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화 〉 박우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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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에피소드는 363편 '후일담에 대해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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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빠구리 뜨자, 돼지 썅년들아."
동아리실.
마침내 도착한 마지막 한 명 앞에서, 박우찬은 웅혼하게 포효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애시당초 애정으로 커버할 수 있는 행동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한 자리에 여자 여섯 명을 모아두고 저런 말을 내뱉는 건 아득하게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이었다.
물론 박우찬도 바보는 아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지껄였는데도 바보가 아니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어쨌든, 본인으로서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요컨대, 이준구의 재촉을 받은 뒤로도 박우찬은 스스로의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것보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이들 전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박우찬은 별다른 일이 없었어도 그녀들 전원에게 적당히 호감을 가졌으리라.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그녀들이 내심 생각하는 바와 달리 박우찬은 상당히 속물적인 성격이었다.
어느 정도 외모만 되면 머릿속으로 세 명의 자식과 손자손녀들의 이름까지 생각할 정도로.
나이까지 고려하면 결혼 사기에 당하기 십상인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방금과 같은 말은 그녀들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으리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무슨 소리겠니, 내가 너무 사랑이 많아서 누구 한 명만 보고 살기 힘들다는 뜻이지."
참으로 뻔뻔한 발언이었다.
하물며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아니, 법은 어떻게 하시려고……."
"예쁘게 베기!!"
서걱!!
박우찬의 시그니처가 민법 제 810조를 두동강냈다!!
두동강이 난 민법이 하늘하늘 꽃잎처럼 휘날렸다.
"잘 생각해 봐라, 얘들아."
"선생님이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뭔가요?"
"내가 언제 혼인법 관련으로 이야기나 꺼낸 적 있었니?"
"미친."
그렇다.
사회는 이미 두 번의 대침공을 맞닥뜨려, 기존의 상식이 완전히 붕괴된 지금.
누구도 민법 제 810조가 그대로일 거라는 확신을 할 수야 없는 법이었다.
이미 보육원에서 보살피는 원생들의 연령도 한꺼풀 꺾인 상황.
애시당초 힘과 근육의 시대가 찾아온 지금, 중혼 금지법 따위가 제대로 지켜질까 물으면 회의적인 게 사실이겠지.
막말로, 미풍양속 등을 근거로 금지한다 쳐도 고랭크 헌터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을 터.
만에 하나 마력이나 능력 등 헌터로서의 자질이 유전으로 개화한다면 더더욱.
오히려 국가 쪽에서 은연중에 중혼 따위를 장려할지도 모른다…….
실로 치밀한 복선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왜 또."
물론 탁상공론이었다.
그보다, 사람이라는 생물은 실로 간사한 법.
법률적인 자문이나 합리성 따위와 별개로,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하면 싫은 법이다.
설령 여태까지 그녀들이 보냈던 시간 동안 어디에도 중혼법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한들 마찬가지.
막말로, 세상 천지 어느 누가 유일무이한 반려 대신 언제든 골라잡을 수 있는 여자들 중 한 명이 되길 바라겠나.
설령 자신이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그렇지 않았으면 중혼 금지법이 제정될 리도 없고.
당연히 박우찬이 말하고자 하는 점도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박우찬 또한 순순히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털썩, 하고 소리가 날 만큼 시원스레.
박우찬은 동아리실 앞 교탁에 주저앉았다.
"뭐, 그래. 이건 내 욕심이지."
아니면 우유부단함이거나.
요컨대, 박우찬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건 정말로 문자 그대로인 이유 때문이었다.
마지막까지 박우찬은 누군가 한 명을 고르는 데에 실패했다.
만약 박우찬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 두 명이 있다 치더라도, 보통은 이런 자리를 따로 마련하진 않았으리라.
자신의 마음을 저울처럼 두고 비교해, 조금이라도 마음이 기울어지는 쪽을 향해 그는 구애의 말을 건넸겠지.
허나.
지금은 달랐다.
마음의 저울을 기울일 추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
다시 말해, 모든 여인들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박우찬이 막무가내로 이런 말을 꺼낸 데에는 바로 그런 배경이 있었다.
물론 박우찬은 그게 어디까지나 자신의 욕망일 뿐이라는 사실도 잘 직시하고 있었다.
자신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당사자인 그녀들은?
지금 이 상황에 불만이 없을까?
설마.
것보다,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하는 새끼니까 정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내심 그런 흐름을 원했을지도 모르고.
설령 자신이 좋다 해도 다른 쪽에서 내키지 않는다면, 박우찬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으니.
때문에.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한 거야."
"제정신이세요?"
"솔직히 제정신은 아니긴 해. 내가 생각해도 웃긴 말이거든."
"허."
"그래도 내가 세 가지는 약속할 수 있다."
하나는, 만약 그녀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살게 해 줄 수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그녀들을 공평하게 아끼고자 노력하겠다는 점.
"마지막으로, 여기서 떠나도 내가 따로 손을 쓰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점."
물론 박우찬으로선 좆같은 말이었다.
요컨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 밑에 깔려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는 소리니까.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런 조건을 다른 이들에게 강압할 수야 없는 법.
오히려 이 조건 자체가 자신에게도 좆같은 일을 다른 이들에게 권유하는 셈이었다.
그러니 박우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말이야 으리으리했지만 실제로 남는 건 잘해도 한 명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고.
"……그런가요."
"어? 잠깐, 예은아?"
"왜?"
"너, 설마 남으려고?"
"응? 응."
만약 박우찬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바로 그녀들의 마음이겠지.
애시당초 박우찬 또한 별로 내키는 사람이 없으니 적당히 전원 품겠다 이런 이야기를 선포한 게 아니었다.
도저히 누구 한 명을 고를 수가 없는 상황이라 얻어맞는 걸 각오하고 이런 소리를 한 거지.
허면?
반대로, 그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뭐, 십중팔구 욕지거리를 쏟아내고 떠나겠지.
다만.
여기에 모인 건 그 십중팔구 중에서도 남은 1할.
솔직히 말하자면, 다들 머리가 조금 맛이 간 친구들이었다.
"나는 자신 있거든."
예를 들면,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하는 이예은 등이 있겠다.
전원을 평등하게 아끼겠다. 사랑하겠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예은은 아무튼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애초에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 지내다 보면 이리 쓰러지고 저리 향하는 법.
허면,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박우찬의 막무가내인 발언 따위가 아니었다.
즉, 앞으로 박우찬과 함께 보낼 시간 동안 박우찬의 마음을 자신에게 가져올 수 있는가?
이예은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예은은 거기에 자신이 있었다.
설령 여기서 몇 명이 남는다 한들, 박우찬의 마음을 자신에게 가져오고 다른 이들을 쳐내버릴 자신이.
"아, 그래?!"
"응. 너는?"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나 몽마 혼혈이거든?!"
"그래, 노력하렴."
"허?! 허어어?!"
다음으로 나선 건 류지희였다.
말마따나 몽마의 딸, 이런 승부에서는 제일 유리할 법한 학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얼이 빠져 엉겁결에 발을 빼지 않을까 싶었던 여자애.
허나, 친구인 이예은의 도발 때문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말처럼 그런 승부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까.
일찍이 몽마의 여왕으로부터 받았던 지식을 검수하며, 류지희는 그 자리에 남기로 결심했다.
다소 충동적인 모습이었지만, 잔뜩 얼굴을 붉힌 그 표정에 단순한 경쟁심만 있는 건 아니었으리라.
"뭐, 나는 손에 물 묻혀도 상관 없는데요."
"그러냐?"
"딱히 은퇴할 생각도 없고……. 아, 혹시 은퇴해야 하는 건 아니죠?"
"아니지."
다음으로 나선 건 윤하였다.
손에 물을 묻히지 않기는커녕, 일찍이 그 이하인 금액만으로도 무모한 사냥에 동참한 그녀.
그조차도 자신이 아닌 동생들을 위해 남긴 돈이었던만큼, 그녀가 고려할 건 단 하나 뿐이었다.
즉, 자신은 저런 조건까지 감수할 만큼 박우찬을 좋아하는가?
황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
"허어."
"게다가, 사부랑 같이 사냥터에 서고 싶은 기분도 있고."
"아니, 이미 몇 번 같이 뛰었잖아."
"그런 거 말고!"
그런 게 아니면 뭔데?
그렇게 말할 만큼 박우찬도 눈치 없는 성격은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의 첫 번째 제자인 신서아에게는 이래저래 신세를 진 게 사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녀가 하필이면 자신의 무장으로 활을 고른 이유 또한 박우찬은 잘 알고 있었다.
"음. 본래였다면 결국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는 건 본인이었겠다만……."
"아니, 그랬으면 너는 여기에 있지도 못했어."
"하하, 여기까지 와서도 쑥스러움을 타다니. 못 말릴 녀석이로고."
"……."
"……진짜로?"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여학생들의 자연사를 노릴 처지가 못 되던 티아마트도 마찬가지였다.
박우찬의 매서운 침묵이 의미하는 바를 상상하는 대신, 티아마트는 조금 주눅이 든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그 시선은 한 자리로 쏠렸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을 받아들이며, 자하연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마음 속에서 박우찬에 대해 속삭이는 목소리는, 지금도 실컷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저 감옥 속에서 그랬듯이.
아니, 오히려 더 극성인 면도 있었다.
'역시 역강간이라도 했어야 했다니까!!'
미친 소리였다.
미친 소리였지만, 차라리 박우찬이 떠드는 말에 비하면 합리적인 게 사실이었다.
딱 한 번만 기정사실을 만들면, 박우찬으로선 감히 떼어먹을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자신의 안방에서 그토록 무시무시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우찬은 묘한 오싹함을 삼키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덕분에, 자하연은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라는 점.
저토록 미친 소리를 고려하고, 저토록 미친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당장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할 만큼, 그에게 푹 빠졌다는 점이리라.
속된 말로 반한 쪽이 지는 법이라는 게 딱 이런 꼴이었다.
그렇게.
어쩌면 조금이라도 누구 하나 떨어져나가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그녀들을 불러모았던 박우찬은, 도합 여섯 종의 시선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박우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좆됐네."
"선생님?"
"아니, 내 입장도 그렇잖냐."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막말로, 그런 점을 신경썼다면 이런 미친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겠지.
설령 상대가 이준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인지 여동생을 끔찍하게 아끼는 그 녀석이지만, 박우찬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너그러운 면이 있는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여동생을 데려가는 수준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처첩들 중 한 명으로서 대우하겠다?
그런 말을 듣고도 이준구는 느슨한 미소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박우찬은 절대로 아니라고 보았다.
마왕과의 전투 이래, 가장 어려운 싸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상원 또한 곱게 넘기지는 않을 게 뻔하고.
다만, 이 시점 박우찬이 걱정하고 있는 건 단 하나.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말한대냐."
"네?"
"응? 아니, 우리 부모님."
이런 시대지만 상견례는 해야 하겠지.
무엇보다, 손주 얼굴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자그마치 10년.
막무가내로 고향을 떠나고 10년 하고도 몇 년만에, 박우찬은 처음으로 귀성할 생각을 품었다.
"네?!"
"부모님?!"
"아니, 잠깐!!"
"살아계셔?!"
"난생 처음 듣는 말이다마는?!"
"잠깐, 그런 말 없으셨잖아요?!"
"딱히 죽었다고 한 적도 없잖아……."
얘네들은 왜 멋대로 남의 부모님을 보내버리려 하는 걸까.
이게 소위 말하는 시집살이에 대한 적대감인 걸까.
박우찬은 태평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소 그를 보고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던 그녀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리였지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억지로 밀어붙인 뒤로도 그와 그녀들 사이에는 해결해야 할 오해가 수도 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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