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 취미예요(3)
전주가 흘러나오고 있다.
익숙한 멜로디다.
오리지널과는 조금 다르긴 해도, 기타 리프가 귀에 익는다.
이글 혹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기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사막 한가운데 있는 듯 입안이 버석 버석한 느낌이다.
전주가 끝날 때 아저씨가 눈짓을 해 보이는 게 보인다.
마이크를 쥔 채 눈을 감았다.
- On a dark desert highway.
Cool gentle wind in my hair.
Warm smell of colitas.
Rising up through the air.
Up ahead in the distance.
I saw a glowing light.
My head grew heavy,
and my sight grew shady.
I had to stop for the night.
사막의 까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 머릿결에 바람이 스치고
은은한 콜리타스 냄새가
대기에 진동하는군.
저 멀리 앞에
가물거리는 불빛이 보이는군.
머리가 무거워지는 듯하고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있어.
오늘 밤 묵을 곳을 찾아봐야겠어.
1977년 2월 발매된 싱글.
이글 혹스의 5집 앨범의 수록곡이며 동시에 대표곡.
이글 혹스 멤버들이 직접 작사와 작곡을 한 이 곡은 최대 히트곡이 되었고 1978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는 동안, 마치 내가 1970년대 마약과 향락 그리고 돈과 파티, 폭행으로 버무려진 미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흔히들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 어둡고 음습한 그러면서도 더없이 퇴폐적이면서도 한없이 자유로운 공기가 느껴진다.
대마초를 피우며 사막에 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보고 차를 멈춰 세운 나는 호텔 캘리포니아를 찾아간다.
관리인은 여자고, 이 여자에겐 남자친구가 무척 많다. 말하자면 닳고 닳은 여자다. 그들은 호텔 안마당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고, 이어 방에서 파티가 벌어진다. 그러다가 사소한 시비로 싸움이 일어나고 칼부림까지 벌어지는 걸 본 나는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경비원은 내게 말한다.
- We are invented to receive.
You can check 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우린 손님을 받기만 할 수 있어요.
당신은 언제든지 방을 뺄 수는 있지만
떠날 수는 없을 걸요.
이글 혹스가 이 곡을 쓰면서 순수하게 여행을 노래했는지, 당시의 시대 상황을 비판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런 논란도 지금의 내게는 중요치 않다.
그저 마이크 잡은 손을 내리며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기타 소리가 멎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눈을 떴다.
그리고 들을 수 있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저씨로부터.
“너······. 진짜 뭐냐?”
머쓱해졌다.
노래방에서 나온 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부른 노래였다.
아, 외할아버지 생신 때 축하송을 부른 건 논외로 하자.
그건 좀 의미가 다르니까.
제대로 부른 것도 아니었고.
부르기 전까지만 해도 살짝 걱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내 노래에 빠져들었고 그 후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곡에 심취해서 이글 혹스의 곡을 부를 뿐이었다.
한데, 아저씨의 반응을 보니 듣기 나쁘진 않았나 보다.
씨익.
“들을 만 했어요?”
아저씨께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들을 만 했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뒤 버럭버럭 고함치신다.
“이게 들을 만 하냐고?”
어? 좀 격한데?
뜻밖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 저······. 좀 진정하시고······.”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새 아저씨의 두 손이 내 어깨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악!”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제야 아저씬 흠칫하시더니 놀라서 손을 놓으셨다.
그러곤 뒤로 비칠비칠 물러나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진짜······. 세상 참 불공평하네.”
허탈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눈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한숨을 깊게 내쉰 아저씨께서 날 쳐다보신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내친김에 한 곡 더 해보자.”
“그, 그러죠.”
“혹시 동쪽 하늘 되냐?”
“이순철이 부른 거 말인가요?”
“바로 시작한다.”
아저씨의 표정도 그렇고, 어째 심각한 분위기인데?
전주가 흘러나오고, 나는 곧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
한 곡이 두 곡 되고, 두 곡이 네 곡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두 합쳐 한 열 곡은 부른 거 같다.
덕분에 벌써 시간은 9시가 다 되어간다.
아무리 과외가 없는 날이라고 해도 이 이상 늦어지면 곤란해질 수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야간자율학습도 없는지라 자칫하면 어머니께 변명할 말이 궁색해질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생각해둔 얘기가 통할 수 있겠지만.
“저 가볼게요.”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아저씬 멍한 상태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다.
전혀 듣지 못하시는 건지, 아니면 딴생각에 빠져 있으신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럼 내일 뵐게요.”
하는 수없이 고개만 숙여 보이곤 돌아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방문을 열었고, 통로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딸랑.
종소리와 함께 문이 먼저 열렸다.
“어?”
“아, 죄송합니다.”
정장 차림의 남자와 부딪힐뻔했던 나는 곧바로 사과를 하곤 학원을 빠져나갔다.
***
“강혁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혁수는 그제야 눈앞에 익숙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는 걸 알아차렸다.
“어, 왔냐?”
“뭐야? 넋이 나가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근데 왜 여기서 혼자 청승 떨고 앉아 있냐?”
“뭐, 좀······. 아! 그 애!”
혁수는 뒤늦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아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 모습에 김성만은 의아한 눈빛을 해 보였다.
여태 강혁수와 알고 지내면서 처음 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름도 못 물어봤는데······.”
중얼거리며 한숨까지 내쉬는 그를 향해 김성만이 슬그머니 물었다.
“혹시 꼬맹이 말하는 거냐?”
“응? 봤어?”
“들어올 때. 하마터면 부딪힐 뻔 했······. 근데, 걔가 왜? 한번 키워보려고? 소질은 좀 있고? 근데, 너 손 놓은 좀 되지 않았냐? 뭐, 아직 인맥은 짱짱하니까, 안될 거야 없겠지만······.”
순간 혁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 소질?”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였다.
***
평소보다 두 시간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어머닌 별말씀이 없으셨다.
지난번 노래방 사건이 있었던 후로 벌써 한 주가량이 지나서이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한 게 컸다.
학교에 따로 찾아오신 것 같진 않지만, 어쩌면 따로 뭔가 알아보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알아내진 못하셨겠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아마 한동안은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가 주지 않으실까 싶다.
다시 말해 지금이 적기란 얘기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 잠시 고민하다가 거실로 나왔다.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물으신다.
“왜, 아들. 아, TV 소리가 시끄러워서 그래? 소리 줄일까?”
“아뇨. 그건 아니고······.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요.”
“그래?”
리모컨을 들어 TV를 끄신 어머니께선 소파 등받이에서 상체를 일으키시며 자세를 바로잡으신다.
진지하게 들으시겠다는 무언의 표시다.
“저, 어머니.”
“응. 말해, 아들.”
“과외 말인데요.”
“왜? 힘들어? 선생님 바꿀까?”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머뭇거리다가 눈 딱 감고 말씀드렸다.
“이제 그만했으면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