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8화 (368/371)

〈 368화 〉 류지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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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에피소드는 363편 '후일담에 대해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

옥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류지희는 새삼스레 스스로의 인생을 회고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인생은 퍽 비범한 편이었다.

서양에서 흘러들어온 몽마의 여왕이 대한민국의 도련님과 눈이 맞아 태어난 아이.

솔직히 말하자면, 출생부터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기분이 든다.

만약 대침공 이전이었다면 좋은 집안 출신 아가씨가 되었을 테지.

몽마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현대 출신 공주님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녀의 인생과 별개로 류지희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빴다고 해야 할지.

어렸을 적부터 겪었던 온갖 사건이 좌충우돌한 결과, 류지희는 우연히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과 같은 사고관을 갖게 되었다.

황윤하가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평범한 여고생이라면, 류지희는 특이한 상황 속에서도 평범한 사고관을 지닌 여고생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아카데미에 발을 들인 이래 줄곧 류지희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혼혈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던 데에서 오는 불안감.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혹여 들키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던 생활.

신세계 질서와 접촉한 혼인회 탓에 그 가운데에서 초조함을 삼키던 나날.

거기에 부모들로부터 유래한 부담감까지.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이토록 멀쩡하게 졸업을 앞두고 있을 줄이야.

류지희로서는 퍽 생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멀쩡하다고는 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도 이렇게 설레는 마음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이 느슨해지면 입꼬리가 멋대로 씰룩거리기 시작한다.

절로 콧노래가 나올 듯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류지희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왔냐?"

그 앞.

아카데미 옥상에선 그녀를 부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그 날처럼, 옥상에는 바람이 메아리친다.

텅 빈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시선.

짐짓 그녀에겐 별다른 관심 하나 없다는 듯, 매정하기 짝이 없는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몽마의 능력 운운하는 일조차 우스울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모습까지.

여태까지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이유.

온갖 난처한 상황을 앞두었던 그녀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

담임인 박우찬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류지희는 그렇게 물었다.

물론, 실제로는 잡아떼는 행동에 불과했다.

류지희는 알고 있었다.

하필이면 졸업을 앞둔 지금, 박우찬이 자신을 여기까지 부른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자면, 설령 그녀가 몽마의 딸이 아니었더라도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그 정도로 지금 이 장소는 그녀에게 있어서 특별한 장소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하고도 몇 개월 전.

류지희를 대상으로 한 신세계 질서의 술책이 있었다.

당시 그녀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두려운 사태.

즉, 그녀가 몽마의 혼혈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표된 탓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살도 생각한 적 있을 정도로.

지금은 이런저런 사건을 겪은 탓에 나름대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 류지희.

허나, 당시의 그녀에겐 도저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부모들이 양부인 남상원의 캠프에서 저지른 참사.

때문에, 류지희는 자신이 몽마의 혼혈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는 했다.

거기에 불을 부은 건 바로 혼인회 측의 태도였다.

너는 죄가 없다.

부모님의 잘못을 네가 감당하려 하지 마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답이다.

연좌제라니, 농담도 아니고.

그러나.

한 가지 애석한 점을 꼽자면, 평범한 사람은 그런 말을 들어도 죄책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류지희는 지극히 평범한 성격이었다.

자연스레 류지희는 스스로의 근간이 된 몽마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런 류지희의 행동이 단순한 결벽성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리라.

혼인회라는 집단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애시당초 몬스터 자체를 그다지 기피하지 않는 그들은, 지희의 태도에 대해서도 별다른 첨언을 더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 또한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넘어갈 뿐.

그리고.

아직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 적,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준 건 바로 박우찬 쪽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딸의 치부를 들춰 만천하에 공개한 상황을 앞두고도, 그녀는 번민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여하간, 류지희 또한 절반은 몽마였기 때문이다.

몬스터와 인간 사이의 결실.

허면?

언젠가 자신 또한 저렇게 되는 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치부를 들추고, 다른 사람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걸까.

류지희에게 있어, 그건 필설로 다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다.

자신이 혐오하던 존재와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다는 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몬스터를 혐오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란 그녀는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때문에.

시원스레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한 박우찬의 태도가 한층 더 인상깊게 다가왔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 또한 몬스터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애시당초 그녀의 모친이 노리고 있는 게 바로 그런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몬스터가 된다는 건, 단순히 종족만 바뀐다는 게 아니었다.

생각. 사고. 가치관.

완전히 다른 생물이 된다는 건, 자신의 근간이 뿌리부터 뒤바뀐다는 소리였다.

물론 인간과 몽마 사이라면 공통점이 없지는 않겠지.

그런데도, 일부 괴수 신앙자나 혼인회 측에서 주장하듯이.

인간과 몬스터의 차이는 별 거 없다고 대충 뭉게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건 아니었다.

종이 다른 생물이란 당연히 그런 법이다.

막말로, 인간으로 따지면 사이코패스나 다름 없는 게 악마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니까.

박우찬은 확신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설령 네가 몬스터가 되어도 괜찮다고, 우리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고.

확실히 숭고하고 대단한 말이지만, 그녀가 바라던 바와는 달리 그리 말할 게 뻔한 혼인회 측과는 달리.

일개 학생에 불과한 그녀가 마음을 다잡아 생물적인 본능에 저항하는 일이 쉬울 리도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자신은 그녀를 토벌해야 할지도 모른다.

류지희의 정체를 알고서도, 박우찬은 면전에서 그리 선언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터무니없는 사태였다.

말하자면 담임 교사가 대놓고 면전에서 네가 길을 잘못 들으면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거라고 선포한 셈이었으니까.

단순한 비유나 헛소리 따위가 아니다.

만약 그녀가 모친의 꾐에 빠져 정말로 몽마가 되어버린다면, 정말로 죽여버리겠다 선언하던 교사.

훈계나 계도 따위를 위한 허장성세가 아닌, 고작해야 몬스터라는 이유로 제자를 참살하겠다던 담임.

농담으로도 미담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지희라는 개인에게 있어선 실로 기꺼운 대답이었던 게 사실이다.

애시당초 남상원의 캠프를 노리고 그녀의 부모가 저지른 일은, 몬스터 운운하기 이전에 끔찍하기 짝이 없는 만행이었다.

썩 유쾌하지 못한 사정 탓에 혼인회에 적을 두게 된 그녀를 앞두고 말을 조심했던 탓도 있었겠지.

남상원 개인의 성향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반대로, 류지희가 그런 대답을 바라고 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단순한 증오심이 아니라, 그녀의 정체를 알고도 명확하게 단언해줄 사람.

몬스터가 되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며, 십중팔구 너 또한 몬스터가 되면 범죄를 저지를 거라 말해주는 사람.

실로 무례하다 해도 좋을 발언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류지희의 주변엔 그런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그녀는 안심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정말로 몽마가 되기 싫었으니까.

때문에.

만약 자신이 그런 길로 빠지게 된다면, 길을 부수더라도 막아줄 사람이 있다는 게 그녀는 실로 기껍게 느껴졌다.

망설임 없이 여왕의 힘을 삼킬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힘과 기억을 남김없이 흡수해, 더 이상 그런 관계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지금.

류지희는 일찍이 자신의 목숨을 맡겼던 장소에서 박우찬과 마주보고 있었다.

"네? 선생님, 무슨 일인데요?"

"……야, 잠깐. 너, 짐작하고 있지."

"응?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요?"

깔깔 하고 가볍게 웃는 소리가 하늘 아래 조용히 울려퍼졌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표정을 가다듬고 있던 박우찬의 표정이 무너진 게 썩 우스꽝스러웠다.

그 너머로 넘실거리는 감정의 향취를 향해, 류지희는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설령 몽마의 딸이 아니더라도 눈치챌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몽마의 딸이기에 한층 더 강하게 느껴지는 향취가 그녀의 코끝을 기분 좋게 간질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네? 대답해주세요, 선생님!"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재촉했다.

어쩌면 본능적인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몽마로서, 인간으로서.

류지희는 알고 있었다.

박우찬이 몬스터를 볼 때마다 느끼는 혐오감을.

그리고 그 감정이, 비교적 약하다고는 하나 언제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당연한 이야기다.

애시당초 그녀 또한 절반은 몬스터라 단언한 건 바로 박우찬이었으니까.

때문에.

그녀는 듣고 싶었다.

졸업식.

거기에 의미 있는 장소.

이토록 노골적인 상황에, 하필이면 자신이 불려나온 이유를.

몽마로서 감정을 탐하듯,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혹에 확신을 원하듯.

박우찬이 자신을 부른 이유 또한 99% 확신하고 있는 지금까지, 류지희는 그의 입으로 직접 대답을 듣고 싶었다.

어쩌면 내심 피어오른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지.

예상할 수는 있다.

박우찬이 자신을 여기까지 부른 이유 또한.

그렇지만, 자신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가?

처음부터 다른 학생들에 비해 반 걸음 뒤쳐진 레이스였다.

헌데, 그 반 걸음을 만회하고도 남을 무언가가 자신에겐 있었을까?

……몽마의 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그 불안감을, 박우찬 또한 느끼고 있었다.

사냥꾼으로서의 지식 덕분일까.

그러므로.

이 순간, 박우찬은 자신이 구구절절하게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상대는 몽마의 딸이니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박우찬이 내뿜고 있는 감정을 그야말로 선명하게 읽어들일 수 있으리라.

예를 들어, 바로 그런 모습 때문이라던가.

"어?"

몽마의 딸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사랑에 고픈 그 태도 때문이라던가.

"헤?"

매번 태연한 척 뻔뻔한 얼굴로 농담을 던지지만, 실제로는 속에서 매번 불안해하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응?"

혼혈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 속내는 누구보다 여리다던가.

"엇."

몬스터의 피 탓에 매번 그에게 미움을 사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 점이라던가.

"으?"

내면의 그런 유약함 때문에, 혐오감을 넘어 오히려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던가──.

"자, 잠깐!"

방금 전부터 이상한 소리를 내던 지희가, 당황한 얼굴로 양 뺨을 가린다.

물론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운 기습이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당사자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방금 전부터 박우찬이 생각하고 있는 건 틀림없는 본심이었다.

언제부터 이런 감상을 품었는지, 구태여 회고할 필요도 없었다.

저 작달막한 몸으로, 짐짓 태연한 척 웃으면서.

애써 만든 웃음으로, 저 자그마한 손에 쥔 무언가를 놓지 않기 위해.

처음 자신의 앞에 찾아왔을 때부터 박우찬은 내심 그녀를 대견하다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두려움을 이기고 누군가를 위해 입을 여는 그 모습이야말로, 박우찬이 혐오감을 억누르고 그녀를 도운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대, 대견?!"

물론 그녀가 혼혈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겠지.

좋아하는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꺼리는 마음 또한 적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부터 박우찬이 그녀에게 할 말을 생각하면, 그건 치명적인 단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어때.'

애초에 박우찬 또한 더 이상 젊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비교적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 시점.

좋아하는 만큼 싫어하는 점도 있다는 건, 세상 모든 부부들 앞에선 딱히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좋은 점도 있고, 싫어하는 면도 있다.

인간의 사랑이란 으레 그런 법일 테니까.

"그래. 지희야, 아무래도 선생님이 너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조, 좋아?!"

덕분에.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움직이려 할 때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박우찬은 그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 이런.'

짐짓 허세를 부리며 강한 척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 너머에서 슬쩍슬쩍 고개를 비추는 유약함이.

바로 그런 점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던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냐하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죽거리는 어조로 그리 입을 열던 그녀의 표정이 무어라 설명할 수도 없을 만큼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박우찬이 가장 좋아하는 류지희의 모습 그대로.

아직 겨울의 냉혹함이 서린 높다란 봄 하늘 아래.

언젠가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그는, 자신과 함께 살아달라는 말을 던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졸업식.

하나의 관계가 끝나고, 새로운 관계가 열매를 맺는 시기.

단순한 살심, 도저히 연애 감정이라 말하기 힘든 감정으로 묶여 있던 그들 또한 새로운 관계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어쩌면 언젠가 이 날을 두고 후회할지도 모르지.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같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런 적도 있었다며 언젠가 좋은 얼굴로 회상할 수 있도록.

자신 앞에 내밀어진 새로운 관계를 보고서 잔뜩 당황한 얼굴로 허둥거리던 류지희는, 이윽고 수줍게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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