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하늘의 별을 불사르는 자
* * *
눈 앞에 나타난 존재를 보고 처음으로 느낀 감상은, 의외로 평범하다는 점이었다.
달 하나 뜨지 않은 밤의 하늘보다 어두운 먹색 머리칼.
세로로 찢어진 황금색 뱀의 동공과, 그 너머로 번뜩이는 검은 자위.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정도로 온화한 언동까지.
만약 지금 이 장소가 마왕의 거처만 아니었다면 다소 독특한 외모의 청년이라 생각할 법한 기척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짐짓 미안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며 품평하던 박우찬은, 잠시 헛숨을 삼켰다.
자신이 눈 앞에 있는 청년을 상대로 지나칠 만큼 침착하게 겉모습을 품평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 또한 알 수 있었다.
사내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빛의 사슬.
일찍이 선신의 대전사들이 남겼던 오래된 봉인이 아직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덕택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또한 영원한 건 아니다.
온갖 마법이나 술식에 무지한 박우찬의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본디 사악한 용을 봉인했을 성스러운 구속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헐거워졌다는 사실을.
사룡. 악신.
두렵기 짝이 없는 마왕은, 이미 부활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바야흐로, 자하연의 힘을 빌리면 곧바로 현세에 강림할 수 있을 정도로.
허면?
마침내 당도한 부활의 때를 앞두고, 사악한 마왕은 무엇을 하기 위해 지금 이 곳까지 친히 왕림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부활을 위해 필요한 제물을 탈환하기 위해 잠입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뭐, 일단 밖으로 나가지 않겠나."
놀랍게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일행들에게 마왕이 가장 먼저 건넨 제안은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슬쩍, 고풍스러운 망토 자락을 훔치며 감옥의 벽을 살피는 마왕.
"이런 장소에서는 마음 놓고 이야기도 할 수 없겠지."
박우찬 또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여기에서 그들이 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적어도 뒤에 있는 하연이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만약 마왕이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다면.
그래서 하연이를 풀어줄 수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솟구치던 미혹을 속으로 억누른다.
말이야 쉽지, 실제로는 단순한 미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여하간, 하연이를 억누르고 있는 봉인 또한 가벼운 물건은 아닐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수많은 마법이 새겨져 있으리라.
그리고 그들 중에서 마법에 능통한 쪽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크윽, 제기랄.'
박우찬 본인의 편향된 지식이 가르침에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만약 내년에 아카데미가 다시금 문을 열면 마법 쪽 전문가도 반드시 초빙하리라.
그런 감상을 삼키며, 박우찬은 내심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년이라.
무심코 떠올린 발상에 헛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서로 시선을 맞춘 일행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싸움을 시작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일치한 덕분이었다.
"아……."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째서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미 미련이나 살고 싶다는 마음 따위, 진즉부터 두고 왔다 생각했거늘.
단순히 이제 와서 생각이 바뀐 걸까.
그렇지 않으면, 박우찬의 모습을 보고 없던 미련이 다시금 솟아난 걸까.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달싹이던 자하연은, 곧 침착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퍽 가벼운 어조의 대답이었다.
마치 옆집에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한.
지금 이 상황을 고려하면 도저히 있기 힘들 정도로 태평한 발언.
허나.
조금만.
그 한 마디에 담긴 속내를 느끼고서, 자하연은 천천히 고개를 떨구듯 끄덕였다.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툭, 툭.
몇 번 정도 가볍게 방독면을 건드리다, 뒤늦게 마왕이 내려온 계단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자하연을 무사히 탈환하고 퇴각한다는 선택지가 사라진 지금도, 박우찬은 그녀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다른 함정은 없었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애시당초 마왕에게 있어선 지하 감옥이나 성산, 어느 쪽이든 자신의 안마당이나 마찬가지.
고작해야 함정 따위로 유도할 생각이었다면 지하 감옥에서 손을 써도 상관 없었을 테지.
즉, 마왕이 그들을 따로 안내하고 있는 건 단 하나.
정말로 지하 감옥에 있는 자하연의 신병 때문이리라.
싸움에 휘말려 죽는 정도라면 또 모를까, 폭락 따위로 아예 훼손된다면 마왕으로서도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닐 테니까.
단지.
먼저 선도하듯 지하 감옥을 나선 마왕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박우찬은 다소 묘한 기분을 느꼈다.
'뭐지?'
갑작스레 나타난 이방인들에 대한 불만.
혹은, 다 차려진 상을 뒤엎으려 나타난 난입자들에 대한 짜증.
눈 앞의 존재에게선 어떠한 감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그 지하 감옥에서 싸움을 벌이면 자신에게도 손해가 온다.
그러니 그만두자.
고작해야 그 정도 감상.
자그마치 3년에 걸쳐 대립한 끝에 마주한 신세계 질서의 우두머리.
만마의 위에 군림하는 마왕은, 의외로 맥빠지는 녀석이었다.
오히려 태시영에 대한 짜증만 늘어날 뿐.
'개새끼.'
마왕에게도 들키지 않는 방법은 무슨.
물론 마법적인 계약까지 동원된 이상, 태시영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겠지.
그러나.
운이 작살나게 없었을 뿐이라 하더라도,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리 생각하기도 힘든 법이었다.
짧은 투덜거림 끝에, 이윽고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마왕의 거성── 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요새를 돌파하느니 운운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너무나도 손쉽게.
심지어 주인인 마왕의 안내를 받아 적의 심장부에 발을 딛게 될 줄이야.
"후우."
심지어 그 당사자인 마왕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게, 준비된 옥좌 위로 몸을 싣는 마왕.
그 모습은, 고대의 군주라기보단 차라리 뒤늦게 직장에서 퇴근한 중년 가장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 볼품없는 모습을 보여 미안하군. ……그래서? 자네들이 소문 한 번 자자했던, 짐의 왕국을 무너뜨리려는 첨병들인가."
"일단은."
"흠?"
물론 박우찬 또한 이제 와서 뒤로 뺄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눈 앞의 존재가 자신들을 방해로 여기기나 하는 건지 의문이 생긴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나야 댁을 죽여버릴 생각이지만, 댁이 우리들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진 잘 모르겠군."
퍽 자신만만한, 솔직히 말하자면 고대의 예법으로 보았을 때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통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선전포고를 앞두고도, 그렇지만 마왕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반응을 기대하고 던진 말도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자신들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오히려 제자들의 적개심 쪽이 더 강하지 않나 싶은 착각마저 들 정도로 미약한 기백.
눈 앞의 마왕은, 말마따나 자신의 부하들을 몰살시킨 그들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신세계 질서 계획의 핵심이었던 자하연의 신병조차 마찬가지였으니.
박우찬으로선 내심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눈에 띄게 적대적이기라도 하면 칼이라도 뽑았겠지만.
아니, 하다 못해 처음부터 봉인이 풀린 꼴이었다면 사정이고 뭐고 알 바 아니라는 듯 칼을 휘둘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먼저 의문이 앞설 따름이었다.
어쩌면 강력한 적에 대한 견제. 어쩌면 규격 외 등급 몬스터라는 마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그런 전략적인 행동과는 일절 관계가 없는, 본인의 순수한 의구심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 몇 마디 잘만 하면 이대로 물러설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흠."
박우찬의 힐난을 듣고서도, 마왕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옥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린 채, 맥빠진 듯 턱을 괼 뿐.
숫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냥꾼이 아닌, 진상 손님을 상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 사실에 박우찬이 눈썹을 찌푸리기도 잠시.
"그런 게 궁금한가?"
전부 죽을 텐데.
마치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마왕은 툭 하고 그런 말을 내뱉었다.
물론 박우찬 또한 여러모로 할 말은 있었다.
궁금하긴 했지만, 정말로 차분하게 마왕의 속내나 듣고자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하연이의 안전을 확보하는 일…….
그런 말조차 꺼내기 힘들 정도로, 툭 튀어나온 말은 지나칠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확실했다.
한 가지 묘한 점은, 명확한 의지를 담고 죽음을 선고한 지금까지.
마왕은 그들에게 별다른 적의나 살의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만 들으면 마치 마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들을 죽여 없애리라 경고하는 예언자의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불현듯 박우찬은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게만 느껴졌던 마왕의 태도.
아니, 마왕의 저 발언이 무슨 뜻인지.
"반대로 묻고 싶다만, 이유가 필요한가."
마왕에게 악의는 없다.
"아니, 이유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겠나?"
마왕에게 냉혹하기 짝이 없는 판단은 불필요하다.
"짐이 생각하기에, 무언가의 죽음에 합당할 이유나 사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터."
마왕에게 불만은 없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당사자로서는 납득하지 못할 테니."
마왕에게 스스로의 의견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제대로 된 대답 또한 존재하지 않겠지."
마왕에겐 파괴의 욕구도, 죽음을 흩뿌리고 싶다는 살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로시덥잖은 물음이로다."
마왕에겐 자신의 적을 증오하는 마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이 상황.
십중팔구 마왕은 박우찬을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어떠한 적개심도 가지고 있지 않으리라.
어쩌면 대화를 나누려 들지도 모르고, 그 결과 내심 유쾌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끝에서, 돌아가려는 그들의 뒤에 어떠한 망설임 하나 없이 용의 숨결을 토하리라.
마왕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악독한 자?. 사악한 자?.
서로 마음을 토로하고 교분을 나눈 이를 말 없이 죽이는 건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예법으로 따져도 마찬가지.
직접 방 안에 들인 손님을 해하는 건 기본적인 접대의 관습조차 지키지 않는 행동.
다시 말해,악행이다.
때문에.
마왕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들의 뒤를 찌르리라.
딱히 죽이고 싶은 생각이야 없지만,그러니까역으로 그들에게 칼을 들이밀겠지.
어쩌면 마왕이 자신의 권속들을 부려 신세계 질서라는 집단을 꾸린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마왕이 대한민국을 적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선신 진영이나 페르시아, 다시 말해 이란 인들이라면 또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세계 질서는 확신하고 있었다.
마왕이 강림하면 대한민국은 멸망하리라고.
다시 말해, 마왕의 권속들 또한 마왕이 강림하면 대한민국을 멸망시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째서?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짓이니까.'
조심스레 대답이 마음 속에서 울려퍼졌다.
눈 앞의 마왕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대화가 통하는 듯 보여도,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인 악마들 중에서도 한층 이질적인 자.
척수반사적으로 악을 행하는 존재.
동시에.
박우찬이 마왕의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 앞의 마왕에게 있어, 인간은 무심코 멸종시켜버리고 싶은 무언가.
딱히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일단 죽여버리는 게 좋은 존재들이다.
마치 박우찬이 몬스터를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하듯이.
……신세계 질서와의 싸움을 거듭하길 3년.
최후의 최후에 박우찬의 앞길을 가로막은 건, 설마 했던 자신의 완전한 반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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