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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54화 (354/371)

〈 354화 〉 호기심

* * *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태시영의 제안은 꽤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였다.

여하간, 지금 우리들로서는 전력 하나라도 아까운 판국인 게 사실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손을 잡고 마왕을 쳐죽이자는 태시영의 제안은 상당히 얻을 게 많았다.

무엇보다, 태시영 본인도 S랭크 헌터가 아닌가.

어중간한 전력도 아닌 S랭크 헌터가 한 명 더 추가된다면, 전략의 폭 자체가 크게 달라진다.

당연히 전체적인 승산 또한 높아지겠지.

수상쩍은 건 매한가지지만, 그렇게 말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다.

때문에.

"좆까."

구구절절 별다른 사정을 듣는 대신, 나는 곧바로 중지를 치켜세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태시영에게도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

어쩌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마왕이라는 당사자를 보니 갑자기 없던 인류에 대한 애착이 솟아올랐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내가 염려할 바는 아닐 뿐.

애초에 나는 딱히 신세계 질서 쪽의 회개를 받아주자고 주장하는 쪽이 아니었다.

사정이 있어서.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유예를 주장하는 건 언제나 최승준과 이준구 뿐.

나는 달랐다.

조질 수 있을 때 조져두면 서로 편하고 좋지 않겠나.

언제나 나는 놈들에 대해 그런 태도로 일관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막말로, 내가 손이 급하다는 이유로 적당히 용병들을 구해 여기까지 오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불법이라서?

협회 소속도 때려치운 지금, 고작해야 불법이 뭐 어쨌다고.

정답은 단 하나.

그렇게 고용한 녀석들은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이 쪽의 전술엔 맞물리지 않는 주제에, 숫자만 차지하는 놈들.

전쟁이라면 모를까, 사냥이라면 구태여 그런 병력을 확보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점은 태시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우리들과 호흡을 맞춘 적도 없다.

심지어 놈이 정말로 마왕을 배신할 생각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허면, 배신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조기에 배제하는 편이 낫다.

뭐, 정말로 억울할 수도 있겠지.

진심으로 우리에게 붙을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럴 거면 평소부터 잘 하던가.'

아니꼬운가?

회개할 기회도 주지 않아서 억울한가?

그런 건 법정에서 판사와 논의하면 된다.

운이 좋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애병을 들어올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태시영은 어깨를 좁혔다.

유감이라는 듯한 태도는 아니었다.

"아뇨. 제가 이야기하는 건, 여러분과 제가 하하호호 웃으며 손을 잡자는 뜻이 아닙니다."

"엥?"

오히려 정 반대.

자신의 제안을 느긋하게 풀어놓는 그 태도에선, 모종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태시영이라는 놈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이상한 새끼였다.

"일기토를 합시다."

"일기토?"

"네. 당신과 저, 둘 사이의 일기토입니다. 물론, 제가 이긴다 해도 그녀들에게 손은 대지 않겠다고 약속하도록 하죠."

"진심이냐?"

"당신이라면 계산할 수 있을 텐데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진심이냐 물은 건 놈의 제안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말로, 여기서 당장 놈을 단체로 두들겨 패는 게 우리에겐 훨씬 유리한 이야기였으니까.

구태여 1대 1 승부를 받아줘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다만.

놈의 말 또한 사실이었다.

이 제안 자체는 받아들일 메리트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겐.

허나, 내게는 어떤가?

그렇게 물으면,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그야 그렇겠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놈은 추정 S랭크 헌터다.

즉.

우리들이 놈을 때려죽이는 사이, 놈이 무언가 발악을 저지를 가능성 또한 없지는 않다.

막말로, 생존을 도외시하고 나와 공멸하려고 자폭한다던가 하는 건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겠지.

지금 내게 있어 오히려 염두에 두어야 할 가능성은 단 하나.

놈이 나를 무시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공격을 퍼붓는 경우였다.

그 경우, 태시영의 목숨과 교환해 둘.

못해도 한 명은 죽음을 맞이하리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로서는 그런 위협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자를 구하기 위해 다른 한 명을 희생하다니.

언어도단도 이런 언어도단이 없겠지.

"물론 몇 가지 조건도 추가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거기에서 놈이 덧붙인 조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자신이 이겼을 경우, 자신이 그대로 학생들을 데리고 자하연의 탈환에 나서겠다.

만약 학생들이 후퇴를 종용할 경우, 무조건 그녀들의 의견을 우선하겠다.

반대로, 자신이 진다면?

"여기에는 결계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였다.

이미 서아의 천리안을 통해 확인한 결계.

지금 내가 기척을 드러내도 들키지 않을 만큼, 외부로 충격이나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결계다.

그리고.

"지하 감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도 있죠."

……즉, 마왕의 감시를 염려할 필요 없이 하연이와 접촉할 수 있는 권한.

놈은 그런 걸 미끼로 내걸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이번에야말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일단 태시영이라는 전력을 사전에 미리 격파할 수 있다는 점만 해도 마찬가지고.

여하간, 사냥을 완료한 직후 태시영에게 허를 찔려 하연이를 납치당한 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니까.

미리 놈을 제압하고 싶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내게도 이건 좋은 기회였다.

마법적인 계약을 동원하면 놈이 짐짓 일기토인 척 마왕에게 연락하는 사태도 막을 수 있을 테고.

말 그대로, 자신의 목숨이라는 리스크를 도외시하면 이득 뿐인 거래였다.

적어도 내게는.

"나쁘지 않군."

"선생님!!"

그리고.

이번에 내가 여기에 온 건 순전히 내 고집 때문.

전원의 이득이라던가, 전체적인 승기라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적어도 놈이 누구 하나를 데리고 동귀어진하거나, 학생들을 맨 몸으로 이 땅에 방치하거나…….

내게는 그런 쪽보다야 저 거래를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도 있었다.

지금 이 상황.

놈의 제안.

거기에, 일기토.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쉽군.'

애시당초 이 결투에 리스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승리를 확신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솔직히 말하자면, 태시영에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세련된 배신이나 적을 흔들기 위한 제안.

혹은, 틈을 만들기 위한 계책 따위는 아니란 소리였다.

태시영이 생각한 건 단 하나.

자신은 마왕의 힘을 재보기 위해 덤비고 싶었고, 그렇지만 쓸 수 있는 패가 부족하다는 점 하나 뿐이었다.

여하간, 태시영도 바보는 아니다.

마왕이 지닌 정확한 힘을 어림할 수 없었을 뿐, 자신보다 격상인 상대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대로 맨 몸으로 들이받아 산화하는 건 계측이 아니라 단순한 자살 행위다.

때문에.

태시영은 협력을 제안했고, 거절당하자 곧바로 다음 계책으로 선회했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박우찬을 설득하기는 힘들어 보였으니까.

그러므로.

머리를 지우고 자신이 머리가 되어 휘하 전력을 손에 넣는다.

태시영으로서는 차선이라 할 수 있는 플랜이었다.

뭐, 나쁜 결과는 아니다.

애초에 슬슬 좀이 쑤시기도 했고.

마왕에게 도전한다면 최선의 상황까지 스스로를 갈고닦은 채 도전하고 싶다.

그러니, 박우찬의 거절은 썩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박우찬이라는 동급 이상의 헌터를 상대로, 스스로의 실력을 가다듬은 채 도전한다.

어쩌면 성장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오히려 궁금한 건 박우찬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인 계기였지만, 곧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태시영이 보기엔 제자 한 명 구하고자 여기까지 온 박우찬의 행동 또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태시영은 그런 인간이었다.

어쩌다 보니 인간으로 태어났을 뿐인 짐승.

그 본질은 오히려 몬스터에 가까운 존재.

저랭크 몬스터처럼 생존에 급급하지 않을 만한 힘은 갖췄지만, 오로지 척수반사적인 이유로 살아가는 인간.

마치 갈기가 달린 채로 태어나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도전하는 숫사자처럼.

지금 태시영이 마왕에게 도전하려는 이유 또한 고작해야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생물학적인 본능.

종의 확장이나 다름없는 날것 그대로인 감정이, 인류를 저버린 지금은 스스로를 향하고 있을 뿐.

그러므로.

태시영은 패배를 염려하지 않았다.

패배란 곧 죽음.

적어도 지금 이 상황에선 명백한 사실이다.

허면, 패배를 상정할 필요는 없다.

죽어 고꾸라지면 거기에서 끝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목숨을 건 싸움에 나서는 지금.

둘 중 어느 쪽도 스스로의 패배를 염려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새의 연무장.

널찍한 장소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두 명은, 상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만, 어느 쪽이든.

이제 와서 상대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빌미로 싸움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서로는 서로의 자신감과 그 근거를 남김없이 부딪히기로 했다.

어쩌면 과연이라 해야 할 것인가.

실제로, 서로의 자신감과 마찬가지.

짧은 신호와 함께 시작된 싸움은, 결실을 맺는 데에 고작해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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