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3화 (363/371)

〈 363화 〉 후일담에 대해서

* * *

그리고.

우중충한 여름을 넘어, 창백한 가을을 넘어.

마침내 오한 드는 겨울까지 지나, 봄이 찾아왔다.

세상은 아직도 멸망하지 않았다.

*

아카데미는 다시금 문을 열었다.

작년부터 시작되었던 몬스터들의 준동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세 번째 대침공 운운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온데간데 없이.

단지 약간의 불안감만을 남기고, 사람들은 그렇게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몬스터라는 불친절한 이웃들과 동거를 선택한 이후.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변했으니까.

평범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 또한 그 저변에 도사린 위협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다.

외면하거나, 혹은 감내하거나.

어느 쪽이든,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방치하고 있을 따름.

말 그대로, 지금 이 세상은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는 기적인 셈이었다.

당장 저번 반 년만 해도 그랬다.

"설마 그 반 년 사이에 탈출한 신세계 질서의 잔당이 따로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키려던 외국 세력과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걸 필연이가 아슬아슬하게 발견한 덕분에 조기 대책하는 건 성공했지만 S랭크 게이트가 열려서 세 마리나 되는 우두머리 몬스터가 나타났을 줄이야."

바야흐로 폭풍과 같은 반년이었다.

설마 학창 시절부터 S랭크 딱지를 달고 졸업하는 놈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덕분에 아카데미는 희희낙락하며 자신들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었다.

이번 졸업식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초에 있었던 신도시 점거 사태부터 지금까지.

아카데미는 게이트에 대처하기 위해 움직인 학생들의 실적을 성적으로 반영, 그 졸업을 인정하기로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결정을 임의로 내려도 될 만큼 아카데미는 나름의 발언권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한 셈이었다.

아카데미 개교 당시, 아마도 3년 내에 그 추이가 정해질 거라던 말을 떠올린다.

허면, 아카데미 운영은 슬슬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지.

심지어 졸업한 학생들이 각지에서 활약을 펼치면 아카데미 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이 가지는 값어치는 더더욱 천정부지로 뛸 터.

바야흐로 순풍만범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아니, 졸업 전부터 군부와 얽혔다거나 하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극히 타당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너는? 이런 데에서 시간 낭비하고 있어도 돼?"

"안 닥쳐?"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먼저 나왔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말마따나, 오늘은 졸업식이었다.

즉, 내 제자들 또한 더 이상 학생이라는 위치에 얽힐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내게는 더 이상 대답을 회피할 만한 핑계나 명분이 없었다.

물론 나 또한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닥치는 건 역시 퍽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제 3차 대침공을 막았더니 정작 내 사생활에 그 이상의 풍파가 닥치고 있는 꼴이란.

무심코 한숨을 토한다.

……그래.

그 날.

두 번째 시그니처가 작렬한 이후, 지상으로 추락한 마왕은 그대로 별다른 말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달리 유언 따위가 있다 한들 구태여 귀담아 듣지는 않았겠지만.

어느 쪽이든, 답다면 다운 죽음이었다.

나라고 해도 저랬을 테니까.

묘한 동질감.

혹은, 그 이상의 역겨움을 느끼던 대상.

세상을 종말로 이끌 수도 있다 일컬어진 몬스터의 죽음은, 그토록 맥빠지는 물건이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여하간, 마왕에겐 더 이상 제대로 된 부하들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지하 감옥으로 향한 우리들은, 그대로 하연이와 함께 조금 낯뜨거운 재회를 거치고 귀환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지금 이 꼴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학부형 자격으로 참석한 이준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퍽 태연한 어조였다.

아니, 그야 남 일 맞지만.

물론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꼽다는 점과 별개로.

애초에 나는 녀석들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주겠다고 확약한 상태다.

반대로, 만약 내게 마음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대답하진 않았겠지.

예전처럼 딱 잘라 거절한다면 또 모를까.

……뭐, 문제는 바로 그런 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 또한 흔들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녀석들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점.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임 리미트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점 등이겠지.

더 이상 대답을 미룰 수도 없는 처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계집애들 중에서 두 명은 애초부터 학생도 아니었고.

허면?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걸 모르겠다는 거지.'

나도 바보는 아니다.

애초에, 그 계집애들이 정말 순수하게 인류를 위한 마음으로 그 날 내게 동행했을까.

아니.

물론 그런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죽으러 간다는 말에 허겁지겁 따라온 게 대부분이리라.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고.

만약 거기서 조금이라도 전력이 부족했다면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는 건 내 쪽이었겠지.

그리고.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나는 연애 쪽으론 완전히 젬병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덕분에 조금 설렜다는 뜻이었다.

아니, 달리 말하자면 그 계집애들은 결국 나 때문에 목숨까지 걸고 와 줬다는 뜻이잖아……?

조금 흔들릴 수도 있지.

덕분에 절찬리에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이준구는 짧게 너털웃음을 흘렸다.

"웃어? 웃기냐 씨발아?"

"그럼 안 웃기겠어?"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남의 일이라고 웃음을 터트렸을 테니까.

그런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녀석은 다른 의미로 말했던 모양이다.

"웃을 수밖에 없지."

"엉?"

"그런 이유로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뭐, 그렇군."

세상은 어느덧 2월 말.

제 3차 대침공도, 세상의 종말도 더 이상 눈을 씻고 살펴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속.

나는 더 이상 단칸방 반지하에서 썩어가는 게 아니라,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점도 여유가 생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고민할 여유는 없겠지만."

"닥쳐."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절로 입 밖에 걸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이준구는 다시 한 번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뭐, 어느 쪽이든. 네게 후회가 남지 않는 선택을 하길 빌게."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기 동생의 미래까지 걸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도대체 이 놈은 내 어딜 보고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건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정말로 조금.

여기까지 와서 아주 조금이지만, 녀석을 친구 비슷한 무언가라 생각하게 된 나로서도 알기 힘들 따름이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가 좋은 사윗감은 절대 아닐 텐데.

돈이나 무력은 있지만, 이준구가 이제 와서 그런 게 고플 녀석은 또 아니고.

나로서도 알기 힘들 따름이었다.

"그래. 선처하마."

지금으로서는 그리 답할 수밖에.

이윽고, 녀석 또한 말없이 자리를 떴다.

슬슬 최승준의 연설도 끝나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부대낄 시간인 모양이다.

덕분에 조금 혼자 생각할 여유를 얻긴 했지만, 나로서는 잘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런 시간을 줘도 되나……?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이 업계가 고아 비율이 워낙 높아야지 원.

자연스레 그런 말을 내뱉으며, 나는 문득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많이도 변했다."

천하의 박우찬이, 아카데미 교사가 되더니만 이제는 학생들의 마음까지 걱정하고 있구나.

고작해야 3년.

자그마치 3년.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3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에, 문득 웃음이 나왔던 탓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건 앞으로 그런 변화를 함께 걸어갈 누군가를 결정하는, 바야흐로 인생의 갈림길이었다.

뭐, 나도 벌써부터 서른이니까.

헌터는 마력의 영향으로 노화가 지연되고 운운하는 이야기야 있지만, 내 개인적인 체감 상으로는 완전히 아저씨다.

슬슬 인생, 나아가서는 미래라는 걸 생각할 때가 됐다는 뜻이겠지.

처음 업계에 무작정 발을 들였을 당시엔 전혀 생각한 적 없는 단어였는데.

피식,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린다.

누가 들으면 가족을 잃고 업계에 투신한 비극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법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이 안 되는데, 하물며 여자 한 명을 상대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기는커녕 오히려 내 쪽에서 선택하는 입장이 될 줄이야.

헌터 특유의 돈과 무력을 앞세운 골라먹기 쇼도 아니고, 내가 좋다는 여자들이 여럿.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허황된 이야기라 코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뭐, 그런 자책도 여기까지.

이 이상 궁시렁대는 건 나 뿐만 아니라 그 계집애들에게도 실례가 되겠지.

내가 좋다던 그녀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 말하는 셈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나로서도 거기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다.

때문에.

핸드폰 위에서 헤매던 손가락이, 이윽고 연락처 위에서 멈춘다.

그리고.

짤막하게 띄운 메세지 한 통과 함께, 나는 짧게 기지개를 켰다.

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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