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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56화 (356/371)

〈 356화 〉 하늘의 별을 불사르는 자

* * *

쓰러진 시체를 내려다보며,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승부를 내는 데에 걸린 시간은 채 2초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태시영을 상대로 2초면 압살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고 말할 수야 없었다.

오히려 반대라고 할 수 있겠지.

고작해야 2초 사이에 승부를 낸 게 아니다.

단기간에 결판을 내지 않으면 승부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귀찮은 상대니까.

그래서 억지로 단기간에 결판을 낼 수 없었다.

상대의 수를 파훼하고, 기껏 점한 우위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다.

만에 하나 기력을 되찾을 경우, 물고 늘어질 경우를 대비해 완전히 맥을 끊는다.

퍽 교과서적인 대응이었다.

단지.

'나중에.'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첫 살인의 충격으로 당황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건 나중에 하면 된다.

일단 하연이를 구하고 나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든, 그렇지 않으면 당황하며 손을 떨든.

어느 쪽이든, 제자들 앞에서 보여줄 모습은 아니었다.

적어도 저 계집애들에게 자신들이 살인을 방조했다고, 사람 죽는 일을 도왔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억지로 감정을 틀어막으며,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내 승리에 도취되어 꺅꺅거리는 비명을 지르던 계집애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허면, 내가 할 일은 그 환상을 계속해서 유지시키는 거겠지.

"구경 났냐, 이것들아? 됐고, 슬슬 짐 챙겨라!! 선생님이 길 뚫었다!!"

실제로, 호령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결판이 난 연무장을 앞두고 호들갑을 부리던 계집애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지나칠 정도로 깔끔했던 결판 덕분일까.

그 중에서 어느 누구도 태시영의 안위를 살피지 않은 건 나로서도 다행이라 할 법했다.

아니, 그야 적이었고.

눈 앞에서 친구를 납치한 납치범이니까 구태여 걱정하는 쪽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사실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나 또한 마저 걸음을 옮겼다.

*

마법적인 계약은 고작해야 죽음 따위로 도망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물건이 아니다.

애초에, S랭크 헌터 두 명이 서로의 자리를 걸고 벌인 싸움.

그조차 대련이나 불살생 운운하는 이야기 따위는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나와 태시영 사이의 계약에는 그런 조약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때문에.

태시영의 뇌가 곤죽이 된 지금도, 계약을 이행하는 데엔 별다른 문제 하나 없었다.

나의 승리가 확인된 직후, 계약서 위로 태시영이 알고 있던 정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근처에 있던 비밀 통로를 통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놀랍게도, 태시영은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적당히 거짓말을 토한 게 아니었다.

산 뒤편의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감상을 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나치게 일이 잘 풀리는 기분도 없잖아 있었다.

이대로 하연이를 탈환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뭐, 일단 퇴각해야겠지.

기세등등하게 찾아오긴 했지만, 상대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

하연이가 없다면 지상에 몸을 내밀 수도 없는 존재다.

허면, 구태여 싸울 필요는 없겠지.

아니, 나로서는 죽여버리고 싶지만.

아무리 그래도 녀석들이 위험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사실을 떠올리자, 문득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나 참.'

박우찬도 참 많이 변했다.

설마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그런 감상을 품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번 3년.

처음엔 단순히 몬스터를 쳐죽이기 위해 발을 담았을 뿐인 아카데미 생활에 익숙해진 자신이 있다.

내심 귀찮다 생각했던 관계에 어느 정도 정을 붙인 자신이 있다.

그 사실에, 어쩐지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하긴, 그러지 않고서야 나같은 아저씨가 여고생들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을 일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냐마는.

동시에.

자연스레 생각하고 만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마지막.

방금 전 쓰러뜨린 태시영에게 납치당할 당시, 하연이가 보여주었던 표정과 행동을 떠올린다.

3년.

자그마치 3년이다.

무려 3년이나 되는 시간은, 박우찬이라는 인간을 이렇게 바꾸어두었다.

허면, 하연이는 어떨까.

도대체 그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자하연은 박우찬에게 어떤 모습을 보았던 걸까.

마지막까지 도움을 청하는 대신 그런 말을 입에 담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치 만족했다는 듯, 죽음을 앞두고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설령 추론할 수 있다 해도 마찬가지.

구태여 이제 와서 그 상황을 반추할 까닭은 없다.

이 앞에는 하연이가 있을 테니까.

당사자인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다.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통로 너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

자하연이 이 감옥에 들어오고 나서, 그녀를 찾아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저 멀리 하늘을 향해 난 창가 너머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게 그녀의 일과였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창살 바깥의 어둠 너머로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을 때, 자하연은 처음엔 단순한 착각이라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기는 마왕의 거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로 바깥에서 들린 소리는 실로 왜소했다.

마치 누군가 숨어들기라도 한 듯.

적어도 마왕의 발걸음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자하연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아니, 이 놈의 통로는 뭐가 이렇게 길어."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쏙 하고 고개를 내민 익숙한 방독면을 보고도, 그녀는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학생들을 인도하던 박우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둘의 시선이 어색하게 맞부딪힌다.

그리고.

잠시 무어라 말하려는 듯 달그락거리던 방독면이, 곧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자하연은 알고 있었다.

저 행동은 그녀의 오빠가 무어라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 멈출 때 나오는 모습이라는 걸.

실제로도 그랬다.

자신도 모르게 험한 말을 내뱉으려던 박우찬은, 방독면 뒤에서 살짝 시선을 던졌다.

하연이는 갇혀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쇠창살 너머.

이상할 정도로 넓은 방 안에, 하연이는 덩그러니 홀로 놓여 있었다.

놓여 있었다는 표현이 실로 적절한 모습이었다.

양 손목과 발목에 사슬을 찬 채, 푸른 머리칼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

마치 달관한 듯 보이는 그 얼굴은, 박우찬이 알고 있던 자하연 그대로였다.

손발에 달린 사슬이 마력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걸까.

비록 눈에 비치는 기색은 유약하기 그지없었지만, 반대로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였다.

숫제 방치된 듯한 그 모습에서, 그러나 안심을 느끼는 건 잘못된 일일까.

"……오빠?"

"하연아."

갈라진 목소리로 그리 묻는 그녀를 향해, 박우찬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자 머리카락 너머로 진주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박우찬은, 곧 새된 목소리가 귓가를 찌르는 걸 느꼈다.

"잠깐, 잠깐!!"

"하연아?!"

뭐지?

겉으로 봐서 알기 힘든 부상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런 마음에 다시 한 번 걸음을 내딛자, 한층 더 새된 목소리가 감옥을 울렸다.

"잠깐, 오빠가 왜 여기……. 착각? 아니, 그보다!!"

"환각은 아닌데. 아니, 환각은 다 그렇게 말하던가?"

"오빠 맞네. 아니, 그럼 가까이 오지 마세요!! 저 세수도 안 했어요!! 아니, 못 했어!!"

연신 튀어나오는 말에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세수도 안 했다니.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너는 지금 그런 게 신경이 쓰이냐?"

"신경 쓰이죠, 그럼!!"

지나치게 적극적인 대답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까지 3년 내내 보았던 하연이의 모습 중에서도 제일 적극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 모습에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물어보고 싶은 것.

물어봐야 할 것.

아직도 마음 속에 메아리치는 의문이야 산더미처럼 많다.

하지만.

'뭐 어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런 이야기 따위는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익숙한 모습을 보다 보니 그런 감상이 들었던 탓이다.

……그래.

하연이가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던가.

어째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건가.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도 충분히 나눌 수 있다.

여하간, 하연이가 신세계 질서의 제물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일 따위는 이제 없을 테니까.

박우찬은 그렇게 말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었다.

때문에.

박우찬은 그런 그녀의 모습으로부터 헛웃음을 흘리며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섰다.

자하연의 바람과는 정 반대되는 행동이었지만, 그 사실이 어쩐지 즐겁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흠, 오늘 따라 손님이 많은데."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화처럼 계속되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분위기가, 한 순간에 얼어붙었다.

조용히 풍기는 기척.

뒤이어, 넘실거리는 마력.

거기에 비해, 천장에 울리는 발소리는 너무나도 가볍기 그지없다.

타박, 타박.

마치 집 앞을 산책하는 듯한 가벼움으로.

"즐거운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었나? 방해했다면 미안하게 됐군."

옆집에서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어조로, 지하 감옥 너머.

계단을 타고 내려온 마왕은, 처음 보는 사냥꾼을 향해 그렇게 인삿말을 건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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