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7화 (367/371)

〈 367화 〉 황윤하에 대해서

* * *

­ 해당 에피소드는 363편 '후일담에 대해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

"어으, 피곤해 죽겠네."

내 부름을 받아 운동장까지 쪼르르 튀어나온 윤하는, 이윽고 앓는 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여하간, 반 년 전 게이트 너머에서 귀환한 이후.

우리들 중에서 가장 많이 뛰어다닌 건 다름 아닌 윤하였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우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여기에 전위 겸 사령탑 역할을 맡기 충분한 윤하의 능력이나 아카데미 재학생이라는 타이틀.

무엇보다,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방패를 세웠던 경험이 더해지면 자연스레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서 챙겼던 마왕의 소재를 고려하면 장비를 맞추는 부담도 크게 경감될 테고.

어쩌면 필연이를 제외한 학생들 중에서 가장 빨리 S랭크가 되는 건 윤하가 아닐까.

본인도 적극적이고.

물론 윤하가 저토록 적극적인 이유는 돈 때문이겠지만.

정작 내가 마왕 토벌을 위해 제시한 보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판국이니, 나로서도 멋쩍을 따름이다.

"힘드냐?"

"뭐, 힘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허무하기도 해요."

"허무해?"

"네. 반 년 사이 제가 얼마나 벌었는지 들으시면 비슷한 감정이실 걸요."

그리고 그런 감상은 윤하 본인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여태까지 윤하가 벌어들인 돈.

여기에 앞으로 윤하가 벌어들일 돈을 생각하면, 저번에 내가 보수로 제시한 금액은 코웃음칠 정도가 되겠지.

윤하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었으리라.

애시당초 그래서 아카데미에 입학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윤하라는 개인의 일생에 있어 가장 큰 짐이 되었을 문제가 이토록 손쉽게 해결되는 꼴이라니.

그야 보고 있으면 허탈할 법도 하겠지.

한 가지 다행인 건, 그렇다고 해서 윤하가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헌터들이 그만한 돈을 버는 건 순전히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성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무작정 좋아했다가 목숨을 잃은 녀석들도 나는 몇이나 봤으니까.

윤하가 제대로 정신을 붙잡고 있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진 않죠."

"그러냐?"

"네. 생각해 봐요, 신세계 질서 그 놈들 상대로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하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단순한 납치부터 시작해 고랭크 몬스터까지.

거기에 마지막으로 본 건 날숨 한 번에 나라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자식이었으니.

마음 놓고 방심하기엔 이토록 혹독한 환경도 없으리라.

"허무하다는 건 그야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다시 한 번, 하품.

짐짓 피곤하다는 듯 눈가를 비비는 윤하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짤막하게 헛기침을 반복하며, 윤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찰랑이는 포니테일 너머로 슬쩍 달아오른 목덜미가 눈에 밟혔다.

"그래서, 왜요?"

"아니,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물어나 봤지."

"글쎄, 일단 적당히 벌면서 생각하지 않을까……."

애매한 대답이었다.

뭐, 그야 그렇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윤하는 아직 학생.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으로 몇 시간만 있으면 처음으로 사회에 나가야 할 사회 초년생이다.

어쩌다 보니 현장에 접할 기회를 먼저 얻었고, 어쩌다 보니 사회에 나서기도 전 은퇴할 정도로 여유를 얻었을 뿐.

제대로 된 장래 설계 따위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놀랐겠지.

말하자면, 지금 윤하는 당장에 은퇴한다 해도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다하며 평범하게 천수를 누릴 수 있으리라.

즉, 지금 윤하의 어깨에 얹힌 짐은 여태까지와 다르다.

동생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 의무나 책임 따위와 달리, 순수하게 본인의 선택에 앞날이 달린 상황.

윤하로서는 그런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는 거겠지.

어정쩡한 대답은 그 탓이리라.

피식, 문득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왜, 왜요."

"그야 걱정되서 그렇지. 그래서야 원, 제대로 장사나 하겠어?"

"남이사."

"남이사는 무슨. 너, 나한테도 돈 떼먹혔잖아."

그 말에 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뻐끔거렸다.

물론 내가 정말로 돈을 떼먹었다는 건 아니고.

일전에 마왕을 상대하고자 떠났을 때 얘기다.

분명히 그 날 윤하는 그렇게 말했지.

자기 동생들 앞으로 10억.

그 조건이면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뭐, 당시 윤하에게는 나름대로 큰 돈이었으리라.

대침공 이후 오른 물가를 고려해도 적은 액수는 아니니까.

적어도 그녀가 없다 한들 동생들이 곧바로 자리에 나앉지는 않았을 테지.

문제는, 지금 그녀에게 있어 동생 한 명마다 10억.

도합 20억은 그렇게 큰 돈이 아니라는 거겠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충분히 손에 닿는 액수다.

당연히 손에 넣기 위해선 마왕과 맞서 싸워야 할 필요도 없고.

그러므로.

"아니, 떼먹혀?! 그건 이 양반아, 내가 양보한 거고!!"

답답하다는 듯, 윤하는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며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토로했다.

도저히 여고생답지 않은, 퍽 사나이다운 행동거지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설마 정말로 내가 윤하를 상대로 가격을 후려치려 했겠나.

단지.

"양보? 왜?"

"그거야……!!"

울컥 하고 대답을 토하려던 윤하의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뭐, 그야 그렇겠지.

이 다음에 올 말 정도는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으리라.

애초에, 그 제안에서 진심이 아니었던 건 윤하도 마찬가지다.

말마따나 고작해야 20억에 정말로 자기 목숨을 걸 리가 있나.

지금의 윤하는커녕, 대다수 사람들 또한 20억을 대가로 목숨을 걸라 말하면 고개를 저으리라.

하물며 헌터라면 더더욱 그렇고.

요컨대.

"나니까 싸게 해 줬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냐?"

"크, 크윽……."

초대형 몬스터에게 얻어맞으면 이러할까 싶은 신음성을 토해내는 윤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번 헛웃음이 나왔다.

"싸게 팔지 마."

"예?"

"싸게 팔지 말라고. 네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동이니까."

"허, 허어."

다소 떨떠름한 어투로 주억거리는 서아.

아무래도 갑작스레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탓에 무어라 답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발언은, 나 또한 긴장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은 가볍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나한테도 싸게 팔지 말고."

"아니, 그건……!"

"뭐,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

"네 인생, 나한테 팔아라."

"엇."

뚝 하고 대화가 끊겼다.

지나칠 정도로 갑작스러운 발언 때문일까.

아니면 짐짓 태연한 척 젠체한 탓일까.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눈가를 굴리던 윤하는, 다음 순간 펄쩍 하고 크게 뒤로 뛰었다.

"아니, 뭔?! 잠깐, 왜?!"

"왜는 또 무슨 소리야."

"그렇잖아요?! 어, 뭐야. 이거, 진로 상담 아니었어요?!"

"아닌데."

비슷하긴 해도, 굳이 따지자면 인생 상담이겠지.

그런 감상을 품고 답하자, 윤하의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애써 담담한 척 말했지만, 결국 내가 던진 말은 일종의 프러포즈.

그것도 교사가 졸업을 앞둔 학생에게 던진 말이었으니까.

부끄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아니, 그 이전에.

만약 내 일만 아니었더라면 나도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을 테고.

덕분에.

"어, 응? 아니, 저기?"

"자, 침착하게. 심호흡 좀 하고."

"아니, 쌤은 왜 그렇게 태평한데?!"

"나도 그렇게 태연한 건 아니야."

"엇. 그, 그래요?"

"응."

도대체 그 말의 어디에서 안심할 수 있었던 건지, 나지막이 숨을 내뱉는 윤하.

이윽고 한층 진정된 얼굴로 윤하는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고 여전히 당황한 티가 묻어나오긴 했지만.

"그럼, 언제부터?"

"글쎄."

그 말에 잠시 생각을 거듭한다.

일단,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잘 모르겠네."

"뭐에요, 그게."

"아니,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야."

적당히 대답하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건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탓은 아니다.

단지.

마치 봄바람이 스며들듯, 나는 어느 순간 윤하의 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었다.

예를 들어, 호탕하기 짝이 없는 모습.

짊어진 짐이 괴로우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웃고 있는 모습.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화를 낼 줄 아는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마음을 고백할 때는 누구보다 쑥쓰러워하는 모습.

윤하와 내가 보냈던 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도 그녀를 향하고 있었던 거겠지.

때문에.

짐짓 태연한 척, 윤하가 자신의 목숨을 내게 맡기겠다 선언했을 때.

두려움을 극복한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하연이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나 하연이에 대한 미움. 신세계 질서에 대한 원망.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동생들에 대한 걱정만으로 가볍기 짝이 없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나는 그 모습에서 대견함과 마음이 동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므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윤하를 보고 이런 마음을 품은 건 하루 이틀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까.

대다수 사냥꾼들과 달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 업계에 발을 들였다는 점.

스스로의 앞날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어리숙함.

누군가는 미숙하다 평할 그 모습에, 박우찬이라는 사냥꾼은 마음이 끌렸다.

요컨대.

내가 윤하를 좋아하게 된 건 딱히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아니, 핑계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그저 평범하게 같이 시간을 보냈고, 그러던 끝에 마음이 움직였을 뿐.

아이러니하게도, 윤하답다고 해야 할까.

이 아카데미에서도 제일 평범한 이유로 고민하고 있던 소녀에게 내가 빠진 이유는,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

함께 시간을 보내던 와중 그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뭐,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말마따나 이 아카데미에서 보냈던 생활 덕분이니.

그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선도하던 윤하의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새삼스레 윤하에게는 어마어마한 신세를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적을 두었을 때.

혹은, 다른 녀석들을 신세계 질서와의 싸움에 끌어들이게 된 계기.

어느 쪽이든, 윤하는 그런 변화의 선두에 서 있었으니까.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만 해도 이래저래 지휘관 역할까지 떠맡긴 꼴이었으니.

"그런 거야."

그러니까, 이제는 나도 보답을 해주고 싶다.

마음에 빚이 남아서. 껄끄러우니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윤하가 잘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별다른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있었으면 한다.

일찍이 윤하가 던진 프러포즈에 대해,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어으, 어버버."

뭐, 정작 당사자인 윤하는 어리벙벙할 뿐이었지만.

억지로 호흡을 다듬은 보람도 없이, 윤하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 고아인데요?"

"요즘 그런 애들 많더라."

"선생님에 비하면 돈도 못 벌고."

"내가 많이 버니까 상관 없어."

"그리고, 그리고……."

"아, 시끄러워."

더듬더듬 그런 말을 토하는 윤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나도 모르게 그리 말을 끊고 말았다.

아니, 그렇게 건설적인 이야기도 아니었고.

"선생님 못 믿냐?"

딸꾹, 하고 그 말에 황윤하는 다시 한 번 입을 다물었다.

눈동자 안에서 메아리치는 건, 구태여 말로 할 필요도 없을 만큼 뚜렷한 미혹이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모습.

언제나 그랬다.

자신의 실력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때.

혹은, 기회가 찾아왔을 때마다.

짐짓 태연한 척하면서도, 윤하는 언제나 그런 태도를 고수하고는 했다.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고 말하듯이.

아마도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으며 체득한, 묘한 체념 때문이겠지.

허나.

내게는 더 이상 윤하가 그런 말을 하게 둘 생각이 없었다.

여태까지 그녀가 겪었던 모든 불행은, 단순히 운이 없었기 때문.

혹은, 오늘 이후의 행복을 위해서였다고.

먼 훗날, 언젠가 그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으로 나는 여기에 있었으니까.

"네, 믿어요. 믿죠, 네. 믿어요."

어쩌면 당황했을지도 모르지.

입학 초, 자신에게 손을 뻗던 담임의 모습을 보며 의구심을 품었던 때처럼.

하지만.

벌써 3년, 이제 3년.

나와 함께 지낸 시간 동안, 윤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난데없이 이런 말을 꺼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나는 윤하에게 신뢰를 줄 수 있었을까.

그런 의혹에 대해, 윤하는 그런 말로 대답했다.

우는 듯, 웃는 듯.

어느덧 눈가에서 넘실거리는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한 채, 그러나 확고하게.

그 뒤로도 말은 없었다.

몇 번이나 연거푸 대답을 쏟아낸 그녀는, 이윽고 나를 향해 곧바로 몸을 날렸으니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세계를 구한 파티 중 한 명.

헌터 아카데미가 배출한, 어쩌면 필연이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S랭크에 발을 들이밀 학생.

훌륭한 사령탑이며, 파티의 방패 역할을 담당하는 전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품 안으로 몸을 던진 그녀의 무게는, 그리고 그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듯 평범한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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