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3화 (3/260)

# 3

#3. 문이 없다(3)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듯, 머리를 강타한 충격 때문에 사고가 순간적으로 마비되고 말았다.

화면에 떠오른 30점이란 점수 때문이 아니었다.

방금 내 귓가로 파고들었던 기계의 멘트가 날 그렇게 만들었다.

분명 기계는 묻고 있었다.

여기서 언제 나갈 거냐고.

그 말은 곧 나갈 방도가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리고 풍기는 뉘앙스로 보아, 아마도 그건 노래와 관련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하하······.”

마이크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하하하하하하!”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눈물이 날 때까지 웃었다.

“하하············흐흐흑···.”

그러다가 소파에 엎드린 채 한참을 울었다.

정말 서럽게 울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답답함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흑흑흑······.”

그러다가 두 팔을 번쩍 쳐들고 고함쳤다.

마치 절규하듯이.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드디어 단서를 찾은 것이다.

아직 나갈 수 있는 방법까지 알아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동안 티는 내지 않았지만, 사실상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숨만 쉬고 있었을 뿐.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마지못해 이어왔을 따름이다.

그런 내 삶에서 꺼져가던 불꽃이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한바탕 격정이 휩쓸고 지나간 뒤, 비로소 이성이란 걸 되찾게 된 나는 제일 먼저 화면부터 확인했다.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화면.

30점.

여기까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점수가 표시된 거뿐이니까.

다른 건 다음부터다.

- 축하합니다!

분명 이전의 화면과 다르긴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될 건 없다.

축하한다는데 어지간히 성격이 삐뚤어져 있는 게 아니라면 기분 나빠할 리가 없잖아?

문제는 그다음이다.

- 지금부터 코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코인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코인?

설마 처음 들어왔을 때 사용했던 그 코인을 말하는 건가?

나는 무의식중에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

그러다 뒤늦게 기억해냈다.

지금 내 바지 주머니가 텅 비어 있다는 것과 함께 여태껏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코인이라는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카운터에서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노래방 기계를 쓸 수 있는데, 뭐하러 코인을 사용하겠느냐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가지고 다니기엔 거추장스럽기만 한 코인들을 어디다 뒀는지 따윈 기억하지 못한다.

이내 주머닐 뒤적거리는 짓을 관두고, 멍하니 선 채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 아래쪽에 떠 있는 작은 글씨들이 내 시선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 코인의 사용처를 알고 싶으시면 아래 버튼을 눌러 주세요.

코인의 사용처?

리모컨을 이용해 화살표를 조작하자, 아래쪽에 새로 생겨난 네모난 버튼의 색이 변한다.

흰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뀐 버튼을 확인하곤 완료 버튼을 눌렀다.

[코인의 사용처]

다음 항목에 대한 이해와 습득 및 트레이닝이 가능합니다.

1) 발성

2) 기초 음악 이론

3) 장르

4) 가수

5) 곡

6) 음향

7) 악기

코인의 사용처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방대했다.

세부 항목까지 확인해보니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이를테면 장르의 경우, 클래식부터 각국의 전통 음악, 그리고 대중음악까지. 정말 세세하게 분류되어 있었고, 그 숫자가 무려 백을 넘어선다.

하기야 팝에서부터 락을 거쳐 힙합에 이르기까지 대중음악의 역사만 해도 얼마나 긴가. 거기에 블루스며 컨츄리, 재즈까지 더해지고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가지를 치게 되면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거다.

그나마 대표적인 것들로만 구성해놓아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코인이 아무리 많아도 충분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코인이 나한테 얼마나 남았더라?

“으음······.”

신음이 절로 나온다.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게 남은 코인이 열 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겨우 그걸로 뭘 어쩌라는 거지?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응?”

투입구 아래쪽 반환구에 코인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뭐지?

안 그래도 부족한 판에 웬 떡이냐 싶었지만, 어째서 코인이 저기 있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일종의 보상이 아닐까 짐작되었다.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주어지는 건가 본데······.”

일테면 점수를 올린다든지.

혹은 뭔가 특별한 미션이라도 주어지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잘했다고 보너스로라도 주는 걸까?

쯧. 진짜 불친절하기도 하지.

알려주려면 제대로 좀 알려달라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속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여길 나가기 위해선 코인이 반드시 필요한 거 같은데 현재 내가 지닌 코인은 방금 얻은 것까지 합쳐봐야 고작 11개.

어떤 식으로든 코인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는 게 어디냐 싶었다.

뭐, 그건 나중에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그럼 이제 고민해야 할 건 하나뿐인가.

궁극적으로 코인이 필요한 이유. 즉 내가 점수를 올려야 하는 이유.

그건 아마도 여기를 빠져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뭘까?

기계가 한 말을 떠올려본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일정한 점수에 도달하는 것.

짐작하건대 그게 여길 나가기 위한 조건이지 싶다.

그렇다면 몇 점일까?

제기랄!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 역시도 답은 정해져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너무 뻔해서 웃음밖에 안 나올 정도다.

“100점이란 거겠지.”

뭐냐고. 이 한숨밖에 안 나오는 상황은.

1점 올리는 것도 더럽게 힘든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다 캄캄하다.

그래서 코인이란 시스템을 집어넣은 건가?

조금이라도 빨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코인이란 거군.”

정확히는 코인을 사용한 시스템.

발성에서 악기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그 이해와 습득. 곧 트레이닝을 통해 점수를 높여가야 한다는 건데······.

거기에 필요한 게 코인이란 거지.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원점이다.

젠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처음 여기에 들어왔을 때 사용하고 남은 코인을 찾기 위해 미친놈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멈춰 섰다.

어느새 돌아간 고개.

내 시선은 노래방 기계, 코인 투입구에 꽂혀 있었다.

***

“헛짓거리만 한 꼴이네.”

전부 허탕이었다.

노래방 안, 어디에도 남는 코인 같은 건 없었다.

어렵사리 카운터에서 드라이버를 찾아 투입구의 나사를 풀어 확인한 결과. 내가 첫날 이곳에 왔을 때 기계에 투입했던 코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만 알게 됐을 뿐이다.

3번 룸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방들도 마찬가지. 뿐만 아니라 카운터에도 코인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망할 놈의 세상.

어딜 가나, 돈이 문제다.

“어디 눈먼 코인 없나?”

드라이버를 들고 힘없이 통로를 걸으며 중얼거리다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처음 노래방에 왔을 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지갑 안에 곱게 모셔져 있는 만 원짜리. 그것까지 모조리 코인으로 바꾸라고 권하던 할아버지의 진짜 의도를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씨! 바꿨어야 하는 건데!”

아쉽지만 뭐 어쩌겠어.

이미 버스는 떠났는데.

입맛을 다시며 교복 상의를 옷걸이에 던지듯 걸었다.

이미 교복 주머니에서 꺼내 든 코인이 손안에 있었다.

더도 덜도 말고 열한 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론 부족한데······.”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코인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다는 거랄까.

문제는 그 방법을 모른다는 거지만.

“이래선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잖아.”

손에 쥐고 있던 코인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코인을 사용하는 게 점수를 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란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혹시라도 꼭 필요한 경우, 그러니까 코인이 아니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사용하기엔 아무래도 꺼려진달까.

“일단은 그냥 해보자.”

우선 부딪히고 보는 거다.

왜 옛말에도 있잖아?

노력하는 자에겐 불가능은 없다는······.

***

그때로부터 대충 보름은 넘은 거 같다.

어림잡아 짐작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 이상은 지났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그 사이 몇 시간이나 노래를 불렀을까.

또 얼마나 많은 곡들을 불러제꼈을까.

수백 곡? 수천 곡?

깨어 있는 동안에는 빵 먹는 시간과 운동···아, 운동은 때려치웠다. 어차피 하루만 지나면 몸을 포함해 모든 게 리셋되는 마당에 운동은 무슨. 아무튼, 보름이 넘는 동안 온종일 마이크만 붙잡고 있었으니 못해도 천곡은 불렀을 거다.

그러고 나서 내린 결론.

옛말에는 이런 말도 있다는 거지.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해도 해도 너무하네 진짜!”

솔직히 30점을 받았을 땐, 금방이라도 100점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100점은커녕······.

빰빠라밤-

27점.

- 아이 참! 이러면 정말 못 나간다니까 그러네요. 펴엉생 여기서 살래요?

“제발 좀 닥쳐줄래?”

기계음이라곤 말하기 어려운 목소리.

꼭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여자의 음성은 정말이지 사람 속을 뒤집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듯하다.

악마가 있다면 꼭 저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기적절하게 치고 들어와 여지없이 뭉개버린다.

뭐, 이제 와선 그런 감정도 슬슬 무뎌지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곤 해도 점수가 오를 생각을 안 하니 인상이 절로 구겨진다.

아니, 오르긴커녕 어째 갈수록 떨어지는 듯하다.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확실히 기계가 하는 말대로다.

이래서는 진짜 죽는 날까지 여기에 갇혀 있게 생겼다.

아니, 죽을 수나 있으면 말을 안 한다.

“코인을 쓸 수밖에 없나?”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열한 개 밖에 안되는 코인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 곡만 더 불러 보고.”

어차피 남아도는 시간.

가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다시 한 번 빅벤의 눈코귀를 띄웠······.

“응?”

아, 잘못 눌렀다.

마지막 숫자를 잘못 입력한 듯하다.

덕분에 화면에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노래 제목이 떠있다.

그것도 영어.

팝송인지 힙합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락인가?

‘드림 온(DREAM ON)’이란 곡이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좀 한다.

잘난 외할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릴 때부터 줄곧 받아온 영어 교육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할 거라곤 예상 못 했지만.

번역해보면 꿈을 꿔! 정도가 맞는데······.

이게 또 웃긴 게 살짝 비아냥거릴 때 쓰는 말이란 것도 알고 있다.

굳이 표현하면, 아무리 꿈꿔봐라! 정도랄까.

어쩐지 내 처지를 비웃는 것도 같다.

아무튼······.

“재밌네.”

곡명이 제법 흥미를 끈다.

가수명에 Aerosam라고 쓰여있는 걸 보면 가요가 아니란 것만은 분명하다.

어째거나 현재 내가 부를 수 없는 노래란 건 분명하니 끄려고 했다.

하지만, 리모컨을 조작하는 것보다 한 박자 빠르게 전주가 시작되었다.

흐음, 좋은데?

어차피 시간도 남아도는데 한번 들어나 볼까?

가만히 듣기만 했다.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는 타이밍에선 절로 고개가 움직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는 노래를 부를 순 없었다.

그렇게 곡이 끝나고 나자, 또다시 기계는 날 비웃었다.

빰빠라밤-

0점.

- 미쳤군요. 아니면 포기한 건가요? 이젠 부르지도 않네요? 제대로 안 할 거면 지금 당장 나가세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제발 좀 내보내 줘!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으며 리모컨을 끌어당겼다.

그러곤 원래 부르려던 곡을 찍다 말고 멈칫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드림 온’이란 곡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졌던 것이다.

아마도 가사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였던 것 같다.

노래는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진짜로 꿈을 꾸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또 지금의 내 현실과 맞물리며 흥미를 자아내고 있었다.

“까짓거 한 번 더 듣지 뭐.”

다시금 ‘드림 온’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정확히 열 번을 들었다.

그동안 나는 기계로부터 비웃음이 담긴 조롱을 들은 건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리고 난 열한 번째에 마이크를 들었다.

- Every time Whenever I look in the mirror

All these lines on my face getting clearer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언제나

내 얼굴의 주름은 점점 뚜렷해져요

정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박자를 놓치지 않고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다.

음률도 그다지 틀린 것 같지 않았고.

원곡을 들어보지 않아서 제대로 부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열 번이나 듣는 동안 거의 외우다시피 한 가사를 읊조리며 리듬에 몸을 맡겼다.

어느새 노래는 종반부로 치닫고 있었다.

- Sing with me, sing for the times

Sing for the laughter, sing for the tears

Sing with me, just for now

Maybe someday, the good Lord will take you away

?나와 함께 노래해요. 그 많은 세월들을 위해······.

웃음들을 위해서, 눈물들을 위해서 노래해요

나와 함께 노래해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쩌면 내일 훌륭하신 주님께서 데려갈지도 모르니까요

?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두근거렸다.

새로운 노래.

아니, 내가 모르고 있던 노래를 부른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랄까.

가슴이 벅차다고나 할까.

성취감 같기도 하고, 안도감 같기도 하다.

노래 가사에 나온 로드(Lord), 우리말로 하자면 주님이란 말이 나오는 걸로 봐선 성가대가 부르는 노래쯤 되나 싶은데, 아마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빰빠라밤-

31점.

- 와오! 장난 아니네요! 계속 이렇게만 하세요.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도 멀지만은 않네요!

어라? 이것 봐라?

웬일로 칭찬을 다 하네?

게다가 이 점수는 뭐지?

황당해서 눈을 껌뻑이고 있을 때였다.

땡그랑!

투입구 아래 반환구에 은빛으로 번쩍이는 코인 하나가 보였다.

역시 짐작대로다.

코인은 점수가 오를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아, 그건 그렇고.

드디어 점수가 올랐다!

최고득점이었던 30점보다 1점이 높은 31점.

그동안 계속해서 점수가 떨어지기만 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니 얼떨떨하기만 하다.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가설이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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