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 취미예요(2)
이미 드럼에 대한 이론은 꿰다시피 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래방에서 코인을 사용한 덕분이다.
어디 드럼뿐인가.
기타도 베이스도 마찬가지.
알기는 다 안다.
이론은 물론이고, 진짜 악기가 아닌 대체품들로라지만 수없이 연습도 했다.
악기에 대한 이해는 노래를 부르는 데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 당시 점수를 1점이라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래서 어렴풋이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과연 실전은 달랐다.
탕!
스틱이 미들 탐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느낌이 왔다.
와! 이건 정말이지······.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짜르르하다.
꼭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만 같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스틱을 놀리기 시작했다.
스네어 드럼부터 하이 탐, 미들 탐 그리고 플로어 탐까지. 스틱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처음엔 아저씨가 보여주었던 움직임을 쫓아 드럼을 두들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자 어느새 내 손은 말 그대로 내키는 대로 스틱을 휘두르고 있었다.
채앵!
왼손에 쥐고 있던 스틱이 크래쉬 심벌을 때리는 순간 이미 오른쪽 스틱은 하이 탐과 미드 탐을 연달아 두들기고 있었다.
발도 가만있질 않았다.
이미 흥에 취할 때로 취한 나는 페달을 밟고 있었다.
둥!
베이스 드럼 소리가 울리고 있을 때에도 양손은 리드미컬하게 스틱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타앙! 두드드드드드드. 쾅! 타탕! 두구두구두구두구······둥!
한바탕 난리를 치듯 내키는 대로 쳐대는 사이, 머릿속엔 자연스레 곡 하나가 떠올랐다.
탕 타당 다당! 탕 타당 다당!
스틱들이 규칙적으로 탐탐을 두들겨대는 사이마다 왼발은 페달을 밟고 있었고 하이햇 심벌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창! 창! 창! 창······!
그 와중에 한 번씩 오른손에 쥔 스틱이 박자를 놓치지 않고 크래쉬 심벌을 때렸다.
탕 타당 다당! 창! 탕 타당 다당! 창! 탕 타당 다당! 채앵!
이미 내 머릿속에선 기타 리프와 함께 베이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들려오고 있었다.
블루제플린의 ‘모비딕(moby dick)’.
둥! 탕 다당다당! 둥! 탕 다당다당!
점차 빨라지던 스틱이 어느새 미친 듯이 탐과 탐 사이를 내달리기 시작한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너무 신이 나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존 본햄도 이런 기분이었겠지?
아니, 아니지.
감히 블루 제플린의 전설적인 드러머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다.
그렇긴 한데······.
아, 몰라 몰라!
지금 이 순간만은 내가 바로 존 본햄이다.
혈관의 피가 뜨겁다 못해 끓어올라 심장을 미친 듯이 두들겨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탕!
마지막 한 방을 때려 넣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하악 하악 하악······.”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가 거칠게 들려온다.
“후우······.”
숨을 고르며 길게 들이 내쉬자, 터질 것 같던 심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가 흠칫 놀랐다.
아저씨가 날 바라보고 계셨는데, 꼭 미친놈이라도 보고 계신 눈빛이었다.
눈이 마주친 뒤에도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고.
그 상태로 한참을 쳐다보고 계시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셨다.
“너···뭐냐?”
***
“하아!”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말씀하셨다.
“대체 여긴 왜 온 거냐?”
내가 생각해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자, 아저씬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악기를 내려다보신다.
기타와 베이스.
전형적인 일랙트로닉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악기들. 현대음악 그중에서도 락 계통의 음악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악기들이다.
그걸 방금까지 신들린 듯 연주한 게 나였고.
“악보도 볼 줄 알고, 못 다루는 악기도 없고······. 그런데 뭘 더 배우겠다고 여길···. 아, 관두자. 더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내젓던 아저씬 갑자기 불쑥 물으셨다.
“독학이냐?”
뭐, 독학이라면 독학이려나?
기타 대신 빗자루를 잡고 코드 익힌다고 한세월, 슬라이드며, 해머링, 풀링 등 주법에서 배킹까지 또 한세월. 게다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곡들과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을 따라 하며 연습한 시간만 해도 얼마던가.
리셋을 해서 그렇지, 덕분에 손가락에 가시가 얼마나 박혔던지.
그렇긴 하지만, 빗자루는 빗자루일 뿐.
진짜 기타를 잡아보는 게 처음이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실제로도 그 때문에 오늘 여길 찾은 거고.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믿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처음 잡아봤는데요?”
날 가만히 바라보시다가 다시 물으신다.
“뭘? 기타를? 아니면 드럼을?”
“그게······. 전부 다요.”
꿈틀.
눈을 찡그리시더니, 내 눈을 후벼 팔 듯 뚫어져라 바라보시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신다.
“솔직히 믿기진 않는다마는······.”
머리가 아프신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시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으신다.
그 상태로 미간을 문지르시며 말씀하셨다.
“확실히 거칠긴 해. 분명 칠 줄은 아는 거 같은데, 네 말마따나 꼭 처음 잡아본 사람 같달까. 특히 기타는 엉성하기까지 하지. 뭐, 네 말대로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손끝이 아파서 미칠 것 같다.
코드를 알고 있으면 뭐하나?
주법을 수없이 연습했으면 뭐하냔 말이다.
몸이 따라주질 않는데.
원래 기타라는 게 무수한 연습 속에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가 돼야 제대로 된 음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니까.
그걸 말랑말랑한 손가락으로 따라가려니 아플 수밖에.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원하는 대로 쳐지지가 않았다.
아마 그 때문에 저런 얘기를 하는 걸 테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가 손을 내미셨다.
“손 한번 보자.”
주춤주춤 오른손을 내밀자, 아저씨가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날 쏘아보신다.
“장난해?”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장난 좀 쳐봤더니 안 통하네.
다시 왼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저씬 내 손을 슬쩍 한번 만져보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얘기했다.
“이 손으로 용케도 그런 곡을 쳐댔네.”
사실 나도 좀 믿기진 않는다.
정신없이 연주하다 보니 어느새 잉베이 팜스틴의 ‘이블아이(Evil Eye)’를 치고 있었으니까.
미쳤지.
솔직히 창피하다.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아무리 정신줄을 놨다고 해도 내 주제에 그런 곡을 연주하다니.
과연 진짜 기타는 달랐다······고나 할까.
아마 수십 군데는 틀렸을 거다.
아니, 제대로 소리를 내기는 했을까?
그땐 거의 혼이 반쯤 나간 상태여서 내가 뭘 치고 있는지도 몰랐으니 나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좋아.”
아저씬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물어오셨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
“······.”
“설마 아까처럼 그런 사기를 쳐댈 생각은 아닐 테고.”
“사기요?”
“그럼, 그 정도 실력에 악기를 가르쳐달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 그런 건 아닌데······.”
“아니긴, 짜샤! 진짜 이건 네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함부로 하지 마라. 맞아 죽기 딱 십상이니까.”
턱을 매만지며 아저씬 중얼거리셨다.
“아무튼, 혼자서 그 정도까지 익혔다는 건데······. 흠, 그럼 이렇게 하자.”
“······?”
“30만 원.”
“예?”
“한 달에 30만 원이라고.”
“아! 악기 가르쳐주시는 건가요?”
“장난하지 말랬지? 가르쳐주긴 뭘 가르쳐?”
“그럼?”
“대여료.”
“대···여료요?”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뭔가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거뿐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를 배우지도 않는데, 연습실을 빌리는 것만으로 30만 원이나 내는 게 비싼 건지 싼 건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왜? 싫어? 기타라면 몰라도 드럼 같은 건 집에서 칠 수 없잖아? 여기서라면 질릴 때까지 칠 수 있을걸? 아무 때나 내킬 때마다 와서 질릴 때까지 연주할 수 있는데, 그 정도면 싼 거 같지 않냐?”
듣고 보니 그렇다.
더구나 악기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아저씨 말마따나 집에서 악기를 연주한다? 드럼은 말할 것도 없고 기타도 잡기 어려울 거다. 만일에 하나 그랬다간 어머니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테고, 또 그 얘기가 외할아버지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난다.
“그렇게 할게요.”
그제야 피식하고 웃어 보이시는 아저씨.
“어디 보자. 마침 5번 방이 비니까, 거기다가 드럼 하나 설치해놓으마. 나머지 악기는 한동안 이거랑 이거 쓰는 걸로 하고. 오케이?”
“예. 아저씨.”
“자식이, 아저씨가 뭐냐?”
“그럼 뭐라고 불러야······.”
“강혁수. 내 이름이다. 앞으로 혁수 형이라고 불러라.”
“그래도 형이라고 하기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거 같은데요?”
“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
“아! 그, 그렇지만······. 아닌 건 아니잖아요! 딱 봐도 저보다 스무 살은 많아 보이시는데.”
“마! 뮤지션한테 나이는 그냥 장식이야! 이 바닥만큼 철저히 실력주의인 곳이 어디 있다고. ”
“하하하. 그래도 싫어요.”
“징그러운 자식. 웃지 마라. 정든다.”
말은 그렇게 하시지만, 웃고 계셨다.
나 역시 웃고 있었고.
그렇게 마주 보며 웃고 있을 때, 아저씨께서 지나가듯 물으신다.
“악보는 당연히 볼 줄 알 테고······. 근데, 너 노래는 좀 하냐?”
씨익.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악기를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올려다본 아저씨께서 벙찐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설마 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좀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