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8. 꿈은 아니다(3)
돌아오는 차 안에서 축 늘어져 있을 때, 형이 옆구리를 쿡 찔러온다.
“왜?”
안 그래도 지치는구먼.
고개도 돌리지 않고 되묻자, 형이 키득거린다.
아, 정말! 형만 아니라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너 아까 용돈 얼마 받았냐?”
오호! 그게 궁금하셨구나, 우리 형님께서.
“많이 받았나 보네?”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형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열 장 주시더라.”
응?
수표는 아닐 테고, 오만원권이란 얘긴데······.
아무래도 난 얘기 안 하는 게 낫겠다.
“뭘 그렇게 많이 주셨대?”
“흐흐. 이게 다 네 덕분 아니겠냐? 오늘 할아버지, 완전 기분 좋으시던데.”
“알면 좀 잘해. 형도 만날 웹툰만 보지 말고···.”
“흐흥흥.”
이미 딴전이다.
어느새 꺼내 든 핸드폰을 들고 또 어딘가에 접속해 낄낄거리고 있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을 몰아내며 찬란히 빛나는 도심의 불빛들이 유혹하듯 반짝거린다.
평소엔 무덤덤하기만 했는데, 새삼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설렌다.
동시에 이제부터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노래방에 갇히기 전보다 지금 더 심한 갈증이 느껴진다.
그래, 아버지완 다르게 살 거야.
보란 듯이 성공해서 누구 눈치도 보지 않을 거다.
꽉.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여전히 창밖으로 흘러가는 도시의 야경을 보며 흥얼거렸다.
“I can't be no satisfaction”
I can't be no satisfaction
만족할 수가 없어
I can't be no satisfaction
만족할 수가 없어
Cause I try and I try and I try and I try
계속 애쓰고 애쓰고 애쓰는데
I can't get no, I can't get no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한참 흥얼거리고 있자, 형이 불쑥 물어온다.
“뭐냐? 그거?”
“응?”
“좋은데? 음음음······.”
허밍으로 따라부르는 형. 음정 박자가 정확하진 않지만, 곧잘 따라 한다.
누가 어머니 아들 아니랄까 봐.
“Satisfaction.”
노래 제목을 알려주자, 형이 다시 물었다.
“누가 부른 건데? 빅벤? 카이니?”
쯧. 수준하곤.
가수라곤 아는 게 그것밖엔 없······.
아니지. 나도 노래방에 갇히기 전엔 몰랐으니 도찐개찐인가?
뭐, 남 말할 처지는 아니네.
“롤링 락즈.”
“오! 나 걔들 알아!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내가 한번 듣고 딱 알아봤다니까, 얘들은 뜨겠구나 하고!”
신음이 나오려 한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괜히 내 속만 뒤집어질 거 같아서.
***
세상에서 제일 꼴불견인 게 욕심만 많고 노력하지 않는 거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당장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수능이 끝날 때까진 한자라도 더 봐야 한다.
그래서 되도록 좋은 성적으로 S대에 들어가야 한다.
만점까진 아니더라도 이왕이면 수석이라도 하면 더 좋고.
솔직히 지금도 충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영·수 한정이다.
그 밖에도 공부해야 할 과목이 없는 건 아니다.
아무튼, 지금은 일분일초도 아깝다.
나는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히곤 참고서를 펼쳤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형이 들어왔다.
울컥했지만, 일단 참았다.
혹시라도 중요한 얘기라도 할······.
“야, 아까 그 노래 뭐라고 했지?”
······리가 없지.
인상을 팍 구기며 대답해주었다.
“롤링 락즈의 ‘Satisfaction’.”
그러곤 얼른 나가란 의미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정말 도움 안 되는 형이네.
이제까지 심각하게 분위기 잡던 게 한순간 흩어져버린 느낌이다.
고개를 내젓다가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롤링 락즈의 ‘Satisfaction’이라······.
책상 서랍을 뒤져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멜롱이 가장 낫겠지?”
음원 사이트가 어떤 게 있는지 정도는 나도 안다.
공부에 최우선적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가끔 한 번씩 노래방에 갈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거지, 적어도 요즘 유행하는 최신곡은 챙겨 듣는 편이었다.
어디 보자, 롤링 락즈······.
검색해보니 곡들이 쫙 뜬다.
하나같이 눈에 익는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노래방에서 숱하게 불러제꼈던 곡들이니까.
이어폰을 꽂고 음원을 결제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햐!”
진짜, 목소리 죽이네.
부드러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에 불만을 가지고 한껏 쏟아내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리듬은 빠르고 신 나지만, 어째선지 늘어지는 기분까지 들고 있다.
역시 음질이 다르니 느낌도 다르다.
노래방에서 코인을 사용해 들었던 때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나 할까.
이래서 다들 스피커 타령을 하나 보다.
노래방 스피커의 찌글찌글한 음향으로 듣다가 이렇게 빵빵한 음질로 들으니 사뭇 느낌이 다르다.
완전히 다른 노래 같다.
신세계가 따로 없다.
신기한 기분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는 사이, 점차 악기 소리에도 관심이 간다.
역시 이 부분도 노래방에서 듣던 것과는 천지 차이다.
라이브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녹음된 음원이다 보니 생생하게 전해지는 악기 소리들이 자꾸만 날 자극하고 있었다.
기타소리도 그렇고, 베이스며 드럼도 중독성이 장난 아니다.
“후우! 천재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 난 모른다.
사람마다 듣는 귀가 다르고, 선호도와 주관이라는 것도 분명 존재하니까.
더욱이 이 곡은 오래전에 나온 곡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거의 반세기 전에 나왔다고 했었지 아마.
그런데도 이 정도란 말이지.
혀를 내두르다가 내친김에 다른 곡들도 찾아보았다.
이번엔 브루노 비너스의 ‘Just The Way You Are’.
틀자마자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Oh, her eyes, her eyes
Make the stars look like they're not gleaming
Her hair, her hair
Falls perfectly without her effort
She's so beautiful
And I tell her every time
오, 그녀의 눈, 그녀의 눈
하늘의 별들이 빛나지 않는 것같이 보이게 만들죠
그녀의 머리카락, 머리카락···.
그녀가 애쓰지 않아도 완벽하게 흘러내리지요
그녀는 너무도 아름답고 난 그녀에게 매일 말해주어요
무슨 사람 목소리가······.
꼭 입 안에 넣으면 곧바로 녹아버릴 것 같은 아이스크림 같냐?
멜로디도 리듬도 장난 아니고.
기억하기론 하와이 출신이라고 했는데.
제2의 마이클 잭슨이라고까지 불리는 대중음악의 선두주자라고도 했고.
그럴만하다.
이 정도면 어떤 여자도, 아니 설사 남자라도 반할 수밖에 없겠다.
코인을 물처럼 쓰며 머릿속에 욱여넣은 지식들 덕분인지 듣는 내내 절로 떠오르는 정보들로 인해 한층 더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좋은데?”
농담이 아니라 간만에 정말 즐겁다.
귀가 호강한다는 느낌이 딱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거다.
나는 한참 동안 멜롱을 뒤적거리며 노래를 들었다.
***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정신없이 노래들을 찾아 듣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를 넘겨버렸던 것이다.
장르 불문. 어르신들이 잘 듣는 옛날 노래부터 시작해서 8,90년대를 뒤흔들었던 가요까지, 그리고 비틀즈에서 머룬 파이브까지 닥치는 대로 듣다 보니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난 난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입가엔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어이, 브라덜! 너 뭐 좋은 일 있냐? 왜 아침 댓바람부터 실실 쪼······.”
“형, 분노한 동생이 야성에 눈을 뜨기 전에 그 입 닫아주면 좋겠는데?”
“어, 어······.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다.”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살짝 노려봐주니, 형은 그대로 입을 닫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미 관심을 끊어버린 나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집을 나섰다.
핸드폰에선 어젯밤 결제한 노래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덕분에 발걸음도 상쾌하게 등교할 수 있었다.
***
학교에서도 수업만 끝나면 재까닥 이어폰부터 귀에 꽂았다.
교실 안 여기저기에서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서로 보여주면서 낄낄거리는 중이었고 남학생들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머뭇거리는 게 보였지만,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관심 딱 끊고 그저 노래만 들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음악.
그저 나와는 다르게 부르고 있는 가수들의 목소리에만 관심이 가는 게 아니라 그 노래들과 절묘하게 섞여들어 곡을 한층 더 빛나게 해주는 악기 소리에 집중했다.
정말이지 들을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노래도 노래지만, 어떻게 이런 연주들을 할 수 있는 거지?
아니, 이런 곡을 어떻게 만드는 걸까?
요즘 유행하는 노래들도 그렇지만, 예전 노래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기가 찼다.
천재들은 천재들인 모양이다.
감탄을 하며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노래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까똑.
톡이 날아왔다.
에잇, 한참 잘 듣고 있는데······.
덕분에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다.
생각지도 않은 방해에 인상을 쓰며 까똑창을 열었다.
- 정말 이러기야?
희주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일테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다.
- 또 뭐가?
방해받았다는 느낌에 다소 퉁명스럽게 답톡을 보내자, 곧바로 대꾸하는 희주.
- 그렇게 나오시겠다?
- 괜히 시비 걸지 말고.
- 됐다. 관두자. 말을 말아야지.
그래, 그러는 게 서로 속 편한 거지.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관심을 꺼버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음악을 들으며 문제를 풀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때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까똑으로 괜한 시비를 걸었던 그날, 희주가 밤에 전화를 해서는 다짜고짜 울면서 짜증을 부렸고, 왜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은 채 울기만 하는 그녀를 달래느라 혼쭐이 났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화이트데이였단다.
그래서 뭐?
지는 나한테 초콜릿 하나 준 적도 없······줬었던가? 흠, 헷갈리네. 지난달 방학 중에 발렌타인 데이 때 잠시 보자고 했을 때 거절했었는데, 혹시 그때?
됐다. 이미 지난 일인데, 뭐 어쩌라고.
그리고 걔랑 나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어차피 의리로 주고받는 건데, 뭘 또 그게 그렇게 분하다고.
솔직히 나 아니라도 한 트럭은 받았을 거면서.
다음으로, 어머니.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묻고 계시질 않는다.
그렇다고 학교에 찾아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셨다.
티를 내지 않으시는 거지.
그만큼 날 믿고 계신다고 봐야 하나?
그래서 더 고민이다.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게 며칠을 고민했지만, 일단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말해봐야 믿으실 거 같지도 않고, 자칫하면 걱정만 안겨 드릴 거 같아서.
아, 시험결과도 나왔다.
전교 1등.
소식을 전해 들은 외할아버지께서 기뻐하셨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덕분에 또 한차례 용돈을 받아서, 그걸로 핸드폰 자체를 바꿔버렸다.
쿼드 DAC가 내장된 고음질 전용 스마트폰. L사에서 나온 Z30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인터넷으로 알아봐서 이어폰도 하나 새로 샀다.
데이터 무제한으로 요금제도 바꾸고, 멜롱도 아예 정액제로 결제했다.
그 덕에 하루하루가 즐겁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수업 시간을 빼곤 혼자 공부할 때조차 귀에서 이어폰을 떼어놓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하굣길엔 꼬박꼬박 그 골목길에 들렸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몇 번이나 직접 가보고 결론을 내린 건데, 천 년 노래방은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신했다.
황당한 건······.
구청에도 전화를 넣어 알아봤지만, 그 자리엔 처음부터 상가나 건물이 들어선 적이 없단다.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생생한, 아니 완전히 달라진 내 몸 상태와 가창력, 그리고 머릿속에 든 지식들을 설명할 길이 달리 없다.
잘그락 잘그락.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만지작거리는 코인은 또 어쩌고.
한참의 고민 끝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리 고민해봐야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을 가지고 쓸데없이 시간만 허비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으니까.
언젠가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아니면 말고.
것보다는······.
들어가? 말아?
나는 지금 한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고개를 쳐들고 보니, 3층에 HS 실용음악학원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