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4화 〉 신서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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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에피소드는 363편 '후일담에 대해서'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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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서아와 처음 만났을 땐 이런 식으로 인연을 이어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나는 아직 어설픈 사냥꾼이었고, 서아는 일개 학생이었을 뿐이니까.
심지어 그 만남 또한 온건하다고는 농담으로도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하간, 내가 늦었던 탓에 서아가 잔인한 꼴을 보게 되었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드물게도, 서 씨 일가와 비교적 오래 교류를 가졌던 건.
아니, 거의 틀림없겠지.
적어도 절반 이상은 그런 이유였으리라.
나머지 절반은, 역시 서아 때문이었겠지만.
딱히 서아가 내 제자였기 때문인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 성격 탓이겠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는 농담으로도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다.
물론 나로서는 충분히 사교적인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사냥 한 번 뛰고 오면 나를 피하는 녀석들이 대다수였으니 말이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라는 녀석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서아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일단 다른 녀석들과 달리 내 실력을 요구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사냥꾼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하던 녀석들도, 정작 내 모습을 보면 손을 내젓곤 했으니까.
통제할 수 없을 게 뻔하다나.
아니, 통제고 뭐고 나를 무슨 미치광이 살인마로 아는 건지.
억울하기 짝이 없는 평가였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무사할 수 있었을, 서아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혹은, 모종의 흥미.
내가 서아의 요청을 받아들인 데엔 틀림없이 그런 이유도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수월했던 건 아니었다.
나로서도 제자를 받은 건 처음이었으니까.
지금 내가 아카데미에서 써먹고 있는 노하우 따위는 대부분 서아를 가르치며 정립된 기술.
달리 말하자면, 그런 기술 하나 없이 서아를 가르치는 데엔 상당한 차질이 있었다.
무엇보다, 실습 시 서아가 잡기로 한 몬스터를 내가 먼저 사냥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아의 자질은 나쁘지 않았다.
능력. 이를 활용하는 방법.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
다른 헌터들에 비하면 비교적 뒤늦게 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그걸 만회하고도 남을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아를 하산시킨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서아의 아버지를 죽인 몬스터는 내가 이미 처리했다.
덕분에, 서아의 복수심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때문에.
서아는 충분히 독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모를 위해서.
집안을 부양하기 위해서.
복수심에 시달리면서도 겉으로나마 그런 핑계를 댈 수 있는 시점에서, 서아는 대다수 복수자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헌터 협회에 이름을 올린 서아는, 순식간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니까.
변변찮은 스승과는 다르게.
그러던 게 얽히고 얽혀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 내 마음은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아에게 나처럼 출세에 도움이 안 되는 스승 따위는 필요 없다고.
"사부, 무슨 일이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시점에서, 마침내 서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데미 후문 쪽.
최승준의 연설이 전교생을 상대로 강당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가운데.
인적 하나 드문 후문은 퍽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서아가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일 테지.
지금 내가 농땡이를 피우고 있듯이, 졸업식 당일 교사 두어 명이 은근슬쩍 모습을 감추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연설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겠지만.
나로서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셈이다.
그리고.
그만큼 시간을 허비할 생각도 없었다.
"응? 뭐야? 아무 것도 없는데?"
천천히 몸을 돌리자, 서아는 주변을 훑으며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따로 일이 있어 자신을 불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모습에 문득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졸업식. 다른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이런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나올 만큼, 저 계집애는 나를 상대로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상대는 박우찬이다.
대뜸 이런 장소로 불러낸다 한들, 으레 생각하기 마련인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신서아가 박우찬에게 마음을 품었다면 또 모를까, 그 반대일 리는 없다고.
그 사실에, 문득 화가 났다.
서아에게.
그리고 내게.
저 계집애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무심했던 스스로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가 치밀었던 탓이다.
……그래.
확실히 박우찬은 그런 인간이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을 피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자신은 사회적인 인간이 아니다.
사교적이지 못한 수준을 넘어, 사회에 녹아들 수가 없는 불순 분자다.
헌터 협회라는 국가가 정한 멍에도, 내키지 않으면 던져버릴 수 있는 반사회적 인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헌터 협회가 경계할 법도 했다.
때문에.
서아에게는 그런 이미지를 씌워주고 싶지 않았다.
은연중에 스스로가 이상해졌다 생각하고 있는 서아였지만, 아직 돌아갈 장소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박우찬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고, 나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탓이다.
자괴감이나 자책감 따위가 아니라 그저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물며, 여고생인 제자와 염문설 따위는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언젠가 서아 또한 자신의 슬하를 떠나,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헛소리였다.
얼마 전.
나조차도 스스로의 죽음을 눈 앞에 두었다 확신했을 때.
그제서야 나는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질끈 감은 눈 너머.
불어닥치는 용의 숨결 너머로, 가장 먼저 서아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서아가 내게 그랬듯, 나 또한 서아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조로아스터 교의 마왕이 기다리는 전장에서도, 서아에게는 한 번 사부를 도와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할 생각도 했다.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아직도 서아네 하숙집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이래, 폐인이 되기 직전에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반지하는 어느덧 나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서아와 함께 있는 풍경이, 어느덧 내게는 당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아를 떠나보낸다 한들 실감할 수 있을 리도 없다.
협회에 서아를 맡긴다느니 지껄인 주제에, 서아가 다시금 자신을 찾아오자 아무렇지도 않게 반기던 스스로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더 이상 박우찬은 신서아가 없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의 옆에 있는 걸 당연하다 여겼을 뿐.
자신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게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 생각했던 건, 죽음을 코앞에 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서아와 떨어지게 된다.
서아와 만날 수 없다.
그런 사실을 강제로 깨닫게 된 반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서아야."
"응?"
"결혼할까, 우리."
"……응?"
확실히, 신서아에게 자신이 있을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녀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신서아는 박우찬의 슬하를 떠나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아니, 박우찬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신서아에게 있어선 방해가 될 뿐이겠지.
지금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살해한 사냥꾼이, 내키지 않는다며 협회를 박차고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니까.
때문에.
만에 하나, 박우찬이 신서아를 생각한다면 이대로 거리를 두는 게 옳으리라…….
'좆까.'
스스로의 마음에, 그런 대답을 붙였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아의 출세도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다.
만에 하나 서아가 나 때문에 출세에 발목이 잡힌다면, 헌터 따위 언제든지 때려쳐도 좋다.
자아의 실현. 생계적 문제.
어느 쪽이든, 내가 해결해줄 수 있으니까.
그러니.
"내 옆에 있어라. 앞으로 평생, 내가 언젠가 뒈져 나자빠질 때까지."
네게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될 수 없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박우찬이라는 놈은 그런 자식이다.
몇 번이나 실감했듯이, 이 사회와 어울릴 수 없는 불순 분자다.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원래 박우찬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자식이 아니니까.
그러므로.
필요한 건 단 하나.
너.
신서아.
네 마음을 원한다.
네게 어울리는 사람을 보며, 그 뒤에서 너를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너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되지 못한다고, 마음을 접는 게 아니라.
신서아의 마음에, 박우찬이 답하는 게 아니라.
박우찬이, 신서아를 원한다.
서른 살 아저씨의, 제자를 향한 추악한 욕심.
설령 그 비루함을 드러내게 된다 하더라도, 너를 놓치는 일보다는 훨씬 낫다고.
"아, 이거 딱히 네 고백에 대한 답 같은 건 아니니까."
"으, 으응?"
당연한 이야기다.
만일 지금 이 대답이, 신서아의 마음에 대한 박우찬의 대답이라면.
신서아의 고백이 없었다면 이런 대답이 나올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대답이 아니다.
신서아를 향한 박우찬의 고백.
새로운 마음의 토로였다.
설령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박우찬은 네가 좋다고.
이제 와서 네가 싫어졌다 해도, 박우찬은 신서아를 원한다고.
추악하게 눌어붙은 찌꺼기를, 박우찬은 처음으로 제자의 앞에서 토했다.
……한 가지 놀라운 건, 오히려 서아의 반응 쪽이었다.
동그랗게 뜬 황금빛 눈동자가, 연신 몇 번이나 깜빡거린다.
지금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멍하니 벌어진 입술이 말을 자아내지 못한다.
부드럽게 부는 춘풍에, 녹음빛 머리카락이 꼬리를 치듯 흔들렸다.
그 모습.
바야흐로 봄의 정경이라 할 풍경에, 나는 무심코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하기에 그리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이제서야 깨달은 건지.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눈에 담았던 그 모습이, 어찌도 이리 아리따운지.
도대체 내 첫 번째 제자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던 걸까 하고 생각하니, 돌연 우스운 대답이 나왔다.
"몬스터 죽이는 법, 가르쳐주세요."
……틀림없이 자신만 몰랐거나, 혹은 외면했을 뿐.
저 계집애는 처음부터 저렇게 예쁘장한 여자애였다는 기억이 났던 탓이다.
그리고.
아카데미 후문.
화려한 학교의 정경을 뒤로한 채, 마치 그 날처럼 학생과 같은 풋풋함을 두른 신서아가 나를 마주보았다.
달싹이는 입가.
천천히 다가오는 발걸음.
어쩌면 그 날, 자신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에도 나름 긴장하고 있다 말했던 그녀의 말처럼.
서아는 그 날 내겐 보여주지 않았던 망설임과 동요를, 거의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건, 그 위로 한 가닥 드러나오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겠지.
때문에.
다음 순간, 자신의 마음에 기쁨을 담아.
한 걸음. 또 한 걸음.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던 신서아는, 어느덧 숫제 뜀박질하는 모습으로 내 품 안에 뛰어들었다.
"……네, 응! 아니, 좋아!!"
퍽 지리멸렬한 어조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뭐, 뭐야. 우, 웃겨?! 잠깐, 농담은 아니지?!"
그런 내 모습에 걱정이 앞섰던 걸까.
서아는 투정을 부리듯 그런 말을 입 밖에 담았다.
나 참, 도대체 이 계집애는 자기 사부를 뭘로 보고 있는 건지.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운 말에 어이가 없어,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입을 내 입술로 조용히 틀어막았다.
과연, 효과는 탁월했다.
잠시 아우성치듯 메아리치던 콧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슬쩍 하고 눈꺼풀을 드니, 잔잔하게 닫힌 서아의 눈가가 보였다.
우아하게 뻗은 그녀의 속눈썹을 살피며,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었다.
허면?
후회하는 마음은 있을까?
'설마.'
……물론, 지금 내가 품은 마음도 평범한 연애 감정과는 다르겠지.
서아가 내게 품은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둘은 서로 만나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홀로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사회의 바깥에서 썩어 문드러지고, 서아는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도록.
그 날 이후, 서아가 마음에 품은 아픔을 함께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게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이고, 가족일 테지.
'아무려면 어때.'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박우찬에게 있어, 대다수 문제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때문에.
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대해 신경쓰는 대신, 봄의 꽃내음 너머로 퍼지는 서아의 향기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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