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9화 (9/260)

# 9

#9. 취미예요(1)

딸랑.

종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데스크도 없이 긴 복도가 날 맞이한다.

복도 양편에 몇 개의 문이 보여서 호기심에 기웃거리려던 참이었다.

여러 문 중 하나가 열리더니,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아저씨 한 분이 나오셨다.

“무슨 일입니까?”

교복을 입고 있으니 말을 놓을 만도 한데, 아저씬 그러지 않으셨다.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인성이 됐거나 차갑거나.

느낌상으론 전자 같다.

“여기서 악기를 배울 수 있다고 해서요.”

“악기요?”

속으로 대답했다.

예! 진짜 악기요!

속내가 표정에서 드러났나?

아저씬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으셨다.

그러더니 묻는다.

“K고등학교 학생 아니에요?”

“맞는데요.”

지금 입고 있는 교복만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한데, 내가 K고등학교 다니는 거랑 악기랑 무슨 상관이 있지?

잠시 날 바라보던 아저씬 상의 윗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볼펜을 끼적거리곤 부욱하고 찢어 내미신다.

받아보니 약도랑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XX 음악학원?

여기 오기 전 검색했을 때 나왔던 학원들 중 한 곳이었다.

여긴 왜? 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아저씨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무슨 악기를 배우려는지는 모르지만, 여기보단 거기가 나을 거에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물으셨다.

“알아보니까, 여기가 제일 실력이 좋다고 하던데요?”

“하하하. 그래요? 근데 이걸 어쩌나? 여긴 좀 전문적이랄까. 아, 그래요. 밥벌이로 음악 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하면 알려나? 아무튼, 즐겁게 음악 하기엔 그다지 좋지 않은 건 분명해요. 그러니 차라리······.”

말끝을 흐리고 있었지만, 뒷말은 더 듣지 않아도 알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그러니까 아까 내가 다니는 학교를 확인한 것도 다 그래서였군.

이 근방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싹 다 모인 학교. 그러면서도 힘깨나 쓰거나 제법 산다는 집안의 자식들만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등록금도 비싼 학교.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런 곳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학교 다니는 애들은 악기를 배워도 이런 곳에서 배우질 않는다는 거지. 유학파 출신의 교수들한테 배우면 또 모를까. 그것도 기타나 드럼 같은 게 아니라 대부분 클래식 쪽일 테고.

그러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한마디로 장난삼아 찾아온 거면 다른 곳으로나 가보란 얘기다.

뭐, 확실히 내가 여길 찾은 건 취미 차원인 건 맞지만······.

어째 기분이 좀 거시기 하네.

그래서 그랬을 거다.

도발적으로 말이 튀어 나간 건.

“가능하면 최고한테서 배우고 싶어서 그래요.”

아저씨의 눈빛이 변한다.

호오, 이것 봐라?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그래, 내가 원하던 반응이 바로 그거다.

그리고 사람 사이엔 굳이 연인 관계가 아니라도 밀당이 필요한 법이고, 조일 때는 또 바짝 조여야 한다는 거다.

바로 지금처럼.

“제가 악기를 다뤄본 적은 없어도 이거 한가지는 알거든요. 뭐든지 처음이 중요하다는 거. 처음 배울 때 습관 잘못 들이면 평생 고칠 수 없다는 거 말이에요. 그래도 평생토록 내 몸처럼 다루며 즐길 악기인데, 아무 데서나 배우고 싶지 않거든요.”

내 말을 들은 아저씨의 눈빛이 다시 한 번 변한다.

이번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쯤 했으며 한 발짝 물러나는 게 좋다.

무릇 밀당이란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니까.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뭐, 사실은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지만.

“역시 우리나라에선 안되는 건가? 하아, 그렇다고 미국까지 가서 배우긴 좀 그런데.”

슬쩍 눈치를 보니, 아저씨가 기가 차다는 듯 날 보고 계셨다.

씨익.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대놓고 물었다.

“가르쳐주실 거죠?”

아저씨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이내 픽 하고 웃더니 고개를 내저으신다.

그러곤 돌아서며 얘기하셨다.

“따라와라.”

반말이다.

근데, 듣기 좋은 이유는 뭘까?

***

통로를 지나쳐 들어간 곳은 흡음재로 꼼꼼히 벽을 감싸고 있는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 놓인 드럼과 양쪽에 서 있는 커다란 앰프가 눈길을 끌었다.

“악기는 처음 다뤄보는 거냐?”

“예.”

빗자루라면 몰라도 진짜 악기를 다뤄보는 건 처음이니까, 거짓말은 아닌 거지.

아저씬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불쑥 말씀하셨다.

“그럼 좀 비싼데. 괜찮겠냐?”

“얼만데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고 있다. 마치 브이 자를 그리듯.

“한 달에 20만 원이요?”

“아니, 1회 20.”

헐. 진짜 세다.

지금 받고 있는 용돈으로는 좀 버거울 거 같은데.

망설이고 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저씨께서 얘기하신다.

“말했잖냐? 여기 프로들만 오는 곳이라고.”

“그만큼 실력은 확실하다는 얘기겠네요.”

“글쎄다. 내 입으로 그렇다고 하기엔 좀 민망하고. 아무튼, 어쩔래?”

말하면서 아저씬 다시 한 번 수첩을 꺼내 드셨다.

캘린더를 보는 걸 보니, 스케줄을 확인하는 듯하다.

슬쩍 봤는데, 달력에 빈 곳이 없다.

깨알만 한 글씨로 가득하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긴 한데······.

취미로 하기엔 액수가 좀 커서 망설이고 있자니, 아저씨가 먼저 말문을 여셨다.

“수요일, 금요일.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시간대는 지금과 같고. 어떻게, 해볼래?”

젠장! 아까 호기롭게 외국 운운하며 도발까지 했는데, 여기서 못하겠다고 하면 진짜 찌질한 게 되는데.

그동안 명절 때마다 어른들께 받아 통장에 넣어둔 돈이라면 몇 달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에이씨, 그래. 까짓 하지 뭐. 어차피 이론은 알고 있으니까, 몸에 익히기만 하면 되는 일. 얼마 걸리진 않을 거다.

결심을 굳히고 막 대답하려던 때였다.

텅!

언제 움직였는지, 아저씬 드럼 앞에 앉아 계셨다.

스틱을 가볍게 두들기자, 방안이 금세 꽉 차버렸다.

현란한 드럼 소리로.

두둥! 두드드드드드드!

그 소릴 들으며 아저씨가 드럼 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완전 다르다.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듣던 소리랑 같은 소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굳이 비교하면 장난감 차랑 벤츠 정도의 차이다.

그 압도적인 사운드 앞에서 나는 굳어버렸다.

아니 정신이 나간 걸지도 모른다.

이미 내 머릿속에선 돈이고 나발이고 전부 날아가 버렸고, 심장은 어느새 드럼 소리와 동조하듯 같은 박자로 뛰고 있었다.

두그두그두그두그······드드드드, 텅!

그저 멍하니 선 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소리가 멎었다.

씨익.

날 보며 웃고 계시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뒤늦게 깨달았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눈까지 크게 뜨고 멍청하게 서 있었다는 걸.

살짝 민망해져서 시선을 피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어때? 한번 쳐볼래?”

어?

솔깃하지 않을 리가 있나.

아까부터 몸이 근질근질한 게 몸이 바짝 달아올라 있었는데.

어쩔까?

진짜 드럼은 처음이지만······.

어째 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래도 돼요?”

“안될 건 또 뭐 있어?”

“혹시 이거 치게 되면 빼박?”

“빼박? 그게 뭔 말이냐?”

“빼도 박도 못한다는 뜻이에요.”

“뭐? 하하하하하!”

재밌다는 듯 크게 웃더니 손짓으로 날 부르신다.

혹시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 얼른 다가가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스틱을 건네주시는 아저씨.

땀이 조금 배어 있는지 스틱이 축축한 느낌도 들었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불쾌하기보단 오히려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며 방금까지 아저씨가 드럼을 두들기고 계셨을 때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두근두근.

심장이 벌써부터 난리다.

“스틱은 이렇게 쥐고······.”

이미 알고는 있지만, 아저씨가 일러주는 대로 아무 말 하지 않고 스틱을 거머쥐었다.

진짜 스틱이 주는 느낌에 감동했다고나 할까.

“아, 아. 너무 세게 쥐었다. 그럼 스틱 부러진다. 자칫하면 네 손목이 나가는 수도 있고. 그렇지. 그렇게 살짝 쥔 듯 쥐지 않은 듯 부드럽게. 그 상태로 이렇게······.”

탕!

스틱을 타고 전해지는 울림.

그 진동에 온몸이 찌르르하다.

그 느낌이 너무 기분 좋아서 절로 입가에 웃음이 걸릴 지경이었다.

그걸 느끼신 걸까?

아저씬 날 보고 웃으며 물으셨다.

“그렇게 좋냐?”

“······그러게요.”

“참네. 남의 말 하듯 하긴. 암튼, 이렇게 치면 되는데······. 아까 내가 치는 거 봤지?”

“네.”

“똑같이 치라는 거 아니니까, 긴장하지 말고.”

몰려드는 흥분감에 몸이 달아서 그런가.

그게 아저씨 눈에는 긴장한 것으로 보이셨나 보다.

“그런 거 안 키워요.”

“나 참. 한마디도 안 져요.”

아저씬 고개를 다시 한차례 내젓고는 뒤로 물러나고 계셨다.

“느낌 가는 데로 한번 쳐봐. 알지? 삘?”

“필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아저씨가 팔짱을 낀 채 비켜서는 순간,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숨을 내뱉으며 곧바로 스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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