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2. 문이 없다(2)
정말 개처럼 뛰어다녔다.
혹시라도 내가 착각한 건 아닐까 싶어서.
노래방 안을 샅샅이 뒤지며 문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입구는 없었다.
아니, 이 경우엔 출구라고 해야 하겠지.
아무튼, 아무리 뒤지고 다녀도 나가는 문을 찾지 못한 나는 결국 카운터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째깍째깍.
카운터 뒤쪽 벽면에 걸려 있는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흘렀다.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
뒤늦게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일단 과외 오기로 되어 있는 선생님께 연락하기 위해서.
만일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돼서 늦기라도 한다면, 그날로 어머니께 한소리들을 게 뻔하니까.
- 통화권 이탈 지역입니다.
“뭐, 뭐야!”
여기가 무슨 산속이야? 아니면 무인도라도 돼?
하도 황당해서 말도 잘 안 나온다.
멍한 표정을 얼른 지우고 다시 한 번 걸어본다.
- 통화권 이탈 지역입니다.
“하, 뭐 이런······!”
몇 번이고 다시 걸어봐도 계속해서 같은 소리만 들려온다.
- 통화권 이탈 지역입니다.
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다가 입술을 짓씹었다.
일단 진정하자.
이런 때일수록 흥분해선 안 된다.
겨우 이 정도 일로 멘탈이 흔들린다면, 어떻게 먼 훗날 대법원장······.
“으아아아아아아악!”
멘붕이다!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다 있냐!
당황해서 소리 질렀다.
“할아버지!”
대답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이이이이! 저기요오오오! 여기 누구 없어요오오오오!”
젠장! 목이 터져라 불러도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는다.
“으아아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고 말았다.
***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더이상 과외가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찾아도 할아버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질 않았고, 정말 미친 듯이 노래방 벽면을 더듬고 다녀도 나갈 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갇혀버린 상황.
거기다가 전화는 걸리지도 않는다.
카운터에 놓인 전화도 마찬가지.
신호조차 가질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제정신인 사람이 있을까?
제기랄! 내가 아무리 냉정하려고 애쓴들, 이제 겨우 17살이란 말이다!
그것도 며칠 전 생일이 지났으니 그런 거고······. 아이씨!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돌아버리겠네, 진짜!”
이미 내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전화도 안 돼, 문도 없어, 할아버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뭐, 이런 지랄 같은 경우가 다 있는지!
그야말로 멘붕에 빠져서 울다 지쳐 잠들었다.
그리고 한참 만에 다시 깼을 때,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난 갇힌 거다.
서른 평 남짓한 지하 공간에.
***
내가 독한 놈이란 건 애저녁에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겨우 반나절도 안 돼 정신을 차린 건 내가 생각해도 대견한 일이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그건 사람이라면 전부 가지고 있는 본능 덕분이었다.
배고픔.
울다 잠들고, 깼다가 다시 울고, 통화권 이탈이라는 멘트를 몇 번이나 듣고, 다시 또 울다 잠들길 몇 번인지.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새 카운터 뒷벽에 걸려 있는 시계의 시침이 12시를 가리켰을 때, 갑자기 배가 고파 왔다.
다행인 건, 냉장고 옆에 선반이 놓여 있었고 거기엔 빵들이 쌓여 있었다는 거다.
편의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는 그 빵들 말이다.
팥빵, 크림빵, 미니 롤 케익, 소보루 빵 등 종류는 몇 가지 되지 않았지만.
“지겹다, 이젠.”
그게 벌써 엿새 전이다.
“후우! 팥빵은 이제 물리는데······. 이건 뭐, 오래된 소년도 아니고.”
내가 여기 갇힌 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돼간다는 얘기다.
눈물도 이미 마른 지 오래였고, 핸드폰도 몇 번이나 재충전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은 엿새 전 오후였다. 아니, 솔직히 그것도 자신할 순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디까지나 시계를 보고 짐작하는 것뿐이다.
시침이 한 바퀴 돌면 12시간, 두 바퀴를 돌면 24시간이고, 그렇게 되면 하루가 지나는 것임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거니까.
어디까지나 저 시계가 정확하다는 전제하에 그동안 시침은 대략 열두 바퀴하고도 반 바퀴를 더 돌고 있는 중이니 엿새가 맞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한 사실을 발견한 때는 여기 갇혀 시침이 두 바퀴를 채 못 채웠던 때, 즉 엿새 전 오후로 추정되던 그 시각이었다.
아무튼, 그때 나는 배가 고팠고, 허기를 참지 못한 난 다시 한 번 빵 봉지를 뜯으며 습관처럼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동안 경황이 없어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핸드폰 액정에 떠있는 날짜가 여전히 3월 12일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났으니, 13일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는 건······.
나는 빵 봉지를 뜯다 말고 TV를 켰고, 확신할 수 있었다.
때마침 시간은 오후 4시쯤.
처음 여길 찾았던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채널을 돌린 결과, 케이블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데스크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유명 아나운서가 사드 배치에 따라 급속히 얼어붙기 시작한 한중관계에 대해 심층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뉴스.
똑같은 날짜만 보여주고 있는 핸드폰.
무엇보다 처음 왔을 때와 같은 높이, 같은 형태로 쌓여 있는 빵들.
몇 가지 되지 않는 음료수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냉장고.
내가 공황상태에 빠져 어질러놓았던 카운터는 깔끔히 정리정돈 되어 있었다.
“제, 젠장!”
멍청한 새끼!
이 중요한 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하루의 반복.
이를테면 타임 루프란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현재. 이젠 그 사실들도 별로 놀랍지 않다.
그저 지겨울 따름.
나는 그동안 물리도록 먹은 팥빵 대신 크림빵을 집어 들고 있다.
“음료수는 뭐로 할까?”
힘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눈살을 찌푸렸다.
우유라도 좀 갖다 놓을 것이지.
“그냥 물로 하자.”
500밀리짜리 생수 한 병을 꺼내 들고, 돌아섰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건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갇힌 상황에서 시간마저 허투루 날려버린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억울해서 미쳐버릴지 모를 일. 지금 일어나는 현상들이 신비롭다면 신비롭고 희한하다면 희한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여기서 언제 나가게 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간 낭비는 없는 셈이니 일분일초가 아까운 나로선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빵은 썩지도 않으니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지겨워서 그렇지.
아, 물론 빵만 그런 건 아니다.
노래방 안에 있는 모든 건, 어쩌면 나까지도 리셋되는지 모른다.
그 증거로 핸드폰에 찍힌 날짜는 여전히 3월 12일이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모의고사를 본 그 날 말이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길이 없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표식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던 탓이다.
몇 번이나 살펴본 바에 따르면 매일 정해진 시간, 정확히는 오후 4시 15분, 아마도 내가 이 노래방에 들어온 시간으로 짐작되는 때가 되면 리셋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루가 지나면 전부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던 때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핸드폰의 날짜를 비롯해 TV까지도 몽땅 3월 12일을 가리키고 있었고, 또 반복하고 있다.
기록을 남겨도 다음날이 되면 사라진다는 거지.
그게 종이에 쓴 메모든, 핸드폰에 적어둔 거 든 간에.
그래, 다 좋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던, 또 매일 매일이 리셋이 되든······.
문제는······.
나 역시 인간이라는 거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서 고독을 씹으며 반복되는 하루를 견뎌내기엔 더없이 여린 인간.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조차 힘들 일인데,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한 내가 견뎌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멘탈이 나가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였던 퀴블러 로스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이른바 사망 5단계다.
그리고 지금의 난······.
머릿속에 지난날의 일들이 떠오른다.
처음엔 나 역시 현실을 부정했다.
이럴 리 없다고.
내가 직접 겪지 않았더라면, 누가 와서 얘기하든 믿기 어려운 일이니, 지금의 이 상황은 절대로 사실이 아닐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종일 잠만 잔적도 있다.
뭐, 그것도 딱 사흘 만에 집어치웠지만.
이제 와 생각하지만, 퀴블러 로스 그 양반은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을까.
나 역시 이 다음엔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밀려들었던 것이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째서 잘살고 있던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원통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 분노는 참기 어려웠고,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표출됐다.
부당하게 감금당한 상황에서 노래방 안에 있는 집기들을 내던지고, 때려 부수는 게 폭력인지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돈 떼인 빚쟁이처럼 노래방을 다 때려 부술 듯 지랄발광을 했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전부 리셋되는데, 무슨······.
결국, 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타협이다.
내가 여기 갇힌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없다는 체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랄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바깥에서 날 구조해주길 바라는 것뿐.
하지만, 그 역시도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과외 시간이 지나, 날 기다리던 선생님께서 내게 전화를 걸 테지만 통화이탈 지역에 있는 내 핸드폰과 연결될 리가 없다.
그럼, 화가 잔뜩 난 선생님께서 어머니와 연락할 테고, 그제야 집안은 발칵 뒤집히겠지.
하지만, 아무리 연락해도 통화는커녕 행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부모님께선 뒤늦게 걱정에 휩싸여 불안에 떨기 시작할 거다.
그쯤 되면 사방팔방 전화를 돌리며 날 찾기 시작하겠지.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다음 날 아침부턴 가족들 전부가 나서서 경찰서와 학교를 드나들며 내 행적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할 테지만······.
역시 소용없는 일이다.
곧 마법의 시간이 찾아올 테니까.
오후 4시 15분.
모든 게 리셋되는 시간.
날 걱정하며 찾던 이들도 전부 하루 전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여전히 난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고, 누구도 나에 대해 걱정 따윈 하지 않고 있을 시간.
그때부턴 같은 일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 후 설사 누군가 내가 실종된 사실을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걱정스럽게 찾아다니기 시작하더라도, 다시 또 하루만 지나면 상황은 원상태로 돌아가고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한다.
결론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아무도 날 구해주지 못한다는 사실.
타임 루프가 끊어지지 않는 한, 난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란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울 단계로 들어선 거였다.
아니, 그 정도로 표현하는 건 너무 약하다.
그래, 절망 정도가 적당하다.
대충 예상하건대 한 달은 족히 지나지 않았을까 싶었을 때였다.
그때쯤이었을 거다.
손목에 칼을 그은 건.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반쯤은 성공했다.
커터칼이 손목을 긋고, 핏물이 솟아나 누워 있던 소파를 적시길 얼마 안 지나서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으니까.
급기야 눈앞이 어두워지며 죽음이 찾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해졌고, 마침내 의식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법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기에 마법인 거다.
맞다. 난 죽지 않았다.
오후 4시 15분.
분침이 딱 3자를 가리켰을 때, 손목에 생겨났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수면 아래로 잠기듯 흐려졌던 의식도 되돌아왔다.
핏물로 적셔졌던 소파의 굳은 핏자국마저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멍청함에 화가 솟구쳤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자살을 할 생각을 하다니!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는 법인데······.
그러기 위해선 우선은 몸부터, 아니 무너진 정신부터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수용.
그제야 나는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만 생각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어섰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정해놓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도 정확히 아침, 점심, 저녁으로 때맞춰 먹었고, 노래방 복도를 트랙 삼아 가볍게 달리며 운동도 했다.
평소엔 잘 보지도 않던 TV도 봤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프로, 날마다 반복되는 방송들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혼자 멍하니 있는 것보단 나았으니까.
아무튼, 노래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동원했다.
안타깝게도 핸드폰엔 여흥을 즐길만한 앱 따윈 깔려 있지 않았기에 난생처음으로 게임을 받아놓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다.
제길! 다른 건 몰라도 와이파이는 터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은가.
TV는 나오는데 와이파이는 안 터진다니.
이건 날 엿 먹이려는 수작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덕분에 공부는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다행이랄까.
내 가방 안에는 대입을 위한 영어교재와 수학교재를 비롯해 꽤 난이도 높은 참고서들이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2년 정도. 아, 물론 체감상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튼, 고등학교 3년 과정을 모조리 숙달할 때쯤이었다.
“좀 쉬었다 할까?”
카운터에 앉아 책장을 넘기다가 기지개를 켰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공부를 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그러다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슬슬 미쳐가는 건가?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다 못해, 아예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한 지금의 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됐다. 생각해봐야 답도 안 나오는걸.”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간만에 한 곡 땡겨볼까?”
여기 있으면서 공부만큼이나 원 없이 할 수 있었던 게 바로 노래였다.
카운터 안쪽에 놓여 있는 기계를 조작했다.
“한 시간만 불러볼까나?”
예상대로 노래방 기계는 카운터에서도 시간을 조작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고, 덕분에 딱히 돈이 필요하다거나 하진 않았다.
뭐,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카운터엔 코인은커녕 동전이라곤 눈에 뵈는 게 없었지만, 적어도 3번 룸 기계 안 투입구속엔 코인이 들어 있을 테니까.
콧노래를 부르며 카운터를 벗어난 뒤, 3번 방으로 향했다.
***
빰빠라밤-
29점.
오옷! 드디어 29점까지 올렸다!
물론 이어지는 기계의 심사평은 여지없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지만.
- 응응, 못 불러도 너무 못 불러- 제가 다 창피할 지경이네요! 제발 노력 좀 해주세요!
조롱에 가까운 기계음.
“예, 예. 닥치시고요.”
사뿐히 무시해주곤 리모컨을 찾았다.
“어디 보자. 이번엔 뭘 부를까? 흠, 간만에 ‘소주 석 잔’이나 불러볼까?”
소주는커녕 맥주도 마셔본 적 없는 나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노래다.
나온 지 10년도 더 되었음에도 잊을만하면 복면노래왕, 전설의 명곡 등 꽤 많은 음악방송에 나온 탓에 내 나잇대 아이들도 제법 알고 있는 노래였다.
보통은 전주를 뛰어넘지만, 이번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대로 감정을 잡고 부르고 싶어서였다.
전주가 흐르고, 스피커에서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술이 석 잔 생각나는 밤.
같이 있는 것 같네요.
그 좋았던 시간들.
이젠 모두 한숨만 되네요.
낮게 깔린 목소리가 지나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추억과 사랑, 원망 그리고 후회가 하나의 감정으로 모이고, 그 감정은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 절절하게 흐르고 있다.
그러다 마침내 전화기에 대고 울부짖는다.
- 여보세요 나야.
여보세요 나야.
너는 잘 지내니.
오랜만이야 내 사랑아.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 듯이 울었어.
여보세요 나야.
정말 미안해.
이기적인 그때의 나에게.
너만을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 듯이 울었어.
어느새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가늘게 하며 천천히 마이크를 내렸다.
음악이 멈추고, 방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팡파레.
빰빠라밤! 빠라밤! 빰빠라바아아아아아아암-
어라?
평소와 좀 다른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번쩍 떴을 때였다.
- 증말, 지대로다! 오빠,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니니? 이래가지고 여기서 언제 나갈래?
30점.
눈앞에 떠있는 화면 속 점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충격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