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352화 (352/371)

〈 352화 〉 성산을 향하여

* * *

자신은 이해할 수조차 없을 방법으로 세상의 경계를 넘은 이후.

자하연의 일과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마땅치 않았던 탓이지만.

신기한 세상이었다.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성산 어귀.

거기에 세워진 감옥 속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언제나 밤의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빛이 없는 영역.

세상에 선이 사라지고, 성스러운 신들의 유해가 밤하늘에 별빛이 되어 박제당한 지금.

더 이상 이 세계에는낮이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연이 별빛을 보며 떠올리는 건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던 새파란 하늘.

다시 말해, 박우찬과 입술로 나누었던 대화였다.

쿵, 하고 뒤통수를 감옥의 벽에 찧는다.

낯뜨거울 정도로 달아오른 뺨 때문이었다.

'부끄러워.'

그렇게 생각했다.

동시에.

'바보 같아.'

그렇게도 생각했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뻔뻔하기 짝이 없는 행동.

부끄러움을 모르는 추태다.

자하연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바람 높게 부는 하늘 아래,박우찬과 눈이 마주친 자하연은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었나.

당황도 있다.

두려움도 있다.

걱정 또한 없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하연은 생각해버렸다.

조금 억울하다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탓이었을까.

결국 자신만 오빠에게 고백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당시 자하연이 내뱉었던 마음은 순전히 본인의 옹졸한 만족감을 위한 행동이었던 셈이다.

오빠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보나 마나 속이 상하도록 괴로워하겠지.

어쩌면 평생토록.

자하연은 박우찬이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문에.

그 사실에 미안함을 느껴야 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헤."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변함은 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입으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오빠가 자신을 기억해 주리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도, 손목에 채워진 수갑의 무거움도.

모조리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스로가 있다.

……사람의 욕망은 무릇 불과 같아, 점차 거세게 타오르는 법.

스스로의 죽음을 앞두고, 자하연은 그런 사실을 실감했다.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다.

긴, 긴.

정말로 긴, 그런 꿈이었다.

처음에 박우찬과 만났을 땐,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꿈처럼 느껴졌는데.

더 이상 바랄 건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던 꿈의 끝에서, 아주 조금 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에헤헤."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을 감추며, 자하연은 그렇게 웃었다.

즐거웠기 때문이다.

응.

마냥 즐거운, 자신에게는 과분한 꿈을 꾸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꿈이라, 자신도 모르게 조금만 더 나은 무언가를 바라며 손을 뻗은 기억이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눈을 뜰 시간인 모양이다.

낮이 없는 이 세상에도, 꿈에는 끝이 있었다.

무엇 하나 별다른 목적 없이 흐르는 대로 살았던 열 여섯 살의 자하연에겐 과분한 꿈이, 새벽별에 불타 사라진다.

이제 와서 회고해도, 좋은 인생은 아니었으리라.

굳이 따지자면 어두운 밤과 같은 인생이었겠지.

다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에 꿈을 꿀 수 있었고, 바로 그렇기에 별에 뒤지지 않도록 빛나는 무언가 또한 찾을 수 있었으니까.

비록 손에 넣지는 못했다 해도, 별빛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족하니?'

마음 속에서 그렇게 되묻는 누군가의 비아냥거림에도, 자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응, 만족해.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어."

앞으로 머잖아 자신은 제물이 되겠지.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단검이 심장을 꿰뚫고 배를 가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하연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미련한 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비아냥조차 흘려넘길 수 있을 정도로.

틀림없이 좋은 인생은 아니었다.

그래도, 즐거운 인생이었다.

*

혹시 몰라 주변을 경계하며 나아가고 있기는 했지만, 별다른 매복자 따위를 발견하진 못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뭐, 그야 그렇겠지.

여하간, 말 그대로 벼락이 될 수 있는 이준구조차 대한민국 전역을 홀로 커버할 수는 없다.

만에 하나 상대가 벼락에 대응할 수단을 지니고 있을 경우.

거기에 맞추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 최강의 영웅이 있는 이 대한민국조차, 국토 방위의 대부분은 군부가 맡을 수밖에 없다.

설령 최승준이 상대라 해도 마찬가지.

도시 사이로 숨어든 몬스터 한 마리를 처리하기 위해 나라의 절반을 날려버려서야 단순한 제 살 깎아먹기일 뿐.

몬스터들과의 전쟁이라면, 어느 순간 뛰어난 개인이 아닌 평범한 다수에게 의존해야 할 상황이 오기 마련이다.

마찬가지였다.

설령 상대의 힘이 우리보다 강력하다 해도, 모든 병력 대부분을 잃어버린 지금.

놈들은 우리들의 진격을 저지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여기서 추가로 인원을 더 할애할 경우, 별동대가 하연이를 납치하고 도망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을 테니까.

심지어 그조차 놈들이 우리를 먼저 포착했을 경우의 이야기.

현재 우리들에겐 천리안 능력을 지닌 서아조차 있다.

당연히 선수를 쥐는 건 우리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뭐라고?"

"말 그대로야."

산 어귀까지 도달한 시점에서, 서아는 우리들로서도 무시하기 힘든 정찰 결과를 입 밖에 냈다.

산채 중간에 요새가 있었다.

"으음."

나도 모르게 잠시 앓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물론 상정할 수는 있었다.

마왕의 봉인과 함께 신들의 직접적인 대립이 끝난 이후로도, 영웅들의 대립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이 때, 악신들의 진영에 군림하던 제왕이자 대전사.

악신의 챔피언이 바로 영웅들의 적이라 일컬어지는 투란의 왕, 아프라시압이다.

여기에, 그 아프라시압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 철옹성.

악신 진영 최후의 거점이 되었다 일컬어지는 난공불락의 성채.

지하에 파묻힌 강철 요새, 하나카나Hanakana였기 때문이다.

"뭔가 귀여운 이름이네."

"성우같은 이름이긴 하지."

그리고.

산등성이에 요새가 생겼다는 건, 우리들의 전진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뜻이었다.

막말로, 요새에 마법적인 함정만 심어도 우리들의 발목을 잡거나 진입을 눈치채는 건 용이할 테니까.

때문에 서아 또한 총력을 기울여 요새의 약점을 찾아냈지만…….

"수상쩍군."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평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빈틈 자체는 있었다.

마치 산을 감싸는 용처럼 원주를 그리는 요새의 일부분.

유달리 언덕이 낮은 장소가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함정을 의심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터.

여기에.

"태시영이라."

일찍이 하연이를 납치한 그 헌터, 태시영이 대기하고 있다면 더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서아의 말에 의하면, 태시영은 그런 요새 한복판에서 적당히 시간을 떼우고 있다 한다.

적당히 가져온 소설책을 읽고 있는 그 모습은 설명만 들어도 퍽 태연하기 짝이 없을 따름.

노골적인 함정의 냄새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지. 그 쪽으로 가자."

"괜찮겠어?"

"선택지가 없어."

우리들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결국 시간에 쫓기고 있는 건 우리들 쪽이니까.

십중팔구 함정일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쪽으로 우회하는 건 얼마나 되는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으니.

나로서도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던 셈이다.

"허면, 준비해야겠구나."

나와 서아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티아마트는 그렇게 말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티아마트는 내게 있어선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티아마트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단 하나.

마왕의 전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 혼자서 마왕을 상대로 얼마나 싸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이 상황.

우리들이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력은 나 외엔 모조리 제자들 뿐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힘은 빌리더라도, 녀석들이 죽는 모습은 보고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니.

기본적으로 보조와 회복.

만에 하나 내가 잘못될 경우, 제자들을 데리고 도망칠 역할로 데려온 셈이었다.

때문에.

학생들에게 축복을 부여하던 티아마트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내게 녀석이 손을 뻗은 순간.

나는 무심코 쌍욕을 내뱉고 말았다.

"씨발, 그거 안 치워?!"

"그거라니, 손톱 말이더냐?"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티아마트.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게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 진정하고 잘 보거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알겠지만 말이다."

"엉?"

티아마트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제서야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몬스터들의 악취 따위가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독면을 쓰고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평소부터 티아마트를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억지로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

평소라면 티아마트의 손을 잘게 다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 반대.

마치 바퀴벌레의 촉각처럼 느껴졌던 티아마트의 손이, 우아하기 짝이 없는 여인의 손가락처럼 보인다.

그 사실에 얼떨떨한 나머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 나를 향해, 녀석은 천천히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음, 역시."

온 몸을 휘감는 가호.

여기에, 아직까지 남아있던 피로나 부상 등이 티아마트의 마력에 힘입어 회복될 때까지.

내 몸에는 별다른 반응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씨발."

뭐야?

분명히 다행인 일이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말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티아마트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면, 이래저래 승산도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티아마트가 따로 조치를 취한 건가?

아니, 만약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내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런 시선이 그녀를 향한 탓일까.

티아마트는 그 우아한 얼굴 위로 조용히 쓴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진 본인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만, 널리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니라."

"어, 어어."

"오히려 적들이 이런 방법을 선택할 리도 없지. 그러니 너무 염두에 두지 말거라."

아니, 그렇게 말해도.

정말로 칼로 딱 베어 자르듯 염두에 두지 않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허비할 시간도 없는 건 분명한 사실.

결국 내심 탐탁치 않은 마음을 삼키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기회가 생기기를 빌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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