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화 〉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
* * *
선전포고를 마친 뒤에도, 마왕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마치 이제부터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기라도 하는 듯했다.
물론 실제로는 단순한 착각이리라.
박우찬은 알 수 있었다.
눈 앞의 마왕이 당장에 움직이지 않는 이유 따위, 단 하나.
단순히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탓이다.
여하간, 마왕에게 있어 방금 전 선언은 선전포고나 위협조차 아니다.
말 그대로 순수한 자신의 본심이었겠지.
마왕은 정말로 궁금했다.
이제 곧 죽을 녀석들이 고작해야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를.
동시에, 어차피 죽을 테니까 적당히 대답해주었을 뿐이다.
아마도 스스로는 우리들에게 적개심을 샀다는 자각조차 없을 테지.
허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우찬은 가장 먼저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고민했다.
언젠가 싸우는 건 기정 사실이라 해도, 싸울 시기를 고르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지.
애초에 그들의 가장 큰 목적은 마왕의 토벌이 아니다.
때문에.
"먼저 한 가지."
박우찬은 무겁게 가라앉은 옥좌 주변의 분위기를 신경쓰지 않고 입을 열 수 있었다.
자연스레 주변의 시선이 그를 향해 꽂히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중에서는 제정신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도 더러 있었다.
특히 뒤쪽에서.
괘씸한 녀석들.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그리 되새긴 다음,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우리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하연이의 안전 뿐이다."
"하연이?"
"……네게는 포로나 제물이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군."
"아아, 과연. 하지만, 좋지 않은 표현이야. 여인을 상대로 포로나 제물이라니."
씨발놈아.
박우찬은 무심코 튀어나오려던 말을 간신히 목구멍 너머로 억눌렀다.
올해 분량의 인내심을 모조리 끌어다 모은 듯한 묵직함이 가슴을 턱 하고 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들에게 중요한 건 하연이의 안전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지."
즉, 사실상 자하연의 신병을 돌려주면 그대로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퍽 대범한 요구였다.
아니, 오히려 현실성 없는 요구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
지금 이 상황 속.
자하연의 신병을 떠넘기라는 건 사실상 신세계 질서의 완전한 패배.
퇴각을 뜻한다.
자연스레그를 향해 꽂히는 제자들의 시선이 노골적일 정도로 변했다.
"사부, 진심이야?! 몬스터를 놔주겠다니!!"
"으음, 믿기질 않는구나. 이게 성장이라는 것인가……?!"
"안 닥쳐?"
다만, 공교롭게도 그녀들이 감탄한 건 다른 데에 있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박우찬도 설명할 기회를 잃고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순한 공갈은 아니었다.
적어도 신세계 질서, 나아가서는 마왕에게도 이득이 있긴 할 테니까.
일단 조직을 정비할 수 있다.
산하의 권속과 부하 대부분이 쓸려나간 지금.
마왕의 세력은 이미 바람 앞의 등불일 뿐이었다.
물론 마왕 본인의 힘은 강력하겠지.
허나, 만일 그들의 불구대천이라 할 수 있는 선신 진영의 존재들이 살아남은 상태라면?
마왕으로서도 패배를 피할 수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이 제안은 썩 나쁘지 않은 편이리라.
저 쪽에게도.
단지.
"거래가 되진 않는군."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막말로, 틀린 말은 아니라 한들 거기에 마왕이 순순히 따를까 하고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여하간, 당장 박우찬 쪽에서 마왕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물론 마왕도 현 상황이 만족스럽지는 않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침입자들 전원의 요구를 들어주며 제발 놓아달라고 간청할 정도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부분에 있어선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저울눈을 맞추려면, 이 쪽도 제안을 덧댈 필요가 있겠지."
다음 순간 들린 마왕의 말에, 다름 아닌 박우찬 본인부터 놀라고 말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여하간,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보기에도 공갈 협박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다.
물론 마왕 쪽 진영의 사정이 좋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 쪽에게는 이 전세를 뒤엎을 만한 방법이 있다.
자하연.
이름 높은 마왕마저 소환할 수 있고, 수많은 악과 용을 낳았다는 여신.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여신과 지극히 닮은 성질을 지닌 계집애.
그녀의 힘을 사용하면, 지금 이 시점부터 전선을 추스르는 일 또한 어렵지는 않으리라.
일찍이 아카데미 측에서 쓰러뜨린 마신들을 재생산하는 일 또한 가능하겠지.
즉, 마왕에게 있어 자하연은 말 그대로 마지막 동앗줄.
아니, 그 이상으로 휘하의 권속 전원을 희생해서라도 확보하고 싶을 존재다.
실제로, 수많은 마신들이 줄줄이 죽어나간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을 테고.
헌데도 마왕은 박우찬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대신, 오히려 본인이 조건을 덧댈 정도였다.
왜?
어째서?
마왕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가?
박우찬은 다름 아닌 그런 의문에 휩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를 풀어주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뭐?"
"자네가 짐의 편에 서겠다면."
그리고.
있었다.
마왕이 그 제안에 동의할 만한 그림이.
박우찬과 마찬가지였다.
사내 또한 몬스터라면 일단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
그렇지만.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숭배받고 있던 티아마트.
혹은, 그녀를 죽여 없앤 탓에 커질 피해를 생각해 칼을 물리지 않았나.
마왕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녀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버틸 수는 있겠지.
나아가서는, 그들과 대적할 이유를 찾아도 상관은 없으리라.
허면?
박우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마왕에겐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본능적으로 인간을 해하려 할 뿐, 본인에겐 호불호가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의 생명을 보증하지. 아니, 그녀의 생명 또한 보증하겠다."
반대로, 박우찬을 섭외하면 안 될 이유는 무엇인가?
담담하게, 마왕은 그런 제안을 눈 앞의 사냥꾼에게 던졌다.
*
거부할 이유나 명분이 없다.
가장 먼저, 박우찬은 그런 생각을 했다.
과연 마왕다운 눈썰미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박우찬처럼 마왕 또한 그의 속내를 읽을 듯 알 수 있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지금 마왕이 던진 제안은 썩 나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그는 협회의 사냥꾼으로서 몬스터를 토벌하고자 찾아온 게 아니었다.
단순히 몬스터를 죽이는 게 좋아 찾아왔을 뿐이라면, 애초에 제 3차 대침공 속에 몸을 던졌겠지.
즉, 하연이를 위해 자신의 본능과 속한 조직마저 저버린 지금.
박우찬이 마왕의 제안을 거절할 까닭도 마땅치 않았다.
막말로, 놈들이 대한민국에 찾아온 건 어디까지나 현재 페르시아를 점거하고 있는 집단.
다시 말해, 이슬람 광전사들 때문일 터.
허면?
제대로 전력을 보충하고 이길 수만 있다면, 놈들도 이란 쪽을 탈환하길 원하겠지.
잘만 유도하면 대한민국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처리할 수도 있으리라.
뭐, 몬스터를 볼 때마다 솟구치는 살의는 하연이만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고.
여기에 마왕의 비술 비슷한 게 있다면 고위 악마를 무제한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모양이니까.
자신의 속을 달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하물며, 자신은 대단한 영웅 따위도 아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 이란 사람들이 죽는다 해도 느껴지는 감흥은 없다.
뭐, 안타깝다고 생각이야 하겠지.
뉴스에서 나오는 사망자들 관련 이야기를 보며 생각하듯이.
반대로 말하자면, 딱 그 뿐이다.
어쩌면 꽤나 괜찮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박우찬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허면, 자신은 어째서 방금 전부터 이런 변명 비슷한 말이나 주절거리고 있는 걸까?
스스로도 모를 일이라며, 박우찬은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러면 그 눈 앞에 스치는 건 다름 아닌 하연이의 모습이다.
얼마 전, 태시영에게 납치당하던 하연이.
그리고 지하 감옥에서 다시금 만난 하연이는, 언제나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담담한 듯, 괜찮다는 듯.
자신에게 남은 미련을 억누르듯이.
게이트를 넘어 찾아온 박우찬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하연은 놀라지 않았다.
어째서 박우찬이 여기에 있는 거냐고, 그 사실 자체에는 놀랐으면서도.
박우찬이 자신을 찾아 게이트 너머까지 찾아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았다.
마치 박우찬이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알고 있었다는 듯.
그래서 자신이 박우찬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는 듯.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박우찬이 혹여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이루 말할 수도 없을 만한 기쁨을 느끼면서도, 그 표정을 억누른 것이다.
그 사실이 박우찬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어째서일까.
그 계집애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표정을 지은 걸까.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네가 납치당했을 때에도 그랬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나름대로 노력했으니, 이제 즐기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제 3차 대침공을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유감스럽다고.
그렇게 말하며 칼을 휘둘러도 되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일찍이 박우찬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 순수한 시선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박우찬이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도와주러 올 거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럴 거라고.
그런 사람이니까, 자신이 부담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 눈동자를, 박우찬은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구해달라고 했다면.
그런 말을 들었다면, 박우찬은 어쩔 수 없다며 칼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간교한 계집애는 마지막까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허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대로 말하자면, 망설인 시점에서 대답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숨을 내쉬며, 박우찬은 눈을 떴다.
"대답은?"
그 모습을 보며, 마왕은 넉살도 좋게 그리 물었다.
물론 그의 답변 또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구태여 그 대답을 자신의 입으로 올리기로 했다.
"좆까."
뭐, 어찌 하겠나.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안위보다는 못된 오빠의 몸상태를 염려하는 계집애다.
결국 박우찬은 그런 인간이었다.
현 이란 사람들에게 못할 짓이라.
사람으로서 선택하면 안 될 길이라.
그런 이유가 아니라, 자신을 향해 바보같을 정도로 신뢰를 가진 계집애를 배신할 수가 없어서.
자하연이 바보같은 믿음을 가진 게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박우찬은, 자신의 본능이나 현실적인 이유 대신 그런 대답을 입에 올렸다.
"흐음,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나?"
"그냥 네 헤어 스타일이 좆같이 생겨서."
무슨 빗자루 같냐.
그렇게 투덜거리는 박우찬의 항변을 들으며, 마왕은 껄껄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외견이라. 하긴, 중요한 문제지."
"미친 고대인 새끼."
이렇게 생각하면, 참 오랜 길을 걸었던 듯한 기분도 든다.
말 그대로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올 줄이야.
그냥 네가 싫다.
몬스터니까 죽이고 싶다.
그런 대답으로 내심을 갈무리하며, 박우찬은 칼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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