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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60화 (360/371)

〈 360화 〉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

* * *

좌우의 머리를 맡긴 채, 박우찬은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마력.

순환하는 강화 마법의 일부를 담아, 칼끝을 붙잡고 가볍게 튕긴다.

동시에.

칼끝으로 분사된 마력이 참격이 되어 거룡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물론 거룡의 비늘은 단순한 견제 따위로 능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신화에 전하길, 어떤 방패보다도 단단하다 일컬어지던 사룡의 비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걱!!

다음 순간, 작렬한 마력의 참격과 함께 핏물이 흩날렸다.

바야흐로 요새나 다름없던 거룡의 비늘 한 장이,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벗겨진 탓이었다.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마왕의 거체는, 틀림없이 강력하다.

아니, 애초에 비늘 한 장을 벤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겠지.

머잖아 곧 재생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박우찬이라면 닿을 수 있다.

상대의 머리 하나하나가 두 번째 마왕, 쿠쉬를 상회하고 있는 지금.

역대 최고봉의 사냥감을 앞둔 박우찬의 감각 또한, 두 번은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가다듬어졌기 때문이다.

악룡의 비늘이 베인 자리에서, 마력이 들끓는다.

순식간에 재생되는 비늘.

그 너머로 흩뿌려지던 피는, 이윽고 독기가 되어 주변을 잠식한다.

상관 없다.

축지.

독기의 결을 짓밟으며, 박우찬이 달려들었다.

얼굴에 덮은 방독면과 코트가, 주변에 가득찬 독기를 정화한다.

그렇게.

바야흐로 산과 같은 용의 거체를 단박에 등단한 박우찬이, 칼날을 번뜩인다.

어느덧 손에 쥔 대검을 역수로.

보조 손잡이를 붙잡은 채, 대못으로 용의 비늘을 할퀸다.

드드드득!!

너무나도 손쉽게, 용의 비늘이 두르고 있던 방어 능력이 벗겨진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성스러운 불꽃과 참마의 즙으로 단련된 이 무구 앞에서, 저주 따위에 의한 방어 능력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때문에.

마치 강철로 된 합판을 긁듯 대못을 곤두세웠던 박우찬은, 다음 순간 쯧 하고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피피핑!!

아슬아슬하게 젖힌 고개 너머로, 수많은 마법이 빛을 발한다.

비늘 밑.

방금 전, 박우찬이 할퀴었던 비늘 밑에 도사리고 있던 마법 때문이었다.

가끔은 적의 관절을 꿰어 고정하고, 거대한 적을 상대로는 어떤 공격이 효율적인지 알아보기 위한 대못.

박우찬의 보조 무장에 맞서, 마왕이 택한 수는 참으로 간단했다.

안 그래도 자신이 두르고 있던 방어 마법까지 모조리 관통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면, 이 이상 적에게 유효한 수단을 제공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마왕이 선택한 건 정면 승부였다.

박우찬의 못에 새겨진 술식에 대응해, 하나하나 상쇄하는 주문을 비늘에 부여한다.

발화 마법이 주각된 못이라면, 그 열기를 가라앉힐 주문을.

냉각 마법이 주각된 못이라면, 그 냉기를 맞상쇄할 주문을.

덕분에 박우찬은 마왕에게 추가로 유효한 공격이나 성질 따위를 알아내지 못했다.

아니, 그 뿐일까?

다음 순간, 악룡의 비늘이 곤두섰다.

파파팟!!

방금 전까지 용의 전신을 덮고 있던 비늘이 방패였다면, 이번엔 창칼의 군무나 다름없었다.

곤두선 비늘이 부딪히며 금속음 가까운 소음을 울려 퍼트린다.

당연히 박우찬의 발밑에 있던 비늘 또한 마찬가지였다.

농담으로도 가볍다고는 못 할 박우찬의 거체가, 고작해야 비늘 한 장 곤두서는 힘에 떠밀려 붕 하고 날아갔다.

만에 하나 이대로 용의 목덜미를 굴러 떨어지게 된다면 적잖은 상처가 몸에 남겠지.

물론 그보다 문제가 되는 건 몬스터의 육체와 접촉한 박우찬의 발작 쪽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

마치 포문을 개방한 포대처럼, 비늘 밑에 새겨진 마법이 박우찬을 향해 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화염. 강철. 충격.

무형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포화들이 허공에 뜬 박우찬을 상대로 쇄도했다.

물론 박우찬이 선택한 대처법도 마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면에서 후려갈긴다.

다시 한 번 축지를 밟는다.

허공에 모인 마력을 발판으로 삼아, 그대로 회전.

곧바로 칼날에 마력을 다시 한 번 흘리고, 흩뿌린다.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아들던 마법이 상하로 양단되었다.

퍽 시원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솜씨.

그러나.

"애미."

다음 순간,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고 말았다.

양단당한 마법 사이로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력이 배어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악마들이 그러했듯 마왕의 마력 또한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최승준의 마력이 냉기에 가깝고, 이준구의 마력이 벼락에 가깝듯이.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마왕의 마력은, 당연히 흑마법에 특화되어 있었다.

페르시아 신화 가라사대, 사람을 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천 가지 기술과 마법.

마왕의 주특기는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주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은 원한과 원념에 있다.

자신을 공격하고, 파괴한 자에 대한 복수심.

이건 비단 생물체에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물이나 장소는 물론, 개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마왕이 선택한 방법 또한 바로 그런 쪽이었다.

천 개의 마법으로부터 분출된 저주가, 박우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야 욕지거리를 토할 수밖에.

따악, 하고 박우찬이 손가락을 튕긴다.

동시에.

방금 전의 맹공으로 박살난 요새의 파편이 순식간에 그 모습을 뒤바꾸었다.

즉석 연금술.

만약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마왕의 손아귀에 들어간 요새를 변형시킬 수는 없었겠지.

다만, 이런 대규모 싸움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부서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허공에 나타난 와이어를 억지로 끌어당긴다.

평소처럼 섬세함 있는 와이어 액션 따위는 아니었다.

변형될 당시부터 요새 일부를 휘감고 있던 와이어에 맞추어, 자신의 몸을 억지로 끌어당길 뿐.

그러자 방금 전까지 박우찬이 있던 자리를 향해 날아들던 저주들이 뒤엉키며 부딪혔다.

이렇게 서로 상쇄되어 소멸, 한다면 그보다 좋을 일은 없겠지만…….

'게임 좆같이 하네.'

최고의 칭찬과 함께, 요새 외벽에 착지한 박우찬이 칼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투우웅!!

어마어마한 충격이 검신을 때렸다.

분명히 검날을 위로 빗겨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몇 발자국 밀려나갈 정도의 충격.

만약 방어에 실패했다면 박우찬도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방금 전, 뒤엉키던 저주들을 하나로 재조립한 마왕 탓이었다.

그렇게 하나가 된 저주는 이윽고 단순한 원념 덩어리가 아닌, 물리적인 충격조차 보유한 마력 덩어리가 되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저주로 이루어진 포탄이라고 해야 할까.

아슬아슬하게 그 위력을 죽이며, 박우찬은 대검 뒤에서 눈을 굴렸다.

전장의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하기 위해서였다.

마왕의 전신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상관은 없다.

박우찬의 감각이 있다면 산 전체를 휘감고 있는 거체 또한 능히 파악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썅."

다음 순간, 박우찬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몸을 굴렀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정답이었다.

콰아앙!!

벽력조차 이러할까 싶은 충격이 요새를 주타한다.

산의 뒤편에서 채찍처럼 내려친 꼬리 때문이었다.

제자들의 힘을 빌리면 두 개의 머리까지는 어떻게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꼬리까지는 커버할 수 없었다.

아니, 본래는 혼자 도전할 생각이었으니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일지 모르겠지만──.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요새의 일부분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세로로 찢어진 용의 눈동자가 박우찬의 모습을 포착했다.

……대가리가 세 개라서 사고 속도도 세 배인 건지, 아니면 뭔지.

사람을 해하기 위해 천 가지 기술을 만들었다 전해지는 용의 눈동자에선, 방심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임 한 번 더럽게 하네,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그렇게 중얼거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더럽게 한다는 말은 곧 칭찬이나 다름없다.

일단 행동의 변화가 지나치게 재빠르다.

한 번 실패한 행동엔 미련을 가지지 않고, 곧바로 다음 수를 채용한다.

상대방을 경계하고, 조금이라도 정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깐깐할 정도로 조밀조밀한 수를 둔다.

'젠장.'

정말로 역겨운 사실이지만, 박우찬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악신의 권능.

천 가지 기술과 마법은, 박우찬의 전법과 지나칠 정도로 비슷했다.

때문에.

뱀의 눈이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시점에서, 박우찬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할 수 있었다.

물론 예상할 수 있었다고 해서 대처할 수도 있다는 건 아니다.

허공에 마법이 정렬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성질이 함유된 마법.

허나, 방금 전과는 달리 그 목적은 단 하나 뿐이었다.

견제.

박우찬을 쓰러뜨리기 위한 공격이 아니다.

치밀하게 시간을 벌기 위한 견제용 수.

그리고 그 목적은 아마도 단 하나.

자신의 전신과 비늘에, 방금 전 마법과 마찬가지로 저주를 새기기 위한 시간 벌이겠지.

즉,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박우찬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무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다.

두 개의 머리를 학생들이 맡고 있는 지금도 이런 상황이니까.

단지, 그 시간 제한에 한층 더 가속이 붙게 되었을 뿐.

……틀림없이,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앞에 둔 지금.

박우찬의 손은 두 번째 마왕조차 능가하는 용의 머리에도 닿는다.

다만.

어디까지나 닿을 뿐.

과연 승산이 있을까.

아니, 설령 승산이 있다 해도 그 승산을 거머쥘 수 있을까 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발광하는 마법진 앞에서, 박우찬이 식은땀과 함께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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