 말씀하셨다.

금방이라도 한숨을 내쉴 것 같은 음성이었다.

“아무래도 넌 연주를 시작하면 곧바로 몰입하는 스타일인 거 같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일반적으론 그렇지.”

으응?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저씨께서 딱밤을 먹이신다.

“큭!”

왜 갑자기 딱밤을······!

“억울하단 얼굴 하지 마. 자꾸 그렇게 자극하면, 열등감에 휩싸인 인간이 어디까지 흉포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

대체 뭔 소린지.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려다가 상처가 쑤셔와 인상을 쓰고 말았다.

“아무튼, 지금의 네 경우엔 독이라고 할 수 있지. 몰입이고 나발이고,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오히려 널 망치게 될 거다. 그러니까······.”

“······.”

“앞으론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선 절대 연주 금지다.”

“에엑!”

“뭐가 에엑이야! 손은 이 꼴을 해가지고 와선!”

“그, 그래도 그렇지! 그, 그럼······노래는요? 그건 해도 되죠?”

끝내 한숨을 내쉬고 마는 아저씨.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악기 중에 가장 소중한 게 뭔지도 모르는 놈이라니······.”

아저씨께선 한층 단호해진 말투로 말씀하셨다.

“정정하지. 내가 없는 데선 그 어떤 음악적 행위도 금지다.”

“그런 게 어딨······.”

말을 잇지 못했다.

눈빛이 얼마나 살벌한진 그냥 가만있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안 하면 되잖아요.”

시선을 피하며 얘기했을 땐 이미 아저씬 다른 말씀을 하고 계셨다.

“연주하다 보면 손을 다치는 거야 다반사지. 그렇긴 해도, 어떤 연주자도 너처럼 이런 식으로 자기 몸을 험하게 다루진 않아. 웬 줄 아냐?”

이 정도 가지고 뭘 또 그렇게까지 얘기하냐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분위기상 그랬다간 진짜 한 대 맞을 거 같아서.

“······모르겠는데요.”

“뮤지션이 기댈 수 있는 건 자신의 오감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얘기인지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감이요?”

“그래.”

시각, 청각, 촉각까진 알겠다.

굳이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을 만큼 뻔한 얘기니까.

그런데 후각이나 미각은 음악이랑은 상관없지 않나?

만일 두 가지 감각도 음악에 필요한 요소라면······.

호오! 노래방에서도 배운 적 없는 얘기에 호기심이 치민다.

그래서 막 물으려는 찰나였다.

“그 오감을 제대로 쓰려면 몸이 어때야겠냐?”

“아픈 데가 없어야겠죠.”

잠시 날 바라보던 아저씬 고개를 내저으며 방을 나가신다.

“대답은 꼬박꼬박 잘해요.”

어디 가시나 싶었는데, 잠시 나갔다 온 아저씨의 손에는 정체 모를 연고와 붕대가 들려 있었다.

“치료를 할 거면 제대로 하든지. 보나 마나 병원은 가지도 않았을 테고······.”

아저씬 무슨 보물이라도 다루듯 내 손가락에서 밴드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곤 면봉으로 연고를 펴 바르기 시작했다.

“다른 건 알겠는데, 미각이랑 후각은 왜 필요한데요?”

기대감에 부풀어 물었지만, 한창 붕대를 감고 계시던 아저씨께선 소리 없이 웃기만 하셨다.

“나중에 알게 될 날이 올 거다.”

지금은 말해주지 않겠다는 얘기로밖에는 안 들린다.

눈치를 보아하니, 매달려봐야 대답해줄 거 같지도 않고.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로 봐선 지금 들어봐야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다가 이내 어제 연주 중에 느꼈던 감각을 떠올리곤 물었다.

한참 동안 내 설명을 들으시던 아저씬 턱을 매만지셨다.

생각하실 때 습관인 것 같은데,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좀 불안해진다.

몇 번이나 날 보고, 또 생각에 잠기시고······.

간혹 고개를 갸웃 거리도 하고 때론 찡그린 얼굴이 되었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기도 하시는 모습에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불길한 생각마저 들었을 때였다.

“이거 참. 얘기로만 들었지. 진짜 그게 가능할 거라곤······.”

혼잣말을 하려면 들리지나 않게 하시던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시는 아저씨.

답답하게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다.

자꾸 궁금하게만 만들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씀 좀 해주실 일이지.

내 속내를 알아차리신 걸까?

아저씬 날 가만히 바라보시며 턱을 매만지시다가 갑자기 씩 웃으셨다.

그러곤 불쑥 물으신다.

“너······.”

“······?”

“작곡 한번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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