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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1화 (361/371)

〈 361화 〉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

* * *

싸움이 길어질수록,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하늘을 수놓는 대마법.

밤하늘의 별조차 불사른다는 거룡은, 그 대신 띄워올린 마법진으로 거뭇한 어둠을 가득 채웠다.

단순한 견제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흉맹한 마력이 끓어오른다.

바야흐로 일격필살.

박우찬 개인은커녕, 위성 궤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법한 파괴흔이 연신 대지를 주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룡의 마력은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용 특유의 어마어마한 마력량 때문일까.

아니면, 악마로서 쌓아올린 마법에 대한 지식 덕분일까.

어느 쪽이든, 저만한 대마법을 구현하는 데에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건 박우찬으로서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장기전은 불가능해.'

몇 번이나 확인했던 사실을 새삼스레 실감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건 아니다.

쾌운철의 전력을 다해 만들어낸 걸작품은, 거룡의 비늘조차 문제 없이 벗겨낼 수 있다.

방어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온갖 비호가 새겨진 갑옷은, 저만한 대마법 속에서도 그를 보호할 수 있겠지.

허나.

반대로 말하자면, 고작해야 그 뿐이다.

대마법을 버틴다고 해서 딱히 승기가 생기는 건 아니다.

고작해야 비늘 몇 장 벗긴다고 한들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무엇보다.

버틸 수 있는 건, 승산을 가늠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 뿐이다.

대지가 뒤집히고, 하늘이 녹아내린다.

저 거룡이 사용하는 마법은 한 줄기 불꽃이라 해도 대지를 메마르게 하고, 하늘을 뒤틀어버린다.

허면?

저만한 대마법이 작렬하면, 전장은 어떻게 될까.

그 해답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장대한 산봉우리 중, 주변에 멀쩡한 건 단 하나.

악룡이 스스로의 둥지로 삼고 있는 성산 하나 뿐.

별의 등줄기처럼 땅으로부터 솟았던 산맥은, 이미 흔적조차 없다.

아니, 그 뿐이랴.

바위가 무너져 사막이 되고, 사막 위로 작렬한 일격에 모래가 유릿빛으로 흩날리는 지금 이 상황.

세상의 종말을 한 발자국 앞둔 풍경이 눈 앞에 있었다.

……적어도 이런 공격을 제자들이 무한정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는 없다.

그리고 제자들이 한계에 봉착하면, 머잖아 다른 머리도 박우찬을 노리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싸움은 끝이다.

애시당초 장기전에 적합한 건 오히려 그들이 아니라 녀석 쪽이다.

어느덧 전신에 두른 저주.

피를 흘릴 때마다 새어나오는 독기.

놈의 몸에 새겨지는 자그마한 상처 하나하나가, 그들의 승리가 아닌 마왕의 승리로 이어지는 길을 잣고 있다.

심지어 페르시아 신화 속 용들에게 있어 독과 열기는 곧 그들의 힘이 되기 마련이니.

이 쪽으로서는 독 또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노리는 건 일격필살.

박우찬의 시그니처 뿐이다.

문제는, 마왕 또한 그 정도 사실은 익히 알고 있으리라는 점이겠지.

여하간, 마왕은 그 시그니처를 직접 목격하고 대처한 적조차 있을 정도다.

일찍이 있었던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시그니처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마법이, 또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던 풍경을 상기한다.

즉, 상대는 단순히 시그니처 한 번 사용해 쓰러뜨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필요하다.

시그니처 이후의 연속 공격.

마왕의 멱을 끊어버릴 수 있을 만한 대규모 공격이, 두 번째.

그리고 박우찬이 보기에, 이 전장에서 그런 공격 수단을 가진 건 자신을 제외하면 단 한 명 뿐이었다.

……결국 필요한 건 단 하나.

장기전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틈을 살핀다.

이윽고 적절한 상황을 유도해, 마왕을 단번에 제압한다.

단기전을 노리되 장기적으로 틈을 살피고, 시간을 끌어야 하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 외줄타기나 다름없는 싸움이었다.

밤하늘의 별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땅이 바닥 없는 무저갱을 드러내고, 그 사이로 용암이 솟구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벼어어엉!!"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작해야 백 억도 안 되는 돈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게 맞는 건가.

그런 마음을 담아, 황윤하는 방패를 휘둘렀다.

떨어져내리던 마법을, 방패와 기술에 힘입어 빗겨 흘린다.

바야흐로 묘기에 가까운 방어.

그녀가 발을 딛고 있던 주변의 지반이 텅 하고 가라앉는다.

그러나.

효과는 뛰어났다.

그 위력 상, 대마법은 조금이라도 각도가 뒤틀리면 예상 밖의 장소에 착탄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칠 정도로 절묘하게 조정된 대마법이 비틀리고 엇나간 끝에 다른 마법과 충돌해 상쇄된다.

다른 쪽 또한 마찬가지였다.

"흐읍!!"

무장의 격철을 당기며, 대마법에 구멍을 뚫는 류지희.

마찬가지로, 염력을 한데 모아 대마법의 일부에 간섭하는 식으로 훼방을 놓는 이예은.

마주 화살을 쏘아 역으로 마법을 밀어내는 신서아.

나아가서는, 어지간히 무리한 행동이라도 축복을 내려 무마할 수 있는 티아마트.

덕분에 박우찬에게 향하는 대마법의 포위진에 구멍이 생기고 있었다.

당연히 박우찬은 그 틈새를 이용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마왕의 견제를 피하고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은 마왕에게도 썩 달가운 건 아니었다.

여하간, 마왕에게 있어 중요한 건 박우찬을 쓰러뜨리는 일이다.

물론 저렇게 버티고 있는 박우찬의 일행들 또한 쓰러뜨리는 데엔 한 순간도 걸리지 않겠지.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후방의 계집애들을 짓뭉게는 데에 한 순간.

어쩌면 보조를 포함하면 두 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

반대로 말하자면, 그건 적들의 요점인 박우찬에게 두 수 이상의 여유를 제공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자들의 목숨으로 박우찬을 협박하려 한들, 저울눈이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막말로, 마왕의 목적은 여자들을 죽이는 게 아니다.

박우찬의 격퇴.

조금 더 터놓고 말하자면, 박우찬의 죽음이다.

그런 상황에서 박우찬에게 한 수 이상 등을 돌린다?

설령 여자들을 살해한다 해도 박우찬이 멈출 리는 없다.

아니, 오히려 분노해서 달려들 가능성이 더 높은 바.

여자 몇 명을 죽이고 박우찬에게 뒤를 내보이는 건,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우행이다.

때문에.

마왕이 노리고 있는 바 또한 박우찬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박우찬이 아닌 다른 여자들을 잡기 위해 수를 두면 오히려 지금의 우세에 빈틈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

허면, 구태여 판을 장악하려 들 필요는 없다.

조용히 우세를 유지하면서, 기회가 되면 적의 머리라 할 수 있는 박우찬을 단번에 물어 죽인다.

남은 떨거지 정도는 그 이후에 처리하면 그만이니까.

즉, 유도하는 건 단 하나.

천 개의 기술과 마법을 다루고, 그 거대한 육체만으로도 거인에 필적하는 힘을 발휘하는 존재.

페르시아 신화의 마룡이 지닌, 두말할 필요도 없는 최강의 수단.

용의 숨결.

세 개의 머리로부터 동시에 방사되는 드래곤 브레스.

한 번 호흡을 내뱉어 밤하늘의 별을 지워 없앤다 일컬어지는, 사룡왕의 포효다.

하나하나가 S랭크 몬스터의 자폭조차 넉넉히 상회하는 그 일격은, 틀림없이 이 전장 내에서조차 최강의 화력.

게이트 너머가 아닌 현실 세상이었다면 그 한 발에 대륙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위협이다.

고작해야 일개 사냥꾼이 버틸 수 있는 위력이 아닐 테지.

말하자면, 지금의 이 견제조차 마왕에게는 단순한 포석.

문자 그대로 견제, 자신이 패할 가능성을 지워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했다.

용의 육체는 강인하다.

독도 먹히지 않는다.

비늘은 수많은 장인들이 단조한 방패를 여유 있게 상회하고, 마력 또한 바닥을 모른다.

하물며 이 거룡에게 이르면, 그 육체적 능력만 해도 거인을 상회하는 바.

여기에 천 개의 기술이 더해진 마왕은, 말마따나 빈틈 하나 없는 괴물이다.

선신의 예언. 그로 인한 패배.

성스러운 불꽃과 참마의 즙에 의한 약점도, 어지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

고작해야 한 칼을 박아넣어도, 놈에게 있어선 별다른 타격조차 되지 않는다.

저해되는 재생조차, 압도적인 마력으로 뭉게버릴 수 있다.

역으로 흩뿌려지는 피가 독기가 되어 주변을 잠식하니.

어지간한 준비를 갖추고도 장기전을 벌이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다…….

실제로, 박우찬과 일행들이 준비한 방독면 따위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방독면조차 소용이 없을 정도로 독기가 쌓이고, 역으로 부패할 만한 독성이 들끓는다면?

그래도 버틸 수 있을까?

바닥 없는 늪을 향해 빨려드는 듯한 감각이, 일행들의 발목을 잡아든다.

그리고.

마왕의 세 갈래 머리.

일행들이 틀어막고 있던 좌우의 시선이, 박우찬을 향했다.

"어딜!!"

당연히 거기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그녀들이었다.

지금 그녀들의 목적은 단 하나.

박우찬에게 쏠리는 부담을 분담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티아마트의 축복을 믿고 억지로 그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 박우찬의 등골에 오한이 달린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

박우찬과 비슷한 사고방식, 박우찬과 비슷한 두뇌 회전.

사람을 해하기 위해 천 개의 기술을 배웠다는 마왕의 포석은, 다른 학생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다.

때문에.

다음 순간, 마왕은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처음부터 마왕에겐 저항할 필요조차 없었다.

박우찬의 공격조차 단순한 회복으로 충당할 수 있는 게 바로 마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사룡이 여태까지 그녀들의 공격을 착실하게 영격했던 이유는 총 두 가지.

첫째는 박우찬에게 사용해야 할 마력이 조금이라도 소비되는 건 내키지 않아서.

둘째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화살이 날아든다. 창날이 꽂힌다. 염력이 비늘을 강타한다. 주먹이 그 틈새를 후려갈긴다.

동시에.

마왕의 비늘에 새겨진 저주가, 그녀들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컥……!!"

"꺄악?!"

일체의 저항 하나 없이 들어간 유효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반격의 저주는, 당연히 여태까지 그녀들이 감당하던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한 순간.

물리력조차 동반한 저주에 맞아 박우찬의 제자들이 한 걸음 물러선 찰나.

번뜩이는 거룡의 눈동자가, 정확히 박우찬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래.'

그렇게 오겠지.

내심 조용히 중얼거리며, 박우찬은 손아귀 안에 잡힌 대검을 단단히 쥐었다.

싸움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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