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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53화 (353/371)

〈 353화 〉 호기심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습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숙련된 잠입 능력이나 대상의 정보 등은 두말할 까닭도 없겠지.

허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적의 방심이다.

막말로, 은신 능력을 보유한 헌터라 해도 마찬가지.

수많은 경비원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장소까지 잠입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잠입할 방법이 없다면 더더욱 그럴 테고.

하물며, 상대가 평소부터 급소를 보호하는 장비라도 갖추고 있을 만큼 극성이라면?

침실이나 욕탕 등이 아니라면 암살 따위로 승부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오셨군요."

우리가 요새 내부로 발을 들인 순간.

방금 전까지 책을 읽고 있던 태시영이 돌연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어올린 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뭐, 그렇겠지.

애시당초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면 이런 방에서 책이나 읽고 있을 까닭도 없다.

단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칫 하고 떠는 어깨를 감추지 못한 제자들처럼, 태시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올린 태시영의 미간이 조용히 구부러졌기 때문이다.

"많기도 하군요."

퍽 많은 속내를 짐작케 하는 답변이었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 또한 이렇게 대인원이 될 줄은 몰랐다.

본디 혼자서 움직일 생각이었으니까.

하물며, 내가 올 거라는 사실조차 반신반의했을 태시영 입장에서는 어떻겠나.

하지만.

살짝 이마를 좁힌 걸 제외하면, 태시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허세일까,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생각이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어정쩡하게 거리를 둔 상태에서 들킨 우리들은 다소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자하연 양은 산 뒤편의 지하 감옥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태시영은 곧바로 장군을 불렀다.

……수많은 의혹이 메아리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었으니까.

애초에 태시영이 우리들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줄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십중팔구 함정이겠지.

다만.

하연이의 행방에 대해 별다른 흔적 하나 발견하지 못한 우리들로선 귀가 열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태시영은 우리들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여러분들에게 제안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제정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여하간, 태시영은 우리들에게 있어선 마지막에 판을 뒤집은 신세계 질서의 끄나풀.

인류의 배신자이며, 하연이를 납치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태시영 또한 알고 있을 터.

그러므로, 다음 순간 태시영이 제안한 건 우리들로서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마왕이라는 놈, 죽여버리지 않겠습니까?"

*

태시영은 이상한 시대에 태어났다.

달리 말하자면, 이상한 놈이었다는 뜻이었다.

실로 합리적인 평가다.

태시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어도 굳이 변명하자면 역시 이 시대가 문제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두 번에 걸친 대침공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몬스터라는 불친절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수반한 헌터들의 각성으로 말미암아, 인류 사회는 바야흐로 대격변을 겪게 되었으니.

소위 말하는 헌터 사회의 시작이었다.

유사 이래 가장 큰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게이트 혁명.

누군가는 게이트가 준 발견과 이적을 보고 그리 칭했고, 누군가는 몬스터에 의한 피해를 눈에 담고 피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시영에게 있어, 지금 이 시대가 의미하는 건 보다 명약관화했다.

이 시대는, 개인의 힘이 사회의 힘을 넘어서는 시대였다.

지나칠 정도로 갑작스러운 변화 탓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인식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해 손을 휘젓고 있는 세계 각지의 정부 때문일까.

암암리에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언급하지 않는 사실을, 태시영은 어릴 적부터 직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 사실로 말미암아 권력을 노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누군가는 그 사실로 말미암아 현대 사회의 붕괴를 예측할지도 모르고.

다만.

태시영은 달랐다.

태시영에겐 그렇게 적극적인 권력욕이 없었고, 정치 역학을 고려할 수 있을 만한 지식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태시영이 느낀 건, 모종의 위화감.

생물로서의 본능에 가까운 경각심이었다.

인류는 무리를 짓는 생물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어떤 생물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숫자의 무리를 자랑하는, 집단을 이루는 짐승이다.

틀림없이 인류는 여태까지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다.

여태까지는.

다시 말해, 지금부터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인류가 사회를 이룬 이유는 무언가 대단한 까닭이나 신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직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아니었을 시절부터, 그게 생존에 유리했던 탓이다.

말하자면 종을 보전하기 위한 본능의 일부인 셈이다.

그리고.

개인의 힘이 사회의 여력보다 강해진 지금.

더 이상 인류에게 무리를 짓는 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이 아니었다.

태시영이 군에 몸을 담은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앞으로 와해될 가능성이 높은 군체.

다수의 물량과 화력으로 사회를 억제할 수 있었던 무력의 말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도 나쁘지 않았다.

이 나라의 청준필 준장 등 일부 영웅적인 군인들에 의해, 군부는 아슬아슬하게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단지.

설령 군부가 그 위세를 유지해도, 세력의 약화는 피할 수 없다.

군축 따위와는 다르다.

일개 국가의 모든 무력.

사람들이 합의해 그 권한을 맡긴 무력 집단이라는 정체성이 살해당한 이상, 군은 이미 그 위세를 회복할 수 없다.

무엇보다.

헌터나 몬스터는 현대 사회의 힘으로 완전히 억누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헌터 협회의 랭크 제도를 보고서, 태시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협회가 매긴 랭크는, 그런 의미에서 따지자면 태시영에겐 퍽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적어도 한 눈에 위협성을 간파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A+랭크.'

현대 사회.

정부의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몬스터는, 어디까지나 A+랭크까지.

애시당초 S랭크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 사회의 병기로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을 뜻한다.

협회가 그렇게 인정했다는 건, 반대로 말해 대다수 나라들은 S랭크 헌터 내지 몬스터를 감당할 수 없다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태시영이 군부를 나선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미 무너지고 있는 조직과 그 명운을 함께할 만큼 의리 깊은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반대로,별다른 양심의 문제 없이 인류를 배반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점 덕분이었다.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태시영이 신세계 질서에 관심을 가진 건 그들의 배후.

마왕이라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존재가 더 컸으니까.

여하간, S랭크 몬스터조차 단순한 병기 수준이 아닌 일개 국가의 무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존재다.

헌데, 그런 S랭크조차 능가하는 존재.

현대 사회의 규격으로 잴 수 없는 생물이란, 도대체 무슨 존재인가.

그렇게 태시영은 인류를 배반했다.

막말로, 인류가 그들의 제일 큰 이점인 사회성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적들이 즐비한 지금.

태시영이 보기엔 인류라는 개념에 구애될 필요가 더 이상은 없었다.

애초에 여태까지 인류는 두 번이나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습격을 맞이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앞으로 몇이나 되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 존재할까 알 수 없는 상황.

그토록 많은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 모조리 소환의 여파 탓에 거동을 할 수 없거나, 방심하거나.

혹은 인류에게 자비심을 베풀지 않으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지금 이 상황.

생물학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인류는 자연적으로는 이미 멸종한 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몬스터 몇 마리의 변심으로 멸망이 결정되는 종족이라면, 멸망해도 별로 상관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태시여은 신세계 질서와 행동을 함께하게 되었다.

그리고.

온갖 고난을 거쳐, 신세계 질서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마왕의 진영에 합류한 지금.

태시영은 그토록 흥미 깊던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수고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무수한 권태감으로 휘감긴 채, 옥좌 위에서 치하의 말을 던지던 마왕의 존재감을.

압도적인 마력과 존재감.

바야흐로 인류 사회의 힘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존재를 보고서, 태시영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 대답이 바로 방금 전 그가 던진 제안이었다.

'모르겠다.'

애초에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라는 건, 얼마나 강한 거지?

아니, 아니.

저토록 압도적인 마력과 존재감이다.

강하다는 건 알겠어.

그렇지만, 그게 정확히 얼마나 강한 건가?

안 그래도 A+랭크 이상은 명확히 수치화할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허면, 그 위에 있는 마왕은 과연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태시영은 그걸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마왕이라는 놈, 죽여버리지 않겠습니까?"

말마따나 규격 외.

측정할 방법이 없는 존재를 측정해보기 위해서.

세계를 멸망시킬 만한 힘이 얼마나 되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에, 태시영은 신세계 질서의 손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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