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6화 (366/371)

〈 366화 〉 티아마트에 대해서

* * *

­ 해당 에피소드는 363편 '후일담에 대해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

"무슨 일이더냐?"

짐짓 의문스러운 어조로, 티아마트는 말똥말똥 그런 말을 던졌다.

강당으로 통하는 복도.

내 부름을 받고 슬쩍 빠져나온 티아마트는 슬쩍 강당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안절부절하는 꼴도 그렇고, 학생들 이상으로 졸업식에 마음을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인원 떼우기 식으로 추천한 인선이었지만, 어쩌면 녀석에겐 이 쪽이 오히려 마음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새삼스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

여하간, 이 녀석은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으니까.

단순한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유폐하고, 그 이후 이 도시를 떠나려 했던 얼간이.

거기에 쓸데없이 정이 많아, 다른 이들의 죽음을 웃어넘길 수 없는 성격까지.

이미 무산된 계획이지만, 여신의 이름을 앞세운 협회장 자리나 성좌보다는 교사 자리가 천직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또한 여기까지였다.

왜냐하면 녀석은 머잖아 퇴직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녀석을 부른 이유 또한 바로 그 탓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상황도 모르고 헤실거리는 꼴이라니.

'젠장.'

나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뻔뻔하게 잡아떼는 거라면 뭐라고 할 수라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은 멀쩡하게 눈을 빛내고 있으니.

정말로 학생들의 졸업식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때문에.

"기쁘냐."

"음, 솔직히 말하자면 기쁘구나. 본인이 돌보았던 아이들이 장성해 사회로 나간다는 건, 역시 각별한 즐거움이 있음이야."

"그렇게 말할 거라면 처음부터 관두질 않으면 되잖냐."

나도 모르게 불퉁한 말이 툭 하고 튀어나온 건, 어쩌면 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대책 없이 마냥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심코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복도 사이로 정적이 스며든다.

이번에는 썩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마주보는 티아마트.

그 시선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시선을 옆으로 흘리고 말았다.

"음. 혹여, 언제부터 눈치챘느냐?"

"내가 병신인 줄 아냐. 진즉에 알았지."

"그렇구나."

뭐, 그런 이야기다.

슬쩍, 다시 한 번 티아마트를 곁눈질로 살핀다.

붉은 머리카락 너머로 쓰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래.

애시당초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내가 티아마트의 축복을 받고도 멀쩡하게 행동할 수 있을 리 없지.

당연한 일이다.

아니, 그 이전에.

마왕을 상대로 두 번이나 시그니처를 사용한 시점에서, 티아마트가 휘말리지 않은 건 요행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가지가 날아가지 않은 게 이상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

상대는 마왕.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여유롭게 티아마트를 염두에 두며 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아마트는 내 시그니처에 말려들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태연한 얼굴로 멀쩡하게 활보하고 있었다.

즉.

"뭐, 반 년이면 오래 버틴 게지."

능청스레 그리 말하며, 티아마트는 어깨를 좁혔다.

그 동작에선 평소와 같은 역겨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전체적으로 마찬가지였다.

티아마트의 붉은 머리카락이, 자수정과 닮은 눈동자가.

연약한 어깨와 부드러운 몸동작이, 내게는 지독할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녀석은 더 이상 몬스터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모든 사건에는 인과가 있는 법.

예를 들어, 아무리 나라 해도 무방비한 상황에서 마왕의 브레스를 맞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다.

무언가 특별한 방어구 따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 남은 자원을 모조리 쏟아부어 만들어낸 애병과, 어째서인지 이상할 정도로 성능이 향상된 방어구.

이를 고려하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뿐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방어구 쪽에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다.

홀로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킬 수 있다 평가받은 몬스터, 마왕과의 싸움에서 통용될 만큼 특별한 재료가.

여기에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내 주변에서 그만한 재료를 수급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

이 녀석 뿐이다.

마침 적절한 물건도 있었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신들은 스스로의 의복을 갑옷이자 방어구로 여긴다.

허나, 그런 물건들 중에서도 단 하나.

유달리 특별하게 취급되는 물건이 하나 존재한다.

운명의 서판.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신들의 군주가 왕으로서 보유하는 석판으로, 일종의 왕홀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전설에 따르면 여신 티아마트는 이 서판을 자신의 자식에게 하사해 몬스터들의 군세를 이끌게 했다던가.

그 효과 또한 실로 간단하다.

우주의 천기를 뒤틀어 사용자를 무적으로 만든다.

단순한 불사 능력 따위가 아니라, 사용자가 절대로 패배하지 않도록 하는 힘.

운명의 서판을 흉갑으로 삼는 한, 착용자는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

심지어 제대로 된 공략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 속에서도 절대적인 힘, 동쪽에서 해가 뜨고 서쪽에서 해가 진다는 법칙이나 다름없는 개념이었으니.

저 운명의 서판을 벗기는 걸 제외하면, 서판의 능력을 순수하게 돌파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날, 마왕의 숨결을 막아낸 건 필시 운명의 서판이 지닌 방어 능력이었으리라.

형님에게 들어 확인한 소재의 외형을 고려하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애시당초 여신 티아마트와 그 군세는 신들에게 운명의 서판을 빼앗기고 만다.

말하자면 우주의 지배권이 젊은 신들에게 넘어간 셈이다.

헌데, 그런 물건을 단순히 권능으로 재구성한다?

비유하자면,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빼앗긴 왕권을 권능으로 되찾으려 한 셈이다.

당연히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왕위를 빼앗기지도 않았겠지.

즉.

티아마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빼앗겼던 물건을, 티아마트 신이 내린 물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억지로 빚어냈을 뿐.

그 반동은 가벼운 게 아니었겠지.

지금 그녀가 치르고 있는 건 바로 그 대가였다.

더 이상 티아마트는 몬스터가 아니다.

방금 전,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 또한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티아마트는 더 이상 성좌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본인이 쌓아올린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지나치게 막대한 힘을, 구멍 숭숭 뚫린 이론을 통해 억지로 만회한 대가.

그 대신, 티아마트라는 그릇 자체에 금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라고 표현하기엔 다소 어색한 점이 있겠지.

더 이상 본모습을 드러내기 힘들 정도로, 본체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여태까지 쌓아올린 힘과 마력이 줄줄 새나가고 있을 뿐.

때문에.

"아니, 너는 병신이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온 건, 정말로 불가항력이었다.

아니, 물론 내가 그런 말을 꺼낼 처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내 쪽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상황이니까.

본디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하겠지.

이 녀석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나 제자들은 그 날 모조리 떼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하연이 또한 마찬가지.

그러니 나로서는 역으로 감사를 표해야 하리라.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어째서인지 도저히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

녀석이 더 이상 몬스터가 아닐까?

그래서 뻔뻔하게 잡아떼기 힘든 걸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내 속에서 들끓는 열불은, 고작해야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뭐, 뭐냐. 갑자기 왜 그러느냐?"

"왜? 갑자기 왜 그러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듯, 태평한 얼굴로 지껄이고 있는 그 모습엔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이 녀석은 정말로 생각이 없는 건가?

티아마트가 이 나라에서 손에 넣은 건 모조리 그녀가 여신이라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헌데, 이제 와서 갑자기 여신이 아니게 되었다고 들으면?

지금 이 녀석이 받고 있는 대우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뭐,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예산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처음엔 갑작스러운 사태라는 이유로 추이를 보자고 말이 나올지도 모르지.

허나,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점점 의문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전과 달리, 어떠한 도움 하나 줄 수 없는 여신.

그녀를 부양하기 위해 순순히 돈을 내고 싶다는 의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잦아들겠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막말로, 상대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거의 유일한 성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힘을 잃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여태까지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감히 손도 대지 못했을 뿐.

이번 기회에 확실히 녀석을 확보해 해부하자는 식으로 나올 녀석이 정말 한 명도 없을까?

설마.

만약 정말 한 명도 없다면 역으로 이 나라 정치가들의 머리를 의심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입 밖에 꺼낸 건 정말로 최악의 가정이라는 걸.

저번에 이 나라 상층부가 티아마트에게 보낸 경의를 고려하면 이런 분위기도 한계는 있겠지.

당장 티아마트에게 도움을 받아 가세를 일으켜 세운 이들도 몇이나 되는 형편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사자인 본인은 조금 염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자기 손 닿은 양반들이 한둘이 아니라 해도 그렇지.

나도 모르게 그리 투덜거리고 있자니, 조금 주눅이 든 기색으로 여신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너무 염려하지 말거라. 그 아이들도 그렇게 성격이 나쁜 건……."

"성격 문제냐, 이게?"

"게, 게다가 네 녀석도 있지 않느냐."

"뭐?"

"응? 그러니까,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안절부절하면서 더듬더듬 입을 여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기가 찼다.

나도 모르게 이마를 짚은 건 바로 그 때문이겠지.

물론 나 또한 바보는 아니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일단 내가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 또한 어쩌면 그 탓도 조금은 있을 테고.

"지켜주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덕분에.

티아마트가 그리 말한 순간, 나도 모르게 턱 하고 말이 막히고 말았다.

……그래.

확실히,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일찍이 가까운 사람을 잃는 게 두려워 떠나려 했던 티아마트를 붙잡기 위해.

나는 적당히 그런 말을 주워섬겼으니까.

그리고.

이 녀석은 지금 그렇게 말했다.

지켜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지나가듯 한 번 던진,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라 생각한 말 한 마디에.

이 녀석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단 말인가.

"도대체 왜?"

"응?"

"내가 너한테 잘해준 적이 있던가? 아니, 단 한 번도 없었을 텐데."

"뭐, 그건 그렇지."

"그런데 왜?"

너는 도대체 내 어딜 보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거냐?

무심코 목구멍에서 솟구치려는 말을 억지로 억눌렀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이상해?"

"확실히, 네 녀석이 본인에게 잘 대해준 적은 없지.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화가 날 정도이니라."

"그런데?"

"그래도, 본인의 판단은 변하지 않느니라."

"뭐?"

"네 녀석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괜찮은 사람이니까."

다시 한 번, 나도 모르게 입이 닫혔다.

짐짓 태연한 얼굴로, 툭툭 내 어깨를 두드리는 녀석.

이전까지라면 상상도 못할 그 행동에, 무언가 가슴이 답답한 건 어째서일까.

내가 이 녀석에게 그리 잘해준 적도 없는데, 녀석 또한 마찬가지라는데.

그런데도 나를 보고 저리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이 기분.

그 말을 듣고 나서 내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문득, 고개를 꺾어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머리카락 너머로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

거기에 깃들었던 뱀과 같은 동공도, 더 이상 가고 없는 녀석의 힘처럼 흐릿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멍청한 년."

"또, 또 무엇이더냐?"

"경솔하기 짝이 없는 년. 빡대가리같은 년. 한심한 년."

"뭐, 뭐냐! 정말이지, 섬세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 섬세하지 못한 놈 하나 없었으면 너는 도대체 어쩌려고 그랬냐."

"응?"

단순히 더 이상 녀석이 몬스터가 아니게 된 덕분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전조가 있었던 걸까.

어쩌면 외모 덕분일지도 모르지.

적어도 이 녀석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알겠다고. 내가 지켜주면 되잖아."

앞으로 평생.

이 녀석이 나를 위해 헌신한 목숨만큼, 나도 이 녀석을 위해 살겠다고.

그렇게 결심한 건, 바로 이 순간이었으리라.

"어, 에에엥?!"

……그리고 한 가지,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이야기.

방금 전 얼빠진 비명을 내지른 전 녀석과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던 지모신.

여신 티아마트는, 일찍이 자신의 군세를 이끌 장에게 승리를 보장하며 운명의 서판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사자를 자신의 부군으로 삼으니.

말하자면, 신화 속에서 운명의 서판은 강력한 주물이며 왕권의 상징.

동시에, 여신 티아마트가 자신의 남편에게 바치는 혼수이기도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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