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9화 〉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
* * *
우중충한 하늘이었다.
당장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준구는 슬쩍 시선을 흘렸다.
"날씨가 영 아니군."
마찬가지로, 그의 옆에 선 야당의 당수 또한 쯧 하고 혀를 찼다.
물론 그의 경우, 어지간히 쾌청한 날씨였다 해도 탐탁찮은 반응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체포를 앞둔 정치인이란 으레 그런 법이었다.
하물며, 인류를 저버리려 했던 배신자라는 멍에까지 가면 더더욱 그렇고.
……유감스럽다던가, 이런 식으로 얼굴을 뵙고 싶지는 않았다던가.
이준구는 구태여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감상은 있다.
자신이 정치판에 입문할 당시,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은사와 같은 분이시니까.
정치판에 명확한 아군이 없는 만큼, 명확한 적도 없는 바.
어쩌면 누군가는 이번 일로 자신을 배신자라는 식으로 물어뜯으리라는 점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준구는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정계의 거물이랍시고 놓아주기 위해 정치가가 된 건 아니었으니까.
당수 또한 그 정도는 능히 알고 있을 터.
때문에.
"대책은 있나?"
당수는 그렇게 물었다.
여하간, 그라고 해서 명확한 비전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만에 하나 규격 외 등급이라 이름을 붙인 몬스터가 강림하면, 모든 게 끝난다.
적어도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 만한 감각 정도는 있었다.
이준구의 스케줄을 통해 아카데미 쪽의 일정을 분석하고 신세계 질서 쪽에 흘린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정치가의 본분은 국가의 운영.
허면, 국가의 존망 자체가 풍전등화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정도이리라고.
……뭐, 어느 쪽이든.
길게 이야기할 만한 건 아니다.
신세계 질서는 패했다.
마왕은 승리했을지언정, 거기에 줄을 댔던 인간들은 줄줄이 잡혀나가고 있는 지금.
스스로의 정당성을 논해도 우스울 뿐이리라.
결과적으로, 그들이 이용당한 채 버려진 꼴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허면?
신세계 질서의 계획이 완전히 파탄난 지금.
야당의 당수인 그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언제나 하나 뿐이었다.
이길 수 있겠나?
확신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여기까지 와서 남은 말은 결국 평소처럼 여당을 향해 던지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예."
그리고.
여당의 당수보다도 확실하게, 이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퍽 자신만만한 대답이로군."
"아는 친구가 움직이고 있거든요."
"도축업자인가 하던 그 헌터 이야기인가?"
짧게, 정치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고 싶은 말이야 여럿 있었다.
고작해야 한 명의 사냥꾼에게 국운을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허나, 애석하게도 정치는 합리로 굴러가는 게 아니다.
뛰어난 공약과 매력적인 약속이 당선을 약속하는 게 아니듯이.
꼬투리를 밟혀 정치 싸움에서 패배한 건 자신이다.
허면,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는 건 실패하고 난 뒤라 해도 충분하리라.
"도대체 뭐 하는 친구이길래?"
점잖은 어투로 그리 되묻는 목소리에, 이준구는 잠시 고민하듯 턱밑을 쓰다듬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박우찬을 서술할 표현은 정말로 수도 없이 많다.
방금 전 언급된 도축업자라는 별명 또한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제 영웅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냥에 미친 정신병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냥꾼.
그런 설명을 입 밖에 내는 대신, 이준구는 그렇게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수로서는 그런 말을 들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애시당초 박우찬이라는 개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므로.
"그럼, 자네와 내 차이는 도축업자를 알고 있었느냐 아니냐 하는 점 뿐이라는 거군."
소소한 감상을 토했다.
한 명은, 마왕의 존재를 알고서 인류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판단해 이 나라를 보존하려 했다.
한 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 차이는 바로 단 한 명, 도축업자라는 사냥꾼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있었다.
그 사실을 새삼스레 입 밖에 올리며, 그들은 다시 한 번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
궁극의 푸른 눈이라 불리는 카드가 있다.
어떤 카드게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세 장을 융합한 결과물.
최고 수준의 공격력을 지닌 용 세 마리를 융합한 삼두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격력은 도합 4500.
각기 공격력 3000인 카드를 융합한 결과물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저조한 상승폭인 게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융합 소재들의 공격력을 합산한 수치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까.
문득 그 사실에 농담을 던지던 과거가 생각났다.
동시에.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궁극의 푸른 눈은 공격력 9000이 아니라 그 절반밖에 안 되는 거였는지.
'밸런스 때문이었군.'
대가리가 세 개라고 정말 세 마리 분량의 힘을 낼 수 있다면 단순한 밸런스 붕괴다.
지금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부르짖는 거대한 삼두룡을 상대로 하면서.
"───────!!!!"
용의 포효가 천지를 찢었다.
새하얗게 질린 성산의 봉우리를 휘감듯, 검은 비늘의 용이 그 입가에 화염을 머금는다.
그런 괴물이, 자그마치 3체.
하나하나가 S랭크 몬스터는커녕 최후의 마신이나 두 번째 마왕조차 능가하는 용의 아가리가 거기에 있었다.
별다른 전조 따위는 없었다.
내가 제안을 거절한 직후.
썩 유감이라는 듯, 마왕은 몇 마디 적당한 덕담을 건넸다.
그리고.
안 그래도 삐걱거리고 있던 성신의 구속이 한층 더 무뎌진 직후.
왕성이 폭발했다.
아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설에 전해지는 마왕.
악신의 꼬드김에 당해 타락한 왕이며, 이후 악신의 현신이라 일컬어지는 삼두룡으로 변모했다는 존재.
그 이름에 걸맞게, 마왕은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거룡의 형상으로 되돌린 것이다.
드래곤들의 폴리모프 내지 해제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자체가 하나의 공격 수단이나 다름없는 폭발.
용의 머리 하나 들어가기도 비좁던 왕의 옥좌는, 당연히 거룡의 등장과 동시에 박살나고 말았다.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용의 등장과 동시에 그 거체에 치여 날아가고 만 우리들.
하늘을 허우적거리며, 나는 그 사이 시선을 굴려 제자들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제자들 또한 크게 다친 듯 보이지는 않았다.
방어 태세를 취할 수 있었던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어쩌면 나와 마왕이 나누던 대화를 듣고 긴장을 풀지 않았던 덕일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이렇게 된 이상 취할 방책은 정해진 셈이었다.
"각자 작전대로!!"
목소리에 마력을 넣어 그렇게 외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다른 녀석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몇 번이나 말했듯이, 고작해야 팔다리 숫자가 더 많다는 이유로 몬스터의 강약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허면?
처음부터 우리 이상으로 강한 존재가, 몇 개나 되는 팔을 지니고 있다면?
그조차 별다른 도움이 안 될까?
……아니.
단순한 전투가 아닌 섬멸이라면, 그야 속도도 몇 배는 빨라지겠지.
마찬가지였다.
페르시아 신화 속에 등장하는 삼두룡.
다시 말해, 마왕의 정체 되는 아지 다하카.
사악한 천 개의 술식을 흩뿌리며, 모든 죄와 악을 관장하는 존재.
어쩌면 그 정도 되는 괴물이라면, 대가리 하나를 상대하는 데에 내 전력을 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소한 두 개의 머리를 묶어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런 결정 하에, 나는 작전을 짰다.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과 마왕의 실력 차이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실질적으로 버티는 게 고작이며, 그조차 쉽지는 않겠지.
다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보았다.
먼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철저하게 방어에 전념한다.
다행스럽게도, 여기는 놈들의 영역.
도시의 피해를 고려하며 몸을 추스릴 필요는 없다.
여기에 티아마트의 보조를 기울이면, 둘 당 머리 하나를 상대로는 버틸 수 있겠지.
아마도.
그 이상은 단순한 도박이다.
나 또한 제대로 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존재.
별다른 정보 하나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
마왕이란 바로 그런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눈 앞에 나타난 마왕의 모습은, 예상 이상이되 상상 이상이지는 않았다.
머리통 하나하나가 쿠쉬를 넘어서고 있는 건 과연 예상 이상이지만, 쿠쉬를 기준으로 얼추 힘을 가늠할 수는 있다.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겠지.
물론 그 또한 길지는 않으리라.
때문에.
결국 문제가 되는 건, 다른 두 개의 머리가 아니다.
내가 담당하는 가운데 머리와 나 사이의 승부.
어느 쪽이 먼저 서로의 상대를 제압하고, 다른 쪽을 지원하러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말하자면, 이번 토벌은 거기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였다.
주르륵, 미끄러지며 땅 위로 착지한다.
동시에, 다시 한 번 위치를 살핀다.
'딱 좋군.'
서로의 역할을 위해 맞춰 서 있었던 덕분일까.
한 쪽에는 윤하와 예은이, 한 쪽에는 지희와 서아.
처음에 이야기했던 대로 딱 나누어진 모습이 보였다.
양 쪽에 각기 한 명씩 전위를 두고, 윤하와 서아라는 중심축을 각기 따로 찢어놓는다.
더 이상 주변의 눈치 따위를 볼 필요도 없는 티아마트의 보조도 있고.
지금 이 상황이라면, 녀석들만으로도 S랭크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겠지.
방어에 전념한다면 더더욱 버틸 수 있을 테고.
허면, 남은 건 단 하나.
나와 가운데 대가리 쪽에 남은 승산.
이 승부가 어느 쪽으로 기울까 하는 문제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문제에서, 나는 감히 세계 최강을 자부할 수 있었다.
내가 안 되면 세상 어느 누구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나는 조용히 애병을 꺼내쥐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